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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단’에서 ‘완화’로: 코로나19,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코로나19 대응으로 입국 제한이 시행되었다[footno0te]정부는 2020년 4월 1일 0시부터 모든 대한민국에 들어오는 모든 입국자를 2주간 의무적으로 격리한다. 이는 사실상 ‘입국 금지’ 효과를 의도한 것으로 평가된다.(편집자)[/footnote]. 입국 금지 주장이 나온지 2달만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일일 입국자 수가 1/10 이하로 줄어 관리해봄 직한 수준이 되었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입국 제한이 선시행 중이라 정치, 경제적 부담도 적다. 그 때문에 이제는 입국 제한 카드가 실보다 득이 커졌다는 판단은 일리가 있다. 나는 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비록 내 생각과는 다르지만…)

이제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는 일은 사실상 아주 힘들어졌다.

이제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는 일은 사실상 아주 힘들어졌다.

매 맞아도 천천히 나눠 맞아야

나는 인류가 코로나19를 단기간에 박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매를 맞을 때 강 건너 불구경하던 유럽, 미국이 지금 코로나19에 몸살을 앓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확진자가 적어졌다고 희희낙락할 일은 아니다. 종국엔 결국, 어느 나라나 최종 감염자 숫자는 일정한 퍼센트(%)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강력한 통제로 그 시기를 늦추었을 뿐, 우리도 결국 세계 평균으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시원하게 한방에 앓고 끝내자는 극단적인 주장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꺼번에 환자가 폭증하면 의료붕괴로 사망자가 속출하게 된다.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매를 천천히 나눠 맞아야 한다. 12개월 할부로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들 알다시피 감염병의 확산을 늦추는 것은, 의료가 대처 할 시간을 벌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입국 금지는 감염병의 유입을 일시적으로 늦춰준다. 하지만 결국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제고 감염병은 들어온다. 우리 정부가 줄곧 견지하는 강력한 차단과 봉쇄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 또한 감염병을 완전히 막아낼 가능성은 낮다. 논란 중인 휴교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정책의 목표는 비슷하다. 환자 발생 속도를 완만한 속도로 조절하는 것이다. 작동 원리도 비슷하다. 각각의 방식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제한다. 물론 이들로 감염병을 원천봉쇄하면 좋겠지만, 판데믹에서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감염병 차단만이 목적이라면? 2주간 계엄령을 선포하고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모조리 가두면 된다. 당연히 이것은 불가능하다. 병을 고치자고 환자가 죽을 만큼 센 약을 쓸 수는 없다. 우리는 각각의 정책이 가져올 부작용을 고려하여 ‘사회적 거리 두기’에 효용이 큰 것들만 취사선택해야 한다.

환자 발생 속도를 완만하게 조절함으로써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전략이다.

환자 발생 속도를 완만하게 조절함으로써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전략이다.

검사 위주의 전략,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검사 위주의 전략에 회의적이며 영국, 일본등이 취하는 전략도 그 성패와 무관하게 나름의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결국 걸릴 사람은 모두 걸려야 유행이 끝난다면, 목표는 자국의 의료자원이 버틸만큼 환자 수를 적절히 조절하는것 뿐이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 거리 두기에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각 나라가 저만의 문화를 바탕으로 어떤 전략을 취하는걸 굳이 외부에서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나 자국민의 생명을 하나라도 더 구하기 위해 고심 끝에 어려운 판단을 내렸을게 틀림없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비아냥거리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새로운 감염병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선 국제사회의 공조가 필수지만, 그렇다고 각국의 현실을 무시하고 국제 간의 룰만 요구하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

게르트 기거렌처(독일의 심리학자)는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서 유방암 조기검진의 무용성에 관해 적고 있다. 조기검진으로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없으며, 위음성, 위양성으로 인한 부작용, 쓸데 없는 자원의 낭비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기거렌처

우리는 코로나19에 대한 공격적인 검사가 과연 실제로 얼마나 유용하며,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를 심사숙고해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논의는 단 한 번도 설 자리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의료자원에 어느 정도의 낭비가 일어나고 있다. 예를들어 아무런 접점도 없는 단순한 건강염려증 환자가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이 자원이 고위험군에 쓰인다면 훨씬 유용할 것임에도.

더없이 훌륭한 초기 방역 정책 

코로나19 초기 우리나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방역 정책을 폈다. (그리고 이때 나는 여러 번 틀린 판단을 했다) 안타깝게도 지리적 이유로 코로나19는 그 정보가 제대로 파악되기도 전에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당시엔 나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이 코로나19를 메르스와 비슷하게 생각했다. 적극적인 조치로 국내유입을 틀어막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환자 하나하나 동선과 감염 경로를 파악하여 질병을 원천봉쇄하려 애썼다. 메르스 때 통제에 한번 성공했던 방식이다.

이때 입국 금지를 주장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정부는 그에 휘둘리지 않았다. 입국 금지는 사회 전체적으로 득보다 실이 크며, 감염병 차단 효과가 미미하다는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빠르게 진단키트를 완성하였으며, 역학 조사에 기반하여 적극적 검사 정책을 펼쳤다. 감염자를 찾아 격리함으로써 감염병의 확산을 저지하는 방식인데, 이는 이후로도 우리나라 방역 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적극적인 검사와

역학 조사에 기반을 둔 적극적인 검사 정책은 방역 정책의 기조였다.

