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닌텐도가 지금까지 성공과 위기를 반복한 것에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이 글은 ‘포켓몬 고’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닌텐도의 비즈니스 행보를 조명하고 닌텐도의 그럴만한 사정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닌텐도가 게임 업계의 황제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6월 24일 소니 회의실. ‘오가 노리오’ 사장의 주재로 회의가 열렸다. 분위기는 매우 침통했다. 닌텐도의 배신 때문이었다. 소니는 닌텐도의 주력 게임기인 슈퍼 패미컴의 외장형 ODD 개발을 위해 닌텐도에 협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닌텐도는 소니의 뒤통수를 치며 필립스와의 제휴를 발표한다. 일방적으로 소니와의 계약을 파기한 것이다.

닌텐도 소니

Ken_kutaragi소니와 서드파티의 분노 

오가는 닌텐도의 배신으로 인한 사업적 손실 때문에 매우 화가 나있었다. 하지만 벌써 일 년이 지났고 이제는 프로젝트의 폐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 ‘쿠타라기 켄’(사진) 부장이 입을 열었다.

“쿠타라기”: 우리는 닌텐도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3D 그래픽 포맷을 비밀리에 개발해 왔습니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닌텐도가 따라올 수 없는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오가”: LSI의 집적도는?

1백만 게이트입니다.

1백만? 말도 안 돼! 우리 수준으로는 잘해봐야 3만 개야!

가능합니다!

불가능해!

오가상! 천하의 소니 사장이 닌텐도에 그런 대접을 받아도 좋은 겁니까? 겨우 종업원 800명인 회사에게 세계의 소니가 어린애 취급을 당해도 괜찮냐는 말입니다!

(…)

시카고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당한 겁니다. 이대로 물러나면 소니는 세계적인 비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쿠타라기…

오가 사장님! 소니는 할 수 있습니다! 하게 해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오가 노리오 쿠타라기의 외침이 오가의 마음을 움직였다. 오가는 두 주먹으로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쿵!’ 하는 소리가 회의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회의실에 모인 모든 소니인들은 오가와 같은 분노를 공유하고 있었다. 닌텐도를 향한 분노였다.

좋아! 알았네. 자네가 그렇다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게. 하자고! 하는 거야! (오가 노리오, 사진) 

닌텐도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은 소니뿐만이 아니었다. 닌텐도의 서드파티(3rd Party, 닌텐도에 게임을 공급하는 게임 개발사)들도 차곡차곡 분노를 쌓아가고 있었다. 서드파티가 게임을 출시하려면 ‘마스크 롬 비용’과 ‘생산 위탁 로열티’를 닌텐도에 지불해야 했다.[footnote]로열티는 제조비의 2배를 달했고, 마스크 롬 비용은 상대적으로 큰 부담은 아니었다.(편집자)[/footnote] 슈퍼 패미컴의 게임은 롬 카트리지에 저장되었는데, 그 생산기술을 닌텐도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footnote]닌텐도가 처음부터 카트리지 생산을 독점한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서드파티도 자신의 공장에서 카트리지를 찍을 수 있게 했다. 다만 생산할 수 있는 타이틀의 수에는 제약이 있었다. 초기 서드파티는 6개사였고, 각각 카트리지를 생산해서 판매했는데, 1984년에 소프트웨어 하나가 패미콤 특정 롯트에서 작동 안 하는 사고가 발생해 제품을 전량 회수하는 사건 이후로는 카트리지 제조를 닌텐도가 독점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편집자) [/footnote]

[box type=”info”]

슈퍼패미컴 롬 카트리지(ROM Cartridge) 한 개당 가격 책정 기준[footnote]이 기준은 근거 자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편집자)[/footnote]

  • 15% = 마스크 롬(Mask ROM)
  • 15% = 생산 위탁 로열티
  • 10% = 소프트웨어 개발비
  • 10% = 소프트웨어 메이커 마진
  • 6% = 광고비
  • 6% = 리스크 회피 요금
  • 13% = 도매상 마진
  • 25% = 소매상 마진

[/box]

닌텐도는 게임 내용도 체크[footnote]닌텐도는 ‘슈퍼마리오클럽’이라는 일종의 디버그 팀을 운영했다. 이 팀은 QA/QC를 담당, 일정한 점수에 도달해야 게임을 출시할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큰 회사와 작은 회사 사이에 차별이 심했다. (편집자)[/footnote]했다. 스퀘어(Square, 현 스퀘어에닉스)가 만든 게임을 예로 들면 ‘파이널 판타지 2’는 교회가 너무 자주 나온다는 이유로, ‘파이널 판타지 5’는 북미 시장에 내놓기엔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내용 검수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다. 어렵게 닌텐도의 절차를 통과한다고 해도 서드파티들은 게임이 팔리지 않을 것을 대비한 비용까지 내야 했다.

