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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지층: 아주 이상한 가족사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캐나다는 영연방의 일원으로서 본국인 영국과 함께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즉각 전시체제로 전환한다.

대륙의 건너편 멀리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BC)에도 전쟁의 충격은 국가의 신경망을 타고 전해져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 투입되었다.

널리 알려진 첫 번째 이야기 – Wait for me, Daddy!

BC주의 가장 큰 도시이자 항구인 밴쿠버에는 전장에 나가는 군인들의 행진이 이어졌다. 이 장면을 담기 위해 뉴웨스트민스터의 페리항구 앞에서 대기하던 지역 신문의 사진기자 데틀로프는 8번가를 따라 행군하며 내려오는 군인들의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한 아이가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아빠에게 달려가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연히 찍힌 장면이지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을 그대로 체현한 듯한,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이야기한 ‘푼크툼’을 사진 한가운데 꽂아둔 듯한 사진이었다. 비장함, 명예, 슬픔, 약속, 사랑… 그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진 밖으로 튀어나와 보는 이의 오장육부를 찔러대는, ‘푼크툼’(punctum).1

‘아빠, 같이 가요!’(Daddy, wait for me!)라는 이름으로 지역 신문에 게재된 이 사진은 곧 캐나다 전역에 알려져 2차 세계대전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고, 나아가 유명한 잡지인 라이프(LIFE)지에 재게재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사진가 데틀로프(Claude P. Dettloff, 사진)의 인생을 뒤바꾸어놓은 단 한 장의 사진.

클로드 P. 데틀로프 (1899년~1978), 젊은 시절의 모습과 노년 시절의 모습(출처: http://www.mhs.mb.ca/) http://www.mhs.mb.ca/docs/people/dettloff_cp.shtml

클로드 P. 데틀로프 (1899년~1978), 젊은 시절의 모습과 노년 시절의 모습(출처: www.mhs.mb.ca)

전시 동원 체제에서 캐나다 정부는 국내의 모든 학교 교실에 이 사진을 게시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 전쟁자금을 동원하기 위한 전시 채권(War Bond)의 광고사진으로 이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전쟁이 끝난 후 다행히 무사하게 돌아온 아버지와 아들의 해후 장면에도 데틀레프가 참여해서 감동적인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매끈한 마무리, 지나치게 매끈한 마무리… 의심스러울만큼.

덜 알려진 두 번째 이야기 – 아버지 잭

잭(Jack)은 BC주에서도 ‘깡촌’ 중의 ‘깡촌’에 해당하는 오카나간 출신의 농사꾼이었다. 춥고 외진 오카나간 계곡에서 소처럼 일하며 과일이며 채소를 재배해 인근의 대도시인 밴쿠버에 내다 팔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성실한 농부인 그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자부심은 모병제이던 당시 캐나다의 상황에서 꼭 가지 않아도 되는 군대에 남자답게 다녀와서 캐나다 시민의 의무를 다했다는 것.

그의 나이도 이미 서른셋, 예비군에 편입되어 있긴 했지만, 제대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고 이젠 아내와 아들, 어엿한 가정을 꾸린 가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다른 누구보다 먼저 용감하게 전쟁에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편입된 예비군 부대는 현역부대보다 후순위였기 때문에 소집명령이 내려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웃의 청년들이 너도나도 자원입대하는 상황을 지켜보기 힘들었던 잭은 자신도 자원입대할 결심을 한다. 하지만 아내 버니스는 이런 잭의 결정을 강하게 반대한다. 잭의 신변에 대한 걱정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 제대병인 잭이 소집되면 병장 계급으로 월급을 받게 되지만 자원입대할 경우 신규 부대에 재편성되므로 최하급병인 일병으로 가야 하는데 이 경우 월급이 절반으로 깎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잭은 고집을 꺾지 않고 적지 않은 나이에 결국 일병으로 스스로 강등된 상태에서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 화가 난 버니스는 이웃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간 파병 행진 배웅 길에도 가족과 나란히 걷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들 워렌의 손을 잡고 멀찍이 떨어져서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마지막 길에 가족의 응원조차 받지 못하는 잭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들고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런데 아차, 하는 사이 워렌은 엄마의 손을 놓고 아빠 쪽으로 달려갔다.

