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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 4개’로 여자들의 증언을 가로막은 남자들

이 글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82년생 김지영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김지영 씨의 생애 전반에 대해 그려낸 소설과 달리, 영화는 현재 26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김지영 씨가 겪고 있는 ‘병’과 그로 인해 변하는 주변 상황에 집중한다.

김지영(정유미 분) 씨의 ‘병’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일명 ‘빙의’다. 그런데 김지영 씨가 뜬금 없는 사람으로 변하진 않는다. 김지영 씨가 변하는 대상은 모두 자신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며, ‘여자라는’ 이유로 고통받은 존재들이다. 외할머니, 엄마, 그리고 출산 도중에 숨진 선배 차승연 씨다. 즉, 김지영 씨는 ‘네 여자’의 화자가 된다.

각각 세 여자로 변한 김지영 씨는 자신의 삶, 나아가 여성의 삶에 대해 고백한다. 지금껏 그가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들이 다른 사람으로 변한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온다. 김지영 씨의 증상을 보거나 들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그는 ‘아픈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 모든 상황은 하나의 비유 같다. 몇 년 간 침묵을 깨고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여자들에 대해 남자들이, ‘여성 혐오 사회’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저 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남자들은 “페미는 정신병”이라는 조롱부터 온갖 모욕을 서슴지 않았다.

증오 화

“증오는 추모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이들 

나는 아직도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 추모 집회에서 “증오는 추모가 아닙니다” 등의 ‘추모 방해 피켓’을 들었던 남자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들이 압도적인 여성 추모 군중의 숫자에 공포를 느끼기는커녕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여성혐오 범죄가 맞다’고 외친 여성들의 목소리를 ‘피해망상’으로 취급한 남자들이 상당수였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듯 여자들은 그저 ‘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이유로, ‘여성 혐오 살인’을 당한 이를 추모한다는 이유로, ‘병’에 걸려서 ‘증오’를 표출하는 사람 취급을 받아왔다. 사실 지금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논의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

"성별간 갈등 조장하지 말라는 분들. 당신들은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관심 가져봤나요?"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026426.html

강남역 살인 사건 피해자 추모글들. “성별간 갈등 조장하지 말라는 분들. 당신들은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관심 가져봤나요?”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타자를 통해 자신을 드러냈던 김지영 씨처럼, 여성들은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겪은 폭력과 차별을 드러내려고 한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의아해하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영화나 현실이나 동일하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실에는 여성의 증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김지영 씨의 남편 정대현(공유 분) 씨가 있지 않다. 오히려 많은 남성은 정대현 씨가 ‘빙의’ 증상에 대해 이야기하니 ,”(그런 여자들은) 격리시켜야 한다”는 폭언을 퍼붓는 정대현 씨 직장동료의 태도에 가까울 것이다.

네 개의 물음표 

최근 배우 송승아 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쓴 게시물이 화제가 됐다. [82년생 김지영] 개봉 전날, 송 씨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무슨 말인지 참 알거같네. 내일아 빨리와”라고 쓰자, 그의 남편인 가수 장범준 씨가 댓글로 “????”라고 남긴 것이다.1 아마 물음표가 담고 있는 함의는 ‘네가 왜 그 이야기에 공감해’ 혹은 ‘어이없네’에 가까울듯 하다.

이를 본 여성들이 장 씨를 비판했지만, 한편 남초 커뮤니티에선 “돈을 저렇게 벌어오는 데 뭐가 불만이라는 거지” 식의 장범준 동정론(?)이 쏟아졌다. 그런데 장 씨가 올해 3월에 MBC [라디오스타]에서 했던 말들을 보면, 이들의 동정론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인지 잘 알 수 있다.

“당시 아내가 21살이었어요. 원래는 장인어른이 원래 저에게 존대를 하셨는데, 임신 사실을 아시고는 그날은 존대를 안하시더라고요. 아예 저를 안보려고 하셨어요. 하지만 손녀가 태어나고 나서는 ‘손녀 바보’가 되셨죠.” (혼전임신 사실 고백며)

“육아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아내가 정신병 안 걸린 게 신기할 정도로…!”(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촬영 이야기하며)

“(작업하느라) 아기가 깨기 전에 나가서 아기가 잘 때 들어와요. 제가 너무 얍삽했죠, 제가. 아내가 그정도로 힘들 줄 몰랐어요. 정말 미안하죠.”

