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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강사다: 에필로그 – 내 자리로 돌아가기

지방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허범욱(HUR) 作, 르네 마그리트 – The Son of Man(1946) 패러디

18. 수료 그리고 대학원생의 몸

2010년 봄, 나는 석사 학위 논문을 인준 받고, 박사 과정에 진입했다. 4학기, 총 2년간의 분투였다. 내 모습은 대학원에 발을 디뎠던 2008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거울을 보면 그간 무슨 일이 있었지 싶을 만큼 낯선 인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앳된 외모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우선 탈모, 학위 논문을 쓰며 머리를 쥐어뜯었더니 눈에 띄게 머리숱이 줄어들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머리카락을 움켜 뜯는 오랜 버릇이 있었는데, 밤새 논문을 쓰고 일어나면 책상 여기저기에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지금도 내가 많이 참조한 논문이나 책들의 여러 페이지에서 내 머리카락이 책갈피를 대신하고 있다. 머리숱이 많은 편이어서 아직 그다지 티가 나지는 않지만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쯤엔 어떤 모습이 될지 두렵다.

연구실을 청소하다 보면 논문을 쓰는 사람들의 자리에서는 예외 없이 쓰레받기를 가득 채울 만큼의 머리카락이 나온다. 학회에 가보면 30대 젊은 연구자 중 대머리인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처음에 나는 그들을 안쓰럽게 바라보았으나 이제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기에 저렇게 머리가 다 빠졌지, 하고 존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비만, 라면이나 샌드위치 같은 것을 먹고 정신없이 쓰러져 자고 일어나는 일상이 반복되니 점점 살이 붙었다. 간짬뽕 두 개를 끓여 계란과 참치를 풀고 찬밥을 한 공기 양껏 덜어 쓱쓱 비벼 먹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한 야식이었다. 자주 밤을 새우니 얼굴은 핼쑥해져 가고 배가 나왔다. 나중에는 맞는 바지가 없어서 아예 ‘츄리닝’을 입고 다녔다. 지금은 만성이 된 과민성 대장염이 이때 시작됐고,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졌다. 심할 때는 하루에 10번 이상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퍼블릭도메인 몸무게 저울 비만

연구소에서 밤을 새우다 보면 화장실에 가는 일이 가장 신경 쓰였다. 새벽 4시에 불 꺼진 복도를 더듬어 지나며 홀로 화장실에 가는 길은 매일 여고괴담이었다. 해가 뜰 때까지 생리 현상을 참았더니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증상이 나타났다. 검색해 보니 중년 남성들에게 나타나는 어떤 기능 감퇴라고 했다. 화장실 딸린 연구실을 갖는 것이 소원이라고 노트 한 귀퉁이에 적기도 했는데, 그때는 정말이지 진지했다.

어느 날은 허리가 너무 아팠다. 허벅지부터 발끝까지가 심하게 저려 왔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추간판이 두 개쯤 죽었다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정말 디스크 두 부분이 까맣게 변색되어 있었다.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 걸린 허리디스크라고 했다. 의사가 혼잣말로 “이 정도면 군대 4급으로 빠질 텐데”라고 말하더라. 불과 몇 년 전에 현역 1급으로 군대에 다녀온 몸이 대학원 4학기 만에 보충역 4급으로 바뀌었다. 내가 운동선수도 아니고 공부하며 이렇게 몸이 망가질 수도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석사 과정생 때는 밤을 새우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박사 과정생 때는 그것이 조금 어려워졌다. 그리고 지금은 웬만해서는 밤 새우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만큼 체력이 떨어진 것이다. 몸이 망가진 만큼 좋은 성과를 많이 내었는가 생각해 보면 내 몸에 그저 미안하다.

학위논문을 인준받을 때쯤 많은 대학원생이 망가진 자신의 몸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등산이나 헬스를 시작하기도 하고, 드물게는 유도나 권투 같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처음에는 모두 즐겁게 시작하지만, 반 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대개 그만둔다. 그것을 온전히 즐길만한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한 취미조차 즐기지 못하는 연구자들, 힘내요, 우리.

사람 우정 석양

19. 안녕, 나의 모든 것.

어느 추운 겨울날, 지도교수와의 술자리가 끝난 후 집에 돌아오다가 문득 정이현의 소설 [안녕 내 모든 것]이 떠올라, 펑펑 울었다. 읽은 지 오래되어 주인공의 이름이 세희인지 세미인지도 어렴풋한 그 책의 짧은 제목이 너무나 아프게 가슴을 헤집었다.

‘연구자’라는 알량하고 모호한 이 한 단어의 인간이 되기 위해 무엇과 작별하며 살아왔는가, 생각하니 비로소 한없이 부끄러웠다.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안녕 나의 모든 것, 하고 용서를 빌며 너의 손을 잡을 것이고 안녕히 나의 모든 것, 하며 아카데미의 삶과 온전히 이별을 고할 것이다.

