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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1914년 5월 어느 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느냐는 한 목사[footnote]헤힐러 목사(Reverend Hechler)[/footnote]의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어떤 깨달음에 도달한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제3인칭으로서 그(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신을 믿는다는 것이 그 분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footnote]마르틴 부버, 남정길, 대한기독교서회, 1977. p. 26.[/footnote]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떨리는 목소리가 기어코 입 밖으로 터져나올 테고, 그 고백은 누군가에게 벅찬 기쁨이나 깊은 슬픔을 만들어내고 있을 테지만, 부버는 “사랑은 ‘나’에 집착하여 ‘너’를 단지 ‘내용’이라든가 대상으로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사랑은 ‘나’와 ‘너’ 사이’에 있다.”고 선언한다.[footnote] 나와 너, 마르틴 부버, 표재명 옮김, 문예출판사, 1977, p. 26.[/footnote]

사랑은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정의 소유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주어가 너라는 목적어에게 내 진심이라는 ‘사랑’을 던지는 그런 행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난주, 지승호 작가를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터뷰 단행본을 펴낸 작가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인간과의 관계, 특히 대화에 관해 누구보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직업으로서 작업해온 사람이라는 의미다. 인터뷰는 늘 사람과의 관계에 관해 고민해야 하는 작업이면서, 특정한 인격을 ‘정보’로 대상화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독자들이 궁금한 건 그 인터뷰이에 관한 어떤 정보이거나 그 인터뷰이가 말해주는 어떤 정보일 테니까.

5년 전 인터뷰에서 이상헌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삶의 다양한 면을 다양한 시선에서 보여준다. 왜 우리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줄까. 불쌍해서도 있겠지만, 문학의 역할은 사람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진심으로 우러나는 인간적인 감정과 연민은 삶의 입체성에서 생긴다. (= 입체성?) 언론도 방송도 특별한 목표 속에서 한 인간의 일면을 비춘다. 이 인터뷰조차도 ‘이상헌’이라는 사람의 일면을 비추는 측면이 있다. 물론 그 모습도 나이긴 하지만. 문학은 존재의 다면성, 삶의 입체성을 비춘다.”(이상헌, 편지 쓰는 경제학자가 바라본 세상)

나는 인터뷰도, 마치 문학처럼, 독자에게 또 다른 대화의 씨앗, 관계의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승호라는 인간의 위대함과 찌질함을, 그저 그가 답하는 어떤 정보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영혼의 그림자를 바라보듯” 그렇게 ‘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지승호 작가에게 인터뷰 작가로 사는 괴로움과 기쁨에 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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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이: 지승호
  • 인터뷰어: 민노씨
  • 2019년 2월 19일 오후
  • 서울 합정역 인근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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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 작가
지승호 작가

 

= 자기 소개

인터뷰하는 지승호.

= 책은 몇 권이나 냈나.

52권.

= 많다(…)

2008년에는 한해에 6권을 내기도 했다.

= 오래 했겠다.

20년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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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가로 사는 괴로움

 

= 인터뷰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 

인터뷰라는 것의 장르적 특성 자체가 인터뷰 받는 사람, 즉 인터뷰이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역할이라고 본다.

"인터뷰는 기본적으로 인터뷰이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일이다." (지승호)
“인터뷰는 밥상을 차려주는 일” (지승호)

= 밥상 차려주는 일에 지쳤나. 요즘 좀 우울해 보인다.

인터뷰를 영화에 비유하면, 관객들은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 스태프를 기억하기보다는 배우를 기억한다. 인터뷰는 특히나 무슨 블록버스터 영화도 아니고, ‘독립 다큐멘터리’랄까.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그 독립 다큐 찍는 작가에게 이렇게 말한다.

‘니가 좋아하서 하는 일이잖아.’

= 니가 좋아하서 하는 일? 

그 말에는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열정페이를 받아도 당연히 감수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터뷰를 20년 가까이 해보니까 인터뷰 노동은 노동 강도가 어마어마하지는 않더라도 장시간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대한다.

‘남의 이야기 듣고 책 냈네?’ 

