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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본 적 없는 도전 – [멈추지 마] 김건 인터뷰

“졸업 작품이라고 자취방 이야기만 하란 법은 없지 않나. 학생 감독의 작품도 SF와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 실험과 도전이 나오길 바란다. [멈추지 마]는 내 졸업 작품 제목이기도 하지만, 젊은 영화인의 도전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면서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다짐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멈추지 마

김건의 [멈추지 마]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의 장면 장면은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익숙하고, 장르적 관습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몇몇 빛나는 장면(인트로의 몰입감, 총격 장면의 동선 설계와 역동적인 편집 등)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전체적으로 평범하다. 하지만 그 평범함의 기준점은 수준급 상업영화의 그것이다.

그래서 김건의 [멈추지 마]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도전’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멈추지 마]는 극장 개봉 장편 상업영화에서나 볼만한 화면과 완성도 높은 CG를 보여준다. 단편이라는 길이를 빼고는 학생 감독이 만들었다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다.

[멈추지 마]는 웹툰 프리퀄과 3회로 나뉜 영화 본편(3회, 엔딩크레딧을 제외한 총 18분 48초)으로 구성됐다.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한 번 보시라.

[멈추지 마]를 감독한 김건을 만났다.

  • 2015년 8월 3일 오후
  • 석관동 영상원 인근 카페

– 자기소개 

김건.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에서 편집을 전공하는 학생이고, 졸업반이다.

– 인터뷰 약속을 잡을 때만 해도 후반 작업 중이었데, 드디어 끝났다.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네이버 TV캐스트에 공개했을 뿐이다. 댓글을 통해서 관객 반응을 접할 수는 있지만, 현장에서 직접 영화를 본 관객 모습을 볼 수 없는 점은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완전히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극장 버전으로 영화제에 출품하고, 직접 관객 반응을 접해야 마무리될 것 같다.

– 만족도를 점수로 매기면. 

영화 만들고, 상영하고, 관객 반응 접하고, 그런 종합적인 과정을 고려하면 100점 만점에 65점 정도다.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만족도는 따로 이야기해야 할 텐데 85점 정도? 작품 퀄리티에 대한 만족도가 85점이라는 라는 건 아니다. (웃음) 배우와 스태프의 노력을 생각하면 85점이라는 라는 거.

김건 아직 학생 그리고 영화감독

김건, 아직 학생 그리고 감독

[멈추지 마] 

 

– 대학생 졸업작품이 SF 액션물이다. 

학생일 때 다양한 장르에 도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흔히 학생 졸업작품은 자취방에서 대화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쉬운데, SF나 판타지 장르에도 많은 학생이 도전하면 좋겠다. 영화 제목을 [멈추지 마]로 정한 건 젊은 영화인의 실험과 도전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이기도 하다.

– 주변에서 우려가 컸을 것 같은데.  

“잘못하면 플래시맨 될 것 같은데?”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사실 “(학생이) 이런 걸 찍을 수 있겠어?” 라는 식의 우려가 많았다. 자칫 잘못하면 플래시맨 되지 않겠냐는 농담반 걱정도 들었다. (웃음) 시나리오에 담긴 스케일이나 묘사들이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 작품을 발표한 뒤에 학교 선생님 반응은. 

이승무 선생님께서 특히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완성된 작품을 보고 칭찬을 많이 하셨다. (웃음)

일본 3대 특수촬영물 시리즈 중 하나인 '슈퍼전대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인 '초신성 플래시맨' (1986)

일본 3대 특수촬영물 시리즈 중 하나인 ‘슈퍼전대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인 ‘초신성 플래시맨’ (1986)

– 제작비 부담도 컸을 것 같다. 따로 외부(정부 기금이나 지자체 학교 등) 지원은 없었나. 

텀블벅을 통한 소셜 펀딩 외에 따로 외부 지원은 받지 않았다.

 – 특별한 이유라도. 

위험부담이 커서. 작품 스케일 때문에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데, 외부 지원을 받고 부담을 지기 싫었다.

– 총 제작비는.

O,OOO만 원 들었다. (자세한 액수는 밝히길 원치 않았다. – 편집자) 알바 하면서 작업하다 보니 제작기간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다. 물론 대부분 제작비는 알바로 충당했다. 주로 편집과 후반 작업 알바하면서 돈을 벌었다.

