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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대형 언론사도 국비 운영 방송사도 고용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누군가는 성희롱하고, 누군가는 그런 성희롱에 시달린다. 이 글은 아나운서를 꿈꾸는,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더는 아프고 싶지 않은 청춘에 관한 이야기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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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황이 오래 지속되면 사람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매년 수백 대 일을 기록하고 나이 서른이 넘어 의사, 약사가 되려는 청춘도 많다. 하지만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인기 있는 직업이 있다. 준비하는 비용이 꽤 들고 안정성도 보장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여성에겐 ‘아나운서’가 그중 하나다.

나는 TV·인터넷 방송국 아나운서로 3년간 일했다(물론 길거리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3년간 얻은 교훈은 아나운서도 고용의 불안정을 피할 수 없으며, 그 상황에 악용될 위험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와 내 주변의 초짜 아나운서들을 생각하며 쓴 개인적 체험담이다. 유능하게 활동하는 경력 많은 다수 아나운서를 대변하는 글은 아니다.

Helmuts Guigo, "Microphone Planet", CC BY SA https://flic.kr/p/8u8hTf
Helmuts Guigo, “Microphone Planet”, CC BY SA

대부분은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지상파 방송국(KBS, MBC, SBS) 여성 아나운서 경쟁률은 보통 300대 1 내외다. 2006~2013년 MBC에서 일한 문지애 아나운서는 “MBC 입사 당해 지원자 1,717명 중 2명이 뽑혔다”고 말한 바 있다. 약 860대 1의 경쟁률로 아나운서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이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지만, 아나운서 중 정규직은 10% 미만일 것이다. 아나운서 대부분은 1~2년 계약직이거나 프리랜서다. 지상파 방송국도 지방에 있는 지역 방송국에서는 계약직을 쓰는 경우가 꽤 많다.

정규직도 적은데, 왜 이토록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까. 지원자들은 자기소개나 면접 때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서”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한다. 이 말을 풀면 방송을 전달하고, 시청자의 반응을 얻는 기쁨이다.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세상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에 공감하게 해주는 역할. 그 역할을 도맡아 사회와 시청자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되고 싶은 것이다. 예쁘고 우아한 외모로 기품있게 화면에 나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존경받고 싶다는 소망도 배제할 수 없다.

경쟁이 치열한 탓에 일찍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대학 1~2학년 때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서울에는 유명한 아나운서 학원 5~6개가 있는데 평가는 대체로 비슷하고, 학원비는 상당히 비싸다. 내가 다닌 곳은 2~3달 종합반 과정 수강료가 300만 원 이상이다. 나는 늦은 나이인 26살에 주말반에 다녔는데, 26살은 주말반 학생들의 평균 연령이었고 의사, 항공 승무원, 은행원 등 나이 서른 전후에도 방송인의 꿈을 포기하지 못해 입학한 언니 오빠들이 꽤 있었다.

“우리 아니면 널 뽑아줄 데가 없다”

학원에 다니면서 언론사 구직 사이트에 자기소개서를 올렸다. 한 케이블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다. 부장이라는 50대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안 뽑아주면 널 뽑아줄 만한 데가 없을 것 같은데, 카메라 테스트 한 번 해보고, 잘 되면 계속할 수도 있고…”

Kenny Louie, "New addition," CC BY https://flic.kr/p/6hscVQ
Kenny Louie, “New addition”, CC BY

“우리 아니면 널 뽑아줄 데가 없다”니.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말인가. 하지만 아나운서 지망생은 자존심이 다칠 여유도 없다. 방송하고 싶은 열정은 넘치는데 받아주는 데가 적으니 ‘시켜만 주시면 감사한’ 마음이다. 나 역시 “일하게 해주시면 기대를 충족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뿐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사회 물을 먹었다면, 부장의 태도에서 감 잡았어야 했다. 회사를 그만두는 그 날까지 계속된 ‘고용 갑질’을.

카메라 테스트를 3일 연속으로 받고, 어느샌가 나는 그곳의 ‘암묵적 직원’이 돼 있었다. ‘암묵적’이란 것은 정식 사원증을 받거나 계약서를 쓰진 않았는데, 사무실에 있던 기존 직원들이 나를 ‘아나운서 직원’으로 대하고 그곳에서 정시 출퇴근을 하며, 회사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 낮은 월급을 ‘통보’받다 

회사에 다닌 지 일주일 되는 날, 부장은 내 월급이 얼마라고 통보했다. 편의점에서 주 5일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도 훨씬 낮은 액수였다. 그래도 어렵게 들어온 직장이고, 이름이 웬만큼 알려진 곳이기에 ‘견딘다’는 마음으로 다니기로 했다. 부장은 용역[footnote]‘고용’이 아닌[/footnote] 계약서에 대해선 일절 말이 없었다. 괜히 물었다가 혹시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며칠 있다 묻기로 했다.[footnote]정말 후회스럽고 어리석은 행동이었다.[/footnote]

방송국은 TV 채널과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고 아나운서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이었다. 먼저 일하고 있던 아나운서 S, H는 25살, 26살이었고 지상파 방송국 아나운서를 지망하고 있었다. 이곳을 지상파에 가기 위한 관문으로 삼은 셈이다. S와 H는 각각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과 밥을 같이 먹고 대화하면서 알았다. 회사 사정상 메이크업과 의상비를 일부만 지원한다는 것을. 분장실이 따로 없는 방송국이라 외부 미용실이나 의상실에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했는데, 메이크업과 헤어는 보통 4~8만 원, 의상은 원피스와 재킷을 합쳐 5~6만 원이 든다. 회사는 1인당 6만 원까지 지원 가능하다고 했다. 최소 3만 원, 최대 8만 원을 아나운서 개인 돈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media.digest, CC BY_compressed https://flic.kr/p/j7u7ay
media.digest, CC BY

이 친구들은 일괄적인 지원 형식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체념하듯 말했다.

