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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12: 사적 공간과 ‘Excuse me’의 이해

인지언어학(Cognitive Linguistics)과 언어교육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인지언어학적 세계관과 방법론이 언어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가르치는 데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영어교육 관계자 그리고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필자)

(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목차

언어현상을 텍스트의 수준을 넘어 다양한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요인들과 연관 지어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인지언어학적 언어 이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영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Excuse me.’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적 공간과 'Excuse me'의 이해

“Excuse me.”의 사회학

미국에 가면 여기저기서 듣게 되는 말 중에 “Excuse me.”가 있습니다. 수퍼마켓의 진열대 앞에 서 있는데 물건과 저 사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Excuse me.” 라고 외칩니다. 좁은 길 저쪽에서 이쪽을 향해 빠르게 걸어오는 사람도 “Excuse me.” 라고 말합니다. 버스 탈 때도, 음식점에서 줄을 서 있을 때도 심심찮게 이 표현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실례되는 행동을 할 거니까) 나를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Excuse me.”가 문자 그대로 위의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통 상대방의 주의를 환기하고 충돌을 피하려는 의도로 자주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정말 미안하다기보다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접근하면, 다시 말해, 누군가가 자신만의 개인적인 공간 안에 ‘침투하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표현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때로는 끝 부분을 급격하게 올려 “지금 뭐하시는 거죠?”라는 느낌을 전달하기도 하지요.

문화와 사적 공간(personal space)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문화연구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사적 공간(personal space)에 관한 이론을 정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적 공간은 한 사람이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말하는데, 문화마다 또 개인별로 차이가 커서 그 특성을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홀의 연구를 따르면 서양인들은 평균적으로 좌우로 60cm, 시선이 가는 앞쪽으로 70cm, 뒤로는 40cm 남짓 정도가 개인 공간을 이룬다고 합니다.

출처: 위키백과 (WebHamster, CC BY-SA 3.0)

출처: 위키백과 (WebHamster, CC BY-SA 3.0)

물론 이 또한 어떤 활동을 위한 공간인가,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입니다. 열차나 버스, 체육관, 건물 엘리베이터 등 장소에 따라서, 또 같이하는 사람이 타인이냐 가족 혹은 연인인지에 따라서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는 분명 다를 테니까요.

미국인들이 “Excuse me.”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상황에서 독일인들이나 스페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실제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특별히 경고할 이유도, 미안해할 이유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독일에 가서 “Entschuldigung!”(미안하다는 뜻의 독일어 표현)을 연발하면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는 “Excuse me.”가 당연히 나와야 할 상황에서 입을 닫고 있으면 개념 없는 사람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캐나다인들은 “Excuse me.”에 “Sorry.”까지 더해 미국인들보다 더 자주 ‘실례합니다’를 외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Excuse me.”를 자주 사용하는 미국인들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보다 더 공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보다는 사적 공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언어 습관으로 표출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하겠지요.

close talker: 들이대고 말하는 사람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사인필드] (Seinfeld)는 “close talker”라는 말을 널리 퍼뜨렸는데, ‘아무에게나 얼굴을 들이대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극 중 애런(Aaron)이라는 인물이 바로 ‘close talker’인데요, 한 에피소드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코앞에까지 다가가서 말하는 장면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합니다.

에드워드 홀이 개념화한 개인 공간을 깡그리 무시하는 역할로 시청자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죠. 물론 보고 즐길 수 있다고 해서 정말로 유쾌한 일은 아닐 겁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기분이 나빠져 바로 자리를 뜨고 싶을 테니까요.

다음은 사인필드(Seinfeld)의 “Close Talker” 에피소드 한 장면입니다.

사적 공간은 문화권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순수히 문화적인 산물로만 볼 수 없다는 관점 또한 존재합니다. 진화적이고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도 개인 공간의 의미를 조명할 수 있다는 견해죠. 대표적으로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실린 한 연구는 SM이라는 환자의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합니다.

그녀는 우르바흐-비테 증후군(Urbach-Wiethe Disease)라는 특이질환으로 측두엽에 석회화가 진행되어 소뇌 편도(amygdala)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연구자들에게 편안한 거리를 유지하는 한 최대한 가까이 오라’는 주문을 받은 SM은 실제로 한 연구자의 코에 닿을 때까지 다가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제가 한 학생에게 “이리 가까이 와봐.”라고 말했는데, 제 코와 학생의 코가 충돌했다면 정말 당황스러울 것 같습니다.)

자, 이제부터 “Excuse me.”와 같은 표현을 가르칠 때 단순히 한국어 ‘실례합니다’의 영어 표현으로 가르치기보다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또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이 언어습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회로 삼는 것은 어떨까요? 언어를 배우는 일이 좀 더 입체적이며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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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성우
초대필자, 응용언어학자

성찰과 소통, 성장의 언어 교육을 꿈꾸는 리터러시 연구자입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라는 관점에서 영어교육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산문집 [어머니와 나]를 썼고, ‘영어논문쓰기 특강’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작성 기사 수 : 7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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