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실험과학자로 살면서 가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독서와 집필이 직업은 아니라는 뜻이다. 보통의 실험과학자들이 하는 독서와 집필이란 논문을 읽고 논문을 쓰는 일 이상일 수 없다. 따라서 실험과학자인 나의 인문학 독서와 집필은 과학자로서의 일상을 일부분 포기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주경야독이란 강단의 인문학자가 아니라 과학자인 나에게 어울릴 말이다.)
그런 선택압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효율적인 텍스트 읽기 방식을 고안해낼 수밖에 없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가 아니래야 아닐 수가 없다. 아래의 짧은 글은 실험과학자로 살면서 어쩌다 인문학적 글도 쓰게 된 사람의 검증되지 않은 텍스트 읽기 방식이다.[/box]
따로 바쁜 일이 있지 않다면, 하루 한 시간 정도 품을 내어 효율적으로 텍스트를 읽으려고 노력한다. 인생은 짧고, 인터넷은 미친 듯 텍스트를 양산해 내므로, 모든 텍스트를 읽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의미 있는 텍스트를 골라 읽고 싶다면, 몇 가지 능력은 실전으로 부딪히며 익혀야 한다.
지금부터 설명하는 것은 철저히 나의 방법이고, 일반화할 수도 없으며, 효율적이라는 보장도 없다. 실험과학자로 살면서 인문학자들과 토론하기 위해 터득한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험은 나눌수록 좋은 것. 내 방법을 통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시작: 양질의 텍스트를 배달시키는 법
피들리
피들리(feedly)라는 RSS 리더가 있다. 구글 리더(Google Reader)가 문을 닫으며 매우 많은 이용자가 옮겨간 곳이다. 인터넷 웹서핑 혹은 SNS 잉여질 중에 좋은 블로그나 뉴스피드, 신간 정보 등을 발견했을 때 여기에 등록해 놓으면 훗날 기억을 되짚어 보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내 경우 피들리를 하루 한 번 정도는 확인하려고 노력한다. 약 10~20분 내에 훑어 볼 수 있는 정도가 좋고, 며칠 미룰 경우를 대비해 피들리의 “must read” 메뉴를 이용해 꼭 읽어야 하는 사이트는 따로 분류해 둔다. 이렇게 읽으면서 나중에 글에 써먹거나 활용할 여지가 있는 포스팅과 뉴스들은 포켓(pocket)으로 던지고, SNS에서 공유할 만한 글을 발견하면 코멘트와 함께 공유한다.
펍메드와 멘델레이
나의 본질은 초파리 행동유전학자다. 과학자들은 매일매일 출판되는 자신의 전공분야 논문들의 흐름을 무슨 수를 쓰든 쫓아가야만 한다. 그래야 남이 한 연구를 뒷북치고 하거나 아이디어에서 뒤처지지 않기 때문이다. 생물학자들은 대부분 펍메드(PubMed)라는 곳에서 서식한다. 피들리에 일상과 인문, 과학이 섞여 들어온다면 펍메드로는 철저히 내 전공과 관련된 논문들만 배달되어 온다.
펍메드는 이메일 알림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최대한 포함할 수 있는 적당한 키워드로 하루 한 번 배달되도록 지정해 둔다. 흥미로운 논문은 펍메드에서 제공하는 “favorite”에도 저장하고, 그때 그때 PDF로 저장해 둔다. PDF는 폴더 하나로 몰아 두고, 대신 맥의 파일 태깅 기능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해 둔다. 시간이 좀 더 남으면 멘델레이(Mendeley; 학술자료 관리 서비스)로 아카이빙한다. 멘델레이를 이용한 ‘효율적인 학술자료 정리’는 이 글 하단 박스를 참고하시라.
