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역은 초대형 사업에 목매고, 언제나 실패하는가? 지역의 대실패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로 인한 대서울과 지방의 정치적 균열 심화와 그 함의.
지역의 정치적 자율성은 커지지만, 제대로 된 감시나 견제는 이뤄지지 않는다. 사회복지 지출을 중심으로 지방 정부의 권한은 점차 늘고 있기도 하다. 지역 경제가 구조적으로 취약해져가는 상황에서, 낙후된 거버넌스 때문에 이전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2022년 9월 발생한 ‘레고랜드 사태’는 이 점에서 ‘일찍 온 미래’라 할 수 있다.
조귀동, [이탈리아로 가는 길], 생각의힘: 2023. p.188.
잼버리 사태로 여러 가지 말이 나온다.
이 문제는 결국 중앙과 지방의 현격한 격차, 그리고 메가 프로젝트(초대형 사업) 한두 개에 목매달고 언제나처럼 그 실패를 경험하는 지방의 행태에서 기인한다. 나아가 지방 문제가 전국 단위 문제로 번져나가는 현상이 점차 늘어날 것임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그로 인한 중앙과 지방 간의 정치적 대립이 발생할 것임을 시사한다.
잼버리 사태는 결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다. 잼버리 사태는 그저 미개한 지방 정부 혹은 거버넌스나 토호들을 비난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중앙 정부(윤석열 대통령)가 잘못했네, 지방정부(즉 민주당의 전북)가 문제네, 싸운다고 뾰족한 답이 나올 리 만무하다. 이번 사태는 이런 문제가 앞으로 어디서든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더한다.
지방은 자체 역량이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지방이 자체적으로 사업을 만들고, 운영하고, 집행할 역량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존재하는데, 요약하면 내가 [전라디언의 굴레]에서 언급한 ‘제3세계형 저발전’의 함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결국 광주가 직면한 ‘무능’의 문제는 낡은 방식의 개발사업에서나 통했을 제도적 역량을 가지고, 선진국형 첨단 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발전시켜야 하는 데서 기인한다. 내재적인 역량이 없기에 중앙정부나 대기업에 자본, 기술, 시장 나아가 사업 진행까지 모든 걸 의지한다. 중앙정부와 대기업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며, 나름의 이해관계와 조직원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만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광주는 내재적인 역량이 없고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자원을 투입해도 성장할 수 없는, 일종의 ‘제3세계형’ 저발전의 함정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p. 191)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생각의힘: 2021.
광주의 대형 사업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내부의 역량 부족이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 형태로 사업을 기획하지 못하는 데다, 부족한 자본·기술·수요·인력 등을 외부에서 끌어다 쓰지 못한다. 그리고 이 역량 부재는 ‘사람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거버넌스의 결함’ 때문이다.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을 살피면 거버넌스의 취약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고속철도나 도로 같은 SOC 사업을 만들어 중앙정부의 예산을 타내는 대형 사업이 주를 이루는 과거에는 거버넌스의 취약성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산을 타내서 그대로 쓰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현재 대규모 지역개발사업은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자본이 희소하고, 규제를 조금만 풀면 기업이 공장을 짓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처럼 고도의 인적 자원이 자율성을 발휘해 무형의 생산품을 만드는 부문의 경우, 건물을 짓는 것보다 인적 자원들이 모여들어 서로 네트워킹하고 사업체를 만들고 상당한 리스크를 지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시도를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급격한 산업 변화 속에서 제대로 된 고부가가치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p. 190)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생각의힘: 2021.
지금까지 서울(수도권)과 지방은 역할을 분담해 왔다. 서울이 머리 역할, 지방이 손발 역할을 했다. 혹은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한 고도성장의 성과를 지방에 재정 지원 등의 형태로 나눠주는 식이었다. 물론 이런 서울과 지방의 역할 분담 구조에서도 특히 부산-울산-경남(이하 부·울·경 혹은 PK)과 대구/경북은 제조업 중심지로 꽤 특별한 지위를 누려왔지만, 그 기본적인 구조에는 별 차이는 없다.