– 왜 구체적인 제작비는 밝히고 싶지 않은지. 

우선 이 돈과 시간 동안 내가 뭐 했나 싶다. (웃음)

무엇보다 ‘큰 금액이다’ 정도로만 밝히고 싶은 이유는, 어쩌면 약 파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내 작품이 졸업작품의 몸집을 부풀린 특이 케이스로 언급되면 안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친구들 시나리오를 보면 주변에서 ‘학생 영화로는 너무 스케일이 큰 것 같아’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내가 바라는 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학생 감독들에게 내 작품이 ‘자극제’가 되면 좋겠다는 거다. 그런데 작품 외적으로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고 하면 자극은커녕 걸림돌이 되지 않겠나. 내 단편 중에 영화제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낸 작품은 [악어가 있어요]라는 작품이다. 총 제작비가 18만 원이다. 2일 만에 찍었다. 밴쿠버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던 작품인데, 액수는 큰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 감독들의 다양한 도전이 있으면 좋겠다.

– 제작비는 어디에 가장 많이 썼나. 

식비로 가장 많이 나갔다. 스태프 식비로 얼추 하루에 100만 원 가까이 들었다. (웃음)

– 프리퀄(본편의 이전 이야기)이 웹툰이다. 

[멈추지 마]는 처음부터 인터넷 공개를 생각했기 때문에 제작비상 영화에 다 담지 못한 부분을 만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웹툰 그려줄 작가를 찾는 게 문제였는데, 제작기간이 길어지면서, ‘김귀찮'(필명)을 만났다. 지금은 친구처럼 지낸다.

설득하기 위해 따로 예고편을 만들었다. 학생이고, 졸업작품을 찍고 있는데, 프리퀄을 웹툰으로 만들고 싶다고 솔직히 말했다. 귀찮이가 예고 편을 보고 승낙했다. 나도 귀찮이가 그린 [정리하는 날]이라는 단편 만화를 봤는데 참 좋았다. 그렇게 의기투합이 됐다.

– 프리퀄 웹툰이 좀 더 길었다면 좋았겠다 싶었는데. 

프리퀄에서 영화까지 극 중 시간 공백이 약 2년 정도다. 그래서 현재 프리퀄 분량에서 2편 정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희(여주인공)가 총을 굉장히 잘 쏘는데, 마고(로봇)에게 훈련받는 장면이랄지 그런 것들을 넣고 싶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지금 상태가 됐다.

– [멈추지 마]는 성장통과 통과의례에 관한 이야기다. 

기본적으로는 우리는 가족, 부모의 헌신으로 성장한다. 영화 만드는 일도 스태프, 배우, 학교에선 선생님과 학우들로부터 조금씩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그 성장은 언제 완성되는가. 자기 발로 스스로 걷기 시작하는 때는 언제인가. [멈추지 마]는 거기까지를 다룬다. 연희가 스스로 일어서는 그 순간까지. 그래서 헌신과 희생에서 멈춘 측면이 있다. 스스로 세상을 개척해야 하는 연희와 그 독립을 위해 헌신한 마고에서 스토리가 끝난다.

– 그래서인지 미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멈추지 마]를 장편으로 만들 계획은 있나.

만약 이 작품을 장편으로 하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자주 생각했다. 두 가지 구상이 있는데, 첫째는 지금 현재의 이야기를 좀 더 풍부하고 디테일하게 다루는 방식이고, 나머지 하나는 연희와 마고가 몇 년 뒤에 재회해 다시 이야기가 시작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구상이 실체화하려면, 오퍼(제작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웃음)

– 작품 첫 구상은. 

졸업작품을 준비해야 하는데 어떤 영화를 찍어야 할지 고민했다. 우선 총이 나오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거. 그리고 로봇이 나오면 좋겠다는 거. 끝으로 성장통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거. 이 세 가지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 총 제작기간은. 

일기장을 보니까 이런 걸 해야겠고 쓴 게 2011년이더라. 실제론 2012년 [포커페이스 걸]을 마무리하면서 구체적인 기획에 들어갔으니까. 총 3년 정도 걸렸다.