구글 스칼라
과학자에게 인문사회과학의 출발은 과학사, 과학철학, 그리고 과학사회학이다. 나는 과학학이라 불리는 학문을 통해 인문학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과학학을 전공인 초파리처럼 열심히 읽어댈 수는 없다. 결국, 이 분야는 명성이라는 권위에 기대는 편이다. 즉, 관심 있는 학자들의 구글 스칼라(google scholar) 페이지 알림을 이용한다. 이렇게만 해둬도 과학철학, 과학사, 과학사회학 쪽에서 내가 일독할 만한 흐름은 대충 잡힌다. 역시 중요해 보이는 텍스트나 논문들은 포켓에 던져두거나, 멘델레이로 정리한다.
그리고 좋은 온라인 친구
신문을 따로 읽거나, 커뮤니티 페이지에 들어가는 등의 일은 해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 같다. 신문기사는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정도를 읽고, 나머지 뉴스들도 마찬가지다. 최신 뉴스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공부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어차피 중요한 뉴스들은 페이스북의 지인들에 의해 알려지게 되어 있다. 좋은 뉴스를 보려면. 친구를 잘 사귀면 된다.
능력 하나: 좋은 텍스트를 분별하는 법
양서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강요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절반은 취향이고, 절반은 정도(正道)를 따르면 된다. 취향은 설명이 불필요하고, 정도를 따른다 함은 기본적인 글쓰기의 양식을 지킨 글들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본적인 글쓰기의 양식이 없다면 적어도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한다. 다른 곳에서도 읽을 수 있는 글은 배제하고, 짜깁기에 불과한 글들을 가려내고, 인문학적 충실함을 지키는 글 등등의 기준들을 만들어 나가면 된다.
결과는 훗날 읽은 텍스트들로 글을 쓸 때 평가될 것이다. 내가 참고한 글들은 내가 쓰는 글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독자들에게 알려지기 때문이다. 그 평가가 내가 읽은 글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다.
능력 둘: 텍스트에 따라 읽는 방법을 달리하는 법
웬만한 텍스트는 제목으로 분별하고, 집중할 텍스트는 속독으로 선별해야 한다. 모든 텍스트에 같은 공을 들이는 일은 비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신문 기사를 정독하는 건 드문 일이다. 꼭 읽어야 할 논문은 포켓에 태깅한 후 저장해 두면 된다. 하루 중 읽기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자신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나 같은 경우, 저술과 논문을 위한 텍스트 읽기가 최우선이다. 나머지는 시간이 날 때 읽거나 잘 분류해 나중에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저장만 해둔다.
끝: 읽고 적절히 기억하는 법
읽은 것을 잘 기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다독해도 다 잊어버리거나 적절할 때 읽었던 것을 꺼내 쓸 수 없다면 읽으나 마나다. 읽은 것을 잘 조직화해 기억하고, 꺼내 쓰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듣는데, 그 비결은 읽을 때 아예 ‘쓰거나 말할 필요’를 생각하고 읽는 것이다. 팟캐스트를 들을 때도 들은 것을 써먹을 상상을 하며 들으면 좋다.
그렇게 맥락을 주고 기억한 지식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기억한 것들을 저술이든 강연이든 발표든 어떤 방식으로든 ‘출력’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내가 무엇을 공부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나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들의 수고로 읽은 것에 보답하는 방식은 바로 출력이다.
마지막으로, 읽으면서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과감히 코멘트를 달아 SNS에 공유하라. SNS가 싫으면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지인들에게라도 공유하라. 받았으면 주어야 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주다 보면 텍스트에 맥락이 생겨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댓글이나 리플로 해당 텍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잘 잊어버리지 않게 된다.
만약 당신이 진지하게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커피 한 잔과 함께 고전의 향기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필요한 정보가 아닐 수 있다. 실험과학자의 짧은 가랑이로 인문학자들의 긴 다리를 쫓아가다 보니 고안해낸 ‘실전 인문학 공부법’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읽고 쓰는 것이 직업이 아니라 그렇다. 논문 쓰러 간다.
