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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대구지방법원 2016. 7. 6. 선고 2015고정858판결 중에서

화두는 ‘토렌트’다. 저작권자 대다수에게 토렌트는 ‘불법의 온상’이고, 향유자 대다수에게 토렌트는 디지털 ‘문명의 이기’다. 이제 토렌트는 인터넷이 삶의 공간으로 자리한 네티즌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만큼 저작권자의 불안은 커진다. 생산과 소비, 창조와 향유, 이 좌우의 날개가 조화를 이룰 때 문화는 융성하고, 창작자와 향유자는 서로를 존중하며 상생할 수 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최근 토렌트 이용자를 상대로 한 저작권 침해 형사 소송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2016년 7월 6일 대구지방법원).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고, 따라서 이 사건은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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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개요: 

다수의 소설 저작물을 압축한 압축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게 하는 토렌트 파일을 이용하여 해당 파일을 98%까지 다운로드 받은 피고인이 저작권자의 복제권 및 전송권을 침해했는지 여부. 법원은 피고인의 무죄를 선고. 검찰은 항소 포기. 판결 확정. (→ 판결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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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담당한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에게 이번 사건과 판결의 의미를 물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시대의 화두, ‘토렌트와 저작권’에 관해 한 번 더 생각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토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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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넷 박지환 변호사 일문일답 

 

-쟁점을 간단히 설명하면. 

박지환 오픈넷 변호사
박지환 변호사

쟁점은 두 가지다.

쟁점 1. 압축 파일이 98% 다운로드 완료되었다는 캡처 화면으로 다수의 소설 저작물 중에 저작권자의 소설 저작물의 복제가 완료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 (→그렇게 볼 수 없다.) 

쟁점 2. 토렌트 송수신의 특징상 다운로드와 동시에 일부 패킷이 송신되는데, 98% 다운로드 되었고, 고소인이 그 중 일부 패킷을 수신할 수 있었다면, 이를 해당 소설 저작물에 대한 전송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 (→ 그렇게 볼 수 없다.) 

-법원이 피고인(토렌트 이용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를 풀어 달라. 

이 사건에서 토렌트 이용 자체가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고 법리적으로 결론 난 것은 아니다. 다만 법리적으로 다툼이 큰 쟁점임에도 유죄 인정에 필요한 충분한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래 판결 내용에서 알 수 있듯, 유죄 인정은 증거에 의해 엄격하게 확인돼야 하므로 법리적으로는 당연한 결론이다.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토렌트 이용시 업로드 제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고소인이 피고인으로부터 수신한 패킷이 매우 미미했다. 고소인은 본인의 소설 저작물만 특정하여 다운로드를 요청했지만, 본인(저작권자)의 소설 저작물의 용량을 넘어서는 분량의 패킷을 수신하였다는 점이 무죄 판단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안이 좀 복잡해 보인다. 사실 관계를 좀 더 풀어달라. 

고소인(저작권자)의 핵심 주장은 자신의 저작물을 피고인(토렌트 이용자)이  토렌트 상에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올렸다는 것이다. 그 파일은 여러 저작물이 포함된 압축파일 형태였다. 그런데 토렌트에서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때는 여러 파일의 압축 파일이라고 하더라도 개별 파일을 선택할 수 있다. 고소인(저작권자)는 해당 압축파일 중 자신의 저작물만 선택해서 다운로드했다. 그래서 패킷을 나에게 준 사람(피고인)이라면, 본인의 저작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저작권

이 사건에서 피고인(토렌트 이용자)은 업로드 제한 설정을 한 상태였는데, 그래서 최종적으로 피고인을 통해 고소인(저작권자)에게는 전달된 파일 용량은 약 8mb에 불과하다. 해당 저작물의 전체 용량은 약 485mb다. 저작권자는 다섯 번에 걸쳐 다운로드를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피고인에게 받은 8mb를 포함해서) 다운로드한 용량은 500mb였다. 즉, 자신의 저작물 용량인 485mb를 초과해서 받았다.

그래서 초과된 저작물의 패킷(500-485=15)만큼은 다른 저작물일 확률이 있고, 게다가 피고인에게 받은 패킷은 극히 저용량이며, 사실이 이렇다면, 저작권자가 받은 피고인의 파일에 저작권자인 자신의 저작물만 있다고 확정할 수 없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한마디로 말해, 저작권의 저작물 용량인 485mb를 초과해서 받은 15mb 중에 피고인에게 받은 8mb가 전부 포함될 수도 있다. 즉, 저작권자의 저작물 정보가 아닌 패킷을 받았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변호인으로서 피고인이 저작권자의 저작물을 가지고 있다고 확증할 수 없다는 점을 변론했고, 법원은 이런 사실관계를 살핀 뒤에 무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이 ‘리딩 케이스’ 역할을 할까. 판례 변경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우선 같은 취지의 선행 판결이 이미 창원지방법원에서 있었고, 이번 판례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일종의 리딩 케이스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단순히 IP주소 등 캡처 화면만을 증거로 제출하는 고소 사건 대부분은 기소조차 어려울 것으로 본다.

다만, 이 사건은 특이하게 다수의 저작물을 압축한 파일을 패킷으로 송수신한 것이어서 추후에 하나의 저작물에 대한 사건이라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즉, 하나의 저작물이 문제된 경우에는 이 사건과 달리 본격적으로 토렌트 이용에 대한 법리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법적 쟁점 외에 이번 사건을 ‘저작권 삥뜯기'(합의금 장사)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보나. 

이 사건에서 고소인(저작권자)은 피고인에게 형사 고소와 관련하여 별도로 합의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른바 ‘저작권 삥뜯기’ 사례로 보기에는 어렵지만, 저작권자 스스로 토렌트를 이용한 패킷 송수신에 참여했기 때문에 일종의 ‘기획 소송’에 해당한다고 본다.

저작권 폭탄

-기획 소송? 

기획 소송은,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하면, ‘함정 수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토렌트 파일 유통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토렌트 시스템 자체에 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저작권자 스스로 다운받아 토렌트 하면서 접속한 사람들의 IP로 고소했다. 저작권자가 전송에 참여하지 않고, 제3자를 통해 증거를 수집해 소송에 참여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직접 참여해서 토렌트 이용했다는 점에서 기획 소송에 해당한다고 본다.

-끝으로 독자에게. 

최근 몇 년 사이에 토렌트 파일을 대규모로 유통하는 해외 홈페이지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운영이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토렌트를 이용한 저작권 침해는 이를 대규모로 유통하는 홈페이지에 대한 문제 제기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이용자에 대한 기획 고소의 부당함과는 별개로, 이 판결로 인해 토렌트 이용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진 것은 아니므로 이용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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