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가 아니라는 이들이 이렇게 많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조현병 환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일은 흔하지 않다. 어느 정도로 흔하지 않으냐면, 그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톱 뉴스로 기사를 뽑을 만큼 그렇다. 멀쩡한 정상인이 저지르는 살인은 훨씬 많고, 다 신문에 나지도 않는다.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도 맞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그냥 흔하지 않은 미친놈의 범죄라는 ‘여혐 범죄 부정론자’의 주장도 맞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사람의 망상이 외계인 관련이었다면 이 사람은 살인 대신 지리산 어느 곳에서 UFO와 교신을 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었다면 교회에서 목사를 죽였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부정론자의 논리에 따르면 이것은 십만 번에 한 번 정도 있을 만한 특이한 사건이다. 그저 그 정신병 환자의 망상에 하필이면 여자가 타깃이었을 뿐이다. 아마 똑같은 범죄는 향후 몇 년 동안, 어쩌면 몇십 년 동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조현병이 아니라 뭐 다른 정신병이나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환자가 다른 살인을 저지를지 모르나, 그때는 타깃이 다를 수가 있다. 노인이라든지, 군인이라든지.
이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이 작은 확률을 침소봉대하여 사회 현상으로 일반화되는 것이 옳지 않다…이지 싶다.
자, 그러면 왜 여자들과 소수의 남자들은 이런 흔하지 않은 살인 사건에 그렇게나 추모하고 글을 써대고 온갖 온라인 매체의 기사를 빽빽하게 채우는 ‘오버 짓’을 하는지 이해 못 하리라. 그저 아무 의미 없는 미친 사람의 말 가지고 각자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거로 보일 수도 있겠다.
조금 길어질지 모르지만, ‘왜 그런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고 내 이야기를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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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서 새겨진 폭력에 대한 두려움
나는 남아공에서 자라서 한국 남자에게 당한 여혐 경험은 별로 없다. 심하게 ‘남초’인 환경에서 계속 공부하고 일했지만, 가슴에 한이 쌓일 정도의 여혐 트라우마도 없다. 그러나 내 기억에 아주 확실히 새겨진 것은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것은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치안이 나쁘기로 유명한 남아공에서 자라서 그렇다. 내 남편은 키 183cm에 몸무게가 90kg이 넘는다. 이 남자도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다.
아직도 차를 잠글 때 눈에 보이는 곳에 짐을 두지 않는다. 비닐봉지 하나라도 두면 혹시나 싶어서 유리창 깨는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운전할 때 누가 유리창 쪽으로 다가오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동차 강도가 하도 잦아서 그렇다. 밤에 걸을 때 뒤에 발소리가 들리면 돌아보지 않고 반대쪽으로 옮겨서 걸음을 빨리한다. 남편이 남아공에서는 평균 덩치고, 훨씬 큰 남자들이 많은데 그들 역시 그렇다. 덩치 커 봐야 총구 들이대면 아무 소용 없는 거 잘 안다.
남아공에서는 특히나 아시아계가 타깃이 되었다. 시내에서 흑인 대상으로 현찰 장사를 자주 하다 보니 가게 영업하다 털리는 건 물론이고 집안까지 무장강도가 쳐들어오기도 한다. 아시아계가 덩치가 작은 편이기도 하며 불법 체류자들도 많아서 신고를 잘 안 한다는 점도 잘 알려져서 그랬다. 솔직히 남아공에 정착해서 경제생활 하는 한국 교민들 중에서 안 당한 사람 찾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어머니가 시내에서 하던 가게 역시 흑인 대상이었다. 여자 범죄자들도 많았으나 보통은 좀도둑이었고, 무장강도는 거의 흑인 남자였다. 강간은 흑인 지역에서 아주 흔하다고 했으나 요하네스버그는 무장강도와 자동차 강도가 더 흔해서, 오히려 한 대 얻어맞고 지갑이나 차 뺏길 여자보다 남자가 더 위험했다. 총기 소지한 사람도 많다 보니까 타깃이 건장한 남자면 그냥 쏴 죽이고 본다.
