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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버킷 챌린지: 유쾌함 너머, 잔인한 현실도 보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계기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마음속 부채를 안고 있던 사람들에게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무척 매력적인 대안인 것으로 보인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란?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 얼음물 바가지 도전)는 루게릭병 환자 후원을 위한 캠페인 이벤트입니다. 릴레이식으로 진행하는데, 참가자는 동영상을 통해 이 도전을 받을 세 명을 지목하고, 이들에게 이 도전을 받아 얼음물을 뒤집어 쓰든지 100달러를 미국 루게릭병협회에 기부하든지 선택하도록 유도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참가자들은 얼음물을 뒤집어쓰면서 동시에 기부도 하죠. 이 캠페인은 2014년 여름에 시작했지만, 소셜 서비스를 통해 급속히 확산해 어느새 큰 ‘유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리오넬 메시,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등 세계적 유명인이 얼음물을 뒤집어쓰고도 기부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유재석, 정은지 등이 이 캠페인에 참여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얼음물 바가지 도전자로 지목됐지만,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대신에 100달러를 기부하는 방식으로 응답했습니다. (위키백과,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서 발췌 정리)

아이스 버킷 챌린지

이렇게 집단으로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하기도 한다. 미국 웨스트 윈저 경찰서 경찰관들의 모습. (사진: slgckgc, CC BY)

하지만 진정으로 루게릭병 환자를 걱정한다면 얼음물 바가지가 아니라 의료민영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게 순서다. 기부가 약자를 도울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기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부자가 시혜로서 베푸는 기부가 아니라 생산적 복지와 사회 안전망이다.

기부와 사회 안전망은 전혀 별개다. 혹여라도 아이스 버킷 챌린지와 같은 캠페인이 제도로서의 사회 안전망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완벽한 착각이고, 착시 효과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그 착각에서 ‘깨몽’하시라.

얼음물(이벤트)과 사회 안전망(제도)은 별개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루게릭병 환자를 위한 국가의료보험이 아니다. 루게릭병협회는 루게릭병에 관한 연구와 의료정책을 담당하는 사설단체다. 이 단체의 활동이 루게릭병 치료에 도움을 주고, 루게릭병이라는 ‘희소병’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내 공론화한 건 훌륭한 성과다. 칭찬하고, 본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미국 사회 전체의 의료적 현실, 그 모순과는 전혀 별개의 사건이다. 이 두 현실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하거나 치유할 수 있는 사실(사건)이 아니다.

미국은 사실 사회안전망-의료보험 시스템을 처음부터 싹 다 뜯어고쳐야 할 판이다. 이 냉정한 현실을 상징하는 게 오바마케어(미국 건강보험개혁법안)다. 미국에서 오바마케어가 얼마나 큰 저항을 겪었는지는 ‘미국 연방정부 폐쇄’ 사건이 그 심각성을 극명하게 웅변한다. 2010년 기준으로 한국 인구수만큼인 4천9백만 명이 무보험자인 사회, 2007년 기준 파산신청 원인의 62.7%가 의료비 지출인 나라가 미국이다. (오바마케어와 미국 연방정부 폐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 참고.)

오마바케어 지지 피켓을 든 시민들

오바마케어 지지 피켓을 든 시민들 (사진: Will O’Neill, CC BY)

아이스 버킷 이벤트를 통해 관심을 끌고 기부금이 모이는 것 자체는 물론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재밌고, 유쾌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네! 하하” 식으로 재미있어하고 칭찬하다가 끝낼 텐가. 그 이벤트의 유쾌함에만 매몰하다가 혹여 그런 방향이면 충분하다고 그릇된 현실 인식에 빠질 가능성, 정말 우리에게 전혀 없나? 사회 안전망 개혁을 시혜적 복지 이벤트와 혼동하면, 정작 국가 전체의 의료 시스템에 관한 복지는 물 건너간다.

하다못해 복지 이벤트로서조차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한국에서 사회적 상징으로서 사회 안전망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는 효과를 이끌어 낼 조짐은 아직 없다. 오히려 일부 기업은 발 빠르게 자신들의 기업 이미지 홍보에 얼음물 이벤트를 껍데기로만 활용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혹시라도 삼성 이재용이나 신세계 정용진부터 얼음물을 뒤집어쓰면 어쩌면 수긍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가진 재산 전부와 오른손 모가지를 걸고 장담하건대, 그럴 일 없다.

캄보디아,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어떤 유혈사태 

어떤 사회의 복지라는 것이 시혜적 후원에 의존한다고 가정하자. 불경기가 다가오는 순간 지갑은 닫히고 기부는 줄어들며 취약 계층의 삶은 더욱 고달파진다. 그 때문에 사회 안전망 유지를 위해서라도 더욱 경기부양에 매진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낙수효과 따위를 운운하는 경기부양책을 정부와 기업은 강조한다. 그렇게 되면 취약 계층의 삶은 다시 고달파지는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다. 기부에 의존하는 사회안전망 추구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고(앞서 강조했듯, 이 두 사실은 별개이고,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사실은 잠시 마음만 따뜻해지는 복지 악순환의 동참에 지나지 않는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돈으로 무얼 할 것인지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다. ‘가난한 나라 어린이를 위해 헌 옷과 헌 가방을 보내자’면서 온갖 교회들이 한국 옷을 캄보디아로 보내는 바람에, 캄보디아 의류 내수시장이 결딴났던 걸 떠올려야 한다. 직물공장에 일하는 노동자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고,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양질의 옷이 아닌 ‘ㅇㅇ유치원’, ‘ㅇㅇ가스공사’, ‘ㅇㅇ찜질방’ 따위가 쓰인 싼 옷을 선호하는 상황이다. 그걸 사진 찍어다가 동남아 한류라고 내세우는 모습엔 끔찍함마저 느껴진다.

