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느라 사람들의 정신이 온통 대통령 선거에 팔려있는 사이에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전국 정신의료기관 및 정신요양시설에 입원·입소한 8여만 명 남짓한 정신질환자[footnote]출처: 2016 국가 정신건강현황 2차 예비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름. 기존 편집본에서 “20여만 명의 정신질환자”는 공식 통계치인 “8여만 명”으로 수정함. 수정 일시: 2017년 4월 17일 오후 3:25. (편집자)
[/footnote] 중에서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2017년 5월 30일까지 한꺼번에 퇴원하게 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강제입원’ 제도의 문제
2013년 ‘그것이 알고 싶다’는 거액의 이혼소송 중 전남편 측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당한 아내의 이야기를 방영했다. 2016년 초에는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소재로 한 영화 [날 보러와요]가 상영됐다. 영화는 악한에 의해 졸지에 강제입원당한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다.
유명 TV 고발 프로그램에 이어 영화까지 상영되자 멀쩡한 사람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될 수 있다고 알려지며 경각심이 일었다. 환자의 가족, 즉 보호의무자에 의해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도록 규정한 정신보건법 24조가 문제라는 지적이 자연스럽게 일었다.
즉, 비정신질환자라고 하더라도 보호의무자 2인(보호의무자가 1인인 경우에는 1인)이 정신과 의사 1명만 구워삶으면(?) 멀쩡한 사람도 강제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한 기존의 법률이 악용되는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더불어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의 요건이 너무 수월해서 비정신질환자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지적도 일었다.
이미 2013년 더민주 김춘진 의원의 대표발의로 정신장애인복지지원등에관한법률안이 발의되었는데, 이 법안이 다시 힘을 받았다. 더민주 최동익 의원과 새누리의 이명수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이미 발의한 상태였다.
때마침 2016년 4월 18일, 기존의 정신보건법 중 강제입원의 조건을 규정한 제24조 1항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자 정부는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여러 법안을 하나로 묶을 것을 제안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여 정신건강증진법안과 정신장애인복지지원등에관한법률을 통합하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이 법이 통과됐다. 최종 정식명칭은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줄여서 ‘정신건강복지법 전부개정안’이다.
언뜻 들어도 정신질환자의 복지를 개선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강제입원 규정을 강화한 것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의사들의 반발
정신질환자의 입원 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입원을 유지하는 것도 까다롭게 바꾼 이 법안의 내용이 알려지자 정신과(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의사들의 반대는 ‘수입 감소를 우려한 의사들의 반발’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국회 본회의 통과를 이틀 앞 둔 2016년 5월 17일 강남역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규정을 까다롭게 강화한 정신보건법 개정안 통과는 불투명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16년 5월 19일 이 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의원 213명 중 무려 210명이 찬성했다.
그런데 사흘 후인 2016년 5월 22일 강남역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조현병(예전 명칭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은 2017년 5월 30일 그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제 정신과 의사들은 새로운 규정에 맞추지 못한 환자들에 관해서는 5월 30일 이전에 모두 퇴원 조치해야 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도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법안이 국회를 통과된 후에는 더욱 큰 목소리로 이 법의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는 동시에 법 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 번 국회를 통과한 법이 법 시행 이전에 다시 개정되는 경우는 없다. 과연 개정된 법은 좋은 법일까 아니면 악법일까. 여러 시민단체들은 법개정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데, 왜 의사들은 반대를 할까. 그리고 정신보건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의사들뿐일까.
무엇이 바뀌었는가
먼저 보호의무자에 의한 강제입원을 규정한 정신보건법의 조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부터 알아보자.