내가 자부하는 것 중 하나는 누구보다 많은 기록 노동을 해왔다는 거다. 그리고 스스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인터뷰 준비를 해왔다. 그 물리적인 시간에 제대로 된 노동가치를 평가하지 못받는 것에 대한….

= 분노, 슬픔?

아니 걱정….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 나 자신에 대한 걱정. 밀린 카드값 걱정하는 자신에 대한 걱정… 슬프고, 화나면 페이스북에서 그 감정을 토로하는데, 그걸 보는 사람들은 또 징징거린다고 한다. 물론 걱정하기도 하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으니까. 그런데 한편에선, ‘지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왜 저러나’ 하는 시선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 좀 힘들다.

= 자신의 작업이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 

친한 분들도 간혹 “놀면 뭐해, 와서 인터뷰 좀 해줘. 50만 원이면 돼?” 이런 식으로 접근할 때가 있다.

=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태도에 정말 화날 것 같은데.

정말 화가 나는데, 인연이 있는 분이라서 화를 낼 수는 없고…. 사람들은 인터뷰를 이렇게 생각하나? ’50만 원이면 되니?’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 노동의 가치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개그맨에게 ‘웃기고 가라’고 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 공감한다. 

스타 배우에게 독립영화에 출연하라고 하는 것과 생계를 위해 ‘노가다’ 뛰는 배우에게 독립영화에 출연하라고 하면서 ‘놀면 뭐하냐’고 접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 ‘인터뷰’는 출판 시장에서 어느 정도 위상인가. 

장정일 작가가 인터뷰집([장정일, 작가: 43인의 나를 만나다]) 서문에 쓰기를 ‘앞으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인터뷰에 관해 쓰더라.

어떤 문학 장르든 작가는 자기 글을 쓰면 그 글이 시장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작게라도 작가로서 인정받지만, 인터뷰어는 그런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잘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장정일 작가는 인터뷰집을 내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서문에서 토로했다.
장정일 작가는 인터뷰집을 내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인터뷰의 어려움에 관해 썼다.

= 그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터뷰 작간데, 인터뷰 작가로 사는 게 힘들다? 

최근 몇 년동안 연간 수입이 천만 원대였다.

= 나랑 비슷하네(…) 훨씬 많이 벌 줄 알았는데.

아니다.

= 그래도 지승호라는 희소성이랄까, 상징성이 있지 않나. 책도 많이 냈고.  

기회를 놓친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몇 해 전(2014년 11월) 안타깝게 타계한 구본준 기자가 한국의 글쟁이, 그중에서도 이른바 ‘잘 나간다는’ 작가들의 수입을 분석했다. 수입 유형의 비중을 따져보니 대체로 4:4:2였다. 구 기자의 조사에 따르면, 외부기고료가 40%, 강연 수익이 40%, 인세 수익은 20%에 불과했다고 하더라. 인세 수익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점점 더 단행본 시장이 축소하면서 인터뷰 작가로 먹고 사는 게 쉽지 않다.

= 괴롭겠다. 

가장 아픈 건 정말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들. 원래 내 성격이 가령, 누가 길거리에서 나에게 침을 뱉고 지나가면, 그냥 무시하는 성격이다. 아마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별 미친놈을 다보네’ 속으로 그러면서 지나칠 거다.

그런데 정말 친한 사람, 알만한 사람들이 ‘쿡’ 하고 찌른달까. 그런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러면 내가 그 친구에게 상처를 줬나, 그 친구가 혹시 나에게 질투를 느꼈나… 그런 생각도 하면서 슬프달까…. 찔리면서 ‘이게 뭐지?’ 낯설게 그 칼을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때, 그것도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그런 아쉬움을 느낄 때 더 힘들 것 같다. 

빚도 못 갚고(…)

= 인간은 제도와 환경의 노예 같다. 개인 노력도 한계가 있는 거고. 인터뷰 작가로서 좀 답답하겠다. 

