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 대형 언론사도 국비 운영 방송사도 고용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누군가는 성희롱하고, 누군가는 그런 성희롱에 시달린다. 이 글은 아나운서를 꿈꾸는,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더는 아프고 싶지 않은 청춘에 관한 이야기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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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사한 지 여섯 달쯤에 나도 다른 방송국으로 미련없이 떠났다. (‘상 편’에서 이어짐)
[adsense]이번에는 유명 일간지의 인터넷 방송국이었다. TV 출연은 못 하지만, 경영·경제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교양 프로그램만 하는 것보다 전문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컸다. 분장실과 의상실이 방송국 내에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하지만 여기도 방송 작가가 따로 없어 대본과 방송 진행을 내가 혼자 했다.
아나운서는 계약서 안 써
유명 언론사라 당연히 고용(용역) 계약서를 쓸 줄 알았다. 계약직이 아니면 프리랜서임을 증명하는 종이 한 장이라도 필요했다. 하지만 PD인 제작팀장의 말은 아주 무심하면서도 단호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아나운서는 계약서를 안 써.”
명함도 내 돈으로 주문해야 했다. 선배의 명함을 폰카메라로 찍어 내 개인정보와 회사 로고 이미지와 함께 명함제작사에 보냈다. ‘여기서도 나는 철저한 을이구나’ 생각하고, 이번엔 길게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이력서에 쓰기에도 빛나 보이는 유명 언론사니까.
입사하자마자 나는 다이어트부터 시작했다. 팀장은 내가 나온 화면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왜 이렇게 살쪄 보이게 나와? 최소 4kg은 빼야 촬영을 하겠다.”
맞는 말이다. 아나운서는 화면에 못생기게 나오면 시청자들이 안 본다. 밥을 굶어가며 3주 만에 3kg을 빼고 나서야 첫 녹화를 했다. 팀장은 내 콘텐츠와 방송 진행에 그럭저럭 만족하는 눈치였다.
채용은 구두로 해고는 카카오톡으로
석 달 후 신입이 들어왔다. 나보다 두 살 어린 Y였다. Y는 벤처투자회사에 근무한 경력이 있어 나보다 실물경제에 밝았다. 후배지만 경쟁자라 생각하고 바짝 긴장하며 일하던 어느 날, Y가 나랑 얘기 좀 잠깐 하자고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Y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선배, 저 어떻게 하면 좋아요…”
Y가 그동안 제작팀장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여줬다. Y는 원래 주 3일 근무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팀장은 Y가 출근하지 않는 날에도 일을 시켰다.
“집에서 보도자료 토대로 방송 대본 쓰고 회사 서버로 대본 전송해.”
“애초에 주 3일 근무로 약속했는데, 재택근무하면 월급을 더 주는 건가요?”
“니가 알아서 해!”
Y는 어찌해야 할 지 몰라 일단 집에서 대본을 작성해 회사 서버로 전송했다. Y가 출근한 날 팀장은 Y를 개인적으로 불러 둘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창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니가 정신이 있는 거야? 여기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 이런 말이 나와? 너 말고도 여기 일할 애들 많아.”
Y는 나에게 계속 하소연했다.
“선배, 여기 고용이 ‘계약’도 아니고 ‘약속’이잖아요. 정당한 권리를 물어봤는데 이렇게 혼나야 되나요? 저 팀장이 밤에도 개인적인 메시지로 연락이 와요. 그래도 유명한 언론사라 믿고 들어왔는데 정말 이럴 줄 몰랐어요.”
그 후로 Y는 팀장의 고용조건 말 바꾸기, 개인적인 연락에도 꾹 참고 의연하게 회사생활을 하려고 애썼다. 팀장이 “너는 방송 진행 능력이 떨어지니까 대본부터 쓰고, 하는 거 봐서 아나운서도 시켜주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Y는 팀장과 뭐가 안 맞는지 자주 삐걱거렸다. 언젠가부터 Y가 일주일째 보이지 않았다. “요즘 왜 안 나오느냐”고 연락하자 Y가 답했다.
“선배, 저 짤린 거 같네요…
팀장님이 이제부터 일 있을 때만 부른대요.