정작 캄보디아 프놈펜 시내 고층빌딩 소유주는 상당수 한국인이고, 이들이 건물 올린다고 내쫓았던 것은 현지 빈민들이었다. 기부하는 한국인과 빈민을 내쫓은 한국인이 서로 다른 동전의 이면이었을 뿐이라는 건 몸서리쳐질 만큼 혐오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2014년 1월에 있었던 캄보디아 유혈사태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도 역시 한국(기업)인이다.

2013년 12월부터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최저 월급을 80달러에서 160달러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2013년 7월 총선을 맞아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최저 월급을 80달러에서 160달러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이 시위는 연말이 되자 더욱 거세졌다.

캄보디아 유혈사태

그리고 시위가 격화하자 2014년 1월 초 캄보디아 군경은 총을 앞세워 폭력적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사진: Luc Forsyth, CC BY NC)

그리고 캄보디아 의류산업의 '큰손' 한국기업은 시위대 집압에 군경을 투입해달라는 요청의 장본인이라는 강한 의혹에 휩싸였다. 오래 전 일이 아니라 올해(2014년) 1월에 있었던 일이다. 이 유혈사태로 최소한 5명 이상의 캄보디아 노동자가 죽었다. (사진: Luc Forsyth, CC BY NC)

그리고 캄보디아 의류산업의 ‘큰손’ 한국기업은 시위대 진압에 군경을 투입해달라는 요청의 장본인이라는 강한 의혹에 휩싸였다. 오래 전 일이 아니라 올해(2014년) 1월에 있었던 일이다. 이 유혈사태로 최소한 5명 이상의 캄보디아 노동자가 죽었다. (사진: Luc Forsyth, CC BY NC)

퍼포먼스와 버즈 효과로 기부금을 더 얻어냈다는 사실에 이런저런 NGO들이 벤치마킹하겠다는 소리가 벌써 들려온다. (이런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고, 대부분 NGO에서는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도 소신과 열정으로 일하고 있다는 걸 안다.) 기부금을 얻은 NGO들과 기부금을 내는 부유한 분들에게는 좋은 이벤트이고, PR 방법일 수 있겠지만, 이런 이벤트가 이벤트로만 끝난다면, 거기에 더해 이런 이벤트가 사회의 모순을 보지 못하게 하는 눈가리개 역할을 한다면, 해당 NGO에게도 그리고 훈훈한 마음으로 기부금을 낸 사람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기부금을 받을 사람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재앙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유족들이 기부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수많은 모금 운동이 진행되었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우리 사회는 ‘보상금을 더 원하느냐?’ ‘대학을 보내줄까?’는 질문이나 던지고, ‘추모공원 조성하자’는 새로운 토목공사 제의나 하는 것만 보아도, 우리 사회는 본질적 해결이 아닌, 문제를 우리 눈앞에서 감추는 데에만 급급해 하고 있는 모습이다. ‘좋은 상품도 사고, 좋은 기부도 하고’는 좋은 상품 마케팅은 될 수 있어도 본질에서 약자를 위한 연대는 아니다.

따뜻한 이벤트 너머, 고통스럽더라도, 잔인한 현실을 보라

자본주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각자가 만족하는 수준에서 자신의 부 그리고 선의를 뽐내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사실 라이온스클럽 같은 걸로도 충분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감정 호소에 매달리는 사랑의 리퀘스트가 아니다. 좀 더 많은 PD수첩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유와 성찰이 필요하다. 기부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기부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회적인 사건이자 문화일 수 있다. 하지만 기부가 복지 제도의 골격이 될 수는 없다. 더 탄탄한 사회 안전망과 공공 의료보험제도가 절실하다. 루게릭병뿐만 아니라 질병 해결, 기아, 전쟁난민, 정의사회를 위한 공공감시 등 우리의 진짜 ‘후원’을 필요로 하는 곳도 이미 즐비하다. 즐거운 퍼포먼스나 이벤트로는 해결하고 싶어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구호차원으로라도 당장 도움이 필요한 곳들이다.

다들 즐겁자고 하는 건데 왜 ‘노잼’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연대라는 건 그렇게 가볍게 지나가는 ‘선심’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각 주제마다 저마다의 큰 무게감과 고민거리를 안고 있고, 얼음물 뒤집어쓰는 찰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광화문광장에서 수십 일째 단식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분들, 밀양 송전탑 반대하는 할머니들, 해군기지 반대하는 강정마을 분들더러 ‘너희 보상금 더 타려고 그러는 거지?’라고 묻는 사회에서 정작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아낌없이 기부하는 모습에는 기이함마저 느껴진다.

선의는 존중하고 박수 보낼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그저 그 얼음물에만 멈춰 서선 안 된다. 그 뒤에 더 거대한 슬픔이 분노가 서러움이 있다. 기왕 얼음물 끼얹고 정신을 맑게 한 김에, 수년 전부터 꾸준히 거리에 계시는 분들 서명에도 동참해주고, 목소리도 함께 높여주고, 응원도 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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