종종 한 명의 독자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들으면 참 답답한 게, 그 말을 고맙게 생각하고 말고는 현실과는 전혀 상관 없다. 그리고 그렇게 그 고마운 마음을 누군가를 억압하기 위해 쓴다는 건 생각해볼 문제다. 신해철의 이야기처럼, 겸손은 미덕이지만, 겸손을 강요할 수는 없다. 겸손한 사람을 칭찬하면 되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다는 거. 내가 인터뷰 준비를 이만큼 했는데, 와, 이런 답변을 하네. 그런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내가 좀 아날로그라서, 출판했을 때 그 종이책의 물질감이랄까. 그 기쁨이 크다. 마약 같은 거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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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의 즐거움 

 

= 인터뷰의 가장 큰 즐거움은 뭔가. 

다시 영화에 비유하면, 영화를 준비하면서 시나리오 쓰고, 투자도 유치하고, 스태프도 꾸리고 하는 그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나리오 쓰면서 배우에게 출연 섭외하면서 그 과정 과정이 힘들고, 괴로울 테지만, 준비하면서 이런 면이 있었네, 아! 이런 면이 있었네, 발견하는 과정이 즐겁다.

그리고 인터뷰하면서 이런 저런 답변을 들으면서 내가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질문을 했지 하고 후회하기도 하지만, 인터뷰 현장에서 또 그때 그때 수정하면서 계획을 변경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이 모두 즐거운 과정이다.

하지만 가장 기쁜 순간은 종이책을 받았을 때다.

종이책의 물질감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마약 같다.
“가장 기쁜 순간은 종이책을 받았을 때”

= 종이책을 받았을 때? 

영화감독으로 치면 영화가 극장에 걸렸을 때랄까.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봐주면 좋겠고. 그래야 다음 영화(책)를 쓸 수 있을텐데. 그런 생각을 한다.

= 고마운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후원을 하는 분들. 돈을 빌려주신 분도 있고. (웃음)

= 페이스북 활동을 하면서 종종 트러블도 있는 것 같던데. 

주변에서 ‘야, 제발 좀 페이스북 하지 마라’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웃음) 처음에는 걱정하다가 그게 충고로 다시 경고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관계가 결국 ‘언팔’로, 무관심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미안하기도 한데, 위로의 댓글도 핀트가 안 맞을 때는 화가 난다.

= 마음만 받으면 되지않나.

그런 게 반복되면서 화가 난다. 내가 ‘가재 개그’(가재도 등을 돌리는 개그…;;;)를 올리는데, 그걸 보면 10명 중 한명은 빵빵 터진다. 그런데 가재 개그를 올린다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난 그게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어떤 댓글에는 ‘이번엔 웃겼어’ 그런다. 그러면 다른 건 안 웃겼다는 소리잖아? 그런 것도 피곤하다. (웃음)

= 그래도 지승호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분들 아닌가. 

그런 분들께도 인터뷰의 노동가치를 설명하고, 물리적인 노동량을 설명하는 게 힘들 때가 있다. 그리고 ‘한 길로 가는 지승호 멋져!’ 그런 응원 정도지, 정말 관심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응원합니다’ 이런 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응원합니다' 이런 말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돈으로 주세요.
‘응원합니다’ 이런 댓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럴 거면 그냥 돈으로 주세요.

= 스스로 우리나라 최고의 인터뷰 작가로 생각하나.

필드가 형성되지도 않아서 최고를 논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 후배들이 인터뷰 작가를 한다고 했을 때 이걸 ‘한번 해봐’라고 말해주기 어렵다. 멋진 직업일 수는 있겠지만, 너무 어려운 직업이다.

= 가장 널리 알려진 인터뷰 작가인 건 사실인데.

2000년 후반 정확히는 2008년이라고 생각하는데, 일종의 씨앗을 뿌린 것 같기는 하다.

= 인터뷰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 

학교 폭력에 관한 글을 많이 썼다. 1999년쯤? 그 당시 5명에게 놀이터에서 폭행을 당하고 일주일 뒤에 병원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인은 ‘전격성 간염’이었는데, 그게 지병인지 아니면 폭행 후유증인지 헷갈리는 사안이었다. 죽은 아이의 친구에게 취재 요청을 받았는데, 거절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여러 곳에 취재 요청을 했을 거다. 다 거절당하고, 그게 나에게까지 온 거겠지.

