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위대한 작품은 항상 열려 있으려 하고, 평론가는 그 작품을 닫으려고 합니다. 자기 해석을 최종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죠. 열림과 닫힘의 긴장, 그 대화를 통해 작품은 풍성해집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네크라의 ‘영화 퍼즐’을 통해 독자의 영화 체험이 더 풍성해지길 바랍니다. (편집자)[/box]
미장센과 상징: 히치콕의 [새]
관심 있는 거장들의 작품들을 틈틈히 자주 보다 보면, 그들의 숨결까지 느껴질 때가 있다. 아래 두 사진을 비교해 보라.
영화 초반부에 여자 주인공 멜라니가 남자 주인공 미치의 집이 있는 시외 작은 마을을 방문해서, 우체국을 겸하는 시골 만물상점에 들러 길을 물으며 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런데 두 남녀의 나이 차이나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대화 내용과는 상관없이 은근한 성(性)적 긴장감이 흐른다.
두 남녀의 배경 소품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이 장면에선 남녀 성기를 상징하는 소품이 등장인물 배경에 등장하는데, 그 색깔과 형태까지도 등장인물의 나이를 반영하는 매우 세심한 미장센임을 알 수 있다. (만물상 주인 뒤에 있는 검버섯 핀듯한 물건과 여주인공 뒤 분홍빛 소라.)
이처럼 히치콕은 중후반 작품으로 갈수록 배경이나 등장인물의 의상 등등 프레임 안에 보이는 갖가지 미세한 장치들에 섬세한 가공을 해서 극적 대비, 긴장 고조, 암시, 복선 같은 다양한 효과를 도출해낸다.
[box type=”info” head=”미장센(Mise-en-Scène)이란? “]
무대예술인 영화와 연극, 오페라, 뮤지컬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연출상 디자인 측면을 표현한다. 직역하면, “무대에 배치하다.”란 뜻. 영화 비평에서 미장센은 제한된 장면 내에서 대사가 아닌, 화면 구도, 인물이나 사물 배치를 이용해 표현하는 연출자의 메시지와 미학을 말한다. 이는 여러 장면을 교차편집해 이를 통해 새로운 효과를 창출하는 몽타주 방식과 대비된다.
– 위키백과, ‘미장센’에서 발췌 [/box]
이제 오늘의 진짜 이야기, [밀양](이창동, 2007)을 살펴보자.
영화 [밀양]은 어떤 방식으로 범인을 드러내는가?
:웅변학원 원장(준이 살인자)에 숨겨진 상징성
1. 힌트 – 악어
우선 아래 사진에서 웅변학원장이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승합차의 뒷유리창에 붙은 스티커를 눈여겨보자.
녹색 악어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 쇼트만으로는 아이들 웅변학원 차량을 꾸미기 위한 스티커라는 단순한 소품일 뿐이며 감독이 의도적 연출로 붙인 것인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로 다음 사진을 보기 바란다.
이 장면에서 이신애는 정체불명 납치범에게 건네줄 종이 가방에 은행에서 인출한 자신의 전 재산(현금)을 마구 쓸어 담아 넣는 중이다. 그런데 곧 납치범 손에 전달 될 종이 가방에 ‘CROCODILE’, 즉 악어라고 적혀 있다.
게다가 색깔도 초록빛 살짝 나는 푸른색으로 위 첫 사진 봉고차 창에 붙은 녹색 악어 스티커와 매치된다. 때문에 웅변학원 봉고차 뒤창에 나온 악어는 바로 웅변학원장을 상징하는 이창동의 의도적 연출이 담긴 소품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아직 범인 정체를 모르는 관객(웅변학원장이 범인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밝혀진다)에게 범인의 힌트를 던져 주는 장면이 된다.
‘CROCODILE’이라는 단어는 흔히 ‘악어의 눈물’이라는 비유적 관용 표현으로 쓰여 “거짓 눈물짓는 사람, 위선자, 잔인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인 웅변학원장이 돈을 위해 아이를 납치하고 살해하는 가증스러운 위선자라는 사실이 잘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다.
