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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경제연구소’라는 곳에서 뿌린 ‘서울대 창업고시’ 관련 보도자료가 그대로 기사화되어 일부 언론사에 올라왔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쉬운경제연구소’라는 곳이 매주 토요일 서울대학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창업고시’를 실시한다는 것인데, 창업률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격증 시험이라며 신청하기 위해서 100만 원의 참가비를 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쉬운경제연구소의 전화번호까지 쓰여 있습니다.

사이트의 첫 화면엔 성인용 정력제 소개글이…

하지만 정작 기사에 기재되어 있는 쉬운경제연구소의 홈페이지(www.swiun.com)에 들어가 보면, 이곳이 창업고시를 주도하는 단체라기 보다는 성인용 정력제를 판매하는 곳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쉬운경제연구소 홈페이지. 첫화면에서 시선을 빼앗는 것은 그닥 '경제연구소'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쉬운경제연구소 홈페이지. 첫화면에서 시선을 빼앗는 것은 그닥 ‘경제연구소’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이 쉬운경제연구소라는 곳은 이번만 이렇게 낚시를 한 게 아닙니다. 중앙뉴스라는 곳에 올라온 “1억짜리 CEO교육상품-‘돈쇼’ 등장”이라는 기사도 이곳에서 뿌린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쉬운경제연구소는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상당히 많은 언론사를 낚아왔습니다. 대부분이 ‘돈벌이 자격시험’, ‘창업고시’, ‘돈쇼’ 등의 키워드를 이용해 왔습니다. 보도자료와 함께 뿌린 사진들은 대기업의 로고 앞에서 ‘창조경제 박람회’에서 ‘창조경제 시험문제집’이라는 것을 들고 찍은 것입니다. 이들이 보도자료를 뿌려서 낚은 기사들은 처음 기사에 나온 전화번호로 구글에서 검색만 해봐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뿌린 사진을 구글 이미지 검색에 넣어보면 플리커 주소가 등장합니다. (참고 링크: 해당 플리커 계정 바로가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낚시질을 위해서 찍은 사진들을 1000장 넘게 모아놓은 공간입니다. 낚시질을 위해서 특정한 의도를 갖고 이러한 사진을 찍었다는 걸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과거부터 이런 식으로 찍은 사진을 첨부해서 보도자료를 뿌려대고 있었습니다.

창업고시 보도자료를 위한 플리커 세트
창업고시 보도자료를 위한 플리커 세트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이런 배너가 수도 없이 나옵니다. 왜 검색도 안 해봤을까요?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이런 배너가 수도 없이 나옵니다. 왜 검색도 안 해봤을까요?
여러 언론에서 보도한 주류 상표에 적힌 주소로 들어가도 성인용 정력제를 홍보하는 쉬운경제연구소의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정작 해당 상표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러 언론에서 보도한 주류 상표에 적힌 주소로 들어가도 성인용 정력제를 홍보하는 쉬운경제연구소의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정작 해당 상표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 검색도 안 해봤을까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곳이 뿌린 보도자료가 기사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냥 검색만 해봤어도, 전화 한 통만 해봐도, 심지어는 보도자료에 있는 사이트 주소로 한 번만 접속해봤어도 낚시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왜 기자는 이걸 모른 채 낚였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분이 지적을 해왔듯이 포털의 등장으로 인한 온라인 속보 경쟁, 언론사 수익악화로 인해 기자들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업무량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기자의 자질 이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낚인 곳들은 대부분 중소 인터넷 언론이니까 이것은 영세한 언론의 문제라고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아닙니다. 이 문제는 메이저 언론사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메이저 언론사들도 수도 없이 낚여왔으니까요.

창업고시 관련 기사들 (추가)

제가 잡지 기자를 하던 시절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는데요. 그 때는 지금처럼 SNS가 없었고, 대형 커뮤니티도 많지 않아서 대부분 그냥 디시인사이드의 게시물 속에 묻혀버렸기 때문에 쉽게 잊혀졌을 뿐입니다. 보도자료의 오타가 모든 신문에 동일하게 나오는 건 그냥 귀여운 수준입니다.

트위터 계정도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멘션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것이 최초의 기자 낚시 사건은 아니다

이것과 가장 비슷한 사건으로는 많은 언론사가 낚인 ‘스펙보다 열정이다’의 저자 ‘김원기’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이 있습니다.

