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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렌 인터뷰 2: 연대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진보신당 김순자 편) [특집]

‘설렌 인터뷰’는 삶과 예술, 예술과 정치, 정치와 삶이 별개가 아니라는 믿음 속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삶, 그 속에서 다양한 빛깔로 아름다운 실천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인터뷰어 ‘설렌’이 그들을 찾아갑니다. 두 번째 인터뷰이는 지난 총선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한 청소노동자 김순자 씨입니다. (편집자)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 후보, 김순자. 이제는 다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로 돌아온 그녀를 만나러 울산에 가던 날은 몹시도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이었다. 잔뜩 무거워진 구름이 도시 가까이에 내려앉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다. 사정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가르며 도착했던 울산에 대한 첫인상은 바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대기업, ‘현대’의 도시라는 것.

‘현대’의 도시를 가다

진보신당 비례1번 청소노동자 김순자 씨

현대그룹 산하 공단과 현대건설에서 지은 아파트가 밀집돼 있고, 울산과학대를 가는 길목에는 ‘아산’ 정주영의 뜻을 기린다는 큰 기념석이 서 있었다. 울산과학대는 19대 총선 결과 7선 의원직 수성에 성공한 정몽준 당선자가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다. 이곳에서는 미래의 현대그룹 사원들이 양성되고 있다. 마치 울산은 모든 것이 현대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김순자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김순자 씨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해 특유의 어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바 있다. 그녀는 선거를 며칠 앞두고 있었던 텔레비전 비례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서민들 마음을 속 시원히 대변하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다른 법은 날치기도 잘하면서 왜 비정규직 철폐는 하지 못했나?”

최저임금이 100만 원도 안 되는데 그 돈으로 사람이 어떻게 사나, 도둑질을 해야 하나, 그냥 굶어야 하나?”

그녀의 인상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총선결과 진보신당 지지율은 1.1%에 그쳐 청소노동자의 첫 번째 국회입성은 좌절됐다. 총선 이후 그녀의 소회에 대해 들어봤다.

– 이번 선거에서 결국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다.

“처음 국회의원 비례대표를 제안받을 때도 국회 입성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보신당 당원이 만 오천 명이라 이 들이 몇 명만 더 조직하면 반반의 가능성은 있겠다고 봤다. 지난 선거 때는 지지도가 2.7% 나왔다고도 하고. 현대 자동차노조도 지지해주고 공공연맹도 지지한다 해서 기대를 좀 더 했다. 지금은 원래의 자리였던 청소노동자로 복귀하고 노조활동도 계속 하고 있다. 어제도 단체교섭을 위해 학장실로 찾아갔다.”

– MB 심판론이 강했던 시점이라 변화가 크리라 예측한 사람들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총선으로 바뀐 것은 거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특히 영남, 강원, 충청 지역 등이 더 심하다. 울산에 사니 이런 부분이 더 힘들게 여겨지지 않나?

“(체험적으로 느끼기에) 50대 이상은 대부분 새누리당 지지자들이다. 그래서 더 힘들다. 내가 출마를 한다고 할 때에도 대학생이나 젊은 사람들은 특강 요청도 하고 관심을 많이 가져 줬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청소하는 아주머니 청소나 하지?’라는 반응이 많았다.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불평등도 많은데 심각성을 잘 모른다. 생각이 안 바뀐다. 문제는 나이든 사람들은 투표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투표를 안 한다는 것이다.”

(동석하고 있던 노조원 김영섭 씨가 거든다) “농어촌에 있는 사람들도 몰라요. 사는 게 힘들면서도 (문제를) 잘 못 느끼고 산다니까요.”

“나도 친정이 촌에 있는데 할 일이 없다. 우리 오빠도 농사는 미친놈이나 하지 정신 올바른 사람은 안 한다 하더라, 사회는 투표로 바꿀 수밖에 없는데 심각성을 모르고 있으니까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나.”

– 많이 답답하겠다.

“선거 운동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서울은 정말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은 40~50대도 세상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울산만 해도 정몽준의 뒤를 이은 새누리당 후보가 2선째 하고 있고 정몽준도 7선째다. 영남 지방 대부분이 새누리당 의원이 당선됐다. 사회를 변화시키기에는 지역색 영향이 너무도 크다.”

