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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할 길고 불편한 이야기는 내 자신이 피해자인 직장내 성범죄와 관련한 외로운 싸움에 대한 것이다. 나 외에 이미 많은 사람이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기록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을 다룬다. 이 이야기가 기록되기를 바란 사람도 적을 것이고 심지어 공개되기를 바란 사람은 그보다 더 적은 수일 것이다.

진실 기억 사실 퍼즐

내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주가 될 것이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이 일에는 많은 사람이 관련되어 있다. 나는 관련자의 신원 정보나 회사명을 공개할 생각이 없다. 구별이 필요할 경우 이니셜을 사용하려 한다. (필자)

어느 언론사에서 생긴 일

  1. 불편한 이야기
  2.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제3자
  3. 죄와 밥
  4. 조직이 원하는 것 
  5. 다시 원점으로
  6. 회사의 사건 처리법
  7. 기사는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8. 성범죄보다 300만 원이 중요한 회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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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같은 조직에 소속된 경우가 있다. 조직이나 친분 등으로 연관되지 않았다면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문제에서 곤란을 겪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조직에 있다면 또 다른 걱정거리가 있다.

조직 내 성범죄의 특이성 

조직 내의 제3자가 이 일을 어떻게 판단할지, 이 일이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되면 그 후에는 조직에 잔류할지 떠날지, 그리고 처리 과정 자체가 어떻게 진행될지도 고민하게 된다. 처리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면 그 자체로도 정신적인 압박이 상당하다.

조직 내에서 성범죄가 발생한 경우,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의 처벌을 원한다고 한다면 이 일은 그리 간단하게 풀리지 않는다. 법적인 처벌이나 적어도 조직 내에서의 조치를 원한다면 이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피해자의 강인한 의지다.

피해를 입었다면 누구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는 기술적으로나 가능한 이야기다.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처벌하고자 하는 의지가 꺾일 일은 이후로 숱하게 남아 있다. 이 일을 헤쳐나갈 결심이 서지 않았다면 어설프게 문제 제기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피해자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제풀에 지쳐 도중에 그만두는 것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João Carlos Magagnin, Die another day..., CC BY https://flic.kr/p/5YnR7B
João Carlos Magagnin, “Die another day…”, CC BY

사건이 벌어지면 가해자 자신도 최악의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내가 본 여러 사례에서 가해자의 처벌이 쉽지 않았던 이유는 가해자보다는 조직 내 제3자들이 피해자와 가해자 가운데 명백하게 가해자 쪽에 추를 더 얹은 탓이 크다.

제3자들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고 이 일이 조직에 알려지게 되면 다른 범죄에 비해 유난히 제3자가 자기 입장을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그래서 피해자의 가해자 처벌 시도는 받아 마땅한 상황이 아닌, 피해자가 가해자를 추가 가해하는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이미 피해자는 피해를 보았다. 그 피해를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피해자 외에 그 주변의 제3자들도 잘 알고 있다. 어차피 피해자의 피해 경험은 사라지지 않지만, 가해자는 처벌을 받으면 가해자가 무언가 피해를 보는 것이다.

이 상황을 상당수의 제3자들이 가해자가 받아 마땅한 처벌이 아닌, 추가 가해 상황으로 인식한다. 그들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소수였다. 이는 해당 제3자의 피해 경험 여부와는 상관이 있었지만, 그들의 성별과는 무관했다.

회사 방관자

잘못한 사람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가해자 X마저도 성범죄 기사의 범인을 향해 잔혹한 말을 쏟아내던 사람이었다. 잘못한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내 친구라면,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라면, 또는 그 사람이 나라고 해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만 혹은 내 주변만 예외일 수는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조직에 있으면 이 논리는 더욱 견고해진다. 피해자는 그들의 동료지만 가해자 역시 그들의 동료가 된다. 좀 더 정밀하게 구분하면 많은 경우 피해자는 부하직원이고 가해자는 상사다. 대개 사회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까지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피해자는 저항이 가져올 다른 불이익까지 생각하기도 한다. 성폭력 사건은 힘의 차이를 피해자의 뇌리에 박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상황을 가해자에 대한 추가 가해 상황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차마 받아들이기 어렵다. 내 경우 이 일을 언론사에서 겪기도 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본 적도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언론의 자정 작용이나 도덕성에 대한 기대가 작게나마 있었다.

가해자 ‘밥벌이‘ 걱정하는 사람들  

내가 고소 후 조언을 구하고자 내가 동료 한 명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X를 처벌하지 말아야 하는 논리에 갑자기 X의 가족과 생계가 튀어나왔다. X에게 가족도 있고 생계 문제도 있는 데 내가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X가 처벌을 받게 하면 X의 가족 생계는 어떻게 될지, 게다가 성범죄의 가해자로 낙인찍히면 설령 처벌이 없어도 사회적으로 매장이 될 수 있는 데 정말 그렇게 된다면 가해자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심적 부담을 모두 감당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 질문을 받은 나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다.

