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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퍼에 매단 모나리자: ‘벤틀리 주차장 사고’에 관한 소고

토론하고 싶은 주제가 있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아직 제 입장도 확실하지 않기에 몇 가지 생각해볼 만한 화두를 마구잡이로 던져봅니다.

http://www.autoevolution.com/news/bentley-continental-gt-br-10-by-vorsteiner-unveiled-photo-gallery-video-41763.html

벤틀리 컨티넨탈 GT (사진: autoevolution.com )

우선 이 글을 쓴 계기인 ‘벤틀리 주차장 사고’를 다섯 줄로 요약합니다.

  1. 산타페 운전자가 주차 상태였던 벤틀리 컨티넨탈 GT를 박음. (후면 함몰)
  2. 산타페 차주의 대물한도는 1억 원.
  3. 벤틀리 총 수리비 약 2억 원 이상 예상. (차량 수리: 1억 5천만 원, 수리 기간 중 렌트비: 약 4천5백만 원~6천만 원.)
  4. 산타페 차주는 약 1억 원 초과 금액을 현금으로 벤틀리 차주에게 물어줘야 함.
  5. 벤틀리 차주는 사고 차 가져가고, 새 차 가져오라고 함.

참고 글

사실 이런 유형의 사건이 생각보다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은 우리(수퍼카 차주든 그냥 일반 차주든)가 운전대를 잡는 이상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벤틀리 주차장 사고’라는 개별적인 사건을 따지기보다는 초고가 승용차 교통사고와 그 배상책임 일반론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단, 미리 전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법률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현행법에서 이런 사건을 어떻게 판결하는지와 같은 ‘사실’과 ‘유권해석’이 아닙니다.

‘사법’을 담당하는 판사를 국민이 선발하지는 않아도 ‘입법’을 맡는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지 않습니까? 법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자잘한 것은 법률 전문가가 따지더라도, 법이 어떤 가치관을 지향할지에 대해선 비전문가도 충분히 참여할 수 있고, 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법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따지는 ‘당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생각 #1. 모나리자를 범퍼로?

모나리자모나리자의 정확한 가격은 측정된 적도 없지만, 관점에 따라 40조 원 정도까지 추정합니다. 지금까지 경매가 1순위인 피카소의 작품이 1,600억 원이었다고 하니, 편의상 수천억 원대 가격이라고 합시다. 모나리자가 실제로 거래되지 않는 품목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 예시라면, 모나리자를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른 유명 작품으로 바꿔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느 전 세계급 부자가 모나리자를 구입해 자동차 범퍼로 쓰겠다고 선언합니다. 이 튜닝을 법적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요? 법적으로 인정한다면, 접촉사고 시 수리비는 얼마로 책정해야 할까요?

생각 #2. 모나리자 실은 이사 차량과 접촉사고?

모나리자를 범퍼로 쓴다는 가정과 비유는 물론 비현실적입니다. 미술품처럼 대량 생산이 어렵고, 생산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제품을 자동차 범퍼로 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그 딜레마를 피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나리자를 일반 이삿짐 트럭으로 운송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모나리자를 실은 트럭과 단순히 접촉사고가 났는데 알고 보니 짐칸에 넣어둔 모나리자가 충격으로 살짝 파손되었습니다. 이 경우 접촉사고를 낸 차주가 수천억 원의 배상 책임을 지는 것은 맞을까요?

생각 #3. 수억 원대 작품을 일반차량으로 운반하다 사고나면?

고가의 미술품을 운송할 때에는 소유자가 보험도 들고 특수 차량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운반합니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간에 수천억 원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아무리 노역을 하더라도 예술품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물론 소유자가 보험을 든다고 해서 사고 시 책임이 소유자에게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단속하지 않아 도둑이 들었다고 해서 도둑의 죄를 정상을 참작해주지는 않으니까요.

너무 극단적인 예였다면, 수천억 원대의 작품이 아니라 1~2억 원대의 작품을 일반 차량으로 운반하는 도중 사고가 났다고 가정해 보시죠. 이 경우는 가해 차량 차주가 미술품 가격을 물어줘야 할까요?

그런 고가품을 운송하고 있다는 표시를 하지 않아서 가해자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면, 차 뒷면에 “고가품 운송 중”이라는 딱지를 붙였을 때에는 가해자 책임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해야 할까요?

눈치채셨겠지만, 위에 말한 ‘딱지'(표시)는 ‘벤틀리’나 ‘람보르기니’와 같이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자동차의 외형을 의미한 것입니다.

생각 #4. 지하철에서 부딪힌 혈우병 환자의 생명이 위독하다면?

조금만 부딪혀도 혈관이 터져 생명이 위험한 혈우병 환자가 있습니다. 이 환자가 출근길 지옥철을 이용하다가 어떤 사람과 세게 부딪혀 생명이 위험해졌다고 합시다. 부딪힌 사람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요?

만약 혈우병 환자인 것을 몰라서 부주의한 것을 참작할 수 있다면, 환자임을 확실히 알리는 표식을 한 경우 책임을 져야 할까요? 법률에서는 이런 특이체질에 대한 가해는 일반적으로 예견할 수 없으므로 그 손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별손해의 법리. – 편집자)

생각 #5. 조기 축구에서 프로선수가 다치면?