(참고로, 포커페이스 걸에는 ‘간신’의 임지연이 독특한 캐릭터의 문제 학생으로, ‘풍문으로 들었소’의 과외 선생으로 이름을 알린 허정도가 과학 선생님으로 등장하며, 김꽃비가 여주인공 김빛나리의 언니로 특별출연한다. 포커페이스 걸은 ‘공유의식권’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더불어 CG가 인상적인데, 김건은 이 영화의 각본, 연출과 더불어 편집과 CG를 담당했다. – 편집자)

–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는.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질문인가? 

악당 캐릭터의 행위에 더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우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왜 원한이 생겼을까. 그 행위의 이유를 좀 더 다루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한 측면이 있다. 애착이라기보다는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진다.

– 이 작품에 직접 영향을 미친 작품이 있나. 뤽 베송의 [마지막 전투]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뤽 베송이다. (웃음)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영화를 잘 본 것 같다.

"뤽 베송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다."

“뤽 베송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다.”

이번 작품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은 다양하다.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의 분위기랄지.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의 분위기를 참고했다.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의 분위기를 참고했다.

영화 속 로봇과 장비, 특히 무기의 기술 수준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총몽]이라는 만화를 참고하기도 하고. 로봇이나 무기가 첨단이라기보다는 좀 투박한 느낌이길 바랐다. 총 같은 경우도 플라스틱 첨단 소재 총이라기보다는 철과 나무로 만든 총의 느낌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총몽

– 뤽 베송이 좋은 이유.

신파랄까. 날 감정이 세게 나온다. 예를 들면, 레옹에서 마틸다가 레옹의 집으로 가서 벨을 누르는 장면. 킬러의 규칙으로 보면 마틸다를 집으로 들여보내면 안 되고, 마틸다 입장에선 절박함이 극도에 이르는 순간인데, 그런 감정을 정확하게 잡아낸다.

– 신파? 재밌는 해석이다. 

소재가 신파라는 게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날 것으로 증폭하는 방식이 신파적이다.

– 영화는 본질에서 시각 예술이지만, 소설처럼 이야기 구조를 가진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나서 어떤 순간, 몇몇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어떤 이야기를 마음속에 담기도 한다. 이 둘은 불가분이지만, 굳이 선택한다면, 감독으로서 어떤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이야기다. 이야기를 완성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관객은 똑똑하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더 불친절해도 된다. 지금의 영화 관객은 많은 영화 체험을 통해 훈련된 관객이다. 그래서 너무 잘 조립된 이야기보다는 살짝 불친절한 이야기에 오히려 흥미를 느낀다. 이야기를 완성하는 자체에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그런 참여 여지를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 하지만 이번 작품은 솔직히 이야기보다는 이미지나 비주얼 효과가 두드러지는 느낌이다. 

작품을 구상할 때 스토리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캐릭터를 먼저 생각하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는 영화마다 다르겠지만. 이번 작업은 캐릭터를 우선 생각하고, 그 캐릭터를 스토리가 따라간다고 생각했다. 이 캐릭터가 어떤 무드를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단편이다 보니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보기는 그 인물과 무드, 그걸 주된 목표로 삼은 측면이 있다.

– 처음 사살당하는 로봇 사냥꾼은 어린 여자다. 의도적인 설정 같은데. 

인물의 대칭성을 고려했다. 연희(여자 주인공)가 사살하는 사람도 동성인 젊은 여성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악당 캐릭터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아쉬움이 있긴 하다. 이미지로서는 설득되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악당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정당성을 구축하는 데는 좀 부족함이 있었다.

– 영화의 첫 장면은 로봇이 인간을 처형하는 정지 화면이다. 월남전을 대표하는 사진 중 하나인 에디 애덤스의 ‘사이공식 처형’을 의도적으로 빌린 것인가. 

그렇다.