이때 나에게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하나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 희망 여부를 결정할 때 가해자의 가족 유무를 따져 결정하는 게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분노의 낭떠러지를 구르면서 내가 정말 냉정함을 잃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혹시 후자가 옳은가 싶어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고소 직후 확연히 달라진 것 하나는 나와 약속을 잡으려는 동료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내 쪽에서 먼저 약속을 잡은 게 아니라면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고소 취하를 종용한다. X의 부탁을 받은 동료 D와 G가 나와 시간 약속을 잡더니 X에게 이 일이 사회적으로 가혹하며 X의 입장이 불리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내게 고소 취하를 설득했다.

협력 일 비즈니스 회사 회의 논의

이들의 이야기를 쭉 들었더니 그 속에 나는 없고 X의 상황만 존재했다. 여기서 나는 X가 사건 당시나 지금이나 내 입장을 고려하지도 않았는데 왜 피해자인 내가 X의 입장만 고려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심지어 X가 기혼이라는 게 어째서 내가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아야 할 이유냐고 되물었다. 이 물음의 답은 꽤나 공허했다. 분노에 차 있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니 분노를 버렸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여기 상술한 사람들을 언론인으로서, 그게 아니라면 사람으로서라도 믿고 있었다. X의 연락에 나를 따로 불러내 나를 설득하려던 사람들이, 그 후에 내가 어쩔 줄 모르며 도움을 청하자 입장 정리를 이미 잘했던데 뭘 그러냐며 선을 그었다. 이는 내가 겪은 일이지만 내가 아는 다른 피해자들도 비슷한 논리로 동료나 선배가 설득하려는 상황을 겪었다.

내가 이 문제와 관련해 받은 지지는 워크숍에 동석했던 동료 가운데 두어 명이 사건에 대한 증언을 자청하거나 법적 조언을 받아주는 등 사적인 부분이었다. 이들은 이 사실만으로도 자신들이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어도 조직 차원에서 이 내용을 꽤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내 귀에까지 전달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피하려고 하는 건 그저 ‘불이익’ 

하지만 조직 차원의 도움은 없었다.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 가운데 기사로 인한 소송에 휘말린 기자가 있었는데 해당 기자는 소송 스트레스를 이유로 나에게 일의 대부분을 넘기기도 했다. 그 기자는 나 역시 고소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아마 몰랐던 것 같다. 나와 달리 그 기자는 조직 차원에서 변호사나 선후배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는 조직에서 내가, 혹은 성범죄 피해자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 확연히 보여준다.

조직에서 불이익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X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나와 X를 모두 아는 사람들의 태도가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대다수는 자신이 피해자의 입장에 놓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스스로 가해자의 입장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인지 제3자임에도 사건이 무마되기를 바라고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기를 원했다. 이는 그들이 이후에 가해자와 조직 내에서 함께할 생각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직원 입장에서는 조직을 엎을 수 있는 사람보다 조직의 관용을 느낀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게 편한 모양이다.

조직 직장 사람들

약한 피해자는 사라지고, 강한 가해자는 남고 

가해자의 처벌을 위해 피해자의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가 이것이다. 피해자가 이 일에 대해 무언가 해결을 시도하면 그것은 피해자 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대 조직 전체의 힘겨루기가 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도 진행할 생각이 있다면 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받을 수 있는 도움을 최대한 받아 자신의 몸집을 키우는 것이 좋다.

조직은 내부에서 성범죄 사건이 발생했음을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 한다. 설령 외부에 이야기가 나가서 기사화되더라도 가해자 이름은 익명으로 나가지만, 조직명은 나가게 된다. 조직 내부 사람들은 이를 조직의 명예 문제로 이해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기사화된 성범죄에 대한 징계에 비해 기사화되지 않은 성범죄에 대한 징계 수위는 터무니없이 낮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사화된 성범죄라고 해도 피해자를 고려한 결론이 나지는 않는다. 조직과 조직원에 대한 신뢰를 잃었던 나는 내부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신 경찰을 선택했다.