2014년 9월 어느 날, 커뮤니티 사이트 ‘오늘의유머’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오늘 19번째 마지막 에피소드를 쓴다. 어느덧 2014년의 마지막 날이다. 내 삶이 제대로 된 것인가 의심스러워 한 번 돌아보고자 올린 글이 생각보다 멀리까지 왔다. 생각지 못한 과분한 관심을 받아 부끄럽다. 수백 개의 댓글을 하나하나 곱씹어 읽으며 큰 힘을 얻었기에,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이 글이 처음 쓰인 시점은 슬로우뉴스 연재 및 발행 시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 편집자)

대학이라는 괴물 

그간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의 삶은 언론을 통해 몇 차례 단편적으로 다뤄졌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다. 죽음(자살)으로 자신의 삶을 항변한 선배 강사들도 있었으나, 잠시 사회적 관심을 받는 데 그쳤다. 이 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학’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괴물이다. 대학원생-시간강사로 이어지는 착취의 구조는 이미 공고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가속해 온 우리 사회의 전반에 걸친 문제다.

그런데 대학은 스스로 숭고함과 신성함이라는 환상을 덧입히는 동시에 그 어느 집단보다도 기민하게 자본의 논리에 영합해 왔다. 흔히 대학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대학은 그 어느 기업보다도 노동권의 치외법권 지대에 있다. 동네 편의점도 노동청의 눈치를 보며 최저 시급과 주휴수당을 챙겨주는 형편임을 고려하면, 어떤 면에서 대학은 편의점만도 못하다.

한 발 더 나아갈 용기

“지방시”

어느 후배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이렇게 줄여 말했다. 나는 가볍게 화답했다.

“명품 같고 좋네.”

지방시를 쓰며 나는 대학이 가진 맨얼굴을 한 번쯤 내어 보이고자 했다. 동정이 아닌 공감을 끌어내고 싶었고, 허울 좋은 ‘교수님’이나 ‘연구자’가 아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사회인’이자 ‘노동자’로 인정받고 싶었다. 내부 고발이나 처우개선 요구와 같이 거창하거나 감당하지 못할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이렇게 살아가는 한 세대가 있음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러면 한 발 더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다 

만일 내가 지방대 출신 강사가 아니었더라면, 조금은 더 많은 사람이 대학의 현실에 공감했을지 모른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다. 혹은 그 이하의 인간이다. 투고한 논문들의 인용지수가 그다지 높은 편도 아니다. 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훌륭한 논문을 쓰는 좋은 대학의 연구자들이 너무나 많다. ‘어떻게 이런 연구를 했지’ 하고 감탄하거나 나는 언제쯤 이렇게 쓸 수 있을까, 하고 패배감을 느끼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읽고, 쓰고, 다시 읽고, 쓴다. 나는 성골, 엘리트, 천재, 그런 뛰어난 인간은 못되지마는 오늘도 버티어 냈다. 평범한 연구자로서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스스로 당당하다면 그것으로 내일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을 증명해 나가려 한다.

지방시의 이야기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모두에게 부디 건투를, 그리고 나에게도 부디, 건투를.

20. 에필로그: 내 자리로 돌아가기

글이 화제가 되면서 2014년 연말에는 한 일간지 기자와 만나 1시간 정도 인터뷰했다. 인터뷰 제의에 한참을 망설였지만, 나 스스로 마무리를 확실히 해두고 싶은 부분이 있어 그 기회로 삼고자 어렵게 응했다.

앞선 글에서 정리했지만, 다시 확인해두고 싶다.

  1. [나는 시간강사다]는 고발이나 투정이라기보다, 내 세대성의 기록이다. [미생]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모두 기성세대의 ‘힐링’이었다. 정작 내 세대는 온전히 아픔을 감내해 왔고, 힘들다고 말할 기회조차 가지기 쉽지 않았다. 내가 기록한 한 대학원생의 청춘이 내 세대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길 바랐다.

  2.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의 삶이 함께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이자 ‘사회인’으로 비추어질 수 있을 것을 기대했다. 대학에서는 ‘노동자’로, 사회에서는 ‘사회인’으로 살아갈 어떤 근거를 스스로 마련하고자 했다.

  3. 그에 더해 글을 쓰며 나는 학과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을 전에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를 아프게 한 것은 주변이 아닌 대학이 만들어낸 구조 그 자체에 있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내 처지와 생계에 대해 도움을 줄 만큼 여유 있는 노동자는 대학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을’로서 살아간다. 원망도, 아쉬움도 모두 버리고, 먼저 손을 내미는 다정한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살갑게 행동할 수 있는 성격의 인간이 아닌지라 우선 마음만이라도…)

  4. 마지막으로, ‘내가 이후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 나의 과거를 미화하거나 추억하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썼다.

인터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자가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실 생각이 있나요?”

“다시 평범한 지방대 시간강사로 돌아갈 거예요.”

[나는 시간강사다] 이전과 이후의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내 주변의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따뜻하게 대하며, 조금 더 열심히 강의하고 연구하려 한다. 그러면 모두의 의식에 내면화된 어떤 ‘괴물’이 균열을 보일 때, 함께 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동료 연구자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를, 다음 세대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기를, 그리고 모든 청춘이 더 는 아픔을 강요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으니까.

모두 아프지 않기를.

그리고 이처럼 아팠음을 모두 기억하고 바꿔 나갈 수 있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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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309동 1201호
초대필자. 대학강사

지방대 시간강사, 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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