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30일 전면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을 앞두고 정신병원과 정신과 의사들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한 우려
개정 정신건강복지법[footnote]2016년 5월 19일 국회는 6장 59조로 구성됐던 기존 ‘정신보건법’을 총 8장 89조의 ‘정신건강보건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으로 개정했다. 정신건강보건법은 2017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글에 따라 정신보건법 혹은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달리 쓰지만, 양자는 같은 법을 지칭하는 것이다. 참고: 전준희, 정신건강복지법의 탄생 (편집자) [/footnote]에 따르면 강제입원 절차와 관련하여 기존에 보호자 2명의 입원에 동의하고 정신과 전문의 1명이 진단을 내리면 6개월간 강제입원이 가능하던 것을, 보호자 2명이 입원에 동의하고 전문의 1명이 진단을 내리면 우선 2주간 진단을 위한 입원이 가능하고, 2주를 초과하여 입원하려면 다른 병원 소속 전문의 1명의 추가진단이 필요하다.
강제입원의 요건도 강화했다. 기존엔 입원치료가 필요하거나(or) 자해·타해 위험이 있을 것이 요건이었지만, 개정법에서는 입원치료의 필요성과(and) 자·타해 위험이 있을 이 요건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전 의협회장인 노환규 박사는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글(정신질환자 무더기 퇴원, 앞으로 문제는 누가 책임질까)에서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2017년 5월 30일까지 한꺼번에 퇴원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정신질환자 무더기 퇴원이 현실화할 것을 강력히 경고했다.
그렇다면 (정신)의료계의 우려대로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2017년 5월 30일까지 한꺼번에 퇴원하게 될까?
‘강제입원’의 폐해와 헌법불합치
국립정신건강센터 보고서 2016(2차 예비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에 정신의료기관에 입원 중인 환자 수는 81,105명이고, 그중 정신질환자 본인 의사에 의한 입원이 26,064명으로 32.1%를,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입원이 55,041명으로 67.9%를 각 차지한다. 이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입원이 전체 입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본인 의사에 반하는 입원 중에서도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대다수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9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인의 진단이 있으면 보호입원이 가능하도록 한 구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하여 정신질환자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간 정신보건법 24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조항으로 인해 숱하게 많은 강제입원 피해자들이 양산되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날 보러와요]는 정신병원 강제입원 제도의 폐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언론에 보도된 정신병원 강제입원 피해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정신보건 시설과 관련한 진정건수(입·퇴원절차, 격리·강박, 사생활침해 등)만 하더라도 연간 3,300여 건에 이르고, OECD국가 중 유독 한국만이 입원 병상 수가 최근까지 늘고, 평균 입원 기간이 압도적으로 길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신보건법 시행 20년 동안 일부 정신과 의사는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결정하는 공적·사회적 권력을 사익의 도구로 활용해 왔다. 이로 인해 정신질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치료받을 권리는 침해되고, 강제입원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해 왔다.
‘무대 밖의 존재’ 정신장애인
정신보건의 역사에서 정신질환자(혹은 정신장애인)은 늘 대상화되었고, 무대 밖에만 존재하였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정책 결정에 있어서도 그들은 도외시되었고,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이것이 그들에게 ‘최선의 이익’일 것이라는 믿음 아래 심각한 폭력과 차별로 나타났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에 대한 공적 통제는 사실상 전혀 없었고, 개정법에 담긴 강제입원규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기준과 비교할 때 절대로 과하지 않다. 오히려 정신보건법 강제입원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정신질환자의 자유권을 구속하는 강제입원 관련 규정은 더욱 엄격한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한꺼번에 퇴원’하는 상황을 우려한다면, 이는 지난 정신보건법 시행 20년 동안 정신질환자 상당수를 불필요하게 치료라는 명목으로 폐쇄 병동에 신체를 구속하여 실질적인 수용·감금을 하고 있었던 사실을 방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그러한 주장은 그간의 정신병원 강제입원에 따른 무수한 피해사례, 즉 헌법 제12조 신체의 자유의 침해 상황을 계속 방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신의료계의 전문성과 진정성을 믿고 싶다. 그간 정신과 의사 대부분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환자를 입원을 시켰을 것이므로 5월 30일이 된다고 해서 정신질환자들이 한꺼번에 퇴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개정법의 취지에 따라 점진적인 탈원화 과정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환자들의 인권침해, 치료받을 권리 침해 등으로 포장된 일부 정신의료계의 주장은 자칫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생존권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강제입원의 요건을 지금처럼 허술하게 유지하고, 입원치료라는 명목으로 정신장애인을 사회로부터 손쉽게 격리·배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정신질환자는 15배 더 안전하다
개정법에 따르면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퇴원하게 되고, 이로 인해 최근 벌어진 ‘자퇴 여고생의 초등생 살인사건’과 같은 심각한 사회적 피해가 실제로 생기면, 그 책임은 의사가 아니라 그 제도를 마련한 입안자가 져야 한다고 하면서 정신장애인이 정신병원에서 나와 사회로 나오면 마치 초등생 살인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질 듯한 공포감을 조장하는 일은 옳지 않다.