그때 인터넷의 힘을 느꼈다. 내가 쓴 글이 꽤 화제가 됐다. 신문이나 방송은 지속적으로 사안을 끌고 가기 어려운데, 인터넷에선 그게 가능했다. 피해자 부모님 만나고, 피해자 친구들, 학교 선생님, 담당 경찰….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만났다. 그리고 인터뷰라는 게 파워풀한 취재 방법이구나 깨달았다.

1999년 한 학생 폭력 사건을 취재하면서 인터넷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인터뷰가 강력한 취재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1999년 한 학생 폭력 사건을 취재하면서 인터넷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인터뷰가 강력한 취재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 놀이터 폭행 사건은 어떻게 결론 났나.

가해자들이 가볍게 처벌받고 끝났다. 그때 국회에서 미디어와 관련해서 상을 줬는데, 내가 받진 않았지만, 피해자 부모께서 상을 받았다.

= 왜 상을 부모에게? 지 작가가 받아얄 것 같은데.

정치인들이라서 그런지 그게 ‘그림’이 좋아서 그랬나보다. (웃음)

= 지금까지 몇 명이나 인터뷰했나. 

약 400명 정도? 연재하다보니까 숫자가 좀 많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누군가. 

신해철. 인터뷰는 [신해철의 쾌변독설]이라는 제목으로 2008년에 나왔다. 새 인터뷰를 제안하려던 참에 돌아가셔서 더 안타까웠다.

신해철의 쾌변독설 (지승호, 신해철, 2008) http://www.yes24.com/Product/goods/2843284
[신해철의 쾌변독설] (지승호, 신해철, 2008)
= 인터뷰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힘들고 짜증날 때가 있을 것 같은데. 

시니컬하고 공격적인 인터뷰이가 가끔 있다. 하지만 다 견뎌야지. 질문을 하면서 스스로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거야’ 할 때도 있고 그렇다.

= 인터뷰 강의 같은 건 안 하나. 

다섯 명 이상이 쳐다보면 좀 뭐랄까 공포감이 있다. 강의라는 형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좀 일방적이랄까. (강사가 학생을) 내려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내가 강의해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다.

= 왜? 

일반적인 의미에서 성공하지 못해서? 나는 인터뷰를 통해서 가장 많이 실패해본 사람이긴 하다. 그런데 그 실패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학교나 신문 등에서 강의 제안은 없었나.

학교에서 요청이 온다면 고민을 하겠지만, 별로 요청은 없다. 한겨레 같은 곳에선 그래도 좀 제안이 올 법한데, 그런 요청은 전혀 없었다. ‘이진순의 열림’ 같은 거랄까, 그런 요청이 있으면 선의의 거절이라도 할텐데, 그런 요청 자체가 없었다는 건 서운하다. (웃음)

= 붕 떴다?

매체는 늘 ‘뉴’가 필요한데, 나는 이미 ‘올드’가 된 것 같달까. 꾸준하게 뭔가를 했던 사람을 뒤쳐지는 것처럼 취급한달까.

슬로우뉴스도 비슷하지 않나? (웃음)

= 아주 공감한다. (웃음, 쓴웃음…)

나는 아날로그다.

= 모바일 세대, 유튜브 세대를 바라보는 감흥은. 

우리는 종이를 보고 자란 세대라서… 종이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요즘 아이들은 모바일을 훨씬 더 익숙하게 생각하겠지만…. 종이의 영향력이 줄수는 있다고 본다.

우리 시대의 가장 지배적인 컨텐츠 생산과 유통의 플랫폼이 된, 되어 가고 있는 유튜브
우리 시대의 가장 지배적인 컨텐츠 생산과 유통의 플랫폼이 된, 되어 가고 있는 유튜브.

= 종이를 애착하는 작가로서 종이의 장점은 뭘까. 

책을 만들려면 나무를 많이 쓰기도 하고, 책 내는 사람으로서 그런 죄책감이 있기도 한데… 이게 좋은 거라서 젊은 세대에게 ‘책으로 봐야 돼’ 이러는 건 전혀 아니라고 본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 뿐이지. 나름 X고생해서 인터뷰 했는데, ‘물성’이라고 해야 하나, 책이라도 나와야지 책장에 꽂아놓기라도 하지. (웃음) 그런 기분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강준만 (전북대) https://jbjc1988.blog.me/220783590741
강준만 (전북대)

= 전범이나 롤모델이 있나. 

