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 있는 인터넷 신조어 중에 “답정너”라는 말이 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고 하는 듯한 상황 혹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살다 보면 듣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자기 스스로는 그 말을 못하겠고 다른 사람에게 자꾸 그 답이 나오도록 돌려서 질문하는 그런 상황이 있지 않은가.

슬로우뉴스에 한 통의 제보가 왔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간판 프로그램인 먹거리 X파일의 라면 특집 방송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라면 상표를 미리 등록하고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라면 이름을 공모하고 1등을 선정했다는 것이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답정너’처럼 말이다. 1시간짜리 방송 2회 분량을 거대한 PPL(영화나 방송 화면에 기업의 상품을 배치하는 간접광고 마케팅 기법)로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이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
화학조미료를 싫어하는 먹거리 X파일
채널A의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이하 먹거리 X파일)은 방송 내외에서 화제가 된 지 오래다. 채널A는 개국 초기부터 “먹거리 X파일”을 핵심 프로그램으로 밀었다.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한 곳은 손님들이 몰려든다. 프로그램의 인기는 신동엽의 ‘이엉돈’ 캐릭터까지 이어졌고 이영돈과 신동엽은 아예 “젠틀맨”이라는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먹거리 X파일”은 소비자가 잘 모르고 있던 먹거리에 대한 숨겨진 진실과 이면을 이야기한다는 목표 아래 현장고발,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 착한 식당 선정을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주목하는 것 중의 하나는 “화학조미료”다. 다른 부문에서 합격점을 받더라도 화학조미료를 쓰면 “착한 식당”으로 선정하지 않는다. 타협하지 않았던 기준이 바로 화학조미료의 사용 유무였다.
특집 2부작 라면을 말하다
“먹거리 X파일”은 채널A 개국 2주년과 한국 라면 탄생 60주년을 맞아 2013년 12월 6일과 12월 13일 두 주에 걸쳐 특집 “라면을 말하다”를 방영했다.
1부 집중 분석 라면
2013년 12월 6일에 방송된 1부 “집중 분석 라면” 편은 라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보여줬다. 특히 라면의 나쁜 점에 대해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먹거리 X파일”에서 말하는 라면이 나쁜 점의 핵심은 핵산계 조미료, 팜유(포화지방), 나트륨이다.
우선 라면 스프(복합조미식품)에 들어있는 핵산계 조미료(5’-리보뉴클레오티드이나트륨, 향미증진제 등)에 대해 설명한다. 핵산계 조미료는 라면 스프에서 과거 MSG의 자리를 꿰찬 성분이다. ‘마법의 가루’인 이 핵산계 조미료가 없으면 라면 맛이 나지 않고 라면에서 ‘수돗물 냄새까지 난다’는 평까지 할 정도다.
그리고 면에 있는 기름기에 주목한다. 면의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은 면을 튀긴 팜유 때문이라는 것. 몇몇 실험 결과를 통해 팜유의 포화지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팜유를 먹인 쥐에게는 지방간이 생기고 해바라기씨유를 먹인 쥐는 중성지방 수치가 내려간 실험 결과를 보여준다.
마지막은 나트륨. 라면 스프에 존재하는 나트륨을 과다 섭취할 경우 “체내의 수분을 끌어당김으로써 혈액량과 체내 수분량을 늘리게 된다”는 전문가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라면을 먹고 자면 몸이 붓는 이유다. 그리고 고혈압 유발 인자 중의 하나가 염분 섭취인 것도 알려준다. 단, 라면의 짠맛이 덜 느껴지는 이유는 매운맛과 감칠맛(핵산계 조미료) 때문이라는 설명도 곁들인다.
2부 착한 라면 만들기
2013년 12월 13일에 방송된 2부 “착한 라면 만들기”는 1부에서 지적했던 라면의 단점을 없애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과 그에 대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라면 제조 전문가, 음식 칼럼니스트, 식품영양학과 교수, 요리 연구가, 식품 연구원, 라면 마니아 등 라면과 식품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를 모아서 팀을 만든 후 소위 말하는 “착한 라면”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2013년 초여름에 촬영된 영상에서 이영돈 PD는 이 프로젝트가 오래전부터 꿈꿔온 도전임을 밝힌다. 한국사람은 라면을 나쁜 음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많이 먹는데 이걸 깨보고 싶다는 거다.