이 장면에서 이신애는 한쪽 입구가 열린, 악어라고 적힌 가방에 실성한 모습으로 돈다발을 마구 넣는 연기를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굶주린 악어(살인자) 입속에 돈을 마구 쓸어 넣어 주는 느낌을 자아낸다.
다시 악어 스티커를 살펴보자. 악어가 웃으며 머리를 살짝 들어 허공을 보고 있다. 이 악어는 웅변학원장을 상징하므로 악어가 향하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중요하다. 그럼 아래의 웅변학원장이 운전하는 봉고차에 주인공들이 타고 있는 차 내부 사진을 보자.
악어 반대편 위치에 새끼 새 한 마리가 폴짝폴짝 뛰고 있다. 다들 짐작하겠지만, 이 새끼 새는 악어(웅변학원장)에게 곧 죽게 되는 준이를 상징함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또 다른 장면에서 새끼 새 스티커만 약 3초간 보여주는 씬이 있으며, 준이와 함께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그래서 애들 학원 봉고차를 꾸미기 위한, 동심을 표현하는 스티커치고는 어울리지 않게 악어와 새끼 새가 함께 붙어 있다. 흥미로운 건 악어와 새끼 새의 표정이 이후 일어날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어의 시선 처리와 동물의 표정까지 연출한 디테일은 영화 [밀양]에서 분석할 상징들이 적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2. 웅변학원장의 과거
이제 웅변학원장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자. 웅변학원장의 과거를 분석하는 이유는 웅변학원장이 준이를 살해하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와 준이에게 담긴 상징성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감독들은 어느 한 인물의 과거사나 이력을 관객에게 간단히 함축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그 인물의 개인적 공간(사무실, 방 등등)에 사진, 기념품 같은 간단한 소품들을 배치하는 방법을 곧잘 쓴다. 웅변학원장의 개인적 공간은 영화 속에서 봉고차와 웅변학원 교실 두 곳뿐이다.
아이들에게 웅변을 가르치고 있는 시퀀스(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영화의 구성 단위. 쉽게 말해 ‘에피소드’. 시퀀스는 여러 개의 신(Scene)으로 구성되고, 각 신은 여러 개의 컷(cut)으로 구성된다. – 편집자)에 나오는 아래 사진에 나온 교실을 분석해 보자.
그런데 그의 과거를 알려 줄 소품이 안 보인다. 뒤에 걸린 단체 사진은 멀어서 내용 파악이 힘들며 단순히 학원 학생, 학부모들과의 단체 사진 정도로 보일 뿐이다. 그런데 책장의 수많은 책들 중에 눈에 띄는 책이 있다. [육사졸업생(陸士卒業生)]이란 제목의 책이다.
수많은 책 중에 왜 이 책이 유독 이창동의 연출의도가 담긴 책인가?
사진 속에 나타난 주인공의 손 위치 때문이다.
그리고 아래 사진에서 보여주듯이 그 책 위에 연필을 딱 내려놓는다. 한마디로 그 위치에 포인트를 딱 찍어 주고서, 우리에게 그 책을 눈여겨 봐달라는 노골적 연기 연출이다. (손은 어떤 사물에 대한 강한 지시성과 소유성을 표현하는 신체 부분임을 유념하자.)
놀랍게도 웅변학원장은 육사 졸업생인 것이다.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영화 속 김종찬의 대사를 통해 알려진 대로 그는 부산에서 살다 밀양이라는 지방도시로 온 대도시 출신으로, 서울에서 온 이방인 이신애처럼 학원을 차린 것이다.
그의 나이가 최소 40대 초중반임을 어림짐작할 수 있으므로 그가 육사를 다닌 시기는 20살 무렵일 테니 2007년보다 최소 약 20년 이상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므로 1987년 이전으로 1980~1987년 사이임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군인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장악하던 시기에 육사를 다닌 것이다.
3. 제5공화국과 밀양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육사 졸업생 출신 웅변학원장의 과거가 밝혀졌다. 그렇다면 그는 단순히 육사 졸업생 출신이 개인적 신분으로 준이를 살해한 것인가? 아니면 전두환 5공화국 군사정권 시절에 육사를 다녔다는 상징성으로 인해 5공화국 정부를 상징하는 살인자로서 준이(대한민국 국민)를 죽인 것일까?