처음엔 없었고, 나중에 그런 전범이나 롤모델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강준만 선생 같은 분은 내가 하는 활동의 토대를 만드신 분이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 강준만은 마음의 스승 같은 분?

그렇다. 그런데 요즘 세태가 안타까운 게 나와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면 아예 상종하지 않는달까. 그런 게 무섭다.

= 최근에 자유한국당의 5.18망언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정치집단을 인정하기는 어렵지 않나. 그런 집단을 지지하는 누군가를 상대하기 싫은 감정이 들텐데.

그 사람들을 ‘욕’한다고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다. 브레히트의 희곡을 보면, 거인에게 조금씩 독을 먹여서 죽이는 이야기가 있다. 난장이가 거인을 죽인 뒤에 “나는 복종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런 생각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

= 강준만의 미덕은 뭐라고 생각하나. 

성실함. 대통령 2명(김대중, 노무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던 시절에도 방송국 사장이나 그런 것에 하마평에 올랐을 때 자신의 이름이 더 소중하다고 말씀하신 것도 인상적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의 소중함이랄까. 그런 사람들의 암묵지랄까. 나도 그런 가치를 지켜내고 싶다.

= 자신만의 암묵지? 

“씨름에서 이기는 것보다 어떻게 이기는 지 설명하는 게 더 힘들다”고 강호동이 말했다. 그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기 어렵지만, 기록을 남겨두면 그게 일종의 ‘레시피’가 돼서 다른 이들이 요리를 시도할 수 있으니까. 더 열정적으로 그 레시피를 발전시킬 수도 있고. 그래서 일단은 ‘레시피’를 남겨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기록들을 상호 참조할 수 있다면, 더 분명하게 진실을 드러낼 수도 있고. 그런 작업을 강준만 선생이 많이 하셨다.

= 인터뷰 중에 기록문화를 아주 강조했다. 조선왕조실록의 문화적 전통을 가진 나라인데, 왜 근대 이후에 기록문화가 이렇게 개판이 됐을까.

한국전쟁 이후에는 ‘생존’이 최고의 가치였기 때문에… 그런 영향인 것 같다. 최근에는 다시 기록의 가치를 조금씩 자각하는 것 같다. 만화사에 남을 작가의 작품, 가령 허영만 화백의 초기작도 사라지고 있는 판이다. 사료로 남겨도 시원찮을 판에 작가에게 돌려주기도 뭣해서 만화책을 뻔데기랑 바꿔 먹고. 신중현 선생도 자신의 초기 레코드를 가지지 못하고, 일본 콜렉터가 가지고 있는 형편이다. 앞으로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marketingfacts.nl, CC, BY http://www.marketingfacts.nl/images/made/ea109cffee915110/database_900_450_90_s_c1_smart_scale.jpg
marketingfacts.nl, CC, BY

=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데.

박찬욱 만나서 그 일들을 어떻게 다 하느냐고 물어봤다. 박 감독 말이 게임하지 않고, 스포츠를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 나는 야구와 농구를 좋아해서 드라마까지 보진 않고,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일년에 200편 정도 본다.

= 지금 생각나는 대로 내 인생의 열 편을 고르면? 

  1. 신세계 (박훈정, 2013)
  2. 장화, 홍련 (김지운, 2003)
  3.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4. 달콤한 인생 (김지운, 2005)
  5. 홍상수의 영화들
  6. 올드보이 (박찬욱, 2003)
  7. 이터널 션샤인 (미셀 공드리, 2004)
  8. 빠삐용 (프랭클린 J. 샤프너, 1974)
  9. 로마 (알폰소 쿠라론, 2018)
  10.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류승완, 2000)

= 영화 말고 취미는 뭔가. 가령 여행이나. 

여행에 관해서 환상을 가진 것에 대해서는 좀 거부감이 생기기도 한다. 여행을 해야만 경험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마치 여행하지 않으면 촌스러운 사람으로 취급하는 그런 거, 그런 게 싫다. 3대 기타리스트 뽑듯 냉면집 뽑을 수는 있겠지만, 그 냉면집을 모르면 냉면에 관해서 모르는 것처럼 여기는 거. 그런 모습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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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잘 하는 법? 