이거 짤린거 맞죠? 카톡으로 전달받았어요.”
하지만 난 항의하지 못했다
채용은 구두로, 해고는 카카오톡으로. 이게 유명 언론사의 자회사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성희롱과 불규칙한 업무에 시달리던 Y가 허무하게 해고 소식을 전했을 때 나는 엄청난 자괴감을 느꼈다. 팀장이 자기 타입인 여성에게 추근대거나 그 여성이 얼마나 순종하느냐에 따라 고용과 해고를 반복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항의할 용기를 전혀 내지 못했다.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면 굳이 나서서 피를 보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끔 분노가 솟고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못하는 자신이 굉장히 나약하게 느껴졌다. 프리랜서인 나를 비롯해 전 직원은 연 2회 온라인 성희롱 예방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했고, 그 교육 콘텐츠는 꽤 훌륭했다. 팀장의 행동과 비슷한 사례를 비롯해 회사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성희롱 대처방법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하지만 팀장은 동영상을 보지도 않고 대리급 직원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매년 똑같은 소리 들어서 귀찮네. 다 안 봐도 수료되게 처리 좀 해.”
나는 절망했다. 교육을 받아봤자 나는 상사의 횡포에 아무런 저항도, 신고도 할 수 없었다. 나 혼자 모난 돌이 되면 상사는 악의적인 소문을 만들어 내가 이직하는 곳마다 따라다니게 할 테니. 실제로 다른 언론사 아나운서가 자신을 개인 비서처럼 대하면서 월급도 안 주는 사장에게 항의했다가 그 후로 다시는 언론사에 발을 못 붙였다는 소문도 나를 위축시켰다.
상사의 악덕과 후배의 눈물 사이에 있던 침묵
그렇게 상사의 악덕을 눈감고 내 살길만 찾자고 행동한 게 후배에게 눈물을 안겨주는 꼴이 됐다. Y가 당한 일은 내가 회사의 말에 순응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 그로부터 오랫동안 괴로웠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Y가 떠나고 언젠가부터 팀장의 책상에는 늘 새로 도착한 명함 박스가 두세 개 있었다. 회사 로고 옆에는 ‘리포터/MC’라고 쓰여 있었는데, 모두 처음 보는 이름들이었다. 그 수십 개의 명함 중 사무실에 얼굴을 본 친구들은 내 기억에 둘이다. 그마저도 화면 출연이 아닌 목소리 더빙(녹음)만 하는 경우였다.
나머지 수십 명은 팀장이 왜 명함을 파줬는지, 명함을 주며 무슨 약속을 했는지 전혀 모른다. 오직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바는, 명함을 받은 친구들은 지망생에서 직업인이 되고 싶은 20대 초중반 여성들이며, 유명 언론사의 로고가 박힌 명함을 받고 뛸 듯이 기뻐했으리란 것이었다.
열정과 미소를 무너뜨린 성희롱
아나운서 학원에서 알게 된 24살 동생 A가 최근에 방송국 PD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털어놨을 땐 그동안의 경험 때문에 담담하게 들었다. 국비로 운영되는 방송국이었다. 여느 아나운서 지망생들처럼 A는 정식으로 고용되고 싶었고 일회성 아르바이트 비용을 받으며 지방 촬영을 다니면서도 열의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A도 내가 이전에 주위에서 본 사례와 비슷한 순서를 밟았다. 3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실력과 외모에 공들인 A였다. 그런 A에게 몇몇 상사는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A의 희망을 짓밟았다.
“웃는 표정이 이상하다.”
“성형수술이나 더 해라.”
“너무 큰 꿈 꾸지 말고 대충 하다가 시집이나 가라.”
‘그까짓 폭언이야 참지 뭐, 난 크게 될 거야’라고 자신을 달래던 A의 인내심은 한 PD의 성희롱으로 무너졌다. A는 지금 휴식을 취하며 아나운서를 계속 준비할지 고민 중이다.
왜 아나운서에게 유독 이런 일이 일어날까
지금까지 쓴 글은 나의 직간접적 경험에 국한돼 있다. 일반적인 아나운서 세계가 이렇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3년간 방송을 하며 만났던 수많은 아나운서와 방송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드물게 발생하는 일만은 아닌 듯하다.