남아공 정도의 개판 치안에서는 ‘조심해야지!’가 말이 된다. 조심하지 않으면 곧바로 당하기 때문이다. 밤에 카메라 목에 매고 요하네스버그 시내 나가면 100% 당할 거다. 집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는데 별 상관 안 하고 들어가면 그 사람이 뒤따라 들어와 자기 친구들 문 열어주고 곧 10인조 AK47 강도단에게 당할 수도 있다(내 부모님이 이렇게 당했다).
내가 떠날 때만 해도 남아공의 치안이 그리 나쁘지 않다 우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국(나는 지금 영국에서 산다)에서도 칼 맞아 죽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며칠 전에 일어났다! 슈퍼마켓 주차장에서 여자만 골라서 네 명 찌른 남자가 붙잡혔다. 강도, 강간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자신은 당한 일이 없고, 주변 사람들이 ‘오버’한다고 했다.
몸이 체득한 공포,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내 부모님에게는, 한국 사람에게는 달랐다. 그냥 소매치기 정도나 집에서 뭐 없어지는 건 애교로 봐주고, 거리에서 협박하면서 삥뜯기, 가게에 쳐들어와서 털어가는 것, 집에 무장강도 들기까지 하나라도 안 당한 사람 찾기가 어려웠다. 소소한 것까지 치면 떠나기 전 5년 정도는 우리 부모님도 분기마다 한 번씩 당한 것 같다.
어머니는 아직도 흑인을 보면 무서워하신다. 나도 무섭다. 인종차별적인 거 아는데 그렇다. 남편도 경계한다. 이런 우리에게 ‘흑인은 다 범죄자 취급하는 분란 종자’라 하면, 머리로는 그 말이 이해가 될 수도 있고, 괜히 의심한 흑인 남자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몸으로 체득한 공포는 없어지지 않는다.
남아공의 80%가 흑인이고, 대다수가 극빈자층이라 잃을 것도 없는 범죄자 발생이 높을 수밖에 없다. 절대 숫자로 보면 범죄자 흑인 남자보다 선량하고 성실한 흑인 남자가 많은 것, 나도 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십 년 후에도 밤늦게 으슥한 곳에서 흑인 남자가 슥 다가오면 우선 놀랄 것이다.
남아공을 떠난 지 7년이 되었다. 난 단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때처럼 숨 막히게 갇혀있는 기분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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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대 1/1000000
당신이 남아공에서 산다면 강력 범죄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아시아계로서 20%, 5분의 1이라고 하자. 이건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높은 수치다. 당신은 어딜 가든지 두리번거릴 것이며, 차를 댈 때마다 조심할 것이다.
남아공에서 조현병 걸린 환자에게 한국인이라고 칼 맞을 확률은 1,000,000분의 1이라고 하자. 1,000,000분의 1. 5분의 1. 아주 큰 차이다. 여기서 여혐 범죄 부정론자와 여혐 범죄론자의 차이가 있다.
당신은 1,000,000분의 1을 보고, 여자들은 5분의 1을 본다.
한국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여혐으로 안 좋은 경험을 할 확률은 5분의 1보다 훨씬 높다. 싫지만, 해코지 할까 봐 좋게좋게 거절할랬더니 쌍욕을 하면서 협박하는 남자. 지하철에서 가슴이나 다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개저씨’나 할아버지들. 이것 역시 괜히 뭐라고 했다가 얻어맞거나 재수 없으면 정말 죽을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택시 안에서 성희롱 발언하는 아저씨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을 여자들이 대부분일 테다.
여기에 매일매일 가볍게 당하는 여혐 – 외모 비하, 오지랖, 직장과 학교에서 선후배들과의 불쾌한 해프닝까지 더하고 좀 덜 흔한 아빠, 오빠, 남동생, 친척에게 당하는 성적·육체적인 학대, 심한 성추행·폭행 경험까지 다 더해보자. 이 모든 상황과 그 비슷한 상황에서 여자는 이 남자들이 날 해치지는 않을까 두려워해서 입을 닫았다.
여자들이 입을 닫는 이유? 그게 편하니까
그런데 왜 지금까지 폭발하지 않았을까? ‘피해자 탓으로 돌리기’는 남자에게만 편한 게 아니라 여자에게도 편하기 때문이다. 강간당한 여자가 밤늦게 다녔고 술집 여자고 치마가 짧았다는 말을 믿으면, 나는 그 짓을 하지 않는 이상 괜찮을 거라 믿을 수 있었다.