애디 애덤스의 '사이공식 처형' (위) ㅣ [멈추지 마]의 첫 장면

애디 애덤스의 ‘사이공식 처형’ (1968) ㅣ [멈추지 마]의 첫 장면. 참고로 애덤스의 사진은 무고한 시민을 사살하는 것으로 오인돼 미국 내 반전 여론을 불러일으켰지만, 사실 무고한 시민인 것처럼 보였던 즉결처형의 희생자는 남베트남 경찰과 가족, 친척을 34명이나 죽이고 도랑에 내다버린 베트콩 암살부대 대장 응우옌반렘이었다. 즉결처형을 집행한 이는 베트남공화국 국가경찰 총수 응우옌옥로안이었는데, 그는 베트남이 패망한 뒤에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이 사진으로 인해 평생을 잔인한 살인마로 비난받으며 살아야 했고, 버지니아에서 죽었다. 작가인 애덤스는 이 사진을 찍은 걸 후회하고, 응우옌옥로안 장군과 그의 가족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

– 나레이션 외에는 등장인물의 대사가 별로(거의) 없다. 

인물들이 말을 많이 하면 문제가 생길 거로 생각했다. 시각적인 설득력이 필요한 작품이라서, 대사를 가급적 빼려고 노력했다.

– 주인공 마고의 섬세한 눈동자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대사가 없는 주인공 캐릭터라서 말 대신 눈동자를 통해 감정을 표현했다. 마고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부터 눈부터 CG로 가야지 생각했다. CG 파트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게 마고의 눈이었다.

디테일한 감정을 눈동자로 표현하는 주인공 마고

디테일한 감정을 눈동자로 표현하는 주인공 마고

– 엄청 노가다였을 것 같은데. 

인형 눈알 붙이는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작업했다(…)

– 영화에서 CG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크레딧에 ‘픽스’라는 CG팀이 나오는데. 

CG 작업을 위해 우리나라 CG팀 20곳 이상 만나 작업을 제안했지만, 모두 고사했다. 그러다가 ‘픽스’를 만났다. CG 작업에만 1년이 걸렸다. 그 작업이 없었다면, 영화의 설득력은 굉장히 떨어졌을 거다.

– 늑대가 나오는 장면, 특별한 의도가 있었나. 

영화에 동물을 넣는 걸 좋아한다. 정서를 만들어내고 싶은 건데, 장르적으로 서부영화 느낌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멈추지 마]는 롱테이크가 전혀 없고, 쇼트(shot; 하나로 이어진 최소 화면 단위)가 아주 짧다. 테오 앙겔로플로스(‘안개 속의 풍경’으로 유명한 감독)는 인위적으로 테이크를 자르는 행위를 경계하면서, 인물의 감정을 죽이는 행위라고까지 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정반대로 롱테이크는 ‘방관’이라고 생각한다. 극 중 인물의 감정을 편집(cut)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야말로 감독의 일이다. 나는 연출을 꿈꾸는 편집 전공 학생이다. 액션과 컷을 외치는 사람이 감독이다.

– [버드맨](2014, 아카데미 작품상)의 롱테이크는 훌륭하지 않나. 

롱테이크가 의미를 가지려면 고도의 계산이 전제되어야 한다. 버드맨의 초반 롱테이크와 인물의 동선은 훌륭하다. 그런 롱테이크라면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일반화할 수 없다. 학생 태가 아직 벗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영화를 배울 때 가장 효과적인 건 방법은 롱테이크가 아니라 쇼트를 어떻게 자르고, 연결할 것인가. 즉, 편집을 통해 영화 문법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멈추지 마]에서 가장 결정적 장면을 하나만 뽑자면. 감독이자 편집자로서.

액션이 지나가고, 로봇도 망가지고, 연희도 지친 상태에서 서로 마주 보면서 칼을 들고 뛰어나가는 장면. 2편의 마지막 장면.

멈추지 마 멈추지 마

– 그 장면 보면서 [내일을 향해 쏴라]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비슷할 것 같다. (웃음) 사실 캐릭터의 감정을 공부하기 위해 참고한 영화는 [보니 앤 클라이드](우리나라 개봉 제목: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였다.

내일을 향해 쏴라(원제: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조지 로이 힐, 1969)의 마지막 장면.

내일을 향해 쏴라(원제: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조지 로이 힐, 1969)의 마지막 장면.

– 로케이션도 힘들었을 것 같다. 

