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인쇄하는 주간잡지. 꿈의 부수라고 불리는 초판 100만 부의 단행본을 인쇄하는 연재만화를 부지기수로 보유하고 있는 주간 만화잡지. 누구나가 그 무대에 서는 것을 한 번쯤은 꿈꾸어 보는 만화 잡지. 현재 일본 만화 출판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주간잡지.
바로 [주간 소년 점프](週刊少年ジャンプ; 이하 소년 점프)다.
만화계 내부의 이야기 정면으로 다룬 [바쿠만]
이 [소년 점프]에서 가장 인기를 얻는 만화 장르는 역시, [드래곤 볼(ドラゴンボール)],[원피스(ONE PIECE)], [블리치(ブリーチ)]와 같은 열혈 배틀 액션 소년만화. 하지만 최근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다른 장르의 이색만화가 있다. 바로 [소년 점프]를 통해서 등단하고 이 지면을 통해서 인기를 얻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만화작가/만화 편집자의 이야기를 정면에서 다룬 만화 [바쿠만]이다.
실재 잡지의 연재만화들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잡지 편집 관련자의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이 만화의 제목, 바쿠만의 의미를 묻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것은 ‘폭발(爆発, 바쿠하츠)’, ‘폭렬(爆裂, 바쿠레츠)’같은 한자 단어에서 ‘폭(爆, 바쿠)’을 따오고 ‘만화(漫画, マンガ)’에서 ‘만’을 따와서 [바쿠만]이라는 제목이 되었다는 말이 유력한 것 같다.
일본에서는 작중에서 나오는 대사 “만화는 도박(漫画は博打)”이라는 대사에서 유래했다는 의견도 있기는 하다. (도박을 일본어로 발음하면 ‘바쿠우치’라고 한다. 여기에 만화의 ‘만’ 자를 붙였다는 것이다.) 이 [바쿠만]은 국영방송 NHK를 통해서 장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는 등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서도 발매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는 정작 일본의 (물론 [소년 점프] 편집부가 아닌) 만화 편집부에 앉아있는 사람들 시각에서는 어떻게 이 만화를 보고 있는지를 조금 이야기해 보자.
소년만화 공식에 충실한 전개로 인기
일단, [바쿠만]에 대한 다른 잡지 편집부 의견들은 대단히 긍정적이다. 지금까지 일본에는 만화가를 제재로 다룬 만화가 많이 있기는 하였지만, “만화가를 다룬 만화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은근한 불문율이 있을 정도로 그리 환영받는 제재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바쿠만]은 [소년 점프] 지면에서 톱을 노리는 작가들의 경쟁을 [소년 점프] 특유의 배틀 만화 공식(만화에서 ‘왕도 만화’ 장르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에 대입하여 잘 만들어내었고 이것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평가이다. 자신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던 주인공이 자신이 호감을 느끼고 있는 여주인공을 위해서 자신의 감추어졌던 재능을 찾아내 갈고닦기 시작하고, 동료들의 우정을 나누면서도 경쟁을 통하여 점점 강해져 가고, 궁극에는 가장 거대한 호적수와 자웅을 겨룬다는 점프식 소년만화 공식을 대단히 충실히 따르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엮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칫 이러한 제재는 작가 개인의 관점 등이 강하게 개입하면서 대중적인 흥미를 감쇄시키기도 쉽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다양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이를 커버하고 있다. 또한, 만화 창작에서 편집자들이 이상적으로 바라는 작가상이 이 만화에 투영되어 있다는 것도 만화 편집자들이 이 만화를 환영하는 한가지 요인으로 보인다.
미지의 영역이었던 편집부의 입장과 역할 다뤄
편집자들이 만화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점에는, 지금까지 일반인들에게는 만화가들의 생활 이상으로 전혀 미지의 영역이었던 만화출판사의 편집부 – 데스크의 입장과 역할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있다. 일본만화에서, 특히 그림이나 스토리가 대단히 고도화되며 만화산업 자체가 대단히 복잡한 국면을 띄게 되는 1980년대 이후로 작가에게 객관적인 입장을 전하고 프로듀싱하는 편집부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해졌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정보화 사회로 들어서면서 만화가들의 입장이나 정보 등은 일반에게 잘 알려져 왔지만, 그 그늘에서 일하는 편집부원들의 입장이나 일하는 방식 등은 그렇지 못하였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타인의 시선에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일본 특유의 문화도 있었을 것이다.
