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나온 사병들이 사람들로 붐비는 기차역에서 수군거리고 있다.
“우와! 쟤네 군복 좀 봐라. 각이 장난이 아닌데. 각이 쫙 잡힌 게 잘못 만지면 손 베겠다.”
이들이 바라보는 건 다른 부대 소속 사병이다. 뭔가 모르게 각을 잘 잡은 A급 군복을 두고 자기들과 비교도 하고 나름대로 분석도 한다.
“줄을 세 줄 잡았네.”
“아니야, 네 줄 잡았잖아!”
여기까지는 사병들 시선이다. 기차역에 있는 민간인들 시선으로 그 상황을 정리하면 어떤 모습일까. 그냥 ‘군바리들이 있나 보다’ 딱 그 정도다.
남들에겐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남들 눈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당사자에겐 매우 중요한 차이인 게 있다. 그중에는 전북 고창이 고향이라고 했더니 “나도 고창 알아요. 고추장이 유명한 곳이죠?”라고 해서 대학 새내기를 당황시켰던 어떤 선배처럼 웃음을 주는 차이도 있다. 사실 고창이나 순창이나 다른 지역 사람이 보기엔 다 같은 전북이다. 하지만 어떤 건 그 정도가 꽤 심각하기도 하다.
꽤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르셀로나로 유학 간 한국인 학생이 교수에게 물었다:
“왜 스페인어로 수업하지 않나요?”
교수는 학생에게 핀잔을 주며 이렇게 답했다:
“그럼 스페인으로 가든가?”
카탈루냐와 카스티야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차이’를[footnote]카탈루야 사람들 상당수는 자신을 스페인 국민이 아니라 ‘카탈루냐’ 국민으로 생각한다. 즉, 카탈루냐를 스페인과는 별개인 독립 국가로 여긴다. 특히 2015년 9월 지방선거에서는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는 정당들이 과반을 확보했다.[/footnote] 한국 학생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신경이 부른 패착이 아닐까 싶다. 유학생 입장에선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왜 그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카탈루냐의 역사를 조금만 알면 그런 말은 안 나올테니 말이다.
민의 왜곡하는 승자독식 선거, 설 곳 없는 진보정당
20대 총선에 참여한 진보정당으로는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이 있다. 무려 셋으로 나뉜 이 진보정당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각 당 관계자들은 그 차이를 부각시킬 것이고, 독자적인 조직을 유지하는 당위성을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 관점에선 어떨까. 민간인 눈에 비친 ‘군바리 군복 각잡는 방법’ 정도 차이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문제 핵심은 세 진보정당이 과연 서로 얼마나 다르냐 같으냐 하는 게 아니다. 정당은 정권창출과 유지를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권력획득을 위해서는 국회에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선거제도는 과장 없이 말해서 개판 그 자체다.
그 흔한 다수결도 아니다 보니 후보 등록자가 한 명밖에 없어서 선거도 하기 전에 ‘무투표 당선’이 확정되는 코미디가 현실이 된다. 대부분 50%가 넘는 표는 ‘죽은 표’(死票)가 되고 유권자의 뜻은 상습적으로 왜곡된다.
결선투표제나 선호투표제도 없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 없으니 진보정당 지지자들로선 선거 때마다 ‘비판적 지지’라는 굴레 앞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제19대 총선(2012년)은 야권연대 덕분에 그런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번 총선에선 그마저도 힘들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정당 해산판결로 인해 상황은 더 엉켜버렸다.
의석 ‘하나’라도 더
남는 건 결국 독자노선이요 자력갱생이다. 그런데 흔히 얘기하는 야권연대와 별개로 진보정당간 연대조차 안 하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시 강조하지만, 정당이라면 비례 의석 하나라도 더 확보해서 정치를 바꾸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
정의당은 다섯 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불안하고, 노동당과 녹색당은 원내 진출은 고사하고 존재 자체를 모르는 국민이 대부분인 게 냉정한 현실이다. 그리고 힘을 합쳐 비례대표 한 자리라도 더 만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각자도생이요, 각개전투다. 그리고 그 결말은 각개 몰락이 될 거라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다시 강조하는데 나는 진보정당이 원내교섭단체 구성하길 간절히 원한다. 지도부에 속한 분들 중에는 지인도 여럿 있다. 그분들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걸 폄하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용감하게 싸운다’가 아니라 ‘따로 떨어져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 군사들이 수많은 적군과 싸운다’는 데 있다. 해법은 없을까? 지극히 원론적인 해법이 있긴 하다.
한국 진보정당의 해법은 무엇일까
진보정당 관계자나 당원이라면 십중팔구 ‘단결투쟁가’와 ‘연대투쟁가’를 좋아할 거라고 믿는다. 사실 연대투쟁과 단결투쟁은 식상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정작 진보정당들은 그러질 않는다. 선거제도가 승자독식을 초래한다는 걸 그리 비판하면서도 분열해서 다 같이 망하는 길로 각자 달려간다. 이유를 들어보면 결국 그 잘난 선명성과 진정성 문제다.
구동존이(求同存異; 차이를 인정하되 같은 것을 추구)와 화이부동(和而不同: 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자신의 뜻을 굽혀 좇지는 않음)까진 바라지도 않겠다. 프랑스 인민전선이나 국공합작, ‘반파쇼 통일전선’ 학습할 때는 다들 합심해서 졸기라도 했단 말인가?
새누리당은 열 가지가 달라도 하나가 같으면 ‘우리가 남이가’ 하는데 이른바 야권이니 진보진영이니 하는 분들은 열 개가 같아도 하나가 다르면 ‘우리는 노선이 다르다’고 한다. 그런 식이니 맨날 새누리당한테 지면서도 항상 또 그런 식이다.
그렇게 서로 ‘구별 짓기’를 꼭 해야겠다면 브라질 노동자당처럼 당내 분파를 아예 공식 인정하는 건 어떨까 싶다. 가령 진보 대연합을 구성하고 그 안에 정의 분파, 노동 분파, 녹색 분파를 공식적으로 결성하는 거다. 대의원대회에서 아예 분파별로 선거해서 일정 수준 이상 득표를 한 분파엔 중앙위원회나 상임집행위원회에 지분을 아예 배분해주는 방식도 좋지 않을까 싶다.
소선거구제처럼 하지 말고 득표율도 최대한 지분으로 반영해주고, 지도부도 각 분파별 쿼터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방식도 괜찮을 것 같다. 비례대표 후보도 당원투표로 뽑힌 후보와 각 분파별 쿼터를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선거 때마다 탈당하고 분당하고 창당하는 꼴 안 봐도 되지 않겠나 말이다. 힘을 합쳐 덩치를 키워서 다수결투표(결선투표제)나 선호투표제, 정당명부비례대표제도 도입하자. 그러고 나서 분당하는 건 상관하지 않겠다.
‘헬조선’에 사는 민초는 답답하다. 무능력과 무책임, 염치없음 삼박자를 고루 갖춘 박근혜 정권은 ‘대한민국호’를 침몰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의석 과반을 넘길 것으로 대부분 예측한다. 180석을 넘겨 개헌한 다음에 박근혜 총리가 취임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안철수는 총선목표가 야권전멸이냐는 비판을 받는다.
안철수를 비판하는 그 논리를 진보정당에 대입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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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인권연대]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편집했습니다. 20대 총선에 관한 자유로운 의견과 기고를 환영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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