 

= 보통 사람들이 인터뷰 잘하는 비결이 있을까.

지인들이 인터뷰를 해달라고 하면 부담스러운 게…. 가령, 이동진이라고 해도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이동진 정도 베테랑이라면 보통사람들보다는 낫겠지만. 노력한 만큼, 준비한 만큼 인터뷰는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겸손은 아니고, 진심으로 내가 인터뷰를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터뷰 하는 게 재밌어. 프리랜서는 실력만 있으면 먹고 산다고 하는데, 나는 실력이 없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 너무 미리 준비하면 대화 과정에서의 생동감이랄까 의외성이 죽지 않을까. 

종종 인터뷰를 브레인 스토밍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런 요소가 있기도 하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는 의외성은 아무리 준비를 잘 해도 언제나 생길 수 있다.

= 초보자에게 조언하고 싶은 인터뷰 노하우가 있다면. 

내가 그 사람을 왜 만나야 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인터뷰를 굉장히 준비를 열심히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인터뷰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어서 모두 100% 준비하긴 어렵다.

= 전투적이진 않다는 평가에 대해선.

동의하진 않는다. 취조가 아닌 다음에야 괜히 공격적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부드럽게 접근했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확률적으로 그렇다.

‘당신 개XX야’ 이런 식으로 공격적일 때 멋있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효과적이진 않다. 표창원 박사가 자신의 책에서 쓴 이야기가 있다. 범인을 취조할 때 ‘굿캅 vs. 배드캅’, 이게 아주 유명한 취조 전략이지 않나. 인터뷰어가 그런 역할을 다 해야 한다. 이중인격이랄까. 인터뷰는 ‘일종의 게임’이라서.

= 인터뷰이도 자기 장점만 보여주려고 할 텐데.

인터뷰 준비 과정에서 자료를 검토하다보면, 오랜 시간 축적된 다양한 자료를 접한다.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오랫동안 대중을 속이기는 어렵다. 그래서 준비가 중요하다.

요리를 위해선 적절한 재료와 도구가 필요하듯, 인터뷰도 준비가 중요하다.
요리를 위해선 적절한 재료와 도구가 중요하듯, 인터뷰도 ‘준비’가 중요하다는 게 지승호 작가의 지론.

= 인터뷰에서 행위와 행위자는 불가분이겠지만, 그래도 굳이 나눈다면, 인터뷰이와 인터뷰이의 활동 중에서 어디에 더 주목하나.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주목하기보다는 이 사람이 사회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더 주목한다.

= 소위 유명인을 인터뷰하는 것과 보통 시민을 인터뷰하는 경우는 어떤 차이가 있나.

유명인을 인터뷰 할 때는 그 사람의 공적 활동을 주목하고, 기존에 관련 자료가 많아서 좀 더 편할 것 같다. 일반인을 인터뷰하는 건 그런 측면에서 좀 어려움을 있을 것 같고.

가령, 세월호 유가족을 인터뷰한다고 가정하면, 유가족분들과 같이 활동했던 활동가들이 훨씬 더 잘 인터뷰할 수 있겠지. 서로에 대한 ‘신뢰’랄까.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같이 고난을 함께 했던 분들이 유가족의 아픔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 에세이는 책으로 안 내나? 

집중해야 이 정도 할 수 있다. 다른 걸 하라고 하는 건 인터뷰는 소중하지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웃음)

= 인터뷰의 저작권성에 관해선 어떻게 보나. 나는 기본적으로 인터뷰는 인터뷰어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나는 52권 인터뷰를 책으로 냈지만,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한 인터뷰가 있고, 인터뷰이 대필에서 조금 나아간 수준도 있고 천차만별이다.

= 그런 인세 계약은 어떻게 하나. 

대체로 (인터뷰이와) 5:5로 나누는 계약이다. 인터뷰이가 많고, 그걸 정리하는 경우에는 인터뷰어가 다 가지는 경우도 있다.

