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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 강남역 살인사건 공판준비기일

2016년 5월 17일 발생해 여성 혐오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고인 김 모 씨의 공판준비기일1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제24부(부장판사 유남근)에서 7월 22일과 8월 5일에 각각 진행됐다.

세상을 달궜던 사건의 여파를 반영하듯, 재판정에는 취재 기자 외에도 많은 방청객이 좁은 법정을 가득 메웠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김 씨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연이어 제기하며 재판부를 당황케 했다.

공판준비기일의 모습을 김 씨의 주장을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성별간 갈등 조장하지 말라는 분들. 당신들은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관심 가져봤나요?"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026426.html

“당신들은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관심 가져봤나요?”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1. “변호인은 필요 없다. 혼자 재판받겠다”

김 씨는 2회에 걸친 공판준비기일에서 지속적으로 “변호인은 필요 없다”며, “나 혼자 재판을 받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씨에게는 현재 국선 변호인이 선임돼 있다.

김 씨는 5일 재판에서도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스스로 설명하는 게 좋아 보인다”며, “변호인의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무거운 형벌이 선고될 수도 있는 중범죄이므로 생각할 기회를 주겠다”며, “변호인 교체 등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권했다. 그러면서 김 씨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재판을 휴정하려고 했지만, 김 씨는 이조차도 “필요 없다”며 거부하려고 했다.

문제는 김 씨의 주장이 법률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형사소송법 제282조(필요적 변호)

제33조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건 및 같은 조 제2항·제3항의 규정에 따라 변호인이 선정된 사건에 관하여는 변호인 없이 개정하지 못한다. 단, 판결만을 선고할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제33조(국선변호인)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 변호인이 없는 때에는 법원은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

1. 피고인이 구속된 때

5. 피고인이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는 때

6. 피고인이 사형, 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때

김 씨는 살인죄로 구속기소 됐기 때문에 형사소송법 제33조 제1항 제1호와 제6호의 적용 대상이다. 아울러 수사기관에 의해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제5호의 적용 대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원은 법률에 따라 김 씨에 대해 ‘반드시’ 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 변호인이 없으면 재판 자체를 진행할 수 없다.

휴정 후에도 김 씨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따라서 5일 재판에서 진행된 증거 동의 절차도 김 씨가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증거 동의 여부를 결정했으며, 국선 변호인은 김 씨에 대한 법률적 조언을 하는 것으로 역할이 한정됐다.

재판부는 결국 김 씨의 국선 변호인을 추가로 선정했다. 공판 절차에서는 다른 국선 변호인이 김 씨의 변론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가 의무적으로 변호인을 선임해줘야 한다는 법률 규정은 피고인에게 유리하다. 김 씨는 자신에게 유리한 법률 규정을 거부한 것이다.

2. “내 정신 건강은 일반인과 같다. 정신분열증 아니다”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①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수사기관은 김 씨에 대해 ‘조현병 환자’라고 발표했다. 조현병은 형법 제10조에서 말하는 심신상실·심신미약을 적용할 수 있는 질환 중 하나이다.

제1항에서 말하는 심신상실자로 판정되면 책임무능력자로 인정돼 형벌에 처할 수 없다. 제2항에서 말하는 심신미약자로 판정되면 가벼운 형벌에 처해진다. 따라서 재판부가 재판을 진행하면서 김 씨에 대해 “조현병에 의해 심신이 취약하다”고 판단한다면, 김 씨에게 유리하면 유리했지 결코 불리하지 않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다른 동기가 전혀 없고, 오직 피해자를 ‘사탄’이라고 생각하고 피해자를 죽여야만 피고인 자신이 천당에 갈 수 있다고 믿어 살해하기에 이른 것이라면, 피고인은 범행 당시 정신분열증에 의한 망상에 지배되어 사물의 선악과 시비를 구별할 만한 판단능력이 결여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대법원 판결 1990.8.14, 90도1328)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표에서도 심신미약은 감경 사유로 명시돼 있다.

대법원

하지만 김 씨는 증거 목록에 대한 동의 절차에서 조현병과 관련된 각종 증거 자료에 대해서는 전부 “증거 사용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하고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살인 범죄 여자 여혐 증오 혐오

검사와 피고인 등 재판의 당사자가 증거 사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 증거는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다. 김 씨가 부동의함에 따라, 재판에서 김 씨의 조현병 관련 기록 상당수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재판부가 김 씨의 조현병을 인정하면 김 씨에게는 가벼운 형벌에 처해진다. 따라서 자신의 조현병 관련 기록에 대해 일체 증거 사용에 동의하지 않은 김 씨의 대처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3. “여성 혐오 관련 자료의 증거 사용, 동의한다”

검찰은 총 168개의 증거 목록을 나열하며, 김 씨의 동의 확인 절차를 진행했다. 이에 대한 김 씨의 판단은 일정한 방향을 드러냈다.

  1. 병원 진단서나 의사의 소견서 등 조현병 관련 자료 – 부동의
  2. 여성 혐오 관련 인터넷 검색 및 문헌 자료 – 동의
  3. 조현병에 대한 가족의 진술이 담긴 자료 – 부동의했다가, 재판부가 가족의 증인 소환 가능성을 언급하자 입장을 바꿔 증거 사용에 동의
  4. 그외 범죄 전력에 관한 자료 – 부동의

자신의 양형에 불리할 수도 있는 ‘여성 혐오’ 성향 관련 자료에 대해서는 순순히 증거 동의를 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여성은 범죄에 취약한 약자로서, 여성 대상 범죄는 양형의 가중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김 씨의 범행은 무방비 상태였던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죽인 ‘묻지마’ 살인 사건이다.

Romuald Bokej, CC BY SA

Romuald Bokej, CC BY SA

즉, 김 씨는 양형에 유리할 수 있는 증거는 전부 동의하지 않았고, 불리할 수 있는 증거는 전부 동의했다. 가벼운 처벌을 받거나 무죄 판결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일반적인 범죄자의 심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변호인 선임을 거부하는 등 김 씨의 예사롭지 않은 대처에 재판부도 그때마다 당황하며 휴정하거나 김 씨에게 절차에 관해 자세한 설명을 했다.

또한, 재판부가 직권으로 증거 사용을 명령할 수 있는 자료에 대해서는 김 씨의 의견을 무시하며 증거로 확정하기도 했다. 김 씨의 이해하기 어려운 대처로 인해 재판 진행 자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판부가 절차 진행을 강행하며, 어쨌든 공판준비절차는 마쳤다. 김 씨의 공판은 오는 8월 26일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법원 판결


  1. 공판준비기일: 증인 선정 및 증거 동의 여부 확인 등 공판 절차의 진행을 위해 필요한 구체적 절차를 확정하는 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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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형준
초대필자. 기자

저는 '샤브샤브뉴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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