[전자신문] _창업동기 부여할 스타 IT경영 CEO 키워야_-인물 24면-20110104

김원기 씨는 자신이 전교 꼴찌에 온라인게임에 빠진 문제아였지만 갑자기 집안 환경이 어려워진 것을 계기로 고3 때 정신 차리고 공부를 해서 대불대학교에 입학하고, 여기서 더 열심히 노력해서 연세대 컴공에 편입하고 이어서 삼성맨이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원기가 특채되었다고 주장한 삼성SDS에서는 그런 사람은 입사한 적이 없다고 항의하기 시작하였고, 곧이어 책이 전부 회수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결국, 이 사람의 모든 경력은 사기로 드러났죠.

김원기 씨는 당시 자신이 “연세대 컴퓨터공학과”에 편입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요. 연세대에는 컴퓨터공학과가 없습니다. 연세대 서울 본교에는 “컴퓨터과학과”가 있으며, 원주 캠퍼스에는 “컴퓨터정보통신공학부”가 있을 뿐입니다. 이런 것은 그냥 쉽게 간파할 수 있는 거짓말임에도 김원기와 출판사 측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하고, 유명세가 생기자 언론에서 직접 김원기와 인터뷰를 하면서 사건을 키웠습니다.

또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기계교 기사화 사건‘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 사건도 “기레기”(기자 + 쓰레기)를 비난하는 소재로 수없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제가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 기사 하나를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아이템 기획
  • → 취재 및 조사
  • → 초고 작성
  • → 1차 교정(기사의 내용 정리)
  • → 원고 수정
  • → 2차 교정(문맥의 정리)
  • → 원고 수정
  • → 3차 교정(맞춤법 교정)
  • → 원고 수정
  • → DTP작업
  • → 대지 출력
  • → 대지 교정 1차 교정
  • → 원고 수정
  • → 대지 2차 교정
  • → 원고 수정
  • → 필름 출력
  • → 필름 교정
  • → 최종 수정
  • → 인쇄

이건 아주 상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투입되는 인원도 담당 기자, 편집팀장, 교정 담당자, 디자이너, 편집장으로 최소 5명의 손을 거칩니다. 그리고 모두 몇 번씩 교차 검증을 하게 되고요. 물론 이렇게 해도 사진이 잘못 나간다거나 오타가 나거나, 아주 큰 사고일 경우에 페이지 순서가 바뀌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위의 ‘쉬운경제연구소’나 ‘기계교 사건’처럼 어이없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잡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확인은 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것이 개인 블로그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단순화됩니다.

  • 아이템 기획
  • → 취재 및 조사
  • → 원고 작성
  • → 발행

일부 블로거의 경우 ‘파워블로거지’라고 비아냥을 듣기는 하지만 최소한 자신의 발로 뛰어서 취재한 내용, 혹은 자신이 직접 검색해서 찾아낸 외국 기사를 소스로 하기 때문에 기사의 소재 선택 과정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은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언론사로 가게 되면 이렇게 단순해집니다.

  • 메일함 확인
  • → 보도자료 복사 + 붙여넣기
  • → 발행

취재는 없습니다. 물론 아이템 선정에 대한 고민도 없습니다. 그냥 날아오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복사 + 붙여넣기’해 기사로 올릴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기자는 벅찹니다. 보도자료 올리는 건 자동화가 어려우니 사람을 저렴한 비용에 운용되는 기계로 만들어서 망가질 때까지 돌려야 하니까요. 그냥 피를 빠는 거죠. 그러니까 기레기들도 여러분과 다를 바 없는 언론환경의 피해자입니다. 어차피 자유의지가 없으니까요.

배너광고보다 저렴한 ‘확인 안 한 기사’

그것보다는 저는 이 ‘창업고시’ 보도자료를 뿌린 ‘쉬운경제연구소’의 천재성에 주목해봅니다.

보도자료를 그냥 ‘복사 + 붙여넣기’만 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기자들이 별 의심 없이 실어줄 만한 낚시성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여기에 낚인 기사를 통해서 자신들의 사이트로 사람들을 유도하는 획기적인 전략이니까요. 게다가 ‘쉬운경제연구소’는 현재 사람들이 기사 제목만 보고 내용은 읽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착안해서, 아주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뿌렸습니다. 이렇게 작성된 기사가 SNS를 통해 수없이 공유되고, 그런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제목과 기사의 첫 줄만 읽고 댓글을 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확산되면 배너광고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사이트 홍보를 할 수 있겠죠.

이건 뭐 거의 언론학 논문감인 사건이네요. 어차피 언론사도 포털도 이런 데 낚이는 독자들도 고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겠지만요.

그러니 낚이지 않기 위해서는 “검색의 생활화”를 잊지 마세요.