게임을 닌텐도가 아닌 다른 곳으로 출시하면 되지 않을까? 적어도 게임 개발 사업을 하려면 그럴 수 없었다. 당시 닌텐도는 게임 업계 최강의 플랫폼 기업이었고, 전 세계 게임 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서드파티들은 아무리 불리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닌텐도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닌텐도는 어떻게 그런 무소불위의 힘을 손에 쥘 수 있었을까? 비결은 닌텐도가 둔 절묘한 한 수에 있었다.

닌텐도의 절묘한 한 수 

영광의 주역 '슈퍼마리오' 
영광의 주역 ‘슈퍼마리오’
'닌텐도' 하면 떠오르는 얼굴
‘닌텐도’ 하면 떠오르는 얼굴

사람은 누구나 머릿속에 보통명사로 된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다. 카테고리에는 두어 개의 슬롯이 있고, 슬롯에는 브랜드가 장착되어있다. ‘커피’라고 했을 때 어떤 브랜드가 떠오르는가? 당신의 커피 카테고리에는 당신이 1초 안에 떠올린 브랜드 수만큼의 슬롯이 있다.

슬롯에는 먼저 떠올린 순서대로 브랜드가 장착되어 있다. 제일 처음 스타벅스가 떠올랐다면 첫 번째 슬롯에는 스타벅스가 장착되는 식이다. 나머지 브랜드는 뇌 속 다른 기억들과 섞여 있기 때문에 빠르게 떠오르지 않는다.

슬롯에 한 번 장착된 브랜드는 여간해서는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들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 첫 번째 슬롯에 자사의 브랜드를 장착시키기 위한 전략을 세운다. 이것을 마케팅에서는 포지셔닝 전략이라 부른다.

1983년, 미국인들의 게임 카테고리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슬롯에는 브랜드 대신 ‘저질’과 ‘불매’라는 인식이 장착되어 있었다. 미국 최고의 게임 회사였던 아타리(Atari)가 워너 브라더스에 인수되면서 저질 게임이 양산된 것이 원인이었다. 사람들은 게임의 G자만 봐도 외면했다. 미국의 게임 시장은 30억 달러에서 1억 달러 규모로 추락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아타리 쇼크’라고 부른다. 아타리 쇼크 이후 미국에서 게임사업을 하는 건 자살행위와 다름없었다. 그런 미국 시장에 닌텐도가 도전장을 내민다.

1985년 10월 18일 미국의 어느 장난감 가게. 조이패드가 달린 회색 플라스틱 기계가 진열되어있다. 부모의 손을 잡고 들어온 아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계를 바라본다. 부모는 그것이 게임기임을 설명해주며 다른 장난감을 보자고 한다. 그때 가계 주인이 입을 연다.

“손님, 이건 게임기가 아니에요. 닌텐도입니다. 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죠!”

어디서 약을 파나 싶겠지만, 이 메시지는 제대로 먹혔다. 닌텐도는 게임 카테고리의 슬롯을 포기했다. 대신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드는 전략을 취했다. 제품의 이름을 NES(Nintendo Entertainment System)로 고쳤고, 디자인과 도색도 VTR(비디오테이프 재생기)과 비슷하게 바꿨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그것이 닌텐도의 포지션이었다.

패미컴(위)과 NES(아래)는 같은 기기였지만 이름도 디자인도 달랐다.
패미컴(위)과 NES(아래)는 같은 기기였지만 이름도 디자인도 달랐다.

포지셔닝 전략의 궁극적인 목표는 첫 번째 슬롯에 장착되는 것을 넘어서 카테고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사의 브랜드가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명사로 쓰이게 됨을 의미한다. 게임이 아니라는 주장 덕분에 몇몇 사람들은 닌텐도를 구매했다. 사람들은 닌텐도가 아타리와 질적으로 다르며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입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미국에서는 게임을 게임이라고 부르지 않고 닌텐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적절한 포지셔닝 전략으로 미국인들에게 긍정적인 인식을 주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닌텐도는 그렇게 미국 시장을 점령하고 곧 전 세계를 석권할 수 있었다.