라디오스타

한참 활동할 나이에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경력이 중단됐다. 게다가 ‘독박 육아’를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여성이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자신이 겪고 있는 부당함을 간접적으로 고발하고자 한다. 그걸 보고 ‘팔자 좋은 소리’니, ‘남편 한남 만들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여성을 움츠러들게 해서, ‘말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일 뿐이다. 커피가게에서 대놓고 ‘맘충’이라고 말하는 남자가 어디있냐고? 이미 당신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쉽게 재단하면… 화내지 않을 수 있을까 

남초 커뮤니티에선 이미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하기 전부터 한 ‘짤방’이 유행하고 있었다. ’80년대생 한국여자’가 출생→10대: 빠순이→20대: 된장녀 →30대 미혼: 메갈 or 30대 기혼: 맘충으로 성장한다는 도식을 그려낸 것이다. 그렇다면 비슷하게 그런 방식으로 ’80년대생 한국 남자’의 도식을 그려볼 수 있다. ‘출생→10대: 불법촬영 영상 시청자(공범)→20대: 성구매자 →30대: 밥줘충’.

한 커뮤니티 게시물 중 일부와 해당 게시물에 달린 '베스트 댓글' (출처는 의도적으로 표시하지 않음)

한 커뮤니티 게시물 중 일부와 해당 게시물에 달린 ‘베스트 댓글’ (출처는 의도적으로 표시하지 않음)

아마 이와 같이 누군가 자신의 삶을 재단하면 엄청 화를 낼 남성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자격으로 여성의 삶을 규정하려 들까? 사실 그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82년생 김지영]을 공격하는 남자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으며, 불편하지 않은, 병이 생기기 전의 ’82년생 김지영’ 들을 원한다. 여성들이 자기검열을 통해 침묵하고 넘어감으로써, 현재의 구조가 마냥 옳다고 믿으며 살고 싶어한다. 그러니 여성이 자신의 삶을 증언하며 부당한 현실을 바꿔나가는 시도 자체를 조롱하며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자꾸 그들만의 ‘안전한 세계’에 머물려고 한다. 남자로서의 이득을 한껏 누리면서도, 동시에 ‘나도 힘들어’ 식으로 ‘피해자’ 행사를 하며 책임을 피해갈 수 있는 그런 세계. 그 ‘안전한 세계’에 균열이 났으니 반발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반발이 무위로 돌아갈만큼 거대한 물결이 치고 있다. 여성들은 당신이 들을수밖에 없도록 이야기 할 것이다. 외면하려야 외면할 수 없게. 그 큰 물결의 일부가 [82년생 김지영]이다.

‘혐오’가 되돌려 받게 될 질문 

나는 [82년생 김지영]이 최저 젠더 감수성 기준이며, 남성들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말했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내용은 수년간, 아니 수십년간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이야기해오던 차별과 폭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마저 거부하는 사람은, 적극적인 ‘무지’를 통해 무결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데 불과하다.

반면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남자들은, 오히려 이 부분이야말로 ‘완전한 허구’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착하다. 그 지점이 그나마 이 영화를 희망적인 분위기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정대현 씨는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와 남동생조차 조금씩 변해 간다. 그렇게 이 영화는 현실에서도 남성들의 지체 없고 즉각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동시에 영화는 ‘여성 혐오 세력’은 아마 그들의 혐오에 대한 저항과 되물음을 받게 될 거라는 사실을 영화 말미에 암시하고 있다.

장범준 씨가 남긴 물음표 네 개는 아마 장 씨를 두둔했던 남자들이 되돌려받게 될 것이다 .

“내가 왜 정신병인데?”

“내가 왜 된장녀인데?”

“내가 왜 김여사인데?”

“내가 왜 맘충인데?”

그런 질문에 대답할 자신 있는가? 아마 대답을 한다고 치더라도 비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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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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