문제는 독자적인 기업인과 경영인과 전문가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못한 지역의 경우 그나마 제조업 기반이 갖춰진 영남권 대도시 지역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 놓여져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지역 불균등 발전은 구조적으로 기존의 중앙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거버넌스를 어떻게 바꿔볼까 하는 데 사실 지역 내에서 시민사회나 공론장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으면 그나마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이른바 ‘중앙’도 정치 바람에 휩쓸리고, 내 편이냐 네 편이냐 편이냐 진영으로 갈라치기하는 판에 그게 될 리가 없다. 게다가 지역은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특정 정당이 장악하는 경우가 많고, 여러 네트워크로 중첩적이고 폐쇄적인 이해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가 폐쇄적인 정도는 ‘산업화가 덜 된 지역’일 수록 심하다.
목맬 수밖에 없는 SOC, 부족한 인적 자본과 기술
메가 프로젝트는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로 경제 성장을 이끌어낼 수 없는 지방에서는 기댈 수밖에 없는 ‘SOC형 사업’이다. 한여름 잼버리 개최지를 하필이면 새만금으로 정한 거로 많이들 욕하는 데, 지방 개발사업 대부분이 다 비슷한 형태의 토건형 개발사업들이다. 규모를 키우고, 이것저것 붙여 얼마나 새로운 것인 양 꾸며대느냐는 수준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 SOC만 짓는다고 뭐가 저절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가 고도화한 상황에서 성공하는 대규모 사업은 잘 조율된 역량이 필요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대로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역량과 인력,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즉 인적 자본, 경영 능력, 기술 등 무형의 자원이 엄청나게 중요해진 셈이다.
그런데 지방이 그런 게 되나? 그런 게 되는 지방은 그나마 ‘부·울·경’ 정도인데, 부·울·경도 확실히 된다고 말하기 힘든 지경이다.
쉽게 확보 가능한 자본이 빈약한 거버넌스를 만날 때
한국이 선진국이 되면서 자본 조달은 민간 부문이든 공공 부문이든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쉬워졌다. 그만큼 소득도 늘고, 자본금도 쌓여있고, 자본 가격도 싸기 때문이다.
이렇게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자본이 빈약한 거버넌스와 만날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가. 바로 2022년 발생한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같은 게 터진다. 또는 새만금같이 수조 원을 아주 오랫동안 때려 박아도 이제서야 좀 문제가 드러나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
즉, 헝가리 경제학자 코르나이가 이야기한 ‘연성 예산 제약’ 문제가 여러 각도로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싸게 돈을 조달해다가 이것저것 벌이는 데 제대로 된 사업성 검토나 사업 집행 없이, 즉 예산 제약선이 단단하지 않고 물렁물렁하게 이뤄지다 보니, 수익이 하나도 안 나고, 계속 적자만 보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다. 이 연성 예산 문제야 말로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서 이야기한 지금 당면한 지방 문제의 ‘회색 코뿔소’ 문제, 즉 모두 알지만 제대로 인식하고 공론화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위험 중 하나다.
헝가리 경제학자 야노시 코르너이(János Kornai)가 제시한 ‘연성 예산 제약’이란 개념은 지자체의 방만한 실태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코르너이는 예산이 엄격하게 주어지지 않는 기업은 비효율적이 된다고 지적한다. 이익 극대화보다 생산량을 늘리는 추가 예산 확보에 골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기초지자체의 행태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기초지자체장과 광역지자체장의 소속 정당이 같고 기초지자체장이 정치인 출신이면 지방 출자·출연 기관이 더 많이 설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재정 자립도가 낮을수록 설립이 늘었다.
아시위니 아그라왈(런던정치경제대학LSE)은 2007년 미국 지방채 보증보험 회사가 무너지면서 지방채 금리가 오르자, 상수도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큰 폭으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상수도 오염 증가의 32%가 그 때문이라는 얘기다.
중앙정부 의존도가 높은 한국 지자체의 파산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향후 개발사업 실패로 재정 압박에 시달릴 지자체가 필수 분야에서 지출을 줄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경우 지역에서 유권자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 비수도권 지자체와 수도권 지자체의 대립도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젊고 부유한 수도권 주민들에게서 세금을 거둬서 늙고, 가난한 비수도권에 재정을 투입하는 구조가 더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귀동, [이탈리아로 가는 길], 생각의힘: 2023. pp.190~191.
