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사회 » 디지털 미니멀리즘: 우리 집은 이제 박스를 뒤지지 않는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우리 집은 이제 박스를 뒤지지 않는다

2015년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던 신조어 중에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이 있다.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모두 버리거나 다른 장소에 보관하고 필요 최소한의 물건만 남긴 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미니멀리스트’라고 부른다.

IT 시대의 미니멀리즘

©사사키 후미오

©사사키 후미오

최근 일본 TV에도 자주 출연하는 미니멀리스트 사사키 후미오(sasaki fumio)같은 사람은 자기 집에 가구라고는 붙박이 옷장과 책상 겸 식탁, 그리고 나무 의자가 전부이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물건을 버리고 살아가지만, 미니멀리스트가 무소유의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인 것은 아니다.

실은 현대 IT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MP3 플레이어나 스마트폰 정보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컨텐츠의 디지털화와 인터넷 환경의 대중화, 그리고 도시 개발의 평준화가 있다.

당장 입을 옷을 빼고는 전부 버렸지만, 당장 옷이 필요해졌을 때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항상 입던 옷과 같은 걸 주문하면 된다. 집에 조리기구가 없어도 집 밖에 나가면 얼마든지 평균 이상의 맛과 포만감을 누릴 수 있는 프렌차이즈가 있으며, 서재에 수천 권의 책을 비치하지 않아도 디지털 형태의 책으로 스마트하게 원하는 정보를 꺼내볼 수 있다. CD를 수백, 수천 장씩 갖고 있지 않아도 MP3 파일 혹은 클라우드에 저장된 음악을 들으면 된다.

요즘에 사진을 뽑아서 앨범에 넣어 두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은 그냥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 서비스에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스마트폰이나 PC로 본다. 오래된 양장 앨범을 종이 박스에 넣어두었다가 가끔 추억에 젖어 꺼내보는 그런 모습은 점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게 모르게 실천해오던 삶의 방식을 극단까지 추구하는 사람들이 곧 미니멀리스트인 것이다.

우리 가족은 아직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만화책 수집가로 개인 전시회까지 열었던 나는 아직도 1만여 권이 넘는 만화책을 가지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모아오던 음악CD도 수백 장이 넘게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우리 가족의 삶의 방식은 많은 영역에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다.

1만 권이 넘는 만화책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게 해주는 서비스와 제품들

우리 가족의 디지털 미니멀리즘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실은 아마존이다. 한국은 아직 아마존이 진출하지 않아서 공감하기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일본에서는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작년에 구입한 ‘아마존 파이어스틱’을 TV에 연결해놓고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로 보고 있다. 음악도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로 듣는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블루레이, DVD, CD 등이 사라진 지 오래다. 보고 싶은 영화나 듣고 싶은 음악은 그냥 아마존에서 디지털로 구매하게 되었다. 서비스도 클라우드 방식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더는 외장 하드 디스크도 사지 않게 되었다. 게임도 언제부터인가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에서 다운로드 방식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컨텐츠를 TV로만 보게 되니 PC조차도 필요가 없어졌다. 추가로 필요했던 기기들이 모두 필요 없어지면서 가구도 심플해졌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디지털 미니멀리즘에 큰 영향을 끼치는 또 하나의 기기는 역시 아이폰이다. 아이폰 4s를 쓰던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SLR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아이폰 6를 쓰기 시작하면서는 비디오 카메라도 꺼내지 않게 되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전부 맥을 쓰다 보니 클라우드 서비스로 모든 것이 동기화되면서 SD카드들도 언제부터인가 아예 쓰지 않게 되었다. SLR도, 비디오카메라도 아는 후배에게 줘버렸다. 서랍 안에는 지금도 모두 합치면 1TB는 족히 넘을 SD카드, 메모리스틱 등이 잠자고 있다. 아마 언젠가는 이것도 누군가에게 주게 될 것 같다.

새로 산 자동차

우리 가족은 최근 자동차를 바꾸었다. 신형 자동차를 샀더니 내비게이션부터 MP3, TV를 비롯한 각종 멀티미디어 기능이 전부 내장되어 있었다. 이전에 타던 자동차에서 사용하던 잡다한 보조 장비들을 모두 버렸다. 자동차는 그대로 한 대지만, 가지고 있던 디지털 기기가 5개 줄었다.