케바케이긴 하지만, 인세는 다시 인터뷰이와 5:5로 나누는 게 보통이다.
케바케이긴 하지만, 인세는 다시 인터뷰이와 5:5로 나누는 게 보통이다.

= 인터뷰할 때와 받을 때는 어떻게 다른가. 

인터뷰 준비 작업이나 정리 작업을 생각하면 인터뷰 하는 게 작업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서 귀찮을 수도 있지만, 인터뷰이가 될 때 심리적으로 좀 더 부담스럽달까 그런 건 있다.

= 지금 하는 인터뷰 활동은.

[인물과 사상]과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한다. [인물과 사상]에는 원고지 120매 분량으로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월간 전원생활] 연재는 원고지 20-25매 분량이라서 대체로 써놓고 줄인다.

=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연재 말고 , 개인적으로 꿈꾸는 프로젝트는. 

인터뷰 매체를 만드는 게 꿈이긴 하지. 월간이든 계간이든…. 쉽지는 않겠지만.

= 관건은 펀딩이겠네.

그렇지.

= 지금은…?

생존이 가장 중요하지. 그런데 여유가 있어야 뭔가 실험을 할 수 있는데…. 생존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보수적이 된달까.

= ‘장도리’ 박순찬 화백은 인터뷰에서 “작가는 많이 놀고 대신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작가의 사회적 역할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똘아이짓’을 할 수 있는 게 그 사회적인 역할인 것 같다. 똘기 있는 사람이 화두를 던지는 거고. 예전에는 공권력이 작가나 예술을 억압했다면, 지금은 대중이 자신이 맘에 들지 않는 걸 마구잡이로 억압하는 것 같다. ‘우리가 싫어하는 걸 왜 해?’ 거기에 정치적 올바름을 끌고와서 도그마에 빠진 것 같다.

= 기록문화로서의 인터뷰를 강조했는데, 절판된 인터뷰 책들은 재단이나 지자체, 문화부 같은 곳에서 일정한 대가를 내고, 사회적으로 공유하면 좋겠는데. 

스스로 자생했어야 한다는 차원에선 좀 창피하기도 하고, 그렇게 따지면 또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쉽지 않은 문제라고 본다. 어쨌든 나 스스로 답을 찾기도 해야 하니까. 민노씨가 말하는 취지는 알겠지만, 그걸 내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뻘쭘하고, 더 중요한 것은 말한다고 들어주지도 않는다. 들어주면 얼마든지 징징거릴 수 있겠는데…(웃음)

말하면 들어준다? 그럼 얼마든지 징징거릴 수 있다!
말하면 들어준다? 그럼 얼마든지 징징거릴 수 있지!

= 52권이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책,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고른다면. 선정 이유도 간단히. 

아래 고른 책들은 무순이다.

  • 신해철의 쾌변독설: 우리시대의 마지막 르네상스주의자. 대체불가능한 대중 예술인 신해철의 육성.
  •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메르스에 관한 어떤 백서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한겨레로부터 받은 책이다.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귀한 참고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강신주의 맨 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개성 넘치는 철학자 강신주는 무엇보다 열정적인 사람이고, 책임감이 남다른 분이다. 50시간을 인터뷰했고, 4,500매를 정리했다. 종이책 600페이지로 약간 길지만, 인문학에 관심있다면 읽을 만한 책일 것으로 생각한다.
  • 괜찮다, 다 괜찮다: 공지영 작가에 대한 호불호가 심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책을 많이 판 작가인 건 사실이다. 공지영 작가의 팬이라면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는 책.
  • 공범들의 도시: 표창원 박사 인터뷰인데, 인터뷰이와 ‘화학적 결합’이 잘 된 인터뷰 같다.
  •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고, 마무리 짓는지에 관한 솔직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아주 도움이 될 수 있는 인터뷰.
  • 감독, 열정을 말하다: 봉준호, 김지운 인터뷰가 포함된 인터뷰집이다. 창작자가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어떻게 사회와 소통하는 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승호 작가가 직접 추천한 여덟 권의 책.
지승호 작가가 직접 추천한 여덟 권의 책.

= 끝으로 독자에게. 

기록문화로서의 인터뷰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여유 있으면 책도 좀 구입해주시고? (웃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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