즉, “타인의 등 뒤, 음지에서 일하고 일이 잘되게 하면 그것이 최선”이라는 사고방식이 작용하는데, 최근에 우라사와 나오키와 [20세기 소년(20世紀少年)], [몬스터(MONSTER)], [빌리 배트(BILLY BAT)]등을 만들며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나가사키 타카시 등이 언론을 통해서 이름이 알려지면서 편집자들에게 관심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점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또 다른 평가점은 다들 알고는 있지만 말하기는 꺼리는 정보들을 당당하게 만화 지면에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화가의 구체적인 원고료나 계약금의 존재, 몇 화까지 어느 정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편집회의를 통해서 잡지에서 정리되게 된다는 점, 단행본을 어느 정도 찍어야 적자를 면하고 잡지에서 살아남게 된다는 굉장히 건조한 경쟁체제를 통해서 잡지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점 등등, 보통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적나라하게 등장시킨다. 이런 솔직한 면모가 이 만화를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만들고 있다.
특정 만화잡지에 한정된 이야기라는 비판도
그러나 당연히 이 만화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가장 많이 나오는 비판점은 역시 이 만화에서 다루어지는 만화 창작에 대한 정보나 체제 등은 지극히 [소년 점프]라는 만화잡지에 한정된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잡지들도 [소년 점프]와 같은 경쟁체제를 기반으로 유지되기는 하지만, 몇 주에 한 번씩 하는 편집회의를 통해서 인기가 없는 작가를 냉정하게 기계적으로 걸러내고, 준비된 다른 작가를 투입한다든지 하는 식으로까지는 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과격할 정도의 ‘기계적인 경쟁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잡지는 지금 [소년 점프]가 거의 유일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며, 최근의 작가들 경향을 볼 때 이러한 가혹한 경쟁체제를 견디지 못하는 작가도 많다. 따라서 다른 잡지 체제나 창작 체제에서는 빛을 볼만한 작가들이 단순히 이 잡지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했다는 시각으로 처리되는 것은 조금 불만이라는 의견이다.
또한, 작가에게 계약금을 지급하는 등으로 독점하는 방식은 타사에서는 극히 유명한 작가에게만 시행하는 방식이며 작가가 거부하는 수도 있다. 이러한 세세한 부분의 디테일 차이까지는 커버하지 못하는게 단점인 부분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비판적인 의견은 소수이고, 대부분의 만화편집자가 이 만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 작가와 관계자들에도 유용한 정보가 된 작품
이 만화는 한국에서 일본만화계 진출을 생각하는 만화가나 관계자들에게도 여러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또 끼칠 것이라고 본다. 다른 여러 지면에서 정보를 알린 것처럼, 일본에 대한 만화 정보가 한국으로 거의 실시간으로 유입되고는 있지만, 한국 만화계 안에는 일본 만화업계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잘못된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다.
이런 노이즈성 정보들이 일본만화 업계 실상, 그중에서도 산업적인 외형 이외의 실질적인 제작체제나 작가들 생활, 데스크와의 관계들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낳는 실정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오해가 많은 것은 역시 실재 관계자들이 필요한 정보는 업계의 뒷사정 등으로 가려지거나 공식적으로는 발표되기 어려운 정보뿐이라 사람들의 입소문이나 인터넷의 비공식적인 정보를 통하여 확대/축소 등의 과정을 거치며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소년 점프] 지면이 어떻게 마련되며, 그 뒤에서는 어떠한 경로로 유지가 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만화는 한가지 정통한 정보로서 각 작가, 관계자들이 유용하게 활용할만한 한 잣대가 되어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러 지면이나 구두로 말한 실상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이 만화를 읽고 납득하고 거기에 맞추어 행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이 아마 그 반증일 듯하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