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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언론사에서 생긴 일: 1. 불편한 이야기

이제부터 할 길고 불편한 이야기는 외로운 싸움에 대한 것이다. 나 외에 이미 많은 사람이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기록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을 다룬다. 이 이야기가 기록되기를 바란 사람도 적을 것이고 심지어 공개되기를 바란 사람은 그보다 더 적은 수일 것이다.

여기서는 사건의 해결 및 처리 과정, 사건 가운데 놓인 사람들과 사건 당사자들의 생각, 이를 둘러싼 조직과 사회, 그들이 서로 끼치는 영향을 다룬다. 이 이야기는 이미 몇 년 전에 시작되었다. 어느새 ‘그때’를 기점으로 일어난 몇 가지 일에 대해 말해도 될 만큼 자료가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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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주가 될 것이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이 일에는 많은 사람이 관련되어 있다. 나는 관련자의 신원 정보나 회사명을 공개할 생각이 없다. 구별이 필요할 경우 이니셜을 사용하려 한다.

나는 사건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입장을 다루는 데 있어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이 이슈에 관해 나 스스로가 편향된 입장에 있다. 나는 피해자로서의 기억이 있고, 피해자 주변인으로서의 상황도 겪었다.

또한, 나는 가해자를 이해하는 것 하나를 위해 1년여를 소모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끝내 가해자의 입장에 놓일 일이 없었으며 가해자 인터뷰이를 구하는 것은 피해자 인터뷰이를 구하는 것에 비해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노력과는 별개로 이해에 어느 정도나 도달했는지 확신할 수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필자)

어느 언론사에서 생긴 일

  1. 불편한 이야기
  2.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제3자
  3. 죄와 밥
  4. 조직이 원하는 것 
  5. 다시 원점으로
  6. 회사의 사건 처리법
  7. 기사는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8. 성범죄보다 300만 원이 중요한 회사 (끝)

이 이야기는 불편할 것이다.

성범죄 기사에 분노한 그가 가해자였다 

이 이야기는 한 언론사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이 일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도무지 잊을 수 없다. 나는 그 언론사의 여러 기자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원하지 않아도 이따금 그들의 기사를 보고 들을 때마다 뭐라 한마디로 말하기 힘든 마음이 올라온다.

그 회사의 이름이나 가해자, 2차 가해자의 이름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 일은 그만큼 견디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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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를 바라보는 언론사 내부의 시각은 천차만별이었다. 관련 기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가지만, 그들이 기사를 어떻게 내는지가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 것 같다. 기자들은 가해자에게 분노하는가 하면,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지 않냐는 말을 농담처럼 흘리기도 했다. 굳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이들의 의견은 처음에는 알기 어려웠지만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 역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성범죄 기사를 보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던 사람 가운데 하나가 나를 피해자로 만든 가해자였다. 내가 보고 듣고 믿었던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나름대로 언론인에 대해 높은 도덕 수준을 기대했던 것이 부서지는 과정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는 단순히 이상과 기대치가 현실과 다를 때 느끼는 괴리감을 넘어섰다. 그보다는 좀 더 기저에 자리했던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일 

가해자들과 현재까지 조직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이 일이 끝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피해자인 나에게 이 일은 끝나지 않았다.

처음 이 일을 겪고서는 망각의 동물답게 시간이 지나면 잊을 줄 알았다. 다른 경험들을 하면 지나간 괴로움은 잊히겠거니 생각했다. 잊을 수 없는 일을 잊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희망 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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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사실을 깨닫는 데만 몇 년이 걸렸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이 일을 잊기를 포기했다. 이렇게까지 가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긴 시간이 필요했고 실제로 긴 시간을 사용했으며 많은 대화를 하고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결코, 즐거웠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 일이 내 마음에 박혀 아직도 뽑혀 나가지 않은 채 나를 옥죄고 있기 때문이며, 한국에서 지내는 내가 현실적으로 이 회사의 영향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해자가 고통받았던 이야기고 가해자와 방관하는 조직에 대한 실망감과 두려움, 환멸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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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일어난 이상한 일

나는 함께 일하던 기자들을 좋아했다. 그들은 영민하고 합리적이었으며 상황에 대한 판단이 빨랐다. 직업적으로도 대다수는 뛰어났다. 나는 가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기사의 본질과 문제점을 그들은 빠르게 파악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과 일할 수 있다면 언론 일을 계속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을 이중삼중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토대로 기사를 쓰는 업무는 특성상 매우 소모적이었다. 그래도 여기라면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즈음 회식이 한 차례 있었다. 자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나를 포함해 여직원 두 명과 남자직원 두 명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두 명의 남자직원이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나를 제외하고는 이미 술이 많이 들어갔던 것 같다.