성추행을 당하고, 폭행을 당한 일들도 언론에서 꽃뱀이라는 식으로 흘려댔으므로 ‘나는 꽃뱀이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하며 안도 하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해코지하는 인간들이 있어도 경찰이나 내 주위 남자가 지켜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 모든 환상을 와장창 부순 사건이 이번 살인 사건이다. 그 살인범은 피해자가 개념녀인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는지 묻지 않았다. 남친과 더치페이 따박따박 했는지 묻지 않았고, 먼저 작업 걸다가 퇴짜 맞은 것도 아니었다. 피해자가 혼자 있던 것도 아니고 남자친구와, 다들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아무런 도발하지 않고도 여자라는 이유로 죽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여자라서
‘김치녀’라서 죽은 게 아니고, 술집 여자라서 죽은 게 아니고, 야한 옷을 입었다가 강간 미수로 죽은 게 아니고, ‘맘충이’라서 죽은 게 아니고, 기센 여자가 바락바락 대들어서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여자라는 이유로 타깃이 되었다. 이건 어떻게 대비할 방법이 없었다.
아마 이때 느낀 여자분들 많았을 것이다. 내 태도가 어땠든 간에, 내가 무슨 노력을 하든지 간에 당할 수 있겠구나. 내 주위 남자들에게 여혐 경험담을 얘기할 때마다 ‘야야 그런 미친놈들 무시해’ 했었는데, 그 많은 미친놈들이 진짜 나를 죽일 수도 있는 놈들이구나.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이건 어떻게든 내 잘못으로 전가되겠구나.
그와 동시에 그렇게 안전하고 치안 좋다던 서울은 아마도 남아공의 숨 막힘과 비슷해졌을 것이다. 그냥 무시하고 미친놈이라 넘겼을 남자들이, 전철을 탈 때마다 겪을 수 있는 추행과 오지랖 주인공 할아버지가, 퇴근길에 괜히 나를 쫓아오던 아저씨가, 껄렁거리며 위협하듯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고등학생 무리가, 치마를 가린다고 ‘안 봐! 이 XX년아!’ 욕하는 남자가, 그냥 미친놈이라 무시할 수 없으며, 그 수많은 ‘미친놈들’이 쉽게 나를 어찌할 수 있다는 깨달음과 그에 따른 공포는 당신이 만만한 아시아계 관광객으로서 카메라를 목에 매고 요하네스버그의 밤거리를 걸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서울을 그렇게 만들었다. 다음 ‘미친놈’은 조현병이 아니라 그저 현실을 비관한 아저씨일 수 있다. ‘성적을 비관한’ 남고생일 수 있고, ‘세상에 대해 분노한’ 60대 남성일 수 있다. 언제나 변명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아주 많다.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달라는 부탁
추모하러 가면서도 혹시나 몰카 찍어 해코지할까 두려워 마스크를 쓰고 가는 여성들에게, 당신들은 여전히 그들의 공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너희가 두렵다는 일은 몇백만 분의 일이라서 너희가 하는 짓은 오버라고, 그런 의심은 곧 모든 남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거라서 기분 나쁘다고 하고 있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진심으로 여자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껴서 그렇다. 몸으로 겪지 않은 공포는 와 닿지 않는 거 안다. 같은 런던 거리를 걸으면서도 큰 덩치의 남아공 백인 남자들이 당신들보다 훨씬 더 귀를 곤두세우고 조심하는 건, 겁이 더 많아서가 아니고 피해망상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어쨌든 동물이고, 생존에 대한 위협을 당한 이는 그 학습된 본능을 쉬이 없애지 못한다.
여자들에겐 1,000,000분의 1이 아니다. 그냥 미친놈의 희귀한 범죄가 아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수없이 자행되고 있는 여혐 범죄 중 하나이고, 그래서 여혐 범죄가 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흔히 일어남을 계속 말하는 것이다. 이제 제발 ‘미친놈이야, 무시해’ 하지 말고,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달라는 부탁이다.
여기까지 읽어도 ‘나보고 어쩌라고!’ 할 듯하지만. 뭐 어쨌든 그래서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