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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대학에서 만난 한국 대학원생들이 털어놓은 영어 고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어

영어 고민 패턴 

  1. 영어 중요하다. 영어 못하면 바보처럼 보인다. 잘해야겠다. 불끈~!
  2. 아는 것 만큼 표현하지 못한 것 같다. ‘여기 애들이 더 똑똑한 건 아닌 거 같은데’라고 자신을 다독인다.
  3. ‘네이티브’처럼 쓰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아.
  4. 썼던 표현 쓰고 또 쓰고를 반복한다. 가끔은 스스로 앵무새 같다.

고민 여자 사람 좌절 슬픔

실제 생활

  1. 과제할 때 말고는 거의 영어를 쓰지 않는다.
  2. 수업이 없는 금요일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영어로 말할 일이 거의 없다.
  3. 월요일 오전에 지도교수와 미팅 잡히면 영어 정말 안 된다.
  4. 솔직히 바빠 죽겠는데 따로 영어 공부를 언제 하나.
  5. 피드백 받아도 쳐다보기 괴로워 안 본다. 워드에서 교수가 준 ‘메모 및 변경내용’은 보이지 않게 하고, ‘최종본’ 보기로 해놓는다. 아, 깔끔한 최종본. 내가 쓴 거 같다.
  6. 학회 프로포절은 전에 썼던 틀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표현 다양화는 무슨.

쉿 조용 침묵

결국

  1. 영어에 조금 익숙해진다 싶으면 박사 졸업이다. (졸업하면 다행이다. ㅠ.ㅜ)
  2. 급히 글을 손보려면 네이티브에게 돈 주고 밑길 수밖에. 밥 먹을 돈도 없지만.
  3. 일단 문법적으로 정확한 글이라도 쓰자고 다짐하며 문법 체크기를 돌린다.
  4. 영어 자체에 투자할 시간은 확보하지 못하고 시간은 계속 간다. 실력이 늘지 않는 게 당연하다.
  5. 밤새워서 수정하다 보면 고치는 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교수나 커미티(committee; (논문 심사) 위원회)가 준 피드백이 어떤 흐름이고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까먹는다. 교수의 ‘최종 수정 요구’만 기다린다.
좀 익숙해질 만하니까 졸업.
좀 익숙해질 만하니까 졸업.

운이 나쁘면

  1. 지도교수가 이렇게 말한다: “넌 영어는 됐고 실험이나 열심히 해!”
  2. 뭘 고쳐야 할지 모르는데 모호한 언어로 이것저것 고치라는 교수들을 만난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숨은그림찾기가 된다. 도대체 뭘 고치라는 건지 제대로 말을 해줘야지!
  3. 영어 실력으로 사람을 1등, 2등 시민으로 가르는 인간들을 만난다. 속으로 한국말 실력으로 사람들을 갈라놓고 싶은 얄팍한 충동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래 봐야 그들에게 가는 피해는 0에 수렴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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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은

한방의 해법은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하루하루 좀 더 잘 쓰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그러나 그 와중에 다음과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하지만, ‘한방의 해법은 없다’는 깨달음이 핵심이다!

  1. 읽기와 쓰기를 의도적으로 연결하려 노력한다. 읽고 내용의 스키마(schema; 도식, 틀)만 머리에 남기는 것이 아니라, 괜찮은 표현들을 남기고, 이것을 다시 ‘실전에 투입하는’ 연습을 한다.
  2. 정말 좋아하는 학자의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따라 해 본다. 그 사람 따라 하다가 그 사람처럼 쓰다가 표절되면 어쩌느냐는 기우는 접어라. 내용이 다르다면 표절로 이어지진 않는다.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처럼 쓸 수 있다면 대성공이다.
  3.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을 만들어라. 그리고 남의 글 역시 읽을 기회를 만들어라. (학회 프로포절 심사 등의 기회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4. 교수들에게 피드백을 받았다면 왜 그런 피드백을 주었는지 다시 한 번 물어보라. 한 번 더 물어보는 과정을 쓰기의 일부로 생각해야 한다. 쪽 팔려도 참자.
  5. 언어 표현 자체만큼이나, 자신의 작문 과정과 글의 구조에 관한 지식에 관심을 가져 보라.
  6. 자기가 뭘 쓰려고 하는지 정말 알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자기 글의 요지를 5분간 친구에게 이야기해 보라.
  7. 필요하다면 한국어로 자기 아이디어를 정리해 보라. 한글로 정리 안 되는 아이디어는 영어로도 쓸 수 없다. 영어로 쓴다고 해도 매우 허접한 글이 될 가능성이 크다.
  8. 끊임없이 쓰라. 메모하고, 블로깅하고, 친구와 밥 먹고 리서치와 관련해 이야기하라. 물론 심리적으로 견딜 수 있을 때까지만. 연구 이야기하다가 인생 살기 싫어질 정도는 곤란하다.
쓰고 쓰고 또 쓰기
쓰고 쓰고 또 쓰기

대학에서 글쓰기의 중요성과 유학생이 언어에서 느끼는 열등감을 고려하면 학문 분야별로 제2 언어 작문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한참 부족하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도 영어가 참 어렵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려운 게 당연한 거라는 생각이 너무도 강하게 자리 잡았다. 내가 수십 년 간 쓴 모국어도 어려운데 전혀 다른 문화 구성원이 가진 사고, 신념, 담론의 체계와 얽혀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게 어찌 쉬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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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유학생의 한명으로 제가 아는 유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심지어 뉴욕 플러싱에 살았을 때를 생각해봐도 공감되진 않네요ㅡㅡ

  2. 그러게요! 저는 이공계열을 석사과정을 진행 중인데 말하고 쓰기를 할 일이 아주 많아서, 언어가 바뀌면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 글에도 공감이 갔는데, 궁금합니다!

  3. 슬프지만 엄청나게 공감되는 글입니다. 모국어가 아닌이상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게끔 노력하는 것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깨달음… 다시 일깨우고 갑니다..포기할 순 없으니까요ㅠ

  4. 2년차 유학생인데… 저는 모든 전자기기는 영어로 언어 설정해둡니다. 또한 어떤 컨텐츠를 쓰든 영어로 해두고, 알람 맞추고 핸드폰 음성명령 하는 것도 영어로 하지요. 그냥 생활을 영어에 맞추고 그렇게 사고하다보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하네요. 물론 꾸준한 단어, 표현 암기는 필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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