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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상헌 박사‘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편집자) [/box]

토끼, 그리고 토끼가 친구로 삼고 싶었던 호랑이 얘기입니다.

슬픈 눈망울을 가진 토끼에게는 세상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려운 장애가 생기면 폴짝 뛰어넘으면 되니까요. 부모가 어이없이 호랑이 먹잇감으로 사라졌지만, 그건 벌써 잊어버린 우연이라 생각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면 진보가 없다 생각했답니다. 진보란 모든 이가 토끼처럼 살아도 당당한 것이라 믿었습니다.

게다가 제 부모의 삶을 앗아간 호랑이도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이제 몇 달 남짓 된 새끼 하나만 남겨두었습니다. 평화가 온 것이지요. 깡총거리며 다닐 일도 없어진 듯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온 힘을 모아 힘껏 하늘로 솟아 올라본 지도 오래전 일입니다. 어느 날, 멀리서 보니, 홀로 된 새끼 호랑이가 외로워 보였습니다.

2013년 9월 10일 중국 산둥(山東)성 칭타오(靑島)에 있는 야생 동물공원에서 포식동물들의 본능을 테스트하는 하는 장면. 사진에서 표범(레오파드)와 호랑이는 생후 5개 월. 이 실험은 아직 태어난지 오래되지 않은 호랑이, 표범, 사자의 신체검사 과정 중 하나라고 한다. (c) 로이터
2013년 9월 10일 중국 산둥(山東)성 칭타오(靑島)에 있는 야생 동물공원에서 포식동물들의 본능을 테스트하는 하는 장면. 사진에서 표범과 호랑이는 생후 5개월. 이 실험은 아직 태어난 지 오래되지 않은 호랑이, 표범, 사자의 신체검사 과정 중 하나라고 한다. (c) 로이터

주위에서 더러 그이의 부모 욕을 해대며 손가락질하곤 했지요. 많이 딱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토끼는 다가가서 말을 건넸습니다. 슬픈 새끼 호랑이는 반가움에 같이 놀아주었습니다. 호랑이와 토끼가 친구가 된 듯했습니다. 토끼는 새끼 호랑이에게서 새로운 질서를, 그리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언젠가 동물 세계를 새로이 끌어갈 지도자를 본 것이지요. 약탈이 없는 세상을 호랑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꿈도 꾸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재미로 머슴놀이도 해 보았습니다.

토끼는 호랑이의 머슴 놀이도 해보았습니다. ^ ^
토끼는 호랑이의 머슴놀이도 해봤다. (출처 미상)

어느 날, 부쩍 자라버린 새끼 호랑이의 눈이 불그레해졌습니다. 슬픈 눈빛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붉은 핏빛이 서려 있습니다. 그러곤 날카로운 이빨을 내비칩니다. 머슴놀이를 시작하나 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호흡이 거칠어졌습니다. 깜짝 놀라 본능에 따라 껑충 뛰어 올랐습니다. 예전만 못했지만, 그이의 날카롭게 반짝이는 이빨을 아슬하게 피했습니다.

순간 그이의 입에서 피 냄새가 납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놈의 꼬리 뒤로 몸을 피하려고 했지요. 그 순간, 한때 장난기 가득했던 그놈의 발톱이 둔탁하게 토끼의 어깨로 내려앉더니, 바짝 솟아오른 토끼의 귀를 잡아챕니다. “나, 네 친구야”라고 말하려 했으나, 입은 이미 굳어져 버리고 온몸에서 피가 굳어갑니다. 마지막임을 직감합니다.

Keith Roper, CC BY
Keith Roper, CC BY

그제야, 그놈이 내 부모를 앗아간 호랑이의 새끼라는 걸 기억해 냅니다.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중국의 한 동물원 실험 얘기입니다. 호랑이의 본능적 야생성이 어떤 식으로 발현하는지 살펴본다고 합니다. 본능은 가르치지 않아도 생기는, 자연스레 드러나는 그런 것이라고 결론 냈다 합니다. 호랑이와 놀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게지요.

이런 실험 결과를 좀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토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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