– 이번 선거를 보면 기존 선거방식이 지나치게 기득권 정당 중심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그렇다. 내가 처음으로 대중 앞에 데뷔했던 비례대표 후보 텔레비전토론회는 4월 9일이었다. 투표일 불과 3일 전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은 연일 중앙지 1, 2면을 채우는데 진보신당에 대한 기사는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소수정당도 많은데 뉴스를 틀면 박공주(박근혜)가 나와 휩쓰는 것만 보여준다. 언론이 중립에 서야 제도가 바뀐다. 국민의 알 권리를 모두 차단해 버리는데 어떻게 세상이 바뀌겠는가.”

– 기득권 정당 중심의 선거방식을 개선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언론이 가장 큰 문제이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MBC 파업하는 데에도 갔었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 한 파업 노조원이 내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감동했다고 했다. 나도 중앙지에서 보도하고,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했다면 더 높은 지지율이 나왔을 것으로 생각한다.”

– 트위터 등 SNS를 많이 활용하나?

“선거 때 딸이 스마트폰을 사줘서 트위터를 시작했다(@kimsunja0411). 트위터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다. 요즘에는 텔레비전도 안 보고 트윗에 빠져 있다.

(김영섭 씨에게도 트위터 하냐고 묻자 “나이 60이 넘어서 뭘 새로 배우겠어요.”하고 웃는다)

서울서 선거운동을 할 때 모텔에서 자는데 동료가 작업할 컴퓨터가 마땅치 않았다. 그 사실을 올렸더니 서울 각지에서 ‘여기 면목동이요’ ‘여기 어디요’ 하면서 서로 자기 집에서 자라고 하더라. 전주에 있을 때는 의사 부부가 한옥마을에도 데려가 주고, 맛있는 음식도 대접해 주고 그랬다. 한옥마을은 그 때 처음 가봤다. 진보신당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 이번 선거에 기대할만한 분이 당선된 경우가 있는가?

“없다. 하지만 당선은 안 된 정동영이 진정성을 가지고 세상을 많이 돌아보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예전 잘못도 있지만, 앞으로 정치인으로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 외에는 한 사람도 없다. 전부 거짓말만 한다.“

(김영섭 씨가 덧붙인다.) “선거 때는 새누리당도 비정규직 줄이겠다는 공약을 해요. 옷부터 빨간 잠바로 바꿨잖아요. 앞으로 4년 동안 얼마나 비정규직을 줄일지 봐야 하는데 우리는 10%도 줄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국회에 다양한 사람들이 가야 한다. 버스도 타본 사람이 버스비를 안다. 정몽준은 버스비를 70원이라 하지 않았나. 선거 전에는 우리나라에 청소노동자가 그리 많은 줄 몰랐다. 근로자들 중에 다섯 번째로 그 수가 많다. 이 중 국회의원 3명만 있어도 우리의 노동조건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다.”

– 울산은 현대그룹 공단이 많아 전국에서도 소득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지표를 보면 경제 성장 혜택을 조금이라도 받았다고 생각하나?

(김영섭 씨 얼굴이 어두워졌다.) 정몽준 의원은 울산의 연평균 소득이 강남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이라고 자랑한다. 문제는 정규직 임금이 같은 일을 하고도 비정규직의 3~4배라는 점이다. 실은 정규직 노동자들도 새벽 같이 일터로 나가 밤늦게까지 일한 결과 돈을 많이 받는다. 공단 쪽에서 일하는 한 청소노동자 말이 6시 전에 일터로 가지 않으면 빗자루가 없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는 한 달에 80~90만원 벌고 있는데 정몽준은 지난해에만 주주배당으로 304억을 챙겼다. 그 사람이 주주배당을 그만큼이나 챙길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 덕분인데도 정당한 급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 어떤 인터뷰에서 노동운동하면서 가장 슬펐던 기억으로 울산과학대 학생 600여 명이 시위하는 청소노동자들과 대치해 구사대를 섰던 경험을 들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구사대 역할을 했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정말 그때만큼 많이 운 적이 없었다. 당시 학생회에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때 한 학생이 ‘그러면 우리 취업 못해요’라고 말하더라. 그러더니만 다음날 그 많은 학생들이 구사대 노릇을 한 것이다.”

– 울산과학대가 현대라는 기업의 직원양성소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 같다.