제작비가 부족해서 ‘미술이 되어 있는 공간’을 찾아야 했다. 정말 많이 돌아다녔다. 결국, 의정부에 있는 미군의 폐쇄된 기지와 인천 검단의 폐쇄된 공장을 현장으로 삼았다.

미군 기지는 한국에 있지만, 어딘가 좀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이 좋았고, 검단 공장은 비교적 현장 기계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런 폐공장은 고철상이 고철을 다 뜯어가는데. 하지만 두 공간 모두 후반 작업을 하는 동안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영화 속에서만 남아 있다. (웃음)

– 개인적으로 엔딩 음악이 좋더라. 

영화 속 배경음악과 엔딩 송이 있다. [포커페이스 걸]부터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홍대 인디듀오 ‘하즈’의 곡인데, 나와 감성이 잘 맞는다. 말도 잘 통하고. 자세한 요청은 없었다. 무겁지 않으면 된다. 좀 리플레시할 수 있게 팝 하게 가자고만 했다.

한국 영화

 

– 충무로 상업영화에도 참여했나. 

[멈추지 마] 촬영이 끝나고, 후반 작업 중에 충무로 스태프를 병행했다. 이중생활을 죽 해왔다. 최근에는 ‘장수상회’ 스크립트로 참여했다. 많이 배웠다.

김건 감독이 스크립트로 참여한 영화 [장수상회]

김건 감독이 스크립트로 참여한 영화 [장수상회]

– 충무로 스태프로 일했다고 해서 하는 말인데, 영화 현장에서 스태프 처우가 사회문제화된 지 오래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일종의 ‘팬보이’랄까, 오타쿠 기질이 있어서 그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진 않는다. 영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너무 좋다. 아직은 학생이라는 방패도 있고, 아직 결혼도 안 했고, 현장에서 스태프 처우 문제가 덜 와 닿는 편이다. 아직 상처받지 않은 열정이 있다고 해야 하나.

물론 선배들이 (현장 스태프의 처우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많다.

– 최근 한국 영화 어떻게 보나. 

평균적인 완성도는 높아진 것 같다. 하지만 점점 더 ‘기획 영화’가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이 들어왔고, 시스템이 완성되어 가니까 어느 정도 평균치가 됐구나 싶다. 하지만 뭔가 ‘뾰족한 게 없다’는 아쉬움은 있다. 평균적인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새로운 영화는 적다.

– 뾰족한 게 없다? 

외국은 그런 걸(거대 시스템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식상함) 깨뜨리는 시장이 있다. B급이나 독립영화 시장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나온다. 우리나라도 다양한 장르적 시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 한국은 다양한 장르 실험이 부족하다? 

봉준호 감독이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긴 하지만, 봉준호 감독 영화는 뭐랄까 여전히 먹물 냄새가 난달까? (웃음) 조금 눈높이를 낮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이든 관객이든 현실적인 무게감이 없으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재미로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나오면 좋겠다.

– 예를 들면. 

[어벤저스] 같은 영화? [다크나이트] 같은 영화도 좋지만, 오락에 충실한 영화들도 있어야 하지 않나.

– 우리나라 상업영화는 이미 대중성을 너무 강하게 고려하지 않나. 

영화를 제작하고 소비하는 시스템은 만들어졌는데, 기획 자체는 너무 제한적이다. 장르로 치면 SF나 판타지가 나왔으면 좋겠다.

– 한국 감독 중에는 누가 가장 좋은가.

강제규.

– 왜?

영화를 하기로 생각했을 때, 처음엔 애니메이션을 꿈꿨다. 영화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은 너무 한정적일 거라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그런 한계를 깨뜨린 첫 영화가 강제규 감독의 [쉬리]다.

‘아, 우리나라 영화도 할 수 있구나!’

우리 세대에게 그 첫 번째 영화는 쉬리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어색한 모습이 아니라 우리 몸에 딱 맞는 그런 우리 걸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쉬리는 참 좋다. 여전히 쉬리를 보면 공부할 게 많다.

쉬리 (강제규, 1999)

쉬리 (강제규, 1999)

초능력자 ㅣ 수퍼히어로 

 

– 최근 자극이 되는 영화나 감독은? 

매슈 본.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나잇값을 해야 하긴 하지만, 어느 한구석 철들지 않아야 영화를 하지 않나 싶다.