성범죄는 절도 등의 다른 범죄와 달리 대개 강자가 가해자, 약자가 피해자가 된다. 게다가 범죄라고 부르는 일임에도 실제로 누군가가 처벌받을 상황이 오면 주위 사람들은 이를 막는 데 많은 힘을 쏟는다. 조직 내에서 가해자의 처벌이 어려운 이유는 조직이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범죄는 법적 논리보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받아들이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결국, 마지막에는 약한 피해자가 사라지고 강한 가해자가 살아남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성범죄보다 300만 원이 중요한 회사 

X와 D, G는 사건이 마무리되고 1년 안에 승진했다. 여기 등장한 모든 사람 가운데 나 포함 세 명을 제외하고는 현재 해당 회사에서 현직 기자로 근무하고 있다. 나는 회사를 떠났지만, 그 후에도 그 회사에 수차례 출입했고, 혹은 그 회사에서 다시 일할 뻔한 적도 있다.

그 회사에서는 직원이 뇌물을 받거나 횡령한 경우 그 액수가 300만 원 이상이면 해임된다고 했다. 회사는 돈에는 엄격하고 성범죄에 관대했다. 돈 문제는 내부의 누군가가 알게 된 정도면 징계 대상이 되고 덮어주려는 시도도 별로 없지만, 성폭력 가해자는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면 내부에서 다 아는 사실이라고 해도 안전한 회사 생활이 가능하다.

돈 사람

나는 피해 사실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300만 원을 몇 번이라도 지불했을 것이다. 회사 기준에서 나나 다른 사람들이 겪은 성폭력 피해는 300만 원어치도 안 되는 가벼운 해프닝에 불과했다.

그 회사를 떠난 이후 글쓰기를 소재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내가 이 회사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그 회사를 떠났지만, 내가 소재를 모으는 취재 방법이나 글을 쓰는 방식에 있어서 그 회사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회사에 불만이라는 것을 가질 줄 몰랐던 입사 초기에는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 노력했다. 덕분에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고급기술을 체화했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하는 일이 올가미처럼 느껴졌다. 지옥 같던 곳을 벗어나기는커녕 내가 그 회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만 증명했다. 그 회사에서 익힌 기술로 그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에필로그: 당신들의 X에서 이젠 자유롭기를  

나와 업무적으로 연락하려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개인정보에 대해 병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한 이야기들은 나에게 가시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일이며 공개되면 불이익의 영역이 늘어날 수 있다. 이를 알고도 알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답답해서다.

더는 도망치기 싫어졌다. 언젠가 X에게 어디까지 도망갈 것인지 물었던 것처럼 나도 이 일 때문에 어디까지 도망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말미암아 나는 왜 신원을 감추고 숨어 지내야 하는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X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건 초기와 달리 이제 이 사실이 나에게 아주 중요하지는 않다. 가해자가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X가 사과했으면 나는 괴로운 기억에서 좀 더 빨리 풀려났을 것이다.

사건 후 처음 1년간이 가장 힘들었지만, 그 이후로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괴롭다. 시간은 약이 아니다.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 피해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개인이 감당하는 피해로 이만큼 파괴적인 다른 사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무지 비유할 다른 피해가 없다. 성폭력 피해는 자신을 지탱하던 몸과 정신, 특히 정신을 뿌리까지 뽑아 던져 버리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피해 구제나 사회적 편견, 가해자 처벌 등으로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

기억 사진 슬픔

이 일은 몇 년 전 얘기고 오래 지나다 보니 잊어가기도 한다. 나는 지금 암흑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있다. 쉽지는 않았다. 이 작업을 하면서 다시 꿈에 이와 관련된 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취했던 방법은 정답이 아니다. 정답이라고 부를만한 대처가 있을까마는 나는 이 일에서 내가 쓸 수 있었던 모든 방법을 다 써봤기 때문에 관련된 몇몇 사람들에게 원한은 있어도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에게 나처럼 대처하라고 말할 생각도 없다.

돌아가는 방법인 데다 좋은 결론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피해자라면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이후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정하기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생존은 사회적 생존보다는 실제적인 생존을 의미한다.

Matteo Parrini, CC BY NC SA https://flic.kr/p/FsFGH
Matteo Parrini, CC BY NC SA

나는 조직과의 싸움에서 졌다. 사안을 알고도 방관하는 조직은 적과 다르지 않았다. 조직 입장에서는 이 정도 가벼운 일은 당랑거철(螳螂拒轍)[footnote]’사마귀가 수레를 막는다’는 뜻. 자기 분수를 모르고 큰 힘을 가진 상대에게 덤비는 무모함을 꼬집거나 자기보다 강한 상대에게도 덤빌정도로 강인한 용맹함을 존경하는 의미로 쓰인다.[/footnote]로 여겼을 것이다. 이런 싸움이 두렵지는 않지만 지쳤다. 더 싸우고 싶지 않다. 마치 단단한 벽을 상대로 혼자 싸우는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사적인 이야기지만, 이 일이 내가 사회적인 관점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다방면으로 생각할 여지를 주는 이야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나나 X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주변인 입장에 있었던 적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X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 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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