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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디지털 방송의 혜택은 고화질, 고음질이 전부가 아니다

1997년, 지상파 방송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면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장미빛 정원과 같은 텔레비전 시청 환경이 펼쳐질 것과 같은 말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덧 오랜 시간이 지나 완전히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이 이루어졌다는데 그 아름답고 매력적인 정원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한번 들여다 보도록 하자.

디지털 방송 방식 (출처: 한국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회)

디지털 방송 방식 (출처: 한국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회)

2012년 12월 31일 새벽 4시를 기해 지상파(KBS, MBC, SBS, EBS)의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됐다. 15년에 걸친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사업이 공식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사업의 과정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1997년 정보통신부가 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의회를 구성. 같은 해 11월 국내 디지털 전송방식을 ATSC 방식으로 결정
  • 2000년 방송위원회 (2008년 2월 방송통신위원회에 통합)에 의해 구성된 1기 디지털방송추진위원회(이하 디추위)가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종합계획”을 발표
  • 2001년 10월 수도권부터 지상파 디지털 방송 시작
  • 2002~2005년 2~4기 디추위가 케이블, 라디오, DMB, 데이터방송, 뉴미디어에 대한 각종 계획 발표
  • 2004년 ~ 2006년 디지털 방송 전국 확대
  • 2007년 디지털방송활성화위원회가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방송의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안)”을 심의, 확정
  • 2008년 3월 “대한민국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방송의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 제정, 같은 해 7월 시행령 제정
  • 2010년 1월 지상파 TV 시청이 가능한 모든 전자기기에 지상파 디지털 튜너 내장 의무화 고시 시행
  • 2011년 6월 제주도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 종료
  • 2012년 12월 31일 전국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 종료

오랫동안 진행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지상파의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된 현재,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디지털 방송 신청을 하지 않아 TV에서 아무런 신호도 나오지 않는 블랙아웃 현상이 나타나는 가구가 전체 TV시청 가구의 0.3%인 5만 가구 정도이며 (일본은 전체 가구의 0.2%, 미국은 2%), 최대 1천만 명에 달하는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디지털 튜너가 내장된 TV를 가지고 있어서 디지털 방송을 보고 있는 이용자라면 정부의 지상파 디지털 전환 사업의 혜택을 잘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잘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가 다채널 서비스와 양방향 서비스이다.

디지털 전환 진행중인 전세계 지도

디지털 전환 진행중인 전세계 지도 (출처: 위키백과 – 디지털 텔레비전)

현재 전세계 디지털 방송의 특징은 크게 다음의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고품질 – 디지털 방송은 아날로그 방송과는 달리 다른 신호에 방해를 받지 않아 화질이 선명하고 음질이 좋다.
  2. 다채널 서비스 – 디지털 방송은 많은 양의 데이터를 압축할 수 있기 때문에 동일한 대역폭을 사용해 동시에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주파수를 사용해 다채널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3. 데이터 서비스 – 단순히 방송만 청취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쇼핑, 실시간 교통정보, 지역정보, 시청자 참여 등의 부가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아날로그 방송 시대가 끝나고 디지털 방송 시대가 되었으나 시청자들은 다채널 서비스와 양방향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다채널 서비스

미국 ABC 방송사는 멀티채널을 운영 중

미국 ABC 방송사는 멀티채널을 운영 중

지상파 디지털 방송은 기존의 한 개의 아날로그 채널에 이용되던 주파수 대역에 2개 이상의 방송을 동시에 내보낼 수 있다. 이것을 멀티모드 서비스 (MMS) 라고 한다. 사용자는 디지털 방송의 멀티모드 서비스를 통해 아날로그 방송에 비해 더욱 많은 채널을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채널7에서 야구 중계를 하고 있는데 경기가 예상보다 길어져 그 다음 예정된 뉴스와 겹치게 될 때, 채널7을 2개로 나눠서 채널7-1에서는 예정된 뉴스를 방송하고, 채널7-2에서는 계속해서 야구 중계를 이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야구 중계를 계속 보고 싶은 시청자와 제 시간에 뉴스를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교육방송인 채널10에서 중학교 수학 강좌가 방송된다면 학생의 학습 수준에 따라 채널을 10-1, 10-2, 10-3 등으로 나눠서 동시에 방송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학생은 자신에게 맞는 방식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컨텐츠가 풍성한 경우에는 아예 상시적으로 여러 채널을 운영해도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공영방송 중 하나인 ZDF는 디지털 방송 시행 후 기존의 ZDF 채널 이외에 ZDF 쿨투어, ZDF 인포, ZDF 네오라는 채널을 추가로 운영 중이다. 이렇게 여러 방송을 송출하는 하나의 주파수 대역을 멀티플렉스라고 한다.

1998년 디지털 방송을 시작한 영국의 경우 BBC, BSkyB, 채널4, ITV 등이 모여 DTV Services를 설립하여 2002년 10월부터 8MHz 대역폭의 6개 멀티플렉스를 묶어 프리뷰 (freeview)라는 브랜드로 서비스를 해오고 있다. 프리뷰 튜너가 내장된 IDTV나 외장형 셋톱박스만 있으면 누구나 무료로 50개 이상의 TV 채널과 30개 이상의 라디오 채널, 4개의 양방향 서비스 채널을 이용할 수 있다.