19금 영상이 나오는 노래방

남자 직원들은 19금 영상이 나오는 노래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도 저항하고 싶다는 표시를 하지 못했다.

나는 술을 별로 마시지 않았지만, 다른 세 사람은 술을 많이 마신 것처럼 보였다. 포르노그래피 영상이 나오는 그 이상한 노래방에서 남자직원 가칭 T는 나를 끌어안았다. 불쾌했고 어색했고 이상했다. 반면 T에게는 이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다른 남자직원과 여직원은 한쪽 팔로 서로를 안고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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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잘못되었는지, 네 명 가운데 나 혼자서만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 전부가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은 나만 이상한 걸까. 그렇다면 이 상황은 이상하지 않은 게 아닐까.

당시는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정도의 일이 직장에서는 당연한데 내가 과민한지, 아니면 내가 저항해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건 아니지

잠시 생각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자리를 피하기로 마음먹고 도중에 빠져나왔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 집에 가려고 했는데 그 틈에 T가 아닌 다른 남자직원이 나를 따라 나와서는 내게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시 끌려들어 가야 하나 싶어 무서웠다. 정확히는 이 사람이 무슨 수를 쓸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가진 불안감에 부응하는 강제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다지 취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택시를 타려던 내게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쥐어 주었다. 나는 이에 강제력에 밀리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모멸감을 느꼈다.

돌아가는 길에 머릿속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른 기자 E에게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E는 내가 입사 초기에 마음고생을 할 때, 이 점을 간파하고 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 적이 있어 당시 믿고 지내던 기자였다.

다음날 

다음날, 출근해서 함께 있던 여직원과 이야기했더니 자신은 필름이 끊겼다고 했다. 기억의 여부야 어쨌든 나는 그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정체 모를 불쾌감과 분노 같은 것 말이다. 혹은 나는 모르는 불쾌감의 정체를 그녀는 알고 있겠거니 했다. 무슨 근거는 없었지만,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저간의 일을 모두 설명했다.

그녀는 부끄러우니 그 일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녀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개적으로 언급할 의사가 없다는 것만은 알아챘다. 그녀는 피해를 숨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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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나로서는 그녀에게 그 일이 피해였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당시 상황을 본 것만으로는 내가 그녀의 심리상태를 알 수 없었고 심지어 그녀는 기억까지 없다고 한다. 일어났던 일 가운데 그녀의 부분에 내가 더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이는 이 일을 내가 문제 삼으려면 내 케이스만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몇 시간을 고민하다가, 기자 E를 통해 내가 불쾌감을 느꼈음을 표시했다. 감정적인 면에서 이는 다른 세 사람 가운데 주로 T에 대한 것이었다.

T의 사과, 하지만… 

그러자 E가 T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곧 T가 내게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T는 나에게 따로 사과를 해왔다. 사과의 ‘워딩’은 “네가 그런 것 싫어하는 줄 몰랐다. 미안하다.”였다. 내가 사과의 내용과 품질을 따지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였다.

그리고 몇 가지 의문이 뒤따랐다. 왜 T는 내가 그런 일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묻지도 않고 멋대로 판단을 내려 나를 함부로 대했을까. 내가 느낀 모멸감이 두 남자직원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면, 당연히 그들이 아니라 내가 피해를 입어야 하나. 그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어느 수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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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의 사과가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마디 사과를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별일 없었던 것처럼 마음이 좀 가라앉는데 2~3주 정도가 걸렸다.

내가 심리적 타격을 입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던 데는 가해자였던 T의 사과가 주효했다고 본다. 그대로 T와 함께 일하는 것은 영 불편했지만, 나는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크게 괴롭지 않다면 사과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만족하기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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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도도

무소속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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