매슈 본의 영화들: 킥 애스( ), 엑스맨 퍼스트 클라스( ), 킹스맨( )

매슈 본의 영화들: 킥 애스, 엑스맨 퍼스트 클라스, 킹스맨

–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장르는?

장편 데뷔를 위해 ‘초능력물’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국제 테러조직과 싸운다는 이야기인데. 남북한의 정치적 상황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국제 테러리스트가 한국에서 활동한다면, 왜, 어떤 활동을 할까 구상 중이다.

– 한국에서 수퍼히어로물은 시도도 드물고, 성공한 예도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다양한 문화적 저변을 통해 생명력을 얻었던 다양한 캐릭터들과 축적된 유산이 있다. 그걸 상징하는 게 마블과 DC다. ‘마블 계열이냐, DC 계열이냐’라고 말할 때의 그 ‘계열’이라는 게 축적된 유산이고, 또 힘인 것 같다.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 있는 축적된 문화적 토대가 있고, 출판사가 그런 걸 만든다.

영화만 가지고는 부족하고, 그런 문화적 토대가 갖춰져야 영화적으로도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나라도 다양한 웹툰이 쌓이고 있고, 그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웹툰의 캐릭터들이 살아남는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크로니클(2012) 같은 영화는 어떤가. 

영화를 하고 싶은 학생들이 모이다 보니까 가장 많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라는 거다. 한 번은 선생님이 이렇게 질문했다.

“니네가 봤던 영화 중에 훔쳐오고 싶은 영화를 하나 뽑아라.”

그때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영화로는 더 테러 라이브(김병우, 2013) 같은 영화. 외국 영화로는 킥애스나 크로니클(조쉬 트랭크, 2012) 같은 영화는 정말 칼 들고 들어가서 뺏어오고 싶은 영화다. 그러니까 내가 만들어도 잘 만들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칼 들고 가서 훔쳐오고 싶은 영화, 크로니클과 더 테러 라이브

칼 들고 가서 훔쳐오고 싶은 영화, 크로니클과 더 테러 라이브

“고맙습니다”

 

– 엔딩 크레딧을 보면 스태프 규모가 만만찮다. 

규모로 보면 상업영화에 가깝다. 거의 무보수로 도와주셨다. 정말 최소한의 경비만 드렸다. 너무 고마운 분들이다.

–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화기애애했다. 모두 힘들었지만, 누구 눈치보면서 작업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현장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제작비 때문에 나는 좀 복잡미묘한 심정이었다.

– 특히 로봇 사냥꾼 리더(정발산)를 연기한 배우를 향해 개인적인 고마움을 표했는데. 

신재환 형. 한예종 연극원 졸업생이다. 영화 속 이미지와는 달리 평상시 모습은 완전 서글서글하고, 순박한 스타일이다. 바로 옆 동네에 산다. 고민이 있으면 찾아가서 상의하고, 후반 작업할 때도 자주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영화 속 로봇사냥꾼 리더 정발산을 연기한 배우 신재환. 실제로는 순박하고 따뜻한 동네 형.

영화 속 로봇사냥꾼 리더 정발산을 연기한 배우 신재환. 실제로는 순박하고 따뜻한 동네 형

– 언제 가장 힘이 됐나.

현장에 있었던 배우들 가운데 나이도 경력도 재환이 형이 가장 풍부했다. 신인급 배우들이 많아서 재환이 형이 중간에서 가교 구실을 많이 해주셨다. 배우로서 배우의 언어로 배우들과 소통해준달까. 재환이 형 덕분에 많은 부분에서 배우의 감정이 깊게 들어간 것 같다.

– 학교는. 

한예종은 좋은 학교다. 영화에 꿈꾸면 청년이라면 한예종에 도전해보면 좋겠다. 경쟁률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어려운 건 많다. 학교를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영화 찍는 것도 어렵고, 감독 되는 건 더 어렵다. 입학시험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다. 들어오면 ‘잘 배웠구나’ 피부로 느낄 수 있다.

– 피부로 느낀다?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다행이다. 해볼 만하다. 나도 해볼 만하다. 그런 느낌.

– 가장 고마운 선생님은. 

