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지녀야 할 덕목으로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객관성’이다. 광고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수익성 확대를 목적으로 하여 비교적 현대에 이르러 발명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꼽히곤 한다. 객관성이라는 가치는 아주 간단히 압축하자면, 뉴스 기사에 자신의 시각을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즉 외부 관찰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어느 한 쪽에 이입하여 편을 들어주지 않는 자세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듣는 뉴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으로 생각해본 이들은 누구나 오늘날 알고 있듯, 뉴스가 만들어지는 것은 늘 현실사회의 이해관계 속에서 – 언론 조직 내부의 역학이든, 정치권이나 광고주 같은 외부의 압박요인이든 – 이뤄지기 때문에 완전한 객관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논조뿐만 아니라 취재원의 선택, 심지어 어떤 아이템을 보도할지 선택하는 것조차 완전한 객관은 아니다(심지어 기계적 알고리즘으로 선택한다 한들, 알고리즘의 작성에 주관이 어느 정도 들어간다). 그렇기에 객관성이라는 가치에 대해서는 언론학에서 적잖은 비판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객관성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여전히 유효한데, 바로 특정한 이해관계의 시각에서 본 편향된 부분적인 내용으로 한정되지 않는 사안의 총체적 상을, 뚜렷한 사실들을 통해 그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신 강조된 것이 바로 공정성(fairness)이다. 한 사안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이 있음을 감안, 각 시각들을 공정하게 반영하여 함께 제시해주는 접근이다. 당연하게도, 뉴스 제작 과정에서 수많은 판단들이 ‘공정하게’ 이뤄져야 하는 만큼 이 또한 무척 실제로 완벽하게 이뤄내는 것은 매우 힘들다. 객관성이 모든 시각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기 쉽다면, 공정성은 너무 많은 시각을 욱여넣느라 곤란해지곤 한다.
기계적 공정성의 함정, 히샏쉬샏 저널리즘과 경마 저널리즘
그런데 진짜 문제는 객관성과 공정성의 단점들을 하나로 합칠 때 만들어지는데, 바로 ‘기계적 공정성’이라는 함정이다. 언론의 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객관적인 뉴스인 척 가장하기 위해 공정성의 기법인 여러 입장 서술하기를 시전하는데, 전체상을 그려내기 위한 배합을 하기보다는 기계적으로 대등한 분량과 중요성을 할애하는 것이다. 계란프라이를 할 때 계란에 소금을 살짝 곁들이면 좋은 맛이 나오지만 계란과 소금을 같은 분량으로 배합하면 괴상해지듯, 그 결과는 현실을 왜곡하는 엉터리 기사다.
기계적 공정성의 부작용은 다양하다. 하나는 속칭 ‘히샏쉬샏(he-said-she-said)’저널리즘인데, 사건의 핵심 맥락과 논점을 지목해내지 않고, 여러 진영에서 각각 발언만 따다가 나열하고 끝나는 엉터리보도를 지칭한다. 이 경우 전체상보다는 개별 발언의 선정성에만 집중시키곤 한다.
또 다른 부작용 패턴은 ’경마‘저널리즘으로, 사안을 대등한 경쟁 진영들, 심한 경우 특정 인물들 사이의 다툼으로 포장하여 사회적 맥락, 함의와 참여방식 등을 소외하고 독자들을 수동적 관객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가장 노골적인 부작용은, 편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언론사의 알리바이 하에, 결국 민감한 소재에서 정당한 목소리를 내야 할 소수자들이 상대적으로 탄압받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조의 정당한 파업에 대한 보도, 인권 이슈 등이 그렇다. 현대적 인권 수준에서 볼 때, 어떤 사람이 난데없이 노예제도를 옹호한다고 해서 그 주장을 노예제도 반대론자와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논쟁적 사안이라고 포장한다면 보도가 우스워질 것이다. 동성애 차별, 노동권 현안, 지역 차별 등의 토픽에서 그런 비슷한 것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우스운 현실이지만.
독자 입장에서 어떻게 걸러 읽을 것인가
언론인들에게 기계적 공정성에 빠지지 말라고 훈계하고 압박하는 것은 이 연재의 소관이 아니다. 그보다는, 독자 입장에서 기계적 공정성을 구현하고 있는 기사들을 어떻게 걸러서 읽을 것인가. 내 맘에 드는 내용이 아니면 모두 편향이고 거짓 취급하는 손쉬운 접근은 당연히 답이 아니다.
첫째,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는 늘 있고 각각의 장단점들이 존재하는 것일 뿐, 정말로 ‘비등한 대결’이란 생각보다 드물다는 것을 미리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한편”을 눈여겨봐야 한다. “한편 **는 ***이라 말했다” 라고 나오면, 그 부분은 끼워 맞춘 것이다. 한편보다 먼저 나온 부분이 본론인데, 뒤쪽은 물타기나 기사 작성자의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시하기 위해 접합시켰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혹은 언론사 환경에 따라서, 거꾸로거나.
셋째, 뉴스를 읽을 때 여러 입장들이 충돌한다는 ‘구도’ 인식에 머물지 말고, 과연 제시된 입장들이 정말 대등한 위치인가 ‘누구를’ 인용했는지 인용한 내용의 전문성이 어느 수준인지 한 번쯤 다시 살펴봐야 한다. 한 쪽 입장은 해당 분야 연구 인용, 다른 쪽은 유명인의 그냥 멋져 보이는 말 따온다면 하나도 대등하지 않다. 한쪽은 기관 공식 자료 내세우고 다른 쪽은 몇몇 개인 인용이라면 하나도 대등하지 않다. 한쪽은 전문가 취재, 다른 쪽은 “네티즌 여론에 따르면”이라고 대충 긁어온 것이면 하나도 대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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