취약한 플랫폼 그리고 소니의 반격  

포지셔닝 전략에 탁월한 닌텐도였지만, 플랫폼 전략은 엉망이었다. 닌텐도의 플랫폼 생태계는 상생보다는 서드파티의 희생을 통해 닌텐도의 배를 채우는 구조였다. 닌텐도 입장에서는 기업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게 이윤을 추구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닌텐도의 행동도, 기업의 목적이 이윤추구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플랫폼은 콘텐츠 품질이 생명이다. 수익 배분에 있어서 게임을 공급하는 서드파티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면 품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드파티가 고품질 게임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돌보아야 한다. 고품질 콘텐츠는 플랫폼의 수준을 높이고 고객 만족도를 높인다. 서드파티와 고객 사이에, 고객과 고객 사이에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지속 가능한 플랫폼 비즈니스의 비결이다. 닌텐도는 이윤을 지나치게 추구했다. 그 결과 세계 최강의 플랫폼 비즈니스는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그 균열은 분노한 소니의 맹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94년 12월 3일,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군은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ony Computer Entertainment, SCE)의 깃발을 휘날리며 게임 업계가 닌텐도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선언했다. 쿠데타군의 돌격대장은 쿠타라기 켄. 그는 신무기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으로 닌텐도를 공격하며 삐라를 뿌렸다.

sony-playstation-logo__130124125802

  • 플레이스테이션은 슈퍼 패미컴보다 고성능이다.
  • 플레이스테이션은 3D 그래픽으로 무장했다.
  • 플레이스테이션은 롬 카트리지가 아닌 CD로 구동된다.
  • 서드파티는 더 이상 ‘마스크 롬 비용’이나 ‘생산 위탁 로열티’ 따위를 낼 필요 없다.
  • 게임 검수는 철저히 서드파티의 입장을 존중하겠다.

‘닌텐도의 압제에 신음하는 서드파티여 소니로 오라! 소니에는 자유와 희망이 있다!’

1996년 6월 23일, 닌텐도는 플레이스테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닌텐도 64’를 내놓지만 역부족이었다. 서드파티는 하나둘 닌텐도를 떠나 플레이스테이션에 가세했다. 닌텐도 밑에서 온갖 고초를 당한 스퀘어의 가세는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스퀘어는 1997년 1월 31일 ‘파이널 판타지 7’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했고 980만 장이 팔리는 역대급 성공을 거둔다. 뒤를 이어 1999년 2월 11일에 출시된 ‘파이널 판타지 8’은 800만 장이 팔렸고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다.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둔 '파이널 판타지 7'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둔 ‘파이널 판타지 7’

파이널 판타지 7이 성공한 1997년, SCE는 업계 최강의 플랫폼 기업이 되었다. 돌격대장 쿠타라기 켄은 그 해 10월 SCE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서드파티가 빠져나간 닌텐도에는 퍼스트 파티[footnote]퍼스트 파티(1st Party): 닌텐도가 직접 게임을 만드는 것을 의미[/footnote]와 세컨드 파티[footnote]세컨드 파티(2nd Party): 닌텐도의 자회사 격[/footnote]가 남았다. 닌텐도는 더 이상 플랫폼 기업이 아니었다. 닌텐도는 이제 자사의 게임기에서 구동되는 게임을 만드는 콘텐츠 기업이었다.

1989년, 슈퍼마리오 오타쿠였던 타지리 사토시가 게임 회사를 창업했다. 이름은 게임 프리크(GameFreak). 이때만 해도 게임 프리크가 닌텐도의 구원자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1990년, 게임 프리크는 닌텐도에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게임 프리크의 제안은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채택되었고, 1996년에 닌텐도의 세컨드 파티로써 게임보이(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용 타이틀을 출시할 수 있었다. 게임의 이름은 포켓몬스터. 당시 닌텐도는 소니의 공격으로 타격을 입고 있었지만, 포켓몬스터 덕분에 휴대용 게임기 시장만큼은 지켜낼 수 있었다.

반면,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닌텐도는 참패를 거듭했다. 2001년 9월 14일, 닌텐도는 닌텐도 64의 뒤를 이어 ‘게임큐브(GameCube)’를 내놓았지만, 결과는 전보다 더 좋지 않았다. 게임큐브는 약 2천여만 대가 팔렸고, 경쟁사인 SCE의 플레이스테이션 2는 약 1억6천만 대가 팔렸다. 플레이스테이션 2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게임기가 되었다. 모두 서드파티 덕분이었다.

닌텐도의 새로운 시도, Wii 

2005년 3월,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사장은 MVC(유럽의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서드파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나는 서드파티들이 닌텐도를 지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다른 것을 시도하고 있다. 나는 닌텐도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지원할 서드파티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닌텐도는 게임큐브의 후속 기기인 Wii의 출시를 1년 정도 앞두고 있었다. Wii는 이와타의 말대로 전혀 다른 게임기였다. 하지만 너무 다른 게 문제였다.

닌텐도 위 Wii

당시엔 소니 말고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엑스박스(Xbox) 360으로 게임 플랫폼 비즈니스에 뛰어든 상태였다. 플레이스테이션 3와 엑스박스 360은 모두 고성능 게임기였다. 닌텐도는 당시 시장에서 가장 큰 경쟁요소를 고성능으로 보고 성능을 과감히 낮췄다.