김양일 선생님. 편집 전공 선생님이다. 가장 많이 배웠고, 가장 깊이 고민할 수 있게 해주신 선생님.

김양일 교수 (출처: 영상원) http://goo.gl/QBfk4o

김양일 교수 (출처: 영상원)

– 작품을 마치면 여러 가지 감회를 느낄 텐데. 

기능적으로 보면, 이 작품을 발판으로 장편영화 감독이 되느냐가 중요할 텐데, 다른 방향에서 보면, 동료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 동족의 냄새가 사람들.

– 동족?

오타쿠스럽고, 이런 작업을 좋아하고, 어쨌든 SF 액션이라는 장르는 우리나라에선 마이너하니까. 직접 만들기까지 하는 사람은 드무니까. 그런 동료들이 생기면 좋겠다.

– 자신을 ‘팬보이’라고 했는데, 해외 유튜버들은 정말 상업영화에 버금가는 SF 영상을 만들어낸다. 

정말 그런 친구들이 있다. 부럽다. 이런 걸 찍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노하우도 공유하고, 고민도 나누고. 그런 게 부럽다.

100% 확신하는 유일한 순간 

 

– 일단 온라인 관객들의 반응을 접했는데. 

첫 느낌은 ‘일단 다행’. 생각보다 작품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구나 싶다. 사람들이 이걸 볼까, 그런 두려움과 의심이 있었다. 영화의 부족함이 두드러지지 않을까 걱정되고 불안이 컸다. 하지만 다행히도 좋게 봐주는 관객 반응이 훨씬 많아서 솔직히 다행이다 싶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SF 장르에 대한 도전을 신선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 시장에서도 작품을 봤을 텐데.

장면을 만들 줄 안다는 건 보여준 것 같다. 시장에서도 가능성을 가늠해보고 있을 것 같은데, 장면을 만들 수 있지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불확실해 할 것 같다. 장편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 유튜브로는 언제쯤 유통할 생각인가. 

네이버 TV캐스트 상황을 지켜보면서 판단할 생각이다.

– 앞으로 계획. 

일단 장편 시나리오를 올해 안으로 마무리하는 게 당면 과제다.

– 장편 데뷔는 언제쯤. 

몇 라운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심정적으로 35라운드(35살) 전까지(김건 감독은 현재 33살). 35라운드에 맞춰서 호흡을 잡고 있다.

35

– 좀 뜬금없지만, 영화 왜 하나. 

영화를 왜 하느냐고 물으면 어릴 적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참 무뚝뚝한 분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있는 건 참 불편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퇴근하고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와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볼 때면, 같은 장면에서 함께 웃고, 또 같은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게 너무 좋았다. 유원지 롤러코스터 같은 느낌이랄까. 함께 있는 것도 불편한 무뚝뚝한 아버지와 함께 웃고, 울고 그럴 수 있는 게 영화구나,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 김건에게 영화란?

그냥 직업이었으면 좋겠다. 돈이냐 작가주의냐 명예냐 그런 게 아니라. 가령, 농부에게 ‘농사 왜 짓냐? 명예냐, 돈이냐?’ 이렇게 물으면, ‘너는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질문을 하냐. 나 내일 일 나가려면 자야하니까, 너도 그만 가서 처 자라.’ 이러지 않을까?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와서 쉬고, 그런 평범한 것, 나에게 영화란 그런 평범한 직업이었으면 좋겠다.

김건

– 영화 하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내가 처음 예상했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배우, 촬영감독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걸, 아니 영화가 마치 그 자체로 생명인 것처럼, 어느 순간 내가 영화를 끌어가는 게 아니라 영화가 나를 끌고 갈 때. 그때 가장 행복하다. 또 편집자로서 영화가 자기 목소리를 찾아갈 때.

– ‘액션’ ‘컷’을 외칠 때 목소리가 굉장히 박력 있더라. 어떤 느낌인가?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액션”과 “컷”을 외칠 때 배우들이 영화라는 문을 열고 들어가고, 다시 나오는. 100% 확신. 그게 스태프와 배우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나중에 리테이크를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추호의 의심이 없다. 쾌감이 크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살면서 100% 확신하는 때는 “액션”과 “컷”을 외치는 순간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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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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