[box type=”note” head=”상표브로커 vs. 카피라이터”]
특허청은 2013년부터 상표권 브로커를 선정, 리스트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특허청 자료에 의하면 국내 상표브로커는 총 26명이고 이들이 출원한 상표는 11,543건, 등록된 것은 1,032건이라고 합니다.

특허청 자료에 의하면 쉬운경제연구소의 황주성(본명 황선태) 소장도 이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페니수, 자연솜씨 쇄주, 알랑가몰라 쇄주방, 됨 강남스타일 등 537건의 상표를 출원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황주성 혹은 황선태라는 이름은 다양한 업체 혹은 조직의 이름으로 여러 기사와 웹사이트에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쉬운경제연구소’를 비롯 ‘됨'(CEO씽크탱크), ‘사장면허시험장’, ‘아트테인먼트’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황주성 소장은 슬로우뉴스와의 통화에서 자신은 낚시를 한 게 아니고 자신의 모든 사업은 다 관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허청이 상표브로커를 관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상표권을 등록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등록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심사관들의 소관이기 때문에 내가 지탄 받을 일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다양한 보도자료성 기사를 통해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는데 기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19금 마크에 성인들이 먹는 일종의 정력제 (실제로는 기존 시판 물에 첨가물을 넣은 것) 홍보 문구를 보면 사람들이 낚시라고 생각하지 않겠냐”고 묻는 질문에는 “자신은 평판은 안 좋아도 되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것도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특허청 임태완 사무관은 “대량으로 상표를 등록하는 소위 상표브로커들이 당장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유명한 이름 위주로 상표를 많이 등록하고 실제 제대로 된 사업은 진행하지 않거나 정당한 권리를 가진 권리자의 사업을 방해하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관리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상표를 등록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지만 만약 문제가 생기거나 했을 때는 관련 규정을 강화해서 처벌을 하고 있음”을 함께 언급했습니다. (편집자)
[/box]

[box type=”note”]

과거 슬로우뉴스도 ‘쉬운경제연구소’의 보도자료를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제보 내용을 토대로 쓴 글은 바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답을 정해놓고 방송한 의혹“입니다. 당시 제작진의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직접 제작진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연락처도 남겨봤습니다. 과연 제보한 내용이 사실인지 특허청의 시스템을 이용해 조사했습니다.

언론사라면, 기자라면, 정말 많은 양의 제보와 보도자료를 받습니다. 그리고 제보자가 누구인지 일일히 신원을 확인해보기는 힘들겠지요. 하지만 제보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채널A 담당자의 답변은 기다리는 중입니다.)

참고로 슬로우뉴스는 언제나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슬로우뉴스에 제보하기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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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운영자로 있는 웹진 [데카르챠](deculture.co.kr)에도 실렸습니다. 글의 표제와 본문은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따라 일부 수정, 보충하였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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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안녕하세요,맘초무 님!!
    쉬운경제연구소 대표 황주성입니다.
    사람 씹는 재주가 참 독특하시네요. 하지만 제 속을 뒤집어 놓을 정도로 파헤쳐야 기자로
    인정하겠는데 수박 겉핥기식으로 건드리다 만 취재라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네요.
    이 정도 취재실력으론 연합뉴스나 뉴시스.조중동 기자들 근처에도 못 가겠네요.

    저를 상표 브로커라고 지칭하셨는데 정확한 표현은 상표제조.판매자입니다.
    저 직업(카피라이터)상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지탄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고 말씀하시기가 그렇게 존심 상하셨나요?

    페니水(PENIS+水)를 씹어셨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생수인 석수(石水) 카피를 만들었던 1983년부터 물장사를 하기 시작해
    30년 넘게 걸려 탄생한 성인생수 상표-페니수를 이렇게 무료로 띄워주시니 나중에 뵙게
    되면 한턱 사겠습니다.

    저를 보도한 기자들을 폄훼하셨는데 알고 보면 맘초무님 만큼이나 잘난 분들입니다.
    제 의도대로 놀아날 바보가 아니거든요. 아무리 인터넷이라지만 사람…그렇게 조지는게
    아니랍니다. 그 분들 장점이 얼마나 많은지를 캐 보는 행동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맘초무 님은 저를 하루아침에 나쁜 놈으로 만들었지만 저는 님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일취월장 하고 있습니다. 이 것도 비정상적인가요? 까는거야 하루도 안걸리지만
    저와 같은 카피라이팅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30년이상이 걸린다는 사실을
    추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기는 씹어야 맛있다지만 사람은 녹여야 맛있습니다.
    슬로우뉴스 독자분들을 멋지게 한번 녹이는 기사를 써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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