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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슬로우뉴스는 NCSOFT와 함께 2016년 연중기획으로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사회에 초래한 변화를 점검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미래 읽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디지털 시대의 가족일기

  1. 디지털 네이티브: 2살 아들의 디지털 라이프
  2. 디지털 미너멀리즘: 우리 집은 이제 박스를 뒤지지 않는다
  3. → 디지털 라이브러리: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에서 걸어 다니는 도서관으로
  4. 디지털 소사이어티: 카카오톡과 페이스타임으로 다시 뭉친 우리 가족
  5. 디지털 투어리즘: 포켓몬 GO 때문에 야간 버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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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 많다. 만화책만 1만 권 이상 갖고 있다. 나름 알려진 만화책 수집가였기에 몇 년 전 강남의 한 미술관에서 수집품을 갖고 개인 전시회를 열었던 적도 있다. 책이 많은 사람의 고민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1. 첫째는 책을 둘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이고,
  2. 둘째는 책이 많아지면 이사 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이고,
  3. 끝으로 보관과 정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책을 많이 사는 사람에게는 책 그 자체가 처치불능의 짐 덩어리이지만,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출판된 서적 대부분이 순식간에 절판되어 버리는 한국에서는 관심 있는 책은 읽지 않더라도 일단 사놓고 보는 것이 애서가의 미덕이다.

1만 권이 넘는 만화책들
나는 책이 많다. 특히 만화책이 많다.

책의 디지털화 

책의 디지털화는 뜻밖에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프로젝트 구텐베르크’[footnote]프로젝트 구텐베르크(Project Gutenberg)는 인류의 자료를 모아서 전자 정보로 저장하고 배포하는 프로젝트로, 미국인 마이클 하트가 시작했다.[/footnote]가 1971년에 시작되었다. 한국도 1992년에 전자출판협회가 출범하고, 국내 최초의 전차책 ‘설악의 사계’가 CD-ROM 형태로 출간되었다. 2007년 아마존 킨들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전자책은 큰 시장을 이루고 있었으며, 2015년에는 전 세계 전자책 시장만 174억 달러로 출판 시장 전체의 15%를 점유하고 있다.[footnote] 참고로, 2013년 우리나라 전자책 단행본 콘텐츠 매출액은 전년 대비 45% 성장한 약 1,160억 원(예상 추정치)이고, 2017년까지 연평균 50% 정도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2017년의 예상 매출액은 6,689억 원이다. (출처: ‘국내외 전자출판 시장 현황과 전자책 마케팅’, 류영호, 2013. 8) [/footnote]

종이책과 전자책의 예상 매출액 (그래픽: StatistaCharts, 출처: PriceWaterhouseCoopers, CC BY ND)
종이책과 전자책의 예상 매출액 (그래픽: StatistaCharts, 출처: PriceWaterhouseCoopers, CC BY ND)

전자책이 대중화되고, 전자책 단말기들이 하나둘 등장하면서 많은 애서가가 자신이 가진 책을 디지털화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이북으로 나온 책의 종류는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이다. 그렇다고 책을 뜯어서 한 장씩 스캔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아이패드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패드가 일본에 처음 발매되던 날 긴자에 있는 애플스토어에 전날부터 줄을 서서 아이패드를 샀다. 내가 아이패드를 산 목적도 내가 가진 책 일부를 디지털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패드(1세대)의 등장.
아이패드(1세대)의 등장.

아이패드가 출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는 책을 분해해서 스캔한 뒤 데이터화 해주는 서비스들이 생겨났다. 이런 서비스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저작권의 문제로 모두 문을 닫았지만, 그 당시에는 아주 큰 호황을 누렸다.
나는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자동 급지 방식의 스캐너를 구매해 직접 스캔을 시작했다. 당시 갖고 있던 잡지와 무크지 수백 권을 스캔해 PDF 형식으로 만들었고, 이것을 아이패드에 넣었다.

초대 아이패드는 사양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매우 느렸지만 그래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이후에도 상당히 많은 책을 뜯어서 스캔해 디지털화했다. 하지만 이것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노동이었다. 자연스럽게 좀 더 편한 방법을 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킨들을 샀다.

킨들과 클라우드 서비스의 성장 

킨들을 구입한 이후로 더는 책을 뜯어서 스캔하지 않아도 됐다. 내가 디지털화하려고 하는 책 대부분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돈을 내고 사지 않았으니 내 소유물은 아니지만 정말 필요할 때 돈만 내면 바로 그 자리에서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으니 조급해할 필요가 없어졌다. 굳이 내가 직접 스캔하지 않아도 되고, 이북에는 재고라는 개념이 없으니 당장 안 산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전자책을 접하면서 '품절'될까 하는 걱정은 사라졌다.
전자책을 접하면서 책이 ‘품절’될까 하는 걱정은 사라졌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뒤 인터넷을 통한 정보 검색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지식을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면서, 모든 사람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백과사전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폰 시대가 시작되면서 모든 사람이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 될 수 있었다.

클라우드가 일반화되고, 컨텐츠 플랫폼들의 컨텐츠 배포 방식이 클라우드 기반으로 바뀌면서 더는 단말기에 컨텐츠를 저장해 놓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킨들에 신용카드를 등록해 놓으니 별다른 결제 과정도 필요 없다. 그냥 보고 싶은 책이 있을 때 검색해서 다운로드받으면 된다. 나는 항상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을 들고 다니는 셈이다.

성장하는 온라인 공개강좌 시장 

비단 책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무크(MOOC)[footnote]무크(MOOC)는 ‘Massive Open Online Course’의 약자로, 전 세계 유수의 대학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다. 우리말로는 ‘온라인 공개 강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참고: 무크에 대한 옹호론무크에 대한 비판론  [/footnote]나 코세라(Coursera)[footnote]코세라(Coursera)는 무크(MOOC; 온라인 공개 강좌) 업계에서 인기를 끄는 미국의 교육 및 기술 회사다. 에덱스(edX; 하버드와 MIT 공동 설립), 유다시티(Udacity; 구글 X연구소 초대 소장 세바스찬 스런이 설립)와 함께 세계 3대 무크 중 하나로 뽑힌다. 스탠포드 동료였던 다프니 콜러와 앤드류 응이 공동 창립했다. 후에 라이벌 업체인 유다시티를 창립하는 당시 스탠포드 동료였던 세바스천 스런도 공동 설립자들과 함께 공학 강의를 제공해 큰 인기를 끌었다. [/footnote] 같은 서비스를 통해 하버드, MIT 등 세계적인 대학의 강의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다. 지식이 독점되던 시대, 지식이 공간과 지역과 자본에 의해 독과점 되던 시대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코세라 공동 창업자인 앤드류 응(바이두 인공지능 센터장)은 이렇게 말한다.

“고등교육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다.”

나는 매달 적지 않은 이북을 구매한다. 하지만 지금도 매달 새롭게 책을 사고 있다. 나에게는 아직도 벽에 가득 꽂혀 있는 책과 조금 오래 된 책에서 나오는 종이 냄새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다. 아마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나이든 세대들에게는 그러한 집착이 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종이 책과 이북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가끔 아이들에게 내가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가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책이 아닐까. 아마 내가 가진 책들은 아이들에게 물려줄 때는 제법 가치가 있는 유산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아마존이나 교보에서 구매한 디지털 서적들도 큰 유산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책의 가치는 종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지식에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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