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경향신문의 칼럼, ‘[고종석의 편지] 에마 왓슨 유엔 여성 친선대사께‘가 화제다.

경향신문 사설 중

안타깝게도 그리 긍정적인 화젯거리는 아닌 것 같다. 해당 칼럼에 비판적인 이들은 이 글을 전형적인 ‘맨스플레인’이라고 지적한다.

[box type=”info” head=”‘맨스플레인’이란? “]

맨스플레인(mansplain)은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을 결합한 단어로, 대체로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애틀랜틱]의 릴리 로스먼은 맨스플레인을 “흔히 남자가 여자에게, 설명을 듣는 사람이 설명하는 사람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정의하였고, 레베카 솔닛은 일부 남성의 “과잉 확신과 무지함”의 결합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속한다고 보았다.

– 위키백과, ‘맨스플레인’에서 발췌

[/box]

설명 연설 남자 사람 소통

히포쉬(HeForShe) 

딱 한 해 전 영화배우 엠마 왓슨의 연설로 화제가 되었던 히포쉬(HeForShe) 캠페인은 세상의 절반, 즉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는 운동이다. 성 평등 논의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요구되는 것이며, 또한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엠마 왓슨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젊은 남성들이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겨 그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목격해왔습니다. (…) 그들이 자유로워질 때, 여성을 위한 변화도 자연스럽게 촉발됩니다.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여성 또한 통제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칼럼 전반부는 엠마 왓슨의 연설을 대체로 요약한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며, 성 평등은 남자들도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당신이 지적했듯”, “당신도 최근에 인정했듯”, “당신도 알고 있을” 등의 표현을 쓰며 엠마 왓슨의 뜻을 존중하는 듯 문장을 전개해나간다.

페미니즘이 온전해지려면?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의 글에 불편함을 느꼈을까?

그건 아마도 이 편지가 기존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비판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칼럼 후반부는 온전히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진다.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이 경험하는 성차별과 불평등은 양상이 크게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LGBT라 불리는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차별은 이성애자 여성이 겪는 차별과 크게 다릅니다. 또 상층계급에 속한 여성과 하층계급에 속한 여성이 겪는 성차별은 크게 다릅니다. 그러니까 페미니즘 운동이 온전해지려면 인종적 소수자들에게, 성적 소수자들에게, 그리고 계급적 약자들에게 항상 눈길을 거두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거기에 장애인 여성도 추가하고 싶습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그런 논점들에 눈을 감음으로써 페미니즘 운동을 고립시켰습니다.

칼럼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소수자 권리 보호와 같은 논점들에 눈을 감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페미니즘이 소수자 권리가 여성의 권리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체험이 훨씬 더 많다.

칼럼은 너무 거칠게 페미니즘 운동을 일반화하고, 게다가 현재의 페미니즘은 온전하지 않다고 단정한다(“온전해지려면”). 그래서 온전한 페미니즘을 위해 훈계조로 말한다. 칼럼의 표현을 빌리면, “존재는 중층적”이고, 칼럼이 온전해지려면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섬세한 눈길”이 필요하다.

다른 사례를 빗대어 보자.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인권을 중시하는 진보주의자들을 향해, 왜 더욱 시급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느냐고 공격한다. 이런 주장은 사실인가? 그런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당연히 있다. 역사적으로 종북주의자들이 진보 일각을 차지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마치 이것이 오늘날 진보 진영의 한계인 양 일반화하고, 확대해석해선 곤란하다.

반(反) 페미니즘의 허수아비 공격

칼럼이 지적하는 ‘페미니즘 운동의 고립’ 또한 마찬가지다. 논의와 성찰이 이미 오래전 이뤄진 문제다. 페미니즘 운동 내부적으로도 말이다. 페미니즘 운동사(史)를 다루는 긴 글에서야 언급하기에 적절하겠으나,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는 히포쉬(HeForShe) 운동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굳이 나와야 할 지적인지 의문이다.