실제로 이러한 방역 정책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대통령이 낙관론을 얘기할만큼. 나 또한 이때까지만 해도 코로나19를 어쩌면 쉽게 잡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섣부른 기대를 했다. 하지만 대구, 신천지에서 대량 환자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코로나19 감염의 특징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이 질병은 전 세계적인 판데믹 유행으로 이어지며 그 위력을 입증했다.

대구, 신천지 이전에는 그러한 질병의 특성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었으므로, 그 당시 취했던 방역 정책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언제나 주어진 정보하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또한, 여러 면에서 이 시기의 발빠른 준비가 이후의 판데믹과 맞서 싸울 토대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 시기를 꽤나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신천지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 가능했던 이유   

대구, 신천지 사태 이후로는 모든 게 달라졌다. 이 감염병은 원천 봉쇄가 불가능하단 걸 알게 되었다. 백신이나 치료제도 요원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감염의 확산을 최대한 저지하는 것. 이 방법의 핵심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있다. 정부를 기존에 해 오던 검사 & 격리 정책을 우직하게 밀어붙였다. 물량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검사에 검사를 거듭했고, 증상이 없는 환자들까지 찾아냈다. 자고 일어나면 수백 명씩 환자가 늘어났다. 온 나라가 감염병의 공포에 비명을 질렀다.

나는 당시 이것이 탐탁치 않았다. 검사수를 늘리는 것이 유용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책의 방향성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정말 원천봉쇄가 길이라면? 위험성이 있으면 검사와 무관하게 전부 격리하는 편이 확실했다. 검사 방법 자체가 위음성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감염이 아니라고 나와도 안심할 수 없었다.

무증상이나 경증의 환자를 빨리 찾아내서 얻을 수 있는 의학적 이점도 없었다. 그러니 한정된 의료자원을 검사에 쏟아 붓는 걸 이해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이 때문에 임상 현장에선 의료 운영에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그 손해가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의심되면 무조건 격리를 지시하고 강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추진하면? 굳이 검사에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정부의 공격적인 검사와 격리 정책은

정부의 공격적인 검사와 격리 정책은 눈에 보이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국민에게 보여줬고, 이에 국민은 적극적으로 정책에 호응하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통제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빠르고 많은 검사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효과를 가져왔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눈앞에 생생하게 드러내 준 정책의 효과는 대단했다. 이보다 더 확실하고 효과적인 공포는 없었다. 사람들은 정부 지시에 순응도가 높아졌고, 자발적으로 통제에 응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성공한 비결이다. 아마 내 주장처럼, 검사 없이 무작정 격리를 지시했다면 많은 사람이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성공한다면, 과도한 검사에 자원을 투자하는 게 낭비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가 파악 못한 것은 전제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사람들에게 강요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간과했다. 실제로 검사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나라들은, 국민들이 이 질병에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그 결과 감염이 폭발하는 공통적인 과정을 거쳤다. 그로인해 의료자원의 고갈로 대량의 환자가 사망하게 되는걸 감안한다면, 검사에 소모한 의료자원은 전혀 아까운게 아니었다.

물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자발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다면, 의료 자원을 가능한 치료용으로 돌려두는게 환자 사망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일본의 정책이 성공할지 무척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들이 성공한다면 일본인의 국민성에 후한 점수를 주고싶다. 반대로 실패한다면 일본 정부의 무능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테고. 비슷한 정책을 취했던 유럽에서의 감염 확산 속도를 고려할때, (올림픽 이슈 후에 논란이 늘긴했지만) 일본도 아직까지 선방 중인 걸로 보인다. 과연 이대로 계속 감염병을 통제해낼 수 있을지 굉장히 흥미롭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우리 정부는 대구, 신천지 사태 이후에도 검사, 격리, 통제에 집중하는 정책을 고수했고, 이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 판데믹이 선언되고 세계 여러나라에서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속출한 것에 비해, 우리는 완만한 수준으로 감염의 확산을 막아내고 있는게 그 증거다. 역시 나 같은 아마추어보다 정부에서 일하는 프로들의 판단이 한 수 위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부의 방역 정책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부의 방역 정책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제 장기전 대비한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대구, 신천지의 대량 환자 발생, 그리고 이후의 세계적인 판데믹까지. 우리나라의 방역 정책은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부족할 게 없다. 특히 생활치료센터 도입은 몇 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대량 감염 상황을 피하고, 최소한의 피해로 넘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판데믹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방역 정책에는 회의적이다. 나는 정부가 정책 전환의 때를 놓쳤다고 생각하며, 지금이라도 조속히 장기전에 대비한 전략 수정을 해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지금껏 몇 번이나 틀린 판단을 했으니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이번에도 내 판단이 틀리길 바랄 뿐이다.