‘아빠, 같이 가요!’

당황한 버니스는 워렌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이미 저만치 달려가 버린 뒤. 반가운 마음에 잭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소총을 왼손에 옮겨 쥐고 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가려진 세 번째 이야기 – 아들 워렌

워렌(Warren)의 사진은 캐나다 전역에, 아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쟁 사진이 되었으나 워렌의 삶은 그리 영광스러운 것 아니었다.

아버지의 노동력이 절대적인 농가에서 젊은 아버지가 빠져나간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생계에 위협을 느낀 어머니는 정다운 친구와 이웃들이 있는 오카나간을 떠나 대도시 밴쿠버로 이주했다.

버니스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은 남편 잭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 전선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남편에게 이혼 서류를 보냈고 그들은 결국 전쟁 중 이혼했다.

1900년대 초중반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이혼’이란 매우 낯선 낱말이었다. 워렌은 가난과 더불어 주위 사람들과 아이들의 멸시 어린 시선을 견뎌야 했다. 그의 사진에 그토록 열광하는 이들이 동시에 눈앞에 서 있는 그에게 ‘비정상적인 가정 출신’이라는 낙인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였다.

전쟁 후 무사히 돌아온 아버지와의 ‘감격스러운 해후’ 같은 것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미 부부는 남남이 되었고 양육권은 어머니 버니스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데틀로프의 사진은 이야기의 끝맺음을 위한 어색한 연출이었을 뿐이었다.

그 어색함 때문이었을까. 워렌을 다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밴쿠버라는 도시에 진절머리가 난 워렌은 성장한 후 밴쿠버를 떠나 인근의 섬인 밴쿠버 아일랜드로 거주지를 옮겨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네 번째 이야기 – 검은 외투의 여인

다시 사진을 보면 버니스의 뒤편 멀리, 검은 외투를 입은 망연자실한 표정의 여인이 찍혀있다. 그녀의 이름은 아그네스. 아그네스는 한꺼번에 징병되어 이 행진 대열에 끼어 파병되는 두 오빠를 배웅하러 나온 참이었다.

함께 가요 아빠 2

어쩌면 자신의 의지로 길을 나서는 잭보다, 이들이 더 두렵고 무서웠을 것이다. 귀여운 여동생 앞에서 애써 늠름한 표정을 지어보려 하지만 자꾸만 얼굴이 굳어지고 걸음은 무거워진다. 이 행군이 향하는 길의 끝은 어떤 곳일까?

두 오빠는 잭보다 운이 좋지 못했다. 큰 오빠는 아른헴 전투에서 전사했다. 작은 오빠는 다행히 살아 돌아왔지만, ‘다행’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은 아니었다.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상이 심각해져서 의가사 제대를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은 이런 오빠들의 불행을 예감했기 때문이었을까? 캐나다 전역에 보급된 이 사진 속의 자신의 표정을 평생 되풀이해서 바라보아야 했던, 그날의 두려움과 두 오빠의 불행을 쉴 새 없이 되새김질해야 했던 그녀의 마음은…

무의미한 전투, 무가치한 죽음 

아그네스의 오빠가 사망한 전투는 ‘아른헴’ 전투다.

한 세대 전쯤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유명한 전쟁영화 ‘머나먼 다리’의 그 전투, ‘마켓 가든 작전’의 가장 처절한 전투가 바로 아른헴 다리를 둘러싼 전투였다.