데이터 서비스

2003년 12월 도쿄, 나고야, 오사카 등의 3대 광역권에서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시작한 일본은 디지털 방송 첫 해부터 기존의 영상 컨텐츠와 함께 함께 각종 데이터 방송을 병행해 왔는데 그 종류도 다양해서 프로그램 연동형 (부가정보), 양방향(투표 및 제보), 독립형(텍스트 뉴스, 일기예보, 지역정보) 등을 선보여왔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리모콘의 디지털 데이터 버튼 (이하 d 버튼)을 누르면 데이터 방송을 볼 수 있고, EPG 기능이 표시된다. 드라마를 보다가 d 버튼을 누르면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나 지난 줄거리 등에 대해 표시가 되고, 골프를 보다가 d 버튼을 누르면 선수들의 순위를 볼 수 있는 식이다. 또한 기상정보 데이터 방송은 지역 날씨, 경보주의보 등을 보여준다.

또한 디지털 방송을 하는 나라라면 전자 프로그램 가이드 (EPG; Electronic Program Guide)를 통해 TV 프로그램을 열람, 정렬, 검색 등 자유롭게 정보를 사용할 수 있는데, 유럽의 경우는 Guide Plus+, 미국의 경우는 TV Guide On Screen과 Guide Plus+ Gold, 일본의 경우에는 G-Guide 라는 이름으로 서비스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상파 디지털 방송은 왜 표류하는가

위의 두 가지 서비스는 언뜻 생각하면 먼 미래의 일처럼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나라에서 이미 활발하게 시행 중이며, 지상파 TV의 기본적인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국민 대다수를 위한 보편적이고 공익적인 매체’로서 충실한 서비스라 할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하지만, 우리나라의 지상파 디지털 방송의 방향을 제시하고, 방침을 세워야 할 방송통신위원회 (이하 방통위)는 이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이 부재하다는 것 이외에도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방통위가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고 남는 주파수 대역을 노리는 통신사들에게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이미 2012년 초 아날로그 지상파 방송용으로 사용하던 주파수의 일부를 통신용으로 지정한 바 있고 통신사와 방통위가 LTE 어드벤스를 위해 더 많은 주파수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방통위는 클리어쾀 (clear QAM, 셋톱박스 없는 디지털TV 수신 장치)을 TV에 내장하는 방식의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게 여러 업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클리어쾀 허용이 케이블 사업자들을 지원하는 특혜가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고, 케이블 사업자들은 업체들이 알아서 할 것을 방통위가 관여하는 것이 형평성이 없는 처사라며 반발을 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케이블이나 IPTV가 지상파를 재송출하는 과정에서 데이터 방송은 재송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클리워쾀 허용으로 인해 케이블을 유지하는 가입자가 많아지면 지상파 직접 수신을 하는 가구가 줄어들 것이니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 방송은 대규모로 실현할 수가 없게 된다. 15년 동안 2조가 넘는 예산을 들인 지상파 방송 디지털 전환 정책의 일관성에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방통위는 디지털 방송을 이용한 지상파 방송국의 다양한 실험을 속도를 지연시키고 있다. 지난 2010년 당시 KBS의 멀티모드 서비스인 ‘K-뷰’ 실험방송을 불허했다. 지난 2012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제주도를 대상으로 ‘코리아뷰’라는 이름으로 실험방송에 성공했지만, 2013년 새해 들어서는 다시 중지된 상태이다. 방통위가 멀티모드 서비스의 운영방식이나 서비스 형태에 대해 토론과 합의를 거쳐 적절한 해법을 찾아 (예를 들어 새로운 채널의 운영은 기존 지상파 방송사에 맡기고 컨텐츠는 PP의 것을 수용한다던지, 아예 영국의 경우처럼 새로운 채널에 대해 여러 사업자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게 만든다든지) 기술발전에 따른 혜택을 많은 사람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계획을 발표하는 대신, 정치적 특혜나 채널 독과점의 상태를 강화시킨다는 의견을 키우고 있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지상파 직접 수신 가구수가 터무니 없이 적은 것도 문제이다. 2010년 11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상파를 직접 수신하는 가구수는 전체의 13.3% 밖에 되지 않는다. 공중파 채널은 5개 밖에 없고, 채널의 다양성에 대한 욕구는 큰데 각 지역의 케이블 방송 요금이 낮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아파트에 사는 시청자들은 아파트에서 케이블 방송 요금을 관리비에 일괄 포함시켜서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랜 시간 동안 지상파 디지털 방송에 대한 준비를 한 것 치고는 방통위가 지상파 직접 시청 가구를 늘리는데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방송의 미래를 위해

2012년의 선거를 정점으로 방송의 중립성이나 공정성이 여러 차례 논란이 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해직기자들과 파업 언론인들을 주축으로 하여 새로운 국민방송을 만들겠다는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채널과 언론을 만들어 기존에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좋고 중요하다. 하지만, 전국 지상파 디지털 방송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 기술적으로는 전국민이 무료로 볼 수 있는 채널이 데이터 방송을 포함하여 쌍방향 20개가 가능한 상태이다.

따라서, 방통위가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요구하고, 기존 지상파 방송사들이 공정성과 중립성을 더 확보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그리하여 현재 확보된 기술을 상용화하여 기술 발전의 혜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조금 더 나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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