하물며 페미니즘은 늘 공격받아왔다. 이미 남성 역차별이 문제가 되었다는 인식 또한 일베 등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대두했다.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진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은 놔두고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한다며, 일종의 허수아비 공격을 자행했다.

현실은 정확히 반대다. 심지어 조선일보와 같은 주류 언론조차도 ‘된장녀’ 따위의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며, 일베처럼 여성 혐오를 주류 정서로 깔고 있는 사이트가 성행한다.

이 와중에 “페미니즘은 소수자의 권리에 함께 주목해야 한다”는 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함이 느껴진다. 정말 현실의 페미니즘이 소수자 인권을 무시할 정도로 위험하게 성장했는가. 이는 일부 반(反)페미니스트들의 허수아비 공격에 그대로 힘을 실어주는 꼴이 아닌가.

허수아비

여성운동은 모든 운동을 끌어안아야 하나? 

칼럼은 또 이렇게 말한다.

HeForShe라는 구호에는 인류가 성적으로만 구분된다는 함의가 실렸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말하는 페미니즘이 모든 여성과 모든 남성을 동질적으로 여기는 거친 페미니즘은 아닐 것입니다. HeForShe의 He에는 모든 범주의 강자나 가해자가 포함돼야 하고, She에는 모든 범주의 약자나 피해자가 포함돼야 한다는 것에 당신도 동의할 것입니다.

난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면 노조운동은 인류를 자본가와 노동가만으로 구분하는 것이며, 노동자에는 모든 범주의 약자나 피해자를 포함해야 하는가? 성소수자 운동은 인류를 성다수자와 성소수자로만 구분하는 것이며, 성소수자에 모든 범주의 약자나 피해자를 포함해야 하는가?

사회는 다양한 갈등을 담고 있으며, 이런 다양한 갈등을 조율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운동이 그 모든 갈등을 동시에 조율할 수는 없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야 여성 인권이라는 목표를 다른 다양한 목표들과 함께 추구해야 마땅하지만, 여성 인권 운동이 반드시 다른 모든 인권 운동을 품에 안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선은 다양해야 하며, 연대 또한 마땅히 필요하지만, 그건 강요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모든 운동과 모든 연대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모든 인간은 여성이 아니면 남성이다. 오늘날 젠더(Gender)란 대단히 복합적이고 다양하게 분화되는 개념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성(Sex)은, 여하튼 명백히 이분 된다. 여성이라는 성(Sex)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겪는 차별과 폭력 또한 분명한 현실이다. 여성 인권 운동은 다른 소수자 운동만큼이나 시급한 것이며, 한국의 여성 인권 문제가 다른 소수자 문제를 전부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다. 그러하기에, 히포쉬(HeForShe)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운동이다.

히포쉬 페미니즘

지금 필요한 건 훈계가 아니라 페미니즘 그 자체 

일베는 물론 각종 커뮤니티를 더럽히고 있는 단어들, ‘된장녀’, ‘김치녀’, ‘개념녀’, ‘김여사’ 따위가 활개치는 와중에 “순진한 페미니즘”과 “소수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 페미니즘”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경향신문의 칼럼은 어쩐지 시대와 동떨어진 느낌이다.

성 차별 문제에서 가장 큰 수혜자라 할 이성애자 남성이, 양성 평등을 위해 연단에 나선 여성을 향해 ‘성 소수자 여성이 받는 차별에서 눈을 돌리지 말라’ 훈계하는 것 또한 어색하다. 이건희가 삼성 직원들에게 ‘가난한 자들에게서 눈을 돌리지 말라’ 훈계하는 것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우며, 이성애자가 남성 동성애자에게 ‘여성 동성애자들이 받는 차별에서 눈을 돌리지 말라’ 훈계하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럽다.

게다가 이 칼럼이 말하는 바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 지겹게 들었을 이야기다. 새로운 성찰이나 자료가 담긴 것도 아니다. 히포쉬(HeForShe) 운동에 갖다 붙이기엔 뜬금없고, 한국의 여성 인권 수준을 생각해볼 때, 진보 계열로 분류되는 일간지의 칼럼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훈계가 아니라, 페미니즘 그 자체다.

