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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안녕하세요. 저는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 중인 이정훈입니다. 최근 독일어 학습에 대해 제 생각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할 일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독일로 가족과 함께 이민을 오신 분이 독일어 공부의 전반적인 부분에 관해 질문을 주셨습니다. 이 글은 해당 질문에 대해 제가 평소 하고 있던 생각을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눠 설명한 글입니다.

독일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뿐만 아니라 대학교 독어독문학 전공자들, 독일계 회사와의 거래를 위해 독일어를 시작하신 직장인분들 그리고 순수하게 독일어에 대한 호기심으로 독일어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 독일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접하는 모든 분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box]

1. 독학? 독일 어학원?

[adsense]집에서 독학하기는 의지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접하는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언어에 얼마나 자신을 노출하는가’입니다.

‘고시공부’하듯이 독일어를 공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공부하면 얼마 못 가서 지치더라고요. 언어를 공부할 땐 ‘지겹다’, ‘지친다’ 같은 생각이 드는 방법으로 하면 얼마 못 가서 포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독일어 공부는 설렁설렁 하는 게 제일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학원에 관해서도 말씀드릴게요.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독일 도시 대부분에는 포크호크슐레(Volkshochschule)라는, 단어 그대로 풀이하자면 ‘시민학교’가 있어요. 한국의 ‘평생교육원’과 같은 시설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곳에선 사립어학원보다 훨씬 낮은 수업료로 독일어 공부를 하실 수 있습니다. 포크호크슐레에는 독일어 외에도 여러 가지 재밌는 수업들이 많고요, 대부분 독일어로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취미가 맞는 수업을 독일어로 듣는 것도 독일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2. 독일어 공부에 대한 실질적 접근법

독일어를 어떻게 공부할지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네 가지로 나눠 설명하겠습니다.

1) 읽기

처음에는 모든 문장을 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전반적인 문장의 흐름과 의미 파악에 집중하시는 게 좋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계속 읽으세요. 쭉쭉 읽어나가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일어 책을 한 권 구입한 후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연습을 통해 쭉쭉 읽어나가는 습관을 길러보시길 권합니다. 개인적으로 독일어판 [어린 왕자](Der kleine Prinz),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Dienstag bei Morrie) 그리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und Schokoladenfabrik), 이 세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어린 왕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찰리와 초콜릿 공장 책 표지

이 습관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은 후에는 ‘문장 분석’에 들어갑니다. 독일어에서 동사는 두 번째 자리에 고정되어 있고, 주어와 목적어는 동사를 기준으로 위치합니다. 문장에 “A B C” 이렇게 단어가 3개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B가 동사 자리일 것이고, 그 기준으로 주어와 목적어가 A와 C에 위치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본 문장 구조를 기억한 뒤 문장에서 동사 찾는 연습을 먼저 합니다. 동사를 찾아서 표시해 놓으면, 그 동사의 앞·뒤에 위치한 주어·목적어가 파악될 겁니다. 그러고 나서 동사를 시작으로 문장을 해석해보시면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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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Ich esse eine Currywurst.
(해석) 먹는다 (동사), 나는 (주어), 커리부어스트를 (목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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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습은 위에서 말씀한 대로 독일어 원서로 해도 좋고, 독일의 소리(Deutsche Welle)라는 국제방송 웹사이트에서 Top-Thema를 가지고 연습하셔도 좋습니다. B1(자립적 언어 사용 수준)에 해당하는 수준이라 어려울 수 있지만, 꾸준히 해보시길 권합니다.

독일의 소리, 톱-테마

위에서 설명한 방법으로 조금씩 하다 보면 독일어 신문도 읽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2) 듣기

테스트다프(TestDaF; 학업·취업을 위한 독일어 인증 시험)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파트가 듣기였기에 여러 방법으로 공부를 많이 해본 편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 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독일인과 지내면서 매일 독일어에 노출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에요.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테스트다프 시험을 앞두고 개인적인 일 때문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친구 집에 머물면서 일주일 정도 계속 독일어만 썼었어요. 특별히 독일어 실력이 좋아질 거라 생각하고 지냈던 게 아닌데, 그 일주일이 지난 뒤 테스트다프 시험에 들어가 보니 그전까지 시험 연습만 할 때보다 독일어가 훨씬 잘 들리더라고요.

혹시나 살고 계시는 집에 방이 하나 남는다면, 독일인을 운터미테(Untermiete; 재임차)로 들이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탄뎀 파트너(Tandem Partner)입니다.

탄뎀 파트너는 언어교환 친구라고 보시면 됩니다. 독일인 친구가 나에게 독일어를 가르쳐주고 도와주는 대신에 나는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그러한 시스템이죠. 탄뎀 파트너라는 명목으로 만나서 계속 잘 지내다 보면 그냥 친구로도 남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탄뎀 파트너는 꼭 ‘언어’에만 해당하는 교류가 아니랍니다. 음악 전공하는 한국인이 악기 레슨을 해주기도 하고, 미술 하는 분들이 그림 그리는 법을 독일인에게 가르쳐주는 것도 많이 봤습니다.

둘이 타는 자전거를 탠덤 자전거라고 하죠.
둘이 타는 자전거를 탠덤 자전거라고 하죠.