[divide style=”2″]
[box type=”info” head=”효율적인 자료정리에 목매는 당신에게”]
학술논문 정리
학술논문 정리는 멘델레이라는 완벽한 프로그램이 있으니 걱정할 게 없다. 멘델레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단 영어로 된 PDF 논문들은 그냥 프로그램에 던져넣으면 알아서 서지정보를 찾아내고, 한글로 된 경우라면 RIS나 BibTeX 등의 포맷으로 내려받은 서지정보를 던져넣고 나중에 PDF 파일을 연결해주면 된다. 그렇게 정리를 해두면 논문을 쓸 때 서지정보를 불러오기가 매우 쉬워진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서지정리 프로그램들을 사용할 텐데, 개인적으로 영어논문을 쓸 때만 사용하는 엔드노트(EndNote)는 한글은 아예 지원을 안 하니 정말 논문용인 거고, 맥용 최강이라는 페이퍼스(papers)나 최근 나온 리드큐브(ReadCube)는 사용해 본 결과 무겁기만 하고 한글지원도 꽝이다. 그냥 멘델레이가 답이다.
한글 논문을 제공하는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나 디비피아(DBpia) 혹은 한국학술정보 원문검색시스템(KISS) 등은 모두 RIS나 엔드노트 포맷의 서지정보를 제공하는데, 그걸 멘델레이에 던져넣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품을 들여 정리해두면 나중에 책을 쓸 때 정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느낄 것이다.
인터넷 공부 거리 정리
그 외에 브라우저에서 얻은 공부 거리들을 정리하는 건 여러 경로를 거쳐왔는데, 최근엔 그냥 에버노트(Evernote) 웹 클리퍼를 사용하고 있었다. 근데 문제는 피들리에서 읽은 RSS를 바로 에버노트로 저장하려면 유료로 전환해야 한다거나 아이폰에서 바로 에버노트로 저장하기가 까다로워 일단 이메일로 보낸 다음 그걸 사파리로 옮겼다가 클리핑을 하는 식이었다. 귀찮지만 사용할 만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포켓을 사용하면서 이런 귀찮은 작업들이 사라졌다. 아이폰, 맥 어디서든 그냥 버튼 하나만 누르면 일단 내 포켓 계정으로 던져넣을 수 있다. 던지면서 원하는 태그를 달아놓으면 나중에 찾기도 쉽다. 그리고 이렇게 던진 텍스트들을 저녁 즈음에 주욱 훑어보면서 원하는 텍스트들만 에버노트로 옮기는 것이 앱 안에서 가능하다.
덕분에 쓸데없이 브라우저에 띄워놓는 창들이 확 줄었다. 일단 던지고 일과를 마치고 정리한다. RSS 리더에서 오는 정보들 정리도 매우 쉬워졌다. 피들리에서 포켓으로 바로 던지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버노트가 조금 무거운 느낌이라면 포켓은 가볍고 내 쓸모에 딱 맞는 앱이다.
마지막 꿀팁: 역시 구글 스칼라
구글 스칼라를 찬양하자. 유료 논문도 PDF로 제공하는 경우가 흔하다. 최근엔 리서치게이트(ResearchGate) 등을 통해 저자가 자신의 논문을 직접 올려두는 경우가 흔하고, 구글은 그걸 링크로 표시해 준다.
그리고 북즈(bookzz).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고, 진지하게 공부하고자 하면 불가능할 게 없는 세상이다. 공부하는 데 돈 안 드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 꿀팁
그리고 진짜 마지막 꿀팁. 영어로 된 논문들은 구글링으로 대부분 구할 수 있지만, 한글로 된 논문들은 그렇지 않다. 이럴 땐 논문 서지정보를 찾아 해당 학회 홈페이지나 교수 홈페이지에 직접 찾아들어가보라. 의외로 무료로 제공하는 논문들이 수두룩하다. 구글 검색에 노출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끝.[/box]
2 댓글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