또 다른 가정. 아마추어끼리 조기 축구를 하는데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는 박주X이 재미삼아 참여하려고 합니다. 박주X에게 혹시나 부상을 입힐까 봐 걱정하는 아마추어들은 거절합니다. 하지만 그 축구장은 공공장소이고, 경기 참여도 자유이기에 참여를 거부할 권한은 없었습니다.

조기축구회 회원들은 박주X을 최대한 피해 다녔지만, 어느 아저씨가 박주X에게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히고 말았습니다. 치료비를 지급하는 것은 도의상 당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력 상실이 문제였습니다.

박주X은 3주간 뛰지 못하는 기회비용, 즉 주급을 8천만 원으로 쳐서 추가로 2억 4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합니다. 어떻게 보면 박주X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가 될 수 있는데, 아마추어는 날벼락을 맞은 느낌입니다.

생각 #6. 액면가 천 억짜리 회장님 차에 접촉사고 낸다면?

차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요?

자동차 자회사를 소유한 어떤 회장이 자신을 위해 전 세계에서 하나뿐인 차를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죠. 회장은 ‘에어포스 원’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차를 제작했고, 카탈로그에도 가격은 1천억 원, 범퍼 가격은 100억 원이라고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브랜드와 성능을 고려한 객관적인 차량 가격은 2억 원 정도라고 합시다. 물론 그 차를 실제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회장님의 차에 접촉사고를 낸 가해자는 얼마를 물어줘야 할까요?

‘벤틀리 주차장 사고’는 평범한 개인이 몇 년 혹은 몇십 년 노예처럼 일하면 갚을 수는 있는 ‘소액'(!)이라 문제의 본질이 감춰지는 느낌입니다. 이런 사안에서는 ‘2만 원만 더 내면 대물한도 10억으로 올릴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개인 책임이다’는 식의 속 편한 결론으로 이끌릴 수도 있겠습니다.

‘벤틀리 사고’, 대물한도 높이면 해결?

하지만 ‘벤틀리 주차장 사고’가 논란이 되는 핵심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뭔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급 재벌이 폭격기 B-2 스피릿(한화 2조 원 상당)을 개조해 자동차로 인정을 받고 도로 위를 다닌다고 가정해보죠. 보험의 대물한도를 2조 원으로 올리면 해결되는 일일까요? 아직은 그정도로 돈이 썩어나는 부자가 없으니 생각할 필요가 없는 가정일까요?

이 가정적 사례에서  B-2 차주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면, 왜 벤틀리 차주는 책임이 없을까요? 벤틀리는 저렴해서?

B-2 스피릿

B-2 스피릿 (출처: 위키백과)

만일 강남에 B-2 스피릿 소유자가 10명 정도 있다면 강남 거주자 입장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숫자가 될 것입니다. 보험회사가 발맞춰 내놓은 상품인 ‘대물한도 2조 원’에 가입한다면 보험료는 최소 수백만 원으로 올라가겠지만, 일반 개인이 도저히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작 대물 10억 원짜리에 가입한 차가 B-2 스피릿과 사고가 나서 인생이 망한다면, 그것은 보험을 들지 않은 가해자 차량의 온전한 책임일까요?

수퍼카 차주 책임도 인정해야 

저는 도로(혹은 주차장)이라는 장소는 박물관보다는 축구장에 가깝고, 수퍼카는 일반적인 사람보다 앞서 ‘지하철 혈우병 환자’와 같은 특수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도로는 비록 사고가 나서는 안 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쩌다 한 번쯤은 사고가 나기도 하는 특성을 가진 공공장소입니다. 도로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평생 한두 번쯤 경험하고 지나가는 접촉사고를 통해 인생이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식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요?

거의 마주칠 일 없는 극소수 수퍼카를 위해 모든 사람이 대물한도를 늘리기보단 사회적 평균을 매우 크게 벗어나는 수퍼카 소유자가 스스로 보험을 들어서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모나리자를 운송할 때 박물관이 보험을 드는 것처럼요.

보통 운전자가 ‘공포’ 느끼는 사회, 정상일까?

예전에 어떤 차주가 트럭을 받았는데 하필이면 그 안에 실려 있던 람보르기니가 파손되는 바람에 4년간 월급을 압류당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저는 비교적 운전을 잘하지만, 이런 운 나쁜 사례가 저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무섭습니다.

람보르기니 베네노 44억 원 (40만 달러)

람보르기니 베네노 약 44억 원 (400만 달러) (출처: Digital Trends)

밤중에 전시장에 침입해 수퍼카를 몽둥이로 두드려 부순 것이 아닌 이상 도로에서의 접촉사고는 물론 가해자가 분명히 있지만, 축구 몸싸움을 하다가 부상을 입는 정도의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사고는 거의 없습니다.

수퍼카와 사고가 났다면 서민 차주는 10%의 과실만 있어도 엄청난 타격을 입습니다. 수퍼카 차주는 사실 그 차가 없어도 인생이 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수퍼카는 홍해의 기적을 매일 체험합니다. 상대방이 무서워하는 것을 알고 무리한 배짱 운전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 그렇게 정의롭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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