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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수도권, 특히 서울 아파트의 소셜 믹스(Social Mix)[footnote]소셜 믹스(Social Mix):  ‘사회적 혼합’, 특히 이 글에선 분양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를 한 단지에 섞는, 계층 혼화적 주택정책을 의미. -편집자[/footnote]는 곧 쓰라린 실패의 흔적만을 남긴 채 침몰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기본적으로 소셜 믹스 거주 구역이 지닌 다대한 구조적 문제에 더한 임대 거주민에 대한 차별 때문이다. 과거 임대아파트 거주민에 대한 소위 ‘브랜드 아파트’ 거주민들의 차별은 이제 소셜 믹스 거주 구역 내부에서의 차별로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며칠 전에도 소셜 믹스 단지의 차별을 다룬 기획기사가 나왔다. 어떤 아파트 단지는 아예 임대 거주민의 차량 출입까지 통제한다는 기가 막힌 사실과 함께. 무엇이 문제였을까.

같은 아파트 단지라도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분양'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차별받는다. (출처: Joop, "Korean appartments", CC BY)
같은 아파트 단지라도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분양’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차별받는다. 분양이냐 임대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파트 계급사회의 도래. 21세기 대한민국의 ‘웃픈’ 현실. (출처: Joop, “Korean appartments”, CC BY)

사실 소셜 믹스 정책을 대한민국이 무대포로 도입한 것은 아니다. 임대주택 정책을 한국보다 더 먼저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영국 등지에서도 아직 사용되는 방법이다. 실질적으로 독일과 영국 등 유럽 선진국의 소셜 믹스 정책은 나라에 따라 좌초된 지역도 있고 유지된 지역도 있으나 거주구역 내부의 차별로 인해 해당 정책이 좌초했다는 연구는 아직 접해 보지 못했다. 물론 저소득층의 게토화로 인한 끔찍한 참사는 있었다. ’17년 6월에 있었던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가 그 예시다.

그렌펠 타워 화재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에서 모호하게 그 역할을 시장에 맡겼을 경우 어떠한 문제점이 보일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주요 선진국 대도시의 주택 가격이 상승 일로를 겪으면서 신용 창출 능력이 없는 노동자들은 그 수요공급의 현장에서 대책없이 탈락하기 시작했는데, 임대주택 정책은 위와 같이 시장에서 탈락한 도시 저소득층 노동자를 위한 것이었다. 한국의 경우 LH공사가 이들을 위한 역할을 맡고 있으나 내부적인 부채 문제와 거주민에 대한 차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그린펠타워 화재 사건('17년 6월 14일, 사망 72명, 실종 1명, 부상 74명). "같은 켄싱턴 지역이라도 부자들이 많이 사는 노팅힐 아파트라면 이런 사고가 발생했겠느냐" (그린펠타워 입주민)
그렌펠타워 화재 사건(’17년 6월 14일, 사망 72명, 실종 1명, 부상 74명). “같은 켄싱턴 지역이라도 부자들이 많이 사는 노팅힐 아파트라면 이런 사고가 발생했겠느냐” (그렌펠타워 입주민). 그렌펠타워는 런던시 구청 소유의 고층 임대 아파트로 ’16년까지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그 이후로도 스프링쿨러조차 없었다. 그리고 대다수 주민은 저소득층과 이민자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난 25일에는 국회 예결위 여성가족부 예산 심사에서 자유한국당 송언석(경북 김천) 의원의 한부모가정 돌보미 예산 삭감 주장으로 인해 잠시 예결위가 소란스러워졌다. 그는 국가가 시장에 맡겨야 할 부분을 자꾸 침해하다 보면 끝이 없을 거라며 사실상 전액 삭감 주장(61억 3,800만 원 중에서 61억 원을 감액하자)을 굽히지 않았고, 여가부 장관과 기재부 차관이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가부가 16억 원 삭감을 들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뭐 다 좋다. 시장은 늘 옳고, 정부는 늘 틀리니까. 송언석 의원은 재산이 많아서 돌보미 정도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그의 재산은 2017년 기준 35.4억원이다) 채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 돌보미 인력의 수급이 어느 정도는 되는지 알고 전액 삭감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일까. 돌보미 시장이 누구를 위한 시장인가. 그걸 그 잘난 ‘시장’ 에 맡겨서 한부모 가정 아동 몇을 구제할 수 있으리라 보는 건가. 지방 결손가정 아동에게는 지옥이 닥칠 것이다.

"한부모가정의 어려운 환경과 상황엔 동의하지만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곤란하다"는 소신(?)을 밝힌 송언석 의원. 위 그래프는 기획재정부 제2차관 시절에 신고한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내역. (그래프 출처: 뉴스타파) http://jaesan.newstapa.org/#up43152?keyword=%EC%86%A1%EC%96%B8%EC%84%9D
“한부모가정의 어려운 환경과 상황엔 동의하지만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곤란하다”는 소신(?)을 밝힌 송언석 의원. 위 그래프는 기획재정부 제2차관 시절에 신고한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내역. (그래프 출처: 뉴스타파)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누구의 관념을 내면화할 것인지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여러 차례 이야기한 바 있지만 시장을 믿는 것과 시장이 무조건 효율적이리라 믿는 것은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다.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면 그 메커니즘이 멀리서 별 문제도 없고 효율적으로 보이실 지 모르겠으나 조금만 렌즈의 도수를 올려 보면 그 사이사이에는 시장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수많은 울부짖음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임대 연한이 끝난 임대주택의 매수 잔금을 지급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거주자가 줄잡아 수천은 족히 넘을 것이지만, 사람들은 오르는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실수요자를 거론한다. 서울 아파트 수요가 죄다 역세권 새집에만 몰려 있는 상황에서 비트(…) 아니 시장에 몸을 맡긴들 난 여전히 신용창출이 가능한 실수요자가 한 줌도 안 되는 대기업 노동자 말고 누가 있을지 궁금하다. 그렇다고 정말 용산 미군기지를 임대아파트로 도배할 순 없는 것 아닌가.

잘 모르겠다. 모든 경제 정책은 트레이드-오프(trade off; 어느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경제 관계)가 존재한다. 카드수수료율을 인하하겠다고 했더니 당장 청와대에 불이라도 지를 것 같던 사람들이 ‘대통령님 고맙습니다’를 외치고, 반면에 대기업이 즐비할 카드사들은 이제 “총파업을 불사한 대정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신용카드

도대체 누구에게 포커스를 맞추어야 정답이 될 것인가? 없다. 우리나라는 고도성장 경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돈이라도 마음껏 쓰게 해 주나? 국회에서 당장 방해하지 않나. 이것도 저것도 싫으면 어쩔 수 없다. 박근혜 다시 모셔 와서 한 300년 앉히고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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