보관용 박스도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시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디지털 박스를 이용해 창고에 넣어버릴 물건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잘 안 쓰는 물건들을 박스에 넣어서 창고에 보관하게 되면 나중에 물건을 다시 찾을 때가 힘들다. 특히 박스가 많아지면 물건 하나를 찾으려고 창고의 짐을 다 꺼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몸도 힘들지만 먼지도 잔뜩 먹어야 한다.

조금 정리를 잘 하기 위한 방법으로 박스에 물건들을 넣기 전에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박스 앞에 붙여놓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러려면 사진을 찍고, 그걸 인화(혹은 프린트)해서 박스 앞에 붙여야 한다. 하지만 박스의 내용물이 바뀌게 되면 사진을 다시 찍어야 한다. 멋져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매우 귀찮은 작업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는 디지털 박스(혹은 스마트 박스)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이 박스에 디지털 태그가 붙어 있고, 태그의 분류를 체크하고 번호를 써서 전용 스마트폰 앱으로 태그를 사진을 찍으면 자동으로 박스가 DB에 저장된다. 그리고 그 박스의 내용물 추가 화면에 들어가서 박스 안에 물건을 하나씩 넣으면서 사진을 찍으면 자동으로 그 사진들이 등록되는 방식이다.

디지털 박스

킹짐 뉴트럴 박스(Neutral BOX)

디지털 사무용품 전문 제조사인 킹짐에서 개발한 스마트 박스.

뉴트럴 박스에 물건을 넣은 뒤 박스 측면에 인쇄된 디지털 태그 부분에 손으로 3자리의 숫자와 카테고리를 표기한 뒤, 이것을 전용 스마트폰 앱으로 촬영하면 해당 태그 번호와 카테고리에 맞춰서 앱 내에 해당 뉴트럴 박스의 저장 공간이 생성된다.

이후 자동으로 사진 촬영 모드로 넘어가며, 이때 박스에 넣을 물건들을 가지런하게 늘어놓고 사진을 찍으면 박스 안에 넣은 물건들을 앱 안에서 사진만으로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마음대로 업데이트할 수 있어 박스 안의 내용물이 바뀔 때마다 앱 내의 사진도 간단히 업데이트 할 수 있는 편리한 정리용 박스다.

이제는 박스를 뒤질 필요도 없고 먼지를 먹을 필요도 없이, 전용 앱에서 박스의 내용물을 찾은 뒤 그 박스만 꺼내면 된다.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물건들조차 이제 디지털 기기 속에서 DB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니 마음 놓고 물건을 창고에 보관할 수 있고, 더 많은 물건을 내 눈앞에서 치워버릴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꽤 오래전부터 메모지와 노트를 쓰지 않았다. 개인적인 용도로 볼펜으로 종이에 메모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아마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세상은 이미 바뀌어 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미래 읽기

좋은 기사 공유하고 알리기
슬로우뉴스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후원해주세요. 필자 원고료와 최소한의 경비로 이용됩니다.

필자 소개

초대 필자, 웹매거진 운영자

서브컬쳐・언더그라운드 정보 전문 웹매거진 「데카르챠」의 운영자.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난 한국형 오타쿠 1.5세대 게임매거진 기자, PC게임매거진 기자, 아하!PC 기자, HOWPC기자 등을 거쳐서 2005년부터 게임 개발자로 변신. 2006년부터 일본에서 게임 개발 및 현지 서비스 등을 담당.

작성 기사 수 : 18개
필자의 홈페이지

©슬로우뉴스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슬로우뉴스 안내 | 제보/기고하기 | 제휴/광고문의
(유)슬로우미디어 | 전화: 070-4320-3690 | 등록번호: 경기, 아51089 | 등록일자 : 2014. 10. 27 | 제호: 슬로우뉴스 | 발행인: 김상인 | 편집인: 강성모
발행소: 경기 부천시 소사로 700번길 47 1동 506호 (원종동, 삼신) | 발행일자: 2012. 3. 26 | 개인정보관리/청소년보호책임자: 강성모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