Global Panorama, CC BY-SA https://flic.kr/p/ptaN56
Global Panorama, CC BY-SA

관련 글

22 댓글

  1. Emma에 m이 두 개 있다고 해서 첫째는 앞 음절의 받침이고 두번째가 뒤음절의 초성이라고 한글식으로 생각하면 안 됨. 현지 발음 상 “엠마”가 아니고 “에마” 맞음.

  2. 적절한 비유와 역지사지 덕분에 이해가 쉽게 되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페미니즘을 대할 때 좀 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3. 맨스플레인은 일베에서 쓰는 ‘씹선비’같은 표현으로 생각되어서 별로 어감이 좋지 않은 단어로군요. 어떤 글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 되지 그 글이 남자에게서 나왔단 이유만으로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까지 붙여가면서 낙인찍는 것은 ‘평등과 참여’를 이야기 하면서 또 다른 ‘분별과 분리’를 유발시키는 모순적 행위가 아닐까요.
    이 글은 제목부터가 그렇지만 히포쉬 운동과 고종석씨의 칼럼을 끌고와서 ‘맨스플레인’을 주제로 이야기 하고있습니다. 특정한 단어로 규정하고 못박는 것의 폭력성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대응 방식도 결국은 규정과 못박기인가 싶어 참 안타깝습니다.

  4. 2010년에는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단어”, 2012년에는 아메리칸 다이알렉트 소사이어티 “올해의 가장 창의적인 단어”로 뽑히고, 2014년에는 옥스포드 사전에 등재되어 범용적으로 쓰이는 단어를 씹선비 같은 단어와 비교하시는 게 신기하긴 하군요.

  5. Jochen Floyd님 말씀대로, 저게 영어 이름이라면 ‘에마’라고 표기하는 게 맞습니다.

  6. 댓글 쓰고 보니 아까 본문 초입에

    (참고로, 고종석이 칼럼 제목으로 쓴 이름은 “엠마 왓슨”이 아니라 “에마 왓슨”이다. 여기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오타인지 아니면 경향신문 편집진의 실수인지는 알 길 없다. -편집자)

    라고 쓰여진 문구가 없어졌네요. 지적받아서 수정한 거라면 양해의 문구라도 쓰고 내리시지.

  7. 먼 개똥같은 소립니까. 댓글의 특정단어로 규정되는 것에 대한 폭력성은 님이 말한 유명한 권위에 의존하여 그 단어를 가치있는것으로 규정하는것으로 전혀 반박될 수 없습니다. 뉴욕타임스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면 완전무결합니까? 맥락없이 막 써도 되는겁니까?

  8. ㅈㅈㅈㅈㅈ 님께

    제가 이 글을 편집했습니다. 우선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리 충분히 느끼실 수 있기에 그 점에 관해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_ _)

    실수에 관해 변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참고”사항이고, 그래서 “괄호”안에 “편집자” 주임을 표시한 내용입니다. 즉, 본문의 주요 부분이 전혀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참고’이고, 그래서 괄호 표시한 것입니다. 더욱이 필자가 쓴 내용도 아니죠.

    물론 실수를 감추기 위해 별도로 수정내용을 표시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본문의 내용상 주요 부분에 관한 수정이었다면, 당연히 별도로 수정내용을 표시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슬로우뉴스의 원칙에 속하는 사항입니다.

    여기에도 참고로 부연한다면, 제가 착오(실수)를 일으킨 이유는 다수의 언론사에서 넉넉하게 신뢰하고 가장 정확한 온라인 맞춤법 검사기로 사용하는 부산대 온라인 검사기에서 해당 부분(“에마 왓슨”)을 “엠마 왓슨”으로 써야 한다고 추천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 역시 고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9. 사실 엠마냐 에마냐가 중요한 건 아니죠. 그러나 편집자주를 붙여가면서까지 그걸 물고 늘어진 걸 보면 고종석씨 칼럼이 편집자도 못 마땅했구나는 건 충분히 알겠어요. 근데 그런 소소한 걸로 트집 잡지 말고 별도의 칼럼이나 의견을 내는 거 덜 유치해 보였을 것 같네요.