이창동은 후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상징하는 치밀한 증거를 영화 속에 숨겨 놨다. 이제 우리는 웅변학원장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징하게 되는 연결고리를 교실 안에서 찾아내면 된다. 아래 네 장의 사진은 영화 진행 순서대로 똑같이 나열한 것이며 컷으로 분할된 각각의 장면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위 4개의 사진은 영화 진행 순서를 그대로 나열한 것이다. 한 시퀀스 안에서의 장면의 진행 순서와 그 유기적 관계는 그 시퀀스에 담긴 감독의 의도(의미) 전달을 위한 아주 중요한 영화문법임을 다들 아실 것이다. 그럼 위 4개 컷의 연결 속에 담긴 감독의 의도, 즉 웅변학원장과 대한민국 정부의 연결고리를 찾아보자.
- 시작하는 1번 컷에서 화면 중앙 상단에 가운데쯤에 학원 애들 중에 혼자서만 머리를 물들인 독특한 헤어스타일의 준이 머리 위에 무궁화 도안 일부분이 보인다.
- 2번 컷에서 웅변학원장이 왼손을 짚은 교탁에 둘레가 찢어진 태극무늬 도안이 그려져 있다.
- 3번 컷에서 다시 첫 사진의 무궁화 도안을 보여 준다.
- 4번 컷에서 웅변학원장은 일부러 걸어가서 자리를 옮겨 책장에 꽂힌 [육사졸업생] 책 위에 이번엔 왼손 대신 오른손을 얹고서 그 위에 연필을 놓는 행위를 통해 그동안의 연속 컷의 흐름과 연기 동선에 마침표를 찍는 상징적 행동을 한다.
연속 컷이므로 위의 무궁화 도안과 교탁에 붙어 있는 태극무늬 도안을 연결해 합쳐보자. 그럼 바로 아래 모습과 같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사진 속 글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것은 ‘나라문장’이라 불리는 것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중요 공문서, 외교문서와 기타 시설 물자에만 찍는 정부가 공인한 대한민국 국가 상징 기호다. 참고로 이창동은 1년 반 동안 문화부장관으로 재직 당시 매일 매일 수많은 결제문서와 업무를 통해 나라문장을 수도 없이 접했을 것이다.
교탁의 태극무늬 둘레를 찢어서 원래 무엇인가에 둘러싸여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연이은 컷의 무궁화 도안 가운데에 태극무늬를 집어넣으려는 노골적 연출이 느껴진다. 태극무늬 둘레를 찢기까지 한다. 참 꼼꼼하다. 하얀색, 황토색(진한 황금색) 두 색깔도 일치한다.
4. 학살… 혹은 준이의 죽음
영화 [밀양]은 아래 네 가지 기법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장인 나라문장과 [육사졸업생]을 연결한다.
- 위 컷들의 순서
- 웅변학원장의 동선
- 그의 신체(양손)
- 소품 연필로 마침표까지
이 연결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함축한다.
준이 살해범인 웅변학원장은 육사 출신 군인이었고, 나라문장은 대한민국 정부를 상징한다. 즉, 군인 + 대한민국 정부 = ‘군사정권’을 상징한다.
웅변학원장이 육사 졸업생이라는 단순한 개인적 신분의 상징성이 전두환 군사정권 때 육사를 다니던 사실과 결합하여 ‘5공화국 군사정부’의 상징으로 영화 속 메타포(상징)가 발전, 전화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녹색 악어 스티커의 녹색 또한 군인을 상징하는 군복의 녹색으로 의미를 전화한다.
결국, 이들 상징을 통해 영화 [밀양]에서 웅변학원장의 살인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학살이라는 사회, 역사적 의미로 확대 발전한다.
[box type=”note”] 영화 퍼즐 – [밀양] 편
-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 신애 거울 시퀀스의 의미 (가제, 발행 예정)
* 이미지 출처: 영화 [밀양](이창동, 2007) © CJ Entertainment [/box]
영화 아직 안 봤는데 이렇게 촘촘한 상징이 곳곳에 깔려있는줄 몰랐네요! 시네크라님의 관찰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잼있게 보고 가요.^^
웃기기엔 내용이 너무 깁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