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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다니엘손 스웨덴 대사가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8월 14일 한국을 떠납니다. 어찌어찌 연이 닿아 8월 12일 저녁 다니엘손 대사의 송별파티를 겸한 서울문학회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다니엘손 대사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 고은 선생을 모시고 시낭송을 듣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8월 12일(목) 저녁, 주한 외교 사절의 한국문학 모임인 서울문학회가 광화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렸다. 다니엘손 대사가 회장으로 주재하는 마지막 서울문학회의 초대작가로 온 고은 시인을 소개하고 있다. 다니엘손 대사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고은 시인의 시를 한편씩 읽는다고 한다.
8월 12일(목) 저녁, 주한 외교 사절의 한국문학 모임인 서울문학회가 광화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렸다. 다니엘손 대사가 회장으로 주재하는 마지막 서울문학회의 초대작가로 온 고은 시인을 소개하고 있다. 다니엘손 대사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고은 시인의 시를 한편씩 읽는다고 한다.

어렸을 적 가난에 주려 하늘의 별이 밥이었으면 했다며 “별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나서는 별이 밥인 줄 알았던 시절이 부끄러워 숨겨왔었다.”는 가슴 아픈 고백마저 아름다워 역시 시인은 시인이구나 싶었습니다. 십 대에는 무슨 까닭인지 폐결핵에 걸렸으면 하고 바랐고, 있지도 않은 누이를 있는 척 그리워하기도 했다 했습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애매한 삶을 살았다고 했지요.

다니엘손 대사는 개인적으로 만나 사람 중에 가장 해박하고 신념에 찬 분입니다. 제가 아는 몇 안 되는 대사 중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대사이기도 합니다. 2006년 12월 전임 뵈리외 대사부터 시작된 서울문학회는 주한 외교관들이 한국 문학을 알아가는 모임입니다. 분기별로 작가를 초대해 작품에 대해 듣고 질문하는 자리로 고은, 김영하, 황석영 등 여러 작가가 다녀갔습니다.

한국에 대해 알려면 누구의 작품을 읽어야 하느냐고 전임 대사에게 물었더니 주저 없이 고은 시인을 꼽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고은의 시집을 펼쳐 나오는 시를 하나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마침 “아베 교장”이라는 시를 읽었다고 합니다.

고은
고은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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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교장

아베 쓰도무 교장
둥그런 안경에 고초당초 같은 매서운 사람입니다
구두 껍데기 오려 낸
슬리퍼 딱딱 소리 내어 복도를 걸어오면
각 교실마다 쥐죽어버리는 사람입니다
2학년 때 수신 시간에
장차 너희들 뭐가 될래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대일본제국 육군 대장이 되겠습니다
해군 대장이 되겠습니다
야마모또 이소로꾸 각하가 되겠습니다
간호부가 되겠습니다
비행기 공장 직공이 되어
비행기 만들어
미영귀축을 이기겠습니다 할 때
아베 교장이 나더러 대답해 보라 했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천황 폐하가 되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청천벽력이 떨어졌습니다.
너는 만세 일계 천황 폐하를
황공하옵게도 모독했다 네놈은 당장 퇴학이다
이 말에 나는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이 빌고
아버지가 새 옷 갈아 입고 가서 빌고 빌어서
간신히 퇴학은 면한 대신
몇 달 동안 학교 실습지 썩은 보릿단 헤쳐
쓸 만한 보리 가려내는 벌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나는 썩은 냄새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땡볕 아래서나 빗속에서나 나는 거기서
이 세상에서 내가 혼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석 달 벌 마친 뒤 수신시간에
아베 교장은 이긴다 이긴다 이긴다고 말했습니다
대일본제국이 이겨
장차 너희들 반도인은 만주와 중국 가서
높고 높은 벼슬 한다고 말했습니다
B-29가 나타났습니다 그 은빛 4발 비행기가 왔습니다
교장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것이 귀축이다 저것이 적이라고 겁도 없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베 교장의 어깨에는 힘이 없었습니다
큰소리가 작아지며 끝내는 혼자의 넋두리였습니다
그 뒤 8·15가 왔습니다. 그는 울며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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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소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아침마다 일본을 찬양하는 말을 돌아가며 시켰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은 꿈을 묻기에 “나는 천황이 되겠다”고 답해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1945년의 해방은 시인에게 정치적인 해방보다 모국어의 해방이라고 했습니다. ‘파도’라고 말하면 파도 소리가 들린다는 고은 시인은 언어 자체가 원자처럼 우리 안에 녹아 존재를 형성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언어가 없으면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며 언어를 찾았으니 존재를 찾은 것이지요.

고은
“선생님 사진찍어도 되요?” 하자 시인은 웃으며 앞에 있던 와인잔 두어개를 옆으로 치웠다. “술잔을 한 잔 넘게 두고 있으면 사람이 기품이 없어 보여.”

다니엘손 대사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인 내일 아침에 읽어야 할 시를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대사에게만 따로 말해주겠다며 답을 저어했습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는데 와인이 몇 잔 돌아 분위기가 무르익자 다시 물었습니다. “나도 내 시를 다 기억 못 해서 뭘 꼽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궁금해요! 궁금해요! 조르니 “어떤 기쁨”이란 시를 골라주셨습니다. 그 덕에 저도 오늘 아침을 “어떤 기쁨”으로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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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쁨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했던 것
울지 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하고 있는 것
울지 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막 생각하려는 것
울지 마라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세계에서
이 세계의 어디에서
나는 수많은 나로 이루어졌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수많은 남과 남으로 이루어졌다
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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