  10. 괄호를 쳤든 뭘 했든 간에, 윗분 말씀처럼 책임감을 느껴야 할 만한 멘트의 가감이었기에 더 아쉽습니다.

    앞으로는 편집측 실수도 수정내용에 들어가야 할 듯 싶네요. 사실 이런저런 경험으로 인해 슬로우뉴스 편집부를 거의 신뢰하지 못해요. 그러니 저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신경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지만 맞춤법 검사기보다는 외래어 한글표기법을 숙지하거나 국립국어원 홈피를 참고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종종 생각과 다르더군요.

  11. 모든 성별은 남성 혹은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터섹스와 젠더퀴어도 있어요.
    ‘대다수 성별은 남성 혹은 여성’
    이렇게 수정했으면…ㅠ

    고종석씨 비판글 잘 봤어요.
    글 잘쓰시는군요.

  12. Jochen Floyd 님께

    아주 예리한 지적이십니다. ^ ^
    좋아하는 칼럼니스트(저는 고종석 씨께서 한겨레 시절 썼던 칼럼은 스크랩해서 모아둘 정도로 칼럼니스트 고종석의 글을 좋아합니다.)라서 더 아쉬움이랄까 반발심이 컸던 모양입니다. 물론 온라인 맞춤법 검사기만을 맹신했던 제 착오이자 경솔함이었지만요.

    Jochen 님 말씀처럼 “유치하다”는 지적에 십분 공감하고, 앞으로 편집이나 글쓰기에 깊이 참고하겠습니다.

    추석 잘 보내시고요. :)

  13. 남성에게서 특별히 발견되는 행동이니까 맨스플레인이라고 했겠죠. 분별과 분맄ㅋㅋ의 대상이 된, 지금까지의 객체들이 스스로를 주체화하고 사실은 너네도 객체가 될 수 있어. 라고 말하자마자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재미있네요.

  14. 본문에서도 젠더는 여러가지로 나뉘어지는 모양 이라고 언급되었고 성은 생물학적 성을 의미하신것같네요.

  15. 맞는 말이에요. 맨스플레인과 아주 똑같은 맥락이 . . ‘김여사’ 죠.
    또 맨스플레인을 자주 언급하는 여성들의 특징은 김여사라는 말을 들으면 미친듯이 발광한다는거….

  16. 사람이 개한테 물렸으니 개를 물겠다는 자세로는 개랑 사람 모두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입니다.
    히포쉬와 맨스플레인.. 한 글에서 남여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남성이 참여해야 함을 촉구하는 히포쉬와 남성의 무지함과 잘난 척을 비아냥거리는 맨스플레인의 병치되어 있다는 것이 상당히 모순적이라는 것이지요.
    요즘 화제가 되는 메갈리안도 마찬가진거 같습니다. 메갈리안의 행위에 큰 뜻은 이해를 하지만 그것이 감겨있는 대다수 남성들의 눈을 뜨게 하리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네요.
    간디가 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했을까요. 비판의 대상과 똑같은 방식으로 행하는 비판은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합리적인 눈을 갖고 쳐다보면 김치녀나 씹치남이나 둘다 꼴보기 싫은 단어일 뿐입니다. 일베하는 사람들이 히포쉬를 참여하게 하는게 쉬울까요 아니면 이런 사이트 들어와서 글 읽고, 시사인라이브 들어가서 신문 보는 사람들을 참여하게 하는게 쉬울까요.

    이런식의 논리전개는 좌우에 모두 치우쳐있지 않은 사람에게 아 저쪽도 별반 다를게 없구나란 식상함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점이 안타깝네요.