왜 유독 아나운서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결론은 다음과 같다:
어느 직업군에서나 ‘을’은 있다. 하지만 여성 아나운서 지망생은 고용 불안정의 횡포와 성희롱에 희생당하기 더 쉽다. 방송 진행을 하는 것은 그녀들이 꼭 이루고 싶은 꿈이다. 시켜만 주면 최선을 다할 준비가 돼 있다. 게다가 예쁘고 젊다.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초중반은 사용자의 제안을 한 치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열의를 보이면 예쁘게 봐줄 거란 기대를 품고. 그런 착하고 순진한 20대 여성들을 한 번 출연시키고 버리는 것, 어렵지 않다. 문제 생길까 봐 애초에 계약서 따윈 쓰지 않는다. “알잖아, 방송 제작환경 어려운 거. 원래 아나운서 안 쓰려고 했어.”라는 변명은 ‘너 한 번이라도 출연시켜준 것 고맙게 알아’라는 ‘갑질’과 같다.
아나운서에게 상처를 주는 것들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일부의 비뚤어진 시선도 그녀들에게 상처를 준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을 훌쩍 넘게 쓴다. 우선 학원 정규반 등록비가 약 300만 원인데, 수업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학원에서 배우는 게 많지 않지만, 아나운서 시험 준비 기간에 준비생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학원에서는 “심화반, 실전 대비반에 등록하라”고 부추긴다. “방송국에서 구인 문의 들어오면 널 제일 먼저 추천해주겠다”는 구두 약속과 함께.
준비생들은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하니까 ‘일종의 투자’라 생각하고 또 다른 수업에 등록한다. 등록비 수백만 원이 또 든다. 여기에 성형수술과 시술(보톡스, 필러 등), 피부미용 비용이 정기적으로 들어간다. 지방에서 면접 일정이 잡히면 메이크업 및 헤어 비용, KTX 왕복비용까지 15만~20만 원이 족히 든다. 2~3년 동안 열심히 준비하는 친구들은 약 20~30번의 면접을 본다.
이렇게 돈 쓰고 시간 들이니 일부에서는 ‘외모와 웃음이 전부인 예쁜이들’이라는 왜곡된 시선으로 본다. 수시로 그녀들을 노리는 ‘나쁜 손’도 이러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외모에 돈 들여 이미지 연출이나 하고, 결국은 재벌에게 시집가려는 여자들’이라는 비하적인 시선도 있다.
하지만 재벌에게 시집간 여자 아나운서는 전체의 극히 일부이며, 적어도 내가 아는 아나운서 중 ‘시집 잘 가는 것’을 목표로 아나운서를 준비한 사람은 없었다. 그녀들은 직업인으로 존중받고 싶은, 방송과 진행의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여성이다.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 때문에 그 미소가 쉽게 보이는 걸까.
직업인으로 대우하기는커녕…
지망생과 직업인의 사이에서 힘겹게 제자리를 찾고 싶어하는 그녀들의 간절함을 왜 악용하는가. 남의 희망과 절망을 우습게 알고, 성희롱쯤 해봐야 별일 없을 거라 믿는 그들은 정말 엄격하게 퇴출당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위에 언급한 상사들은 여전히 방송·언론사 밥 먹으며 잘살고 있다.
나는 아나운서를 접고 글을 쓰며, 내가 겪은 부당함을 개선해보고자 법을 공부하고 있다. 학원 동기들은 지상파 방송국의 정규직 아나운서, 잘 나가는 프리랜서 진행자, 유명하진 않지만, 방송일을 사랑하며 ‘쓰리잡’ 이상을 해내는 아나운서 등 각양각색이다.
갖가지 힘든 상황에도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걷는 아나운서들에게는 존경을 표하고, 꿈을 갖고 열심히 준비하는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겐 격려를 보낸다. 다만 사회 경험이 적은 지망생들에겐 업계의 현실이 상처를 줄 수 있음을 각오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을 직업인으로 대우하기는커녕 말 한마디, 문자메시지로 채용과 해고를 반복하는 일은 조금씩 시정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강용석 말이 어느정도 틀린말이 아니었네 ㅋㅋ
역시 고된 직업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