자신을 해하거나 타인을 해하는 등의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해당 정신질환자를 긴급히 치료하여야 하는 경우 정신보건법 제26조의 응급입원 절차로도 충분히 ‘응급한 치료’가 가능하다. 최근의 초등생 살인사건으로 모든 정신장애인이 위험한 존재인 양 국민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은 과한 기우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08%로 비정신질환자의 범죄율 1.2%보다 현저히 낮다[footnote]2015년 5월 21일 경찰청과 한국법심리학회 주최로 열린 범죄행동분석 학술세미나의 발표 중에서.[/footnote]. 단순 비교하면, 정신질환자는 비정신질환자보다 15배는 더 안전하다. 혹은 15배나 덜 위험하다.
실제로 정신장애인을 많이 만나 본 사람이라면, 정신장애인 대부분이 위와 같은 엽기적 사건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다. 설령 소시오패스 같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인해 범죄를 저지를 수는 있어도 이를 정신장애인 전체가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심한 비약이다.
의료계는 누구보다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의 입장에서 적절한 치료와 회복, 자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의료계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부합하는 행동이 아니다.
이탈리아 ‘바자리아법’, 시설 아닌 지역사회 품으로
가족들도 반발하여 정신질환자들을 퇴원시킬 수 없다는 주장은 환자의 지역사회 복귀를 위한 복지에 의사들이 앞장서지는 못할망정 계속 병원에 가둬놓겠다는 의지로 느껴져 안타깝다. 정신질환자 가족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시설에 정신질환자를 가두는 정책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정신질환자를 품을 수 있는 정책을 통해 해소되어야 한다.
가령, 이탈리아는 1978년 ‘바자리아법'(Basaglia Law 또는 Law 180)으로 명명된 정신보건법이 시행된 후 1980년 1월부터 모든 정신병원의 신규 입원을 금지하고, 정신병상 수를 점차 축소하였으며, 각 지역에 지역 정신보건센터를 설립해 지역사회에서 정신보건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법 시행 당시 7만 8,538명이 수용됐던 76개 공공 정신병원은 1999년까지 모두 문을 닫았고, 지역 정신보건센터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이처럼 이탈리아는 20년 동안 지역사회 인프라를 만든 후 탈원화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제화 이후 법의 강제입원 제한 규정 등이 충실히 현실에 반영되면서, 지역사회 인프라가 확충되고, 강제입원 비율이 급격하게 줄었다.
정신질환자는 사회적 약자로서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 아닌 존중과 공존의 대상이다. ‘정신질환’이라는 질환적 상태를 범죄 위험요인으로 보고,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함으로써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여 시행을 목전에 둔 법을 무력화하려는 것은 정신질환자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보편적 인권에 위협이 된다.
끝으로, 노환규 박사도 강조한 것과 같이, 입원이 필요한 정신질환인지에 관한 평가는 의사가 하되 입원 결정은 법원에서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정신의료계와 복지부, 정신질환자와 가족들이 마음을 모아 정신질환자를 위한 최선의 방책을 조속히 마련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