개정된 법의 가장 중요한 골자는 “정신의료기관이 정신질환자를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시키기 위해서는 정신과 전문의 2명의 일치된 소견을 받도록 규정한 것”인데 이 중 1인은 반드시 국공립정신병원 등에 근무 또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정신병원에 소속된 정신과 전문의가 판단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시민단체는 이 법의 통과를 환영했고, 정신건강의학회 등 의료계는 큰 우려를 표명하며 법의 개정을 요구했다. 법의 취지는 환영하지만, 이 법의 시행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다. 의료계가 반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의료계가 반발하는 이유
바로 ‘국공립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정신과 전문의의 판단(실질적으로는 심사)’을 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정신질환자 중 의무보호자에 의한 입원은 약 70%를 웃돌고, 이 숫자는 한 해 약 13~17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턱없이 부족한 인력
연간 17만 명의 입원 적정성을 심사하려면 과연 몇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필요할까. 현재 국공립 정신병원은 전체 정신병원 중에서 3%에 불과하다. 따라서 입원의 필요성 여부를 판정할 국공립 정신병원 소속 정신과 전문의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준비가 부족했음은 보건복지부도 인정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2017년도 정신과 전문의 10명을 공보의로 배정받아 정신과 전문의 10명을 모두 4곳의 국립정신병원에 직권으로 배치해서 이 업무를 담당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존에는 정신과 전문의들이 대부분 군의관으로 가고, 2~3명만 공보의로 배치되었었는데 이것을 대폭 조정한 것이다.
2. 공중보건의가 일선 베테랑 전문의 결정을 심사?
그런데 이 숫자 역시 연간 십수만 건의 입원심사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더욱이 공중보건의사들이 입원심사를 공보의가 하게 된다면, 전문의 자격증을 갓 취득한 공중보건의사가 일선의 베테랑 전문의들이 결정한 입원 결정을 심사해야 한다는 넌센스가 발생한다.
보건복지부는 추후에 국공립 정신의료기관의 정신과 전문의 정원을 늘리더라도 당장 이 업무를 감당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민간 정신의료기관을 지정하여 입원 심사 업무를 분담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간 정신과 전문의들은 심사 결과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 때문에 참여를 꺼리고 있다.
3. 심사를 “서류심사”로 대신한다?
입원심사제도의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입원심사는 실제 대면진료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대면진료가 불가하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서류심사로 대신하게 되었다. 환자를 직접 진료한 베테랑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을 환자를 진료하지 않은 제3의 의사, 심지어 전문의 자격증을 갓 받은 공중보건의가 심사를 하게 된 것이다. 이 블랙 코미디는 정치인들과 정부 관료들의 합작품이다.
이제 법 시행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법 시행이 불과 2달도 안 남은 상태다. 이제 5월 30일이면 입원해 있던 수만 명의 정신질환자들이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다.
가족들도 반발한다
이 개정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의사들뿐이 아니다. 정신질환자들의 가족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그들은 “정신질환자 가족은 환자와 길바닥에 나가 죽으란 말이냐!”라고 항변한다. 가족이 겪는 애로사항은 무엇일까.
한국정신건강신문에서 이를 잘 요약해놓았다.
“가족 중에 환자가 있는 경우 정신질환자라는 낙인과 사회적 불이익을 우려한 나머지 병원에 가질 않고 상태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다가 결국 병이 악화되어 환자로부터 자해, 타해 등 폭력의 위험이 나타나는 등 가족들 능력으로는 도저히 관리가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의 기본 패턴입니다.
더욱이 이 환자가 의료급여대상에 만성인 경우에는 상급종합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등에서는 진료를 거의 받을 수 없습니다. 진료수가가 건강보험 환자의 절반 수준으로 진료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에서 우리가 진료하겠노라 나서는 대학병원은 없는 것입니다. 의사와 의료기관의 사명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적자가 누적되면 병원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논리에 놓여 있는 병원들의 입장입니다.”
“정신질환자의 가족들은 현행 정신보건법 하에서도 환자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가 매우 힘듭니다. 환자는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데다, 간신히 설득하여 인근 정신병원으로 데려 가면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를 요구하는데 미리 서류를 준비하지 않고 갔을 시 입원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중략)
이런 사례는 국가가 제 할일을 다 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 아닌가요? 환자가 일과시간에만 입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야간이나 공휴일에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서 그 시각에 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하라는 것은 잘못된 법과 권력의 횡포요 갑질입니다.”