대서울 vs. 미개하고 세금 훔쳐가는 지방 놈들
그런데 어디서든 돈을 끌어와서 지원하고, 조직 확대해서 거기서 한자리 해먹고 그러는 게 그냥 계속 지속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엄청나게 스케일이 커진 상황에서, 지역만 죽겠나? 전국 단위 문제가 되는 거다.
그 좋은 사례가 바로 레고랜드 사태다. 레고랜드 사태는 그야말로 한국 채권 시장 전체를 들었다 놨다 했다. 새만금도 마찬가지, 새만금 같은 SOC 사업이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셧다운됐을 때, 그동안 들어간 매몰비용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지역마다 한두군 데 있는 크고작은 새만금 같은 것들은 그야말로 시한폭탄이다.
결국 ‘지방의 실패’를 놓고 미개한 지방 놈들이 우리 세금을 훔쳐간다거나 우리가 봉이냐는 ‘중앙’ 내지 부유한 ‘수도권’ 더 정확히는 대(大)서울 정도의 개념의 대립이 가시화할 수밖에 없다.
중앙(서울)은 책임이 없나
그렇다고 중앙이나 서울은 책임이 없나? 사실 이렇게 수도권과 지방의 역할을 분담하고, 지방 문제를 제대로 개선하지 않고 단순히 지역 할거 정당들의 정치 경쟁 속에서 표 긁어다 바치는 기계 취급했던 게 중앙의 ‘엘리트’들이다. 많은 제3세계 저발전의 문제가 식민지 본국의 행동에서 발원하듯,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 문제도 마찬가지다.
더 악질인 건 중앙, 특히 정치권야 말로 이런 문제를 계속 이용하고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영합해 떡고물을 얻어먹을 생각을 하는 지방 엘리트들도 마찬가지다.
새만금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가 급조한 공약이다. 그런데 그게 메가 프로젝트로 만들어지고, 이것저것 붙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거 때마다 다들 경쟁적으로 그걸로 뭘 하자는 이야기했다. 그런데 새만금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뭘 하는 게 나은가, 새만금에 투여할 자본으로 다른 지역 프로젝트에 쓸 수는 없는가, 이런 이야기는 누구도 하지 않았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사업 선정 단계에서부터 첫 단추를 잘못 달았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사업 기획,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유사한 하드웨어 건설형 접근, 일이 돌아갈 수 없는 거버넌스 구조, 불투명한 일 처리, 이해당사자들과의 조정 능력 결여, 나아가 이러한 실태를 제대로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 결여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요인을 갖추고 있었다.
먼저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충청을 행정수도, 부산을 해양수도, 광주를 문화수도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부터 즉흥적이었다. 박광태 전 시장은 당시 급히 일정을 바꿔 광주를 찾은 노 후보에게 자신과 천용택 전남도당위원장 등이 문화수도 공약을 제안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는 딱히 문화산업을 육성하자는 움직임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난삽한 대선 캠페인에서 제기된 하나의 아이디어에 가까웠다. 이것이 훗날 ‘대통령 만들기’에 광주가 한 역할에 대한 보답의 일환으로서 ‘한국판 퐁피두센터’로 발전한다. 오랫동안 광주 시민사회에서 활동해온 인사는 “노무현 경선 승리에 기여한 재야세력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pp. 175, 176)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생각의힘: 2021.
사실 이는 중앙의 엘리트 ‘나으리들’, 글로벌 레벨의 메트로폴리스 서울(Seoul™) 특별시민들은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신경쓸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지방은 ‘동원’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방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야하는 데 또 그게 되나.
지방의 대실패: 새로운 정치적 균열의 신호탄
‘윤석열(대통령)이 일을 못해서 이 지경이 됐어!’
‘전북 토호 세력이 문제야!!’
잼버리-새만금 사태는 단순히 그렇게 정치 싸움 소재나 단순한 지방의 낙후 문제로 볼 게 아니다. 앞으로 이런 지방의 대실패 사례는 그 규모가 더 커지고, 점점 더 빈번해질 거다. 그리고 그 실패는 전국 단위 문제로 커지면서 만들어질 새로운 정치적 균열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