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 ]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 혹은 편견에 가려 숨겨진 이야기와 의미를 이상헌 박사의 ‘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box]
여행길, 기괴하면서도 편안해지는 정체불명의 음악을 들었다.
궁금했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요한 요한손이 작곡했다고 했다. 그는 우울한 음악으로 명성이 높다고 한다. 그의 우울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면, 나의 편안함은 무엇인지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정작 더 곤혹스러운 것은 이 음악의 제목이었다.
제목은 ‘포드란디아’(Fordlândia). ‘포드의 땅’이라는 뜻이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1920년대 말에 브라질 아마존에 만든 대규모 고무 농장이다.
포드의 땅, 포드란디아(Fordlândia)
성공에 도취되어 거침없었던 포드가 당시 속수무책이었던 것이 하나이었다. 유럽이 독점하고 있는 고무 가격이었다. 포드 자동차도 굴러가는 자동차인지라 바퀴가 필요했고, 타이어가 필요했다. 당시는 모두 천연고무를 사용했다.
포드는 고무 가격 독점에 결연히 저항하기로 했다. 그는 유통을 믿지 않고 오로지 생산만을 믿는 자. 그래서 브라질 출신의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해서 고무 농장을 할 만한 곳을 알아 봤다. 아마존 중심에 있는, 서울의 두 배쯤 되는 광대한 부지를 소개했다. 마음이 급한 포드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꿈대신 땀과 피가 넘친 ‘미국식 꿈의 농장’
고무도 ‘생산’하는 것이니, 식물학자가 아니라 엔지니어가 투입되었다. 일렬로 촘촘히 고무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미국식 꿈의 농장’을 만들었다. 이게 바로 ‘포드란디아’다.
우림 지역이라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에만 일하는 전통적인 노동방식이 아니라 ‘9 to 5’(아침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를 과감하게 도입했다. 일하다 쓰러졌다. 주택도 미국식으로 만들었고, 주말에는 미국식 춤과 노래를 가르쳤다. 음주와 흡연은 일절 금지했다. 이 엄격한 규칙을 회사가 내어 준 집에도 적용했다. 브라질 노동자에겐 목숨을 달라는 얘기였다.
또한 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걱정도 깊었던지라(?), 매일같이 햄버거가 나왔다. 노동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몇년 지나지 않아 폭력적인 분규가 생겼다. 꿈이 아니라 땀과 피가 넘쳤다.
병들고 죽어버린 고무나무
엔지니어가 설계하듯이 심은 고무나무가 잘 자랄 리가 없었다. 병들고 죽고 하니, 고무 생산은 변변치 않았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식물학자를 끌어들려 사태 분석을 했다. 식물학자들은 꿈 깨라고 했다. 포드란디아에서 고무 생산은 불가능하다고 판정했다.
포드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다. 다른 부지를 물색하고, 쓸만한 땅을 다시 구입해서 고무 나무를 다시 심었다. 1940년대에 들어 설 때 쯤에는, 고무 생산이 제법이었다. 드디어 꿈이 다시 보는 듯 했다.
하지만 한번 어긋난 일이 그리 쉬이 되진 않는다. 포드의 천연고무가 본격적으로 나오던 그 세상에는 인공고무가 나타나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포드란디아가 꿈꾸던 천연고무 농장의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났다. 무려 2억 달러에 달하는 돈도 같이 사라졌다.
유토피아는 인간 때문에 실패한다
유토피아는 이상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때문에 실패한다. 훗날 알려진다. 포드가 사들인 포드란디아는, 알고보니, 땅을 소개해 준 중개인 본인의 땅이었다. 쓸모없는 땅을 ‘천하의 포드’에게 어처구니 없는 가격에 팔아 넘긴 대사기극이었다.
60년 가까이 버려진 포드란디아는 오늘날 가끔 관광객만이 찾는, 잊혀진 땅이다. 포드는 자신의 유토피아인 포드란디아를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모름지기 유토피아가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