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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사람들: 자신만의 타임라인, ‘데일리 픽션’ 노상호 인터뷰

세계 주요 예술 행사(카셀 도큐멘타와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등)를 개최하면서 전 세계 예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독일. 그중에서도 베를린은 다양한 문화가 모이는 광장으로 많은 예술가로부터 사랑받는 도시입니다.

앞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예술계 종사자를 만나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슬로우뉴스 독자와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필자)

¶ 이 인터뷰는 노상호 작가와 나눴던 2016년 6월의 대화를 [데일리 픽션]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 판화를 전공하셨지만, 현재는 [데일리 픽션]이라는 드로잉 작업을 주로 하고 계시는데요. 판화 작업이 아닌 드로잉 작업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드로잉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판화 작업과 비교해서 굳이 말하자면, 판화 작업에 걸리는 시간이 저의 작업 성향과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매일 쏟아지는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고 빠르게 소비하기에는 드로잉이 판화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판화의 요소를 전부 저버린 건 아니에요. 제 작업의 과정을 살펴보시면 판화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예를 들면, 먹지라는 매체를 사용하는 것과 먹지 위에 압력을 주면서 그림을 찍어서 그리는 방법은 판화 작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노상호 작가 (사진: 이정훈)

노상호 작가 (사진: 이정훈)

– [데일리 픽션] 드로잉 작업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나요?

우선, 일상 속에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서 접하는 이미지들을 가능한 많이 수집해요. 이후에 수집한 이미지를 프린트로 출력하고 하루 단위로 이미지를 정리해요. 출력된 이미지 위에 먹지를 대고 따라 그리면서, 동시에 이미지 안에 들어갈 이야기를 지어요. 이미지를 겹쳐보기도 하고 상상력을 더해서 이미지를 바꾸기도 하면서 그림을 그려나가요. 하나의 그림이 완성됨과 동시에 한 편의 이야기도 완성되면서 작업이 마무리돼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루에 하나의 이미지와 한 편의 이야기가 생산되는 거죠. 그리고 다음 날에는 그날의 이미지에 맞춰서 새로운 이야기를 짓기도 하고, 어제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참고해서 작업을 하기도 해요. 정해진 결과가 없이 이야기와 이미지가 비선형적으로 뻗어나가는 형태의 작업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스마트폰과 인터넷에서 접하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수집하시고 이를 작업에 이용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야기를 지으실 때도 이와 비슷하나 과정을 거치나요?

네. 비슷한 과정을 거쳐요. 이미지를 수집하는 것처럼 전날 봤던 영화, 책, 음악, 친구들과의 대화 등을 수집하고 정리해요. 그리고 이야기를 구성할 때, 수집한 자료를 참고하죠. 이야기도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선형적인 작업의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앞서 언급한 다양한 수집 자료가 이야기 속에서 서로 섞이기 때문에, 낯설지 않으면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 실생활 속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이 작업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일상에서 접하고 소비하는 모든 요소가 작업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실제의 일상에서 접하는 것들보다는 가상의 세계에서 접하는 것들이 작업에 훨씬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베를린이라는 실제의 공간에서 보는 이미지들과 가상의 공간인 인터넷(ex. 구글 이미지)에 존재하는 베를린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가상의 세계에서 수집한 정보가 작업에 영향을 주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 현실 세계보다 가상의 세계에서 수집한 자료를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태어나자마자 인터넷 문명을 접하고, 스마트폰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게 익숙한 어린 친구들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또래의 친구들보다 디지털 문명을 비교적 일찍 접했어요. 인터넷과 같은 가상의 세계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아요. 오히려 저에게는 가상이 아닌 현실(Reality)로 여겨져요.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하는데에 있어서도 가상의 세계(혹은 인터넷)에서 파생되고 생산된 것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또한, 이러한 과정이 낯설지가 않고, 오늘날의 시대상과 잘 어울려서 더욱 선호하는 편이에요.

– 매일의 드로잉과 이야기를 생산하는 [데일리 픽션]이라는 작업을 2012년부터 꾸준히 이어오고 계십니다. 이 작업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시게 됐나요?

[데일리 픽션] 작업을 시작하기 이전에 [코델리아]라는 제목의 동판화 작업을 2년 동안 한 적이 있어요. 동판화 작업 특성상 많은 정성과 기다림을 요하는데요. 2년 간 힘들게 해온 작업의 결과물이 막상 나오니 기쁘기도 했지만, 허무한 감정이 더 크더라고요. 그리고 그 허무한 감정이 가시자마자 ‘빠르게 많은 그림을 연습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게 [데일리 픽션] 작업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는 그림을 더 잘 그려보고 싶은 마음에 매일 드로잉을 연습한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그게 계속 이어지다 보니 습관이 되면서 점차적으로 작업의 형태로 발전된 것 같아요.

– 2015년에는 [데일리 픽션]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작가의 작업들은 카탈로그(Cataloge)라는 형식으로 정리되곤 하는데요. 이번에 발간하신 책 [데일리 픽션]도 그간의 작업물을 정리한 카탈로그로 볼 수 있을까요?