병원 의료 의학 의사 안전

‘판데믹’과 ‘감염병 위기경보단계 심각’은 감염이 광범위하게 퍼져 원천봉쇄가 불가능한 상황을 뜻한다. 당연히 방역 정책의 기조도 차단보다는 완화를 골자로 한다. (차단의 극단에는 중국의 우한봉쇄령이 있고, 완화의 극단에는 스웨덴의 집단면역법이 있다.) 지역사회 감염이 만연해지면, 단기 초토화 박멸전을 포기하고 장기전을 시작하게 된다. 핵심은 보급. 긴 싸움에 지쳐 아군 병력이 먼저 쓰러지지 않도록 섬세한 정책을 짜야한다.

물론 어떤 정책을 차단과 완화 둘 중 하나로 무자르듯 나누는건 불가능하다. 예를들어 휴교를 생각해보면, 이는 차단과 완화의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다. 차단책은 거의 대부분 어느 정도의 완화 효과도 가지기 때문. 입국금지는 차단책에 가깝고 입국제한은 완화적인 성격에 더 가깝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휴교든 입국제한이든, 이러한 정책의 기대치는 완화보다는 차단에 방점이 찍힌다.

즉, 반복되는 휴교 및 입국제한, 그리고 검사 및 격리까지, 우리 정부의 모든 정책은 국민에게 하나의 신호를 지속적으로 주고 있다. 코로나19 원천봉쇄가 그것이다. 북한민이 고난의 행군을 묵묵히 견딘게 핵에 대한 기대였듯이,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를 완전히 잡을 수 있다는 기대로 정부 정책을 따르고 있다. 그 때문에 정부가 통제 수위를 조금만 낮추려고 해도 국민이 먼저 반발하고 있다. 상당히 골치 아픈 상황이다. 코로나19의 박멸은 요원한데, 물러설 수도 없게 오히려 국민이 퇴로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차단’에서 ‘완화’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차단에서 완화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나온지 한달이 넘었다. 그러나 정부는 그동안 계속해서 차단 시그널만 강화했다. 대량 검사에서 시작된 화려한 성공이 가져온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다. 세계 최고라는 찬사가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부터 국민까지 어느 누구도 이 수식어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하필 선거기간까지 겹쳤으니. 한발만 물러서도 방역 실패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질까봐 걱정이다. ‘못 먹어도 무조건 고’ 상황이다.

그 사이 의료 현장은 점점 왜곡이 심해지고 있고, 경제 지표는 모두 악화되고 있다. 국민들은 경제적 취약 계층부터 나가 떨어지고 있고. 하지만 키보드 앞에 앉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은 여전히 ‘차단 고!’만 외치고 있다. 언제가 되었든 한번은 반드시 이 감염병의 원천봉쇄가 불가능함을 국민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암 세포보다 환자가 먼저 죽을 게 틀림없다.

코로나19는 1년 내내 지속될 지도 모른다. 잠시 소강되었다가 가을쯤 다시 폭발할지도 모른다. 내년에도 우리는 코로나19와 지지부진한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전에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면 좋겠지만, 낙관적인 뉴스는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지금의 이 삶을 1년 이상 지속할 자신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과연 이대로 휴교를 반복해서 1년을 유급해도 좋은지, 원격교육을 1년간 해도 연말에 반발이 없을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여 충분한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대로 1년을 더 버틸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지금의 이 삶을 1년 이상 지속할 자신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현재의 차단 중심 정책이 계속되면 사회가 얼마나 무너지게될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그에 대해선 이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뽑은 견적서를 정부가 손에 쥐고 있을 거로 믿는다. 아마도 견딜만하다는 수준이라고 견적이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자꾸 불안하다.

내가 잘 아는 의료 분야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현재 시스템을 계속 강요할시 코로나19보다,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는 환자수가 더 많아질 게 틀림없다. 이미 많은 병원이 나가 떨어졌고, 특히 발열, 호흡기 환자에서 손 뗀 곳은 너무나도 많다. 의료전달체계는 근본부터 무너졌다. 각종질병의 예방가능사망률이 솟구치고 있지만, 코로나19에 가려 누구도 집계하지 않고 있다.

다행인 건 환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간다는 것이고, 불행인 건 의사들이 환자를 놓치는 것에 점차 무뎌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매일 코로나 사망자 수를 1면에 집계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2차 사망자 수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지금 같은 총력전이 1년간 이어진다면 누구도 버티지 못 할 것이다. 6개월 아니 3개월만 계속되어도 대다수가 포기할 것이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거리로 나온다. 살기 위해서라도. 불안한 움직임은 이미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꼭 모든 걸 체념하고 될대로 되라는 식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1.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침착하게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것
  2.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도 그것이 일상이 되면서 해이해지는 것

어떤 방식을 써서라도 1로 연착륙을 유도하는 게 최선이다. 버티기 끝에 마지못해 2가 되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문제는 겉으로 봐서 1과 2를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람들 뇌리에 1을 심어주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회를 이미 여러번 놓친 듯하다, 안타깝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코로나19에 훌륭히 대처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성적표는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환자는 환자대로 발생하고, 경제적 피해까지 누적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성공을 끝까지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빠른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 일상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고민. 지금 필요한 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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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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