그런데 사실 듣기 공부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읽기 부분에서 말씀드린 방법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집에 계실 때 독일 라디오 혹은 텔레비전을 온종일 틀어놓으세요. 처음엔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어떤 주제로 이야기하는지 파악하기 굉장히 힘듭니다. 듣기는 문자로 보이는 읽기와 달리, 독일어가 아우토반 위를 최고 속도로 지나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우선은 틀어놓으세요. 그리고 듣기는 흐름과 의미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단어를 캐치하는 데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짧은 단어가 됐든 긴 단어가 됐든 분명히 아는 단어가 들릴 테니까요.

그렇게 낱개의 단어들을 캐치하다 보면 어떤 문장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추측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자기가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그램 혹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방송할 때 들리는 단어들을 노트에 계속해서 적다 보면 어느새 한 문장을 적는 수준까지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인 rbb에서 하는 프리츠(Fritz) 라디오 방송을 추천해드립니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내용으로 구성된 라디오 방송이라 금방 재미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라디오방송 외에, 독일어로 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도 독일어 듣기 실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여러 종류를 보는 것보단 몇 개의 작품을 정하고 반복해서 보는 방법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개인적으로 독일 제1공영방송인 ARD에서 하는 타트오르트(Tatort)라는 범죄 수사물 드라마를 추천합니다. 은어가 많이 나오는 여타의 드라마보다 독일어 표현이 훨씬 정확한 것 같더라고요. 물론, 범죄수사물만의 긴장감도 있어서 재미도 있고요.

독일 영화로는 [귀 없는 토끼] (Keinohrhasen, 2007)를 추천합니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다큐멘터리 혹은 정치·사회적인 주제의 영화들보다는 독일어를 더욱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영화 [귀 없는 토끼] 포스터

만약 독일 드라마와 영화가 생소해서 재미가 없다면, 미국이나 영국의 드라마와 영화를 독일어 더빙판에 독일어 자막으로 함께 보는 걸 추천해요. 저도 미드와 영드에 더 익숙한 편이라 재미 붙이기가 훨씬 쉽더라고요. 처음에 미드와 영드를 독일어 더빙과 자막으로 보시면서 재미를 붙이다가 독일어 영화, 드라마까지 확장해 나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독일어로 드라마와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표현이 나오면 그 표현은 통째로 외우세요. 나중에 독일인과 대화할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습니다.

3) 쓰기

우선은 독일어 원서를 필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독일어 쓰기 공부를 위해서 하루에 한 장씩 독일어 원서를 필사했었습니다. 한국식으로 쉽게 말하자면 깜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깜지처럼 마냥 반복해서 적는 게 아니라, 글을 적는 동시에 해석을 같이하는 방법입니다. 손으로 직접 해석을 밑에 적어도 되고 마음속으로 해도 됩니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해석 + 문장구조 + 단어 + 읽기연습’이 동시에 다 된다고 보면 됩니다.

독일어 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단어도 단어지만 문법이 중요합니다. 문법 공부는 독일어로 된 것보다는 한국어로 된 문법책을 가지고 하는 게 이해하기 쉽습니다. 한국어 문법책으로 공부한 뒤에 같은 내용을 독일어 어학원에서 복습하면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단어와 숙어는 하루에 각각 10개씩만 외운다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하는 게 학습 속도가 훨씬 좋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구입했던 단어책을 독일에 올 때 가지고 와서 계속 봤습니다.

4) 말하기

듣기 파트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우선은 탄뎀 파트너를 알아보는 게 효과적입니다. 혼자서 공부한다면 독일어 원서를 읽으면서, 소리 내서 따라 읽거나 혹은 원서를 필사하면서 같이 소리 내서 읽는 방법이 좋습니다.

중요한 건 ‘소리 내서’ 읽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마음속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소리 내서 읽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100번 읽는 것보다 소리 내서 한 번 읽었을 때 이 단어가, 이 문장이 내 것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3. 지속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조건

어학 공부는 여러 번 반복 학습이 중요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로 독일어 공부를 지속적으로 못하고 잘 안 하게 되는 것에 대해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독일어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세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설거지를 하면서 혹은 집안일을 하면서 독일어 라디오를 틀어놓는다거나, 냉장고나 벽에 오늘 공부할 단어와 숙어를 붙여놓고 왔다 갔다 하면서 그냥 보세요.

그리고 요즘에는 회어북(Hörbuch; 오디오북)을 통해서 책 내용을 읽는 게 아니라 들을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독일어 원서로 읽기와 쓰기 공부를 하고 그 다음 날에 어제 했던 원서 부분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면서 부담 없이 들으세요.

결국 ‘중요한 것’의 관점을 바꾸시는 게 필요해요. ‘어떻게 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언어를 공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독일어를 내 생활에 끌어오지?’라는 고민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독일어 어학시험에 등록해서 정말 바짝 공부를 하는 방법입니다. 시험에 붙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사실은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독일어 수준이 정말 한 단계 훌쩍 올라가는 걸 주변에서 많이 봤기에 위와 같은 방법을 추천합니다.

[box type=”note”]제 개인적인 경험을 위주로 적어서 잘 맞지 않는 방법들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계속 시도하다 보면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독일어 공부에 관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ljhic313@zedat.fu-berlin.de 으로 연락해주세요. (필자)[/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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