카탈로그는 아니에요. 여느 동화책처럼 쉽게 접할 수 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한 편의 책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꼭 전시 혹은 카탈로그를 통해서만 제 작업을 정리하고 해석하고 싶지는 않아요. 전혀 다른 곳에서 제 작업이 정리되고 해석되더라도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다른 매체 혹은 새로운 방법으로 제 작업을 풀어야만 하는 경우도 많아요. 예를 들면, 인스타그램(Instagram)을 통해서 그날의 드로잉과 이야기를 업로드하고, 실시간으로 저를 팔로우(follow)하시는 팔로워(follower)들에게 소비되는 것이 화이트 큐브에서 전시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선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작업의 성격과 잘 부합한다고 생각해요.
데일리 픽션 – 그 말씀은 [데일리 픽션] 책 발간 역시 작업 해석의 새로운 방식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죠. 제가 하는 작업은 어떨 때는 시각예술의 범주에서 머무르기도 하고, 다른 때에는 일러스트의 범주 혹은 소셜 네트워크(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범주에서 해석되기도 해요. 이와 같이 [데일리 픽션]이라는 책의 범주 안에서 제 작업을 해석한 새로운 결과물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시각 예술의 범주 안에서, 발간하신 [데일리 픽션]이라는 책은 한 (청년) 작가의 자생을 목적으로 하는 방법으로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더 나아가 ‘작가로서 먹고살기 위해서, 작가 본인의 작업을 아트페어와 같은 정형화된 미술 시장 시스템 안에서만 팔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자면?

책을 발간하고 이로부터 수익을 얻는 경제적 구조가 (청년) 작가의 자생의 한 방법으로 충분히 보편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와 관련해서 2015년 10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굿-즈]라는 행사에도 기획단계부터 참여를 했었는데요. 앞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으로 ‘예술 작품으로부터 파생된 파생품(굿즈)을 대중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자생의 구조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목적이 가장 주요했어요.

[데일리 픽션] 책뿐만이 아니라 저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도 작업의 파생품으로서 기능하고 있고 나아가 자생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도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지금까지 [데일리 픽션] 작업을 주로 이야기 나눴는데요. 이 작업뿐만이 아니라 이전에 하셨던 혁오 밴드의 앨범 재킷 작업을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많은 분이 작가님의 작업을 혁오 밴드 앨범 재킷을 통해서 접해보셨을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혁오 밴드와 함께 작업을 하시게 됐는지가 궁금합니다.

혁오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오혁 씨랑은 같은 대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됐었는데, 서로의 음악과 그림을 알고 있었고, 서로의 작업을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작업을 가지고 협업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늘 서로의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좋은 시기에 대중들에게 잘 선보여진 것 같아요.

– 작가 노상호 혹은 일러스트레이터 네모난(nemonan)의 작품으로 소개되기보다는 흔히 ‘혁오 밴드 앨범 재킷 그린 사람’의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주로 소개되고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 아쉬운 부분은 없으신지?

크게 아쉬운 점은 없어요. 혁오 밴드와의 협업 덕분에 제 작업이 조금 더 대중적인 방향으로 읽히는 것 같아서 오히려 감사하죠. 혁오 밴드와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협업을 할 생각이에요.

– 앞으로의 협업도 기대하겠습니다.(웃음) 작가님께서 난지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에 계셨을 때, 매일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작업을 하셔서 ‘예술계의 공무원’이라는 별명을 얻으셨다는 이야기를 주변 분들에게 들었습니다. 이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꾸준히 작업을 하는 것이 작가로서 지니고 계신 하나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의 강박 혹은 생존 수단인 것 같아요. 처음에 미대에 진학을 했을 때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나보다 재능 있고 감각적인 친구들이 너무나도 많다’라는 것이었어요. 이러한 친구들과 같은 집단 안에 있으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꾸준히 성실하게 그리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그려야지 굶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매일 꾸준히 그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뛰어난 재능과 현대미술을 감각적으로 해석하는 작가들 틈에서 그나마 견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 개인적으로 말씀하신 상당 부분이 공감이 됩니다. 다시금 작업 이야기로 돌아가서, 작업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혹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다면?

요즘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개인전을 가지려고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아직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지금 현재 내린 답은 ‘내가 살아가는 게 너희들이 살아가는 은유’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데일리 픽션]에서 매일 그리고, 매일 이야기 한 편을 완성했지만, 사실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미지와 이야기를 내보내고 소비하는 자체가 중요하고 이러한 것이 사람들이 자신의 타임라인을 채우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타임라인을 가지고 있고 그걸 보면서 스스로의 존재를 체득하면서 살잖아요. 그걸 제가 작업이라는 은유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 현재 베를린에서 짧게나마 지내고 계시는데, 노 작가에게 베를린은 어떤 곳인가요?

사실, 베를린에 살고 있지만,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지리적인 공간으로서의 베를린이 제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뿐이지, 실제 생활은 서울에 있는 것과 좀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더욱이 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그리고 아이폰과 같은 제 주변의 가상공간들에 서울이 이미 깊숙하게 침투해있기 때문에 베를린과 서울의 경계가 모호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경험한 실제로서의 베를린은 아주 간단하게 삶의 질이 바뀔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라고 생각해요.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베를린에서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서울에 들어가서 개인전을 7월 중순에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작은 전시를 가질 예정이고, 이후에 지금 준비 중인 개인전을 9월 말에 가질 예정이에요. 그리고 혁오의 다음 앨범에 아트 디렉터로 참여하게 돼서 꽤 바빠질 것 같아요.

–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됩니다. 오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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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정훈
초대필자, KUNST TALK 기획·운영자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미술사학(동양)과 중국학을 전공 중이며 DNA Berlin 갤러리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2015년부터 베를린을 기반으로 매 달 한 명의 작가와 함께하는 "KUNST TALK"를 기획 및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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