–한국정신건강신문, 개정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전부터 폭발 징조, “정신질환자 가족은 환자와 함께 길바닥에 나가 죽으란 말이냐!” (2017. 1. 6.) 중에서
불과 2개월 후면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강제 퇴원을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을 정부나 국회의원들은 미리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의료계가 이 법안의 비현실성을 수차례 강조하며 의견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대 국회와 보건복지부는 이를 무시했다.
의사들의 주장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지금의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의 주장을 들어보자.
“정신건강복지법은 자해 또는 타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강제치료 요건이 된다고 규정하여 망상과 환청이 있고 이상한 행동을 해도 본인은 병이 없다고 생각하여 치료를 거부하면 치료를 시작할 방법이 없습니다.
문제는 실제로 강제입원의 대상이 되는 급성기 조현병, 조울병 환자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본인이 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에 데려오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개정법에 따르면 경찰이나 구급대는 자해나 타해 우려가 있는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개입할 수 없습니다. 병적으로 기분이 고양되어 돈을 탕진하고 위법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 발병 초기에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호전될 수 있지만 개정법상으로 증상이 악화되어 자해나 타해 위험성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치료적 개입이 가능합니다.
보호자 요건이 우리나라처럼 까다로운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입원적합성 평가가 서류 심사로 이뤄져 형식적 조사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2주 이상 계속 입원이 필요한 경우 국공립 또는 지정병원의 외부 정신과 전문의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현실적 시행 가능성과 책임 소재를 떠나 다른 병원의 의사가 같은 병원의 동료 의사보다 평가를 잘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입원 환자에 대해 서로 다른 소속 기관 의사의 소견을 요구하는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정신보건법 개정안은 기본적으로 ‘1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의사들은 보고 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정신과 의사들은 입원 전 사법부(또는 준사법 기관) 판단에 의한 입원 제도를 도입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한다.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 치료 거부 환자에 대한 개입이 용이해지고, 입원 기준이나 해석을 둘러싼 인권 침해 논란도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제입원을 위한 보호자 요건을 까다롭게 할 이유도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입원이 필요한 정도의 정신질환인지 평가는 의사가 하되 입원 결정은 사법적 판단으로 하는 것이 옳고, 이는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권과 정부는 이 책임을 민간에게 떠넘기고 있다.
국회의원들과 정부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의 치료받을 권리와 인권 보호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국가가 그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졸속 입법은 그 책임을 또다시 국민에게 미룬 법안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앞으로 할 일은 “잘못된 법을 고쳐달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입원해 있던 수만명의 정신질환자들이 퇴원함에 따른, 그리고 반드시 입원해 있어야 할 환자들이 퇴원함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피해가 오로지 국회와 정부에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바뀐다.
누구의 책임인가
최근 17세 고교 자퇴 여학생이 8세 여아를 납치하여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여학생 역시 조현병 진단을 받고, 최근까지 치료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는 없고, 실제로도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비정신질환자보다 낮지만[footnote]2015년 5월 21일 경찰청과 한국법심리학회 주최로 중앙대에서 열린 범죄행동분석 학술세미나의 발표 중 근거로 사용된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08%이고, 비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1.2%이다.(*재인용 출처: 연합뉴스)[/footnote], 정신질환은 그 피해가 질환자 자신만이 아니라 질환자와 상관없는 타인에까지 미칠 수 있다. 그리고 제도로 말미암아 그 피해가 실제로 생기면, 그 책임은 의사가 아니라 그 제도를 마련한 입안자가 져야 마땅하다.
이제 의사들은 무한책임을 지는 습관을 버리고 내 책임이 아닌 일에 대해 적절히 책임을 책임자에게 떠넘기고 마땅히 화살을 맞아야 할 책임자를 드러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긍정적인 변화는 그래야 찾아올 수 있다.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한꺼번에 퇴원하면, 그래서 현재의 시스템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혼란과 문제들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책임이 아니다. 생색만 내고 책임은 회피하면서 현실성을 무시한 악법을 만든 정치인들과 정부 당국자들의 책임이다. 여러분은 할 만큼 했다.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 그들이 책임지도록 하라. 그들이 알아서 법을 바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