Wii는 그대신 전혀 새로운 요소인 모션 컨트롤러를 추가했다. 모션 컨트롤러는 센서가 달려있어서 손에 쥐고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게임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었다. 내가 컨트롤러를 쥐고 휘두르면 테니스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스매시를 날렸고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검을 휘둘렀다. Wii는 그런 게임기였다.

Wii의 특징과 이와타의 서드파티에 대한 생각을 종합해볼 때 닌텐도는 게임 시장 공략을 위해 블루오션 전략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Wii의 모션 컨트롤러는 게임을 잘 모르던 사람들을 게임 시장으로 끌어오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을 가볍게 즐기는 라이트 유저(Light User)들은 Wii를 선택했고 Wii는 판매량 1위를 기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Wii의 한계 

Wii는 헤비 유저(Heavy User, 게임 오타쿠)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헤비 유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서드파티의 참여가 필수적이었는데 Wii의 낮은 성능과 모션 컨트롤러가 결정적인 장애물이었다. 서드파티의 입장에서 고성능 기기에 알맞은 게임을 만들어 플레이스테이션 3와 엑스박스 360 모두에 게임을 공급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닌텐도만을 위해 낮은 성능에 모션 컨트롤러에 알맞은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Wii는 결국 닌텐도만의 잔치로 끝나버렸다. Wii가 반짝하는 동안 닌텐도의 퍼스트 파티와 세컨드 파티의 게임들만 잔뜩 팔렸다. 서드파티는 존재를 느끼기 힘들 정도로 미미했다.[footnote]특히 일본 내에서 서드파티는 고전했고, 상대적으로 미국과 유럽에선 선전했다(예: 콜 오브 듀티 3). 하지만 Wii U의 서드 파티는 일본 안팎을 가릴 것 없이 완전히 망했다. (편집자)[/footnote] 서드파티가 있어야 지속적으로 새로운 게임들이 출시되면서 게임기의 제품 수명도 늘어날 수 있는데 Wii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Wii의 판매량은 2010년에 들어서서 경쟁 기기들에 추월당했고 2013년에 단종되었다. 닌텐도는 플랫폼 기업이 되는 것에 실패했다.

미야모토 시게루 2012년 닌텐도의 주가는 약 7만엔에서 9천엔 정도로 추락했다. 닌텐도가 실적 부진으로 가시밭길을 걷고 있을 때, 사람들은 닌텐도가 모바일 게임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대한 이와타 사장이나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사진)의 답변은 이랬다.

“닌텐도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렸다.

‘우리가 플랫폼인데 왜 남의 플랫폼에 들어가라고 하는가?’

이것이 닌텐도의 사정이다. 닌텐도는 슈퍼 패미컴의 전성기 때처럼 플랫폼이 되려고 하지만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콘텐츠 기업이 갖는 위험 요소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플랫폼 기업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닌텐도 콘텐츠가 잘 나가면 닌텐도도 잘 나가며, 닌텐도 콘텐츠가 주춤하면 닌텐도는 위기를 맞는다.

다시 갈림길,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닌텐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닌텐도는 닌텐도가 직접 만든 콘텐츠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2016년을 기준으로 슈퍼마리오는 서른한 살, 젤다는 서른 살, 포켓몬스터는 스무 살이 되었다. 이 캐릭터들에게 닌텐도의 사활이 걸려있다. 포켓몬 고는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다.포켓몬 고

포켓몬스터 장난감들
포켓몬스터 장난감들

남들이 모두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에 집중하고 있을 때 포켓몬과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을 접목한 것은 매우 영리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영리함은 플랫폼을 만드는 것에도 사용되어야 한다. 닌텐도가 닌텐도만을 위한 게임기를 만드는 것에 그치고 만다면 Wii를 통해 경험한 것처럼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하드웨어 부문을 매각하고 플랫폼을 포기하는 것도 닌텐도의 미래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닌텐도의 실패는 하드웨어에 발목 잡힌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플랫폼에서의 콘텐츠 역량은 포켓몬 고를 통해 이미 입증이 되었다. 지금의 닌텐도라면 플랫폼 비즈니스보다는 디즈니(Disney)나 마블(Marvel)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이 더 잘 맞을 수도 있다. 포켓몬스터 테마파크를 상상해보라. 아이들은 미키마우스보다 피카츄를 더 좋아할 것이다. 어쩌면 디즈니랜드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17년 3월 13일은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 ‘닌텐도 NX’의 발매 예정일이다. 닌텐도는 또다시 플랫폼과 콘텐츠의 갈림길에 섰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서드파티의 활발한 참여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닌텐도만의 게임기로 끝나버릴까?

개인적으로는 닌텐도가 망하지 않고 오래오래 사업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닌텐도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공부가 되는 몇 안 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