    고종석씨 글도 문제가 없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저는 이 글을 보고 히포쉬 운동에 참여하고싶은 생각이 들진 않는군요. 운동에 참여하러 갔다가 무슨 말을 했을때 제 의도와는 다르게 ‘맨스플레인’이라며 몰아세우는 분들이 거기 계실듯싶어서요. 혹여나 작자분이 여자셨다면 제가 남자란 이유로 이 리플도 맨스플레인이 되겠네요. 적어도 저보다 이런 기사 쓰시고 주 업으로 활동하시는 분이 아시는 것이 더 많으실테니까요.

    저는 아무리봐도 모르겠습니다. 이글의 주제가 히포쉬 운동의 소개인가요 고종석 기사까기인가요 맨스플레인이란 단어의 소개인가요.

  17. 일베에서는 광주민중항쟁을 “폭동, 선동”으로 말합니다. 혁명과 폭동이 같은 사태를 두고 판이한 단어로 나타나듯이, 맨스플레인도 쓰기 나름이 아닐까요.

    씹선비 할때 ‘씹’은 명백히 공격적인 표현이 아닙니까. 맨스플레인이 그와 같은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표현인지는 의문입니다. 앞선 댓글을 보니 언론지에서도 해당 단어를 나쁘게 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폭동이나 선동을 민주화운동을 폄하하기 위해서 쓴다면 그건 그렇게 쓰는 사람 잘못이지, 그 단어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맨스플레인을 전적으로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서나 쓴다면 잘못된 것이 확실하지만, 그건 그렇게 쓰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닐까요. 2012년에는 아메리칸 다이알렉트 소사이어티 “올해의 가장 창의적인 단어”로 뽑혔다고 윗 댓글이 지적합니다. 거의 모든 책에서 우리는 ‘신선한 표현들’ 말하자면 작은 따옴표로 콕 집어내고 싶은 표현을 찾아냅니다. 이 기사에서도 글을 쓸 때 작은 따옴표 찍을만한 단어로써 적당히 환기하는 용도로 쓴 것 같구요.

    요컨대 창의적인 방식으로, 재치있는 단어이되, 남용은 금물! 이정도로 끝내면 안될까요. 단어사용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맨스 플레인이란 표현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씹선비나, 김여사, 김치남과 같은 단어를 쉽게 쓰는지도 의문입니다. 일베애들은 굳이 안써도 될때 그런 단어들을 쓰지 않습니까. 그건 그들이 그저 단어사용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죠. 문제가 있다면, 단어를 함부로 남용하는 사람들의 문제뿐이라고 생각합니다.

  18. 저도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체비하적인 의미가 내포되어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맨스플레인은 남자들의 설명 (explain)이라고도 해석할수 있지만 남자들의 불평불만 (complain)이란 식으로도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단어를 의도하였건 결국 효과는 어떠한 발언을 내용으로 평가하는것이 아니라 발언자의 성별로 연결지어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할한 소통에 문제가 되지요.

    헌데 왜 이런 단어가 뉴욕타임즈지에 선정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비록 단어자체는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지만 큰 사회적 맥락내에 이 단어의 발명이 의의가 있다 생각하여 선정하였을 것입니다. “김여사”같은 여성비하적인 단어는 남성우월주의가 자리잡고있는 사회내에 그런 전반적인 권력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언어라고 본다면, 맨스플레인이란 단어는 이런 권력관계를 거스르는반동적인 언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현사회에 남성우월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에 반동적인 페미니즘이 나타날 수 밖에 없겠죠. 물론 이런식의 소통은 소모적일 수 밖에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결국 소모하는것은 아직 남아있는 남성우월주의의 가장 큰 분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방적인 권력관계를 거스를 줄 알아야 평등을 논할 수 있습니다. 물론 페미니즘의 방향은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요.

  19. 맥락없이 쓰다니요? 충분한 맥락 속에서 쓰지 않았습니까? 왜 고종석씨의 칼럼이 맨스플레인으로 느껴지는 지 이유가 이 칼럼에 구구절절 설명되어있지 않습니까.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