이미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독일의 패배가 확실해져 가던 시기, 전쟁이 끝나버리면 더는 전공을 세울 수 없는 연합군 상급 장교들은 오히려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미국의 미치광이 패튼 장군과 영국의 고집쟁이 몽고메리는 서로 경쟁을 하며 마치 스포츠를 하듯이 진군 속도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로버트 카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

로버트 카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

패튼이 전차군단을 앞세운 거침없는 진격 속도를 보이자 몸이 달아오른 몽고메리는 전쟁의 상식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작전을 내세운다. 즉, 아직 독일군의 엄청난 부대들이 득시글거리는 전장 한가운데에 공수부대들을 투하하여 먼저 다리를 장악하고 이 소수병력이 버티는 사이 마치 점과 점을 이어 선을 만드는 것처럼 주력부대가 밀고 들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베를린까지 진격해가겠다는 것.

공수부대의 특성상 아주 가벼운 무장밖에 할 수 없고 숫자로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적군의 완전한 점령하에 있는 탱크와 보병 등 주요 병력이 집결한 요충지인 다리를 장악하겠다는 것도, 그 상태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아군 주력부대가 올 때까지 이 소수부대가 다리가 파괴되지 않도록 지키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전략.

결국, 고립무원으로 적군의 바닷속에 던져진 이 부대원들은 극심한 희생 속에 다리를 장악하긴 하지만 아군 주력부대의 전진이 독일군의 저항으로 지지부진한 사이 전멸당해버린다.

가장 어이없는 것은 이 전쟁이 ‘어차피 이길’ 전쟁이었고, 이런 작전은 전략상 어떤 가치도 없는, 순전한 몽고메리 개인의 명예욕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무가치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워렌의 유명한 사진이 촬영된 뉴웨스트민스터 지역은 광역 밴쿠버의 외곽으로 세월에 뒤처지며 계속 낙후되어갔다. 그러다가 밴쿠버의 팽창과 함께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역사적 명소로서 재개발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당연히 이곳을 촬영한 가장 유명한 사진인 ‘Wait for me, Daddy!’를 활용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페리항구와 잇닿아있는, 철거 예정이었던 당시의 기차역을 보존하고 그 바로 옆, 그러니까 잭의 부대가 행군해 내려오던 8번가 사거리에 사진을 부조로 만든 커다란 동상을 세웠다.

같이 가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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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상의 제막식에 주인공을 맡을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밴쿠버 아일랜드에 병든 몸을 의탁하고 있는 79세의 노인 워렌뿐이었다. 참석 요청 전화를 받은 워렌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주 오래전 자신의 곁을 떠난 아버지를 만날 마지막 기회였다.

생각해보면, 이게 온 가족이 찍힌 마지막 사진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가족사진’이 아닌가.


  1. 롤랑 바르트는 그의 책 [카메라 루시다]에서 사진을 크게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으로 나눴다. 바르트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많은 사진이 유감스럽게도 내가 보기에는 생기가 없다. 내 눈에 어떤 실재를 지닌 것처럼 보인 사진들 중에서도 대부분은 막연한 흥미, 말하자면 세련된 흥미만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그런 사진에는 푼크툼이 없다. (…) 나의 가슴을 찌르지 못했다.

    스투디움은 나른한 욕망 , 잡다한 흥미, 분별없는 취향 따위의 지극히 넓은 영역이다. (…) 사진은 위험한 것인데 스투디움은 그것을 코드화함으로써 사회에 환원한다. (…반면…) 푼크툼은 세부, 다시 말하면 부분적인 대상이다. 또한, 푼크툼의 실례를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무방비 상태로 찔릴 때의 적나라함으로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 이 하찮은 세부가 온통 사진에 관한 나의 시선을 흥분시킨다. 그것은 내 관심의 격렬한 변화, 하나의 섬광이다.”

    바르트의 구별을 거칠게나마 다시 정리하면, 스투디움은 누구에게나 지적인 이해의 대상이 되는 예술적 정보로서의 사진이다. 반면, 푼크툼은 지적 대상으로서는 설명되기 어려운, 찰나의 감성적 충격으로 ‘섬광’처럼 ‘가슴을 찌르는’ 사진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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