그리고 프로그램 내내 다양한 실험 과정을 보여준다. 연잎을 이용해 면을 만든다거나 천일염을 이용해 스프를 만들고 오리 기름으로 면을 튀겨보기도 한다. 이 모든 게 1부에서 지적한 ‘라면의 나쁜 점’을 개선하기 위한 과정이다. MSG를 안 넣고 직접 만든 스프를 이용한다는 라면 전문점에 방문하기도 한다. 물론 이 전문점의 스프에는 핵산계 조미료가 들어있음이 밝혀진다. 1부에서도 인공 조미료를 넣지 않은 라면을 만들었더니 라면 맛이 나지 않아 제품 출시를 포기했다는 인터뷰가 나온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먹거리 X파일”의 착한 라면 제작팀은 결국 라면을 만들었다. 이영돈 PD는 2부작의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들이 만든 라면의 면과 국물을 먹고 감탄사를 뱉은 후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아주 맛있습니다. 역시 짜지 않고 적당히 얼큰하면서 면발에서 느껴지는 검은콩과 통밀의 맛이 뭔가 속을 더 든든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라면은 나트륨 함량도 줄이고 매운맛을 조절하고 천일염을 쓰고 기름도 팜유에 해바라기씨유를 섞었고 면에는 통밀과 검은콩을 섞었다고 말한다. 맛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화룡점정, 이영돈 PD는 이 라면의 이름에 제작진 스스로는 “착한”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말한다. 핵산계 조미료의 함량을 낮췄지만 안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 이제껏 이 프로그램이 “화학조미료”를 무조건 “착한”의 반대편에 둔 것을 떠올려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러면서 라면의 이름을 잠정적으로 “1단계 착한라면”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자랑처럼 들리던 최선에 겸손까지 얹은 것이다.
프로그램의 마지막에는 라면 이름을 공모하면서 1등과 가작에 라면과 특별한 선물(상금)을 주겠다고 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등 – 이영돈 PD의 착한라면 Step 1
2등 – 제가 한번 먹어보는 착한라면
3등 – 이영돈의 엄마라면
2013년 초여름에 등록된 상표, 착한라면
스스로 “착한”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한 후 1등과 2등으로 선정한 라면 이름에 “착한라면”이 들어갔다. 마치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 명칭 공모전의 최우수작 이름이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인 것과 비슷하다. 어쨌든 그들은 자신들이 2주 전에 말한 것을 간단하게 뒤집었다.

놀라운 사실은 채널A는 특집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한참 전인 2013년 5월 31일 이미 “착한라면”이라는 상표를 등록했다는 것이다. 상표를 한 가지만 등록하기에는 불안했던 걸까? “이영돈PD의 착한라면”, “먹거리X파일 착한라면”, “착한라면” 이렇게 총 3가지의 상표를 등록했다. 5월 31일이면 2부에서 이영돈 PD가 말했던 초여름과 일치하는 시간대이다. 즉, 시기적으로 프로젝트 초기에 등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심지어 채널A가 발표한 1, 2등 라면 이름에 사용한 캘리그라피와 6개월 전 상표 등록에 이용한 캘리그라피가 동일하다. ‘답정너’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이러고 보니 3등의 ‘엄마라면’ 캘리그라피도 ‘착한’ 위치에 ‘엄마’만 대신해서 나중에 쓴 것 마냥 모양은 같으나 세로 길이만 길게 늘린 것 같다.
이 사건을 제보한 쉬운경제연구소(대표 황주성) 측이 말한 바로는 황 대표가 라면 이름 짓기 공모전에 직접 참여한 후 당첨이 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채널A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갔다가 “착한라면”이 1등 상표로 당선된 것을 보고 개운치 않아 특허청 상표검색 사이트를 검색한 끝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참고로 채널A “먹거리 X파일” 게시판에는 당첨자 발표 게시글에 2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있는데 대부분 뻔한 공모 아니냐는 의견과 “착한”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기로 하지 않았냐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채널A 입장에서는 이미 정해진 답변에 헛된 질문을 했다고 분노하는 시청자가 거의 없는 점은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채널A는 이 라면을 상품으로 내놓을까? 상표등록은 그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채널A의 2주년 특집을 맞아 방송한 라면 2부작은 2시간을 통째로 할애해 성공적인 PPL을 한 게 될 것이다. 아니 “먹거리 X파일” 프로그램 전체가 2년간 거대한 PPL을 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 채널A의 “먹거리 X파일” 제작진의 답변을 듣기 위해 두 차례 전화해서 궁금한 사항에 대해 설명을 하고 연락처를 남겼으나 지금까지 답변을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