“비정규직이 대부분 그래. 그 유명한 OOO 아나운서도 뜨기 전에는 자기 돈 내고 분장 받았대”

‘그래, 그런가 보다. 여기서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잘 되겠지. 지금 조금 고생하더라도 나중에 멋진 아나운서가 되자’고 맘먹었다. 우리 셋 다 똑같은 생각으로 그 고용 상황을 버텼을 것이다.

“너희 성공하려면 이런 사람들 알아둬야 해”

회사에 온 지 2주쯤 되었을까, 부장이 ‘저녁 모임’에 가자고 했다. 무슨 모임이냐고 물었다. ‘OO 중견기업 사장, 의사, 교수, 예술가, 방송 관계자’ 등이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너희들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이런 사람들 알아둬야 해. 인맥 넓혀야 나중에 좋은 기회도 생기지.”

이미 몇 번 참여해본 H는 싫은 표정이었고 S는 내색하지 않았다. 우리는 부장의 지시대로 맛집을 찾아 예약하고, 모임 참가자들에게 공지 문자를 돌렸다.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니 20여 명의 40~50대 남성들이 와 있었다.

파티 모임

우리에게 의미 없는 대화들이 오갔다. 사업이 잘 안 된다는 둥, 와이프가 말을 잘 안 들어준다는 둥, 새로운 연애를 하고 싶다는 둥… 술잔이 오가면서 점점 듣기 힘든 말이 이어졌다.

  • 여대생이랑 사귈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 전에 사귀어 봤는데 여대생은 용돈만 빼가고 별로더라
  • 와이프랑 잠자리가 잘 안 되는데 어떤 방법을 시도해볼까
  • 요즘 성적 흥분이 잘 안 되는데
  • 내가 10년만 젊었더라면…

이게 20대 미혼 여성들을 앞에 두고 할 얘긴가. 나는 속으로 경악했지만 그 자리를 뜰 생각을 못 했다. 술자리 이후 우리는 단체로 노래방에 갔고, 술에 취한 남자 몇은 노래하는 우리를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날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로 몇 번 간 또 다른 ‘모임’에서 만난 사업가, 대기업 임원이란 남자들[footnote]그래봤자 개기름 번지르르한 아저씨들[/footnote]은 명함을 주고받곤 “밥 한번 먹자”고 연락이 오거나, “코 성형 했는지 보게 고개 좀 들어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급기야는 어느 사업가가 H의 허벅지를 쓰다듬은 다음 날, 나는 부장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부장의 사적 모임에 가기 힘들 것 같다고.

‘모임’에 대한 항의… 이어진 ‘모호한’ 징계

부장은 내 항의를 인정하는 듯했다. 자기 지인의 성추행은 명백히 잘못된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 이후 사유가 모호한 징계 처분을 받았다. 모호하다고 한 이유는 나의 항의가 미운 털로 작용해 방송에서 하차했다는 인과관계를 확정하기는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내가 매주 진행했던 경제 프로그램은 격주 진행으로 바뀌었다.

부장이 어디서 알아왔는지 모를 22~25살의 풋풋한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일회성으로 사무실을 들렀다 가곤 했다. 이제 막 아나운서 학원을 마친 듯 방송 진행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부장은 “이번에는 얘를 써보라”며 격주마다 새로운 얼굴을 끼워 넣었다.

그러기를 석 달, 나는 진행에서 완전히 하차하고 방송 대본 작업만 하게 됐다. 부장은 “글은 니가 잘 쓰니까 탄탄하게 써봐. 방송은 진행보다 정보가 생명이야”라는 가짜 칭찬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만 남겼다.

절망 억압 자유 고통

계약서도 본 적 없는 투명 직원 

일하기를 다섯 달, 아나운서 S가 지상파 방송국 최종 면접을 앞둔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장은 매우 초조해 했다. 부장이 자기 딸뻘인 S에게 ‘꽂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나는 부장과 둘이서 밥을 먹거나 현장에 동행할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지겹게 들어야 했다.

  • S가 요염한 여자다
  • 알고 보면 쉬운 여자다
  • 남자친구가 있는데 질이 안 좋다고 소문이 났더라
  • S는 어떤 부모님 밑에서 어떻게 성장했고 알고 보면 성격이 어떻고…

같은 내용을 40~50분 동안 너덧 번 반복하는데 정말 듣기 싫어 폭발할 것 같았다. 왜 나는 그때 “저랑 상관없는 S의 사적인 얘기는 그만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 격 떨어지고 한심한 인간을 단지 ‘부장’이라는 직위만으로 ‘절대 권력자’로 인식한 탓이다. 나는 계약서를 본 적도 없는 투명 직원이었으니까.

얼마 후 S는 지상파가 아닌 다른 라디오 방송국으로 이직했다. 얼마 후 지인으로부터 부장이 S에게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입사한 지 여섯 달쯤에 나도 다른 방송국으로 미련없이 떠났다. (‘하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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