“그렇다. 학교가 기업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다. 현재의 교육이 그렇다. 선진국에서는 학교에서도 노조라든지 노동자의 권리를 배우는 시간이 의무적으로 있다고 한다. 우리는 고등학교 이상 나온 사람이 노동3권도 모른다. 자본가랑 정치가들이 자기 기득권을 뺏길까 봐 안 가르쳐준다.

노조에서 노동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먹고 살기 바쁜 노동자들의 관심도는 낮다. 울산의 경우, 정말 심하다. 서울에서는 한 노동권리 강연에 참석했었는데 수백 명의 아줌마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어서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또 더 쉬운 말로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토론회에 갔었는데 신자유주의, 국가정세 등 어려운 말이 많아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도 모르겠더라. 쉬운 말로 소통해야 한다.

이번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다른 당 후보가 토론이 끝난 후 ’진보신당이 짱이다’ 하더라. 현장에 있는 그대로의 말을 하니까. 대중들이 자신들 이야기는 (후보들이) 듣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 울산과학대 노동조합 지부장 활동을 하면서 많은 변화를 이끌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조합 지지자들이 많겠다.

(김영섭 씨가 자신도 ‘지부장님’ 활동에 감화되어 노조활동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휴게실도 생기는 등 많이 좋아졌지만, 정규직이 상여금 1,000% 받을 때 우리는 시급 4,500원 이외에는 10원 한 푼도 없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럼에도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울산과학대에는 청소노동자 용역업체로 한성과 현대SNS가 있는데 나는 한성의 노동조합 지부장이다. 현대SNS 소속 노동자들은 15명 중 7명이 노조활동을 하고 있다. 많이 늘어난 것이지만 저마다의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김순자 씨와 김영섭 씨

– 왜 그렇게 생각이 다르다고 보나?

“아직도 노동조합 활동을 좋지 않게 보는 사람이 많다.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크다. 가장 큰 문제는 ‘난 하기 싫고 누가 대신 좀 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거다. 결론적으로 노동운동은 나를 위해 하는 거다. 저 사람 상황이 좋아지면 내가 좋아지는 거다. 사람들이 이걸 모른다. 지금은 사람들이 전부 자신밖에 모른다.

대구지하철 참사를 생각해 보라. 한 사람만 이 사회에 불만을 가져도 몇 백 명이 피해를 본다. 이기주의를 하면 결국 우리한테 피해가 온다. 세상이 잘 못 가고 있으니까 불만을 가지는 거 아닌가. 일하는 만큼 똑같이 대우받으면 왜 불만을 가지겠는가. 하지만 이런 것도 노조하면서 바뀐 생각들이다.“

–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나도 가정주부였을 땐 세상이 너무 삭막하다고 느껴서 (주변을) 아예 돌아보지 않고 살았다. 세상이 진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인간미 없달까? 나도 그렇게 행동 못하면서 불만을 갖고 있었다.

예전에는 일하기 싫은 사람들이 노조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노조에서 활동해보니까 아니더라. 집회 가서 가방 던져 놓고 나중에 찾아도 누구 하나 (가방에) 손대는 사람이 없었다. 노조의 젊은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거 보면 나이든 사람이 오히려 본받아야 한다.

2007년 청소노동자 투쟁을 전개할 때 울산지역 연대노조 사람들이 찾아와 침낭 하나 바닥에 깔고 자면서 투쟁을 도와줬다. 한 노조원이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물었다. 웃으면서 ‘돈이죠’했더니 택시비 만 원만 남기고 지갑을 탈탈 털어 37만 원을 건네주고 갔다.

또 한 동지는 형무소에 있었는데 영치금 34만 원을 건네주기도 했다. 우리가 울산과학대 더러운 곳 다 청소해 줘도 울산과학대 사람들은 우리한테 안 그랬다. 노조 사람들과 있으면 마치 딴 세상에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걸 정말 느꼈다.”

김순자 씨는 청소노동자를 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주부였다. 젊었을 적에는 남편 직장이 탄탄했었고 남편이 병에 걸려 직장을 그만 둔 후에는 당구장, 식당 등 자영업을 했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가세가 크게 기울었지만, 하나 있는 딸을 보살피기로 하고 사회생활은 안 했다고 한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빠듯한 삶이었지만 주변에 장사하는 이웃들 자녀가 탈선하는 것을 보면서 딸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곁에서 보살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 젊었을 때에는 백화점 일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쉬는 날이 월요일인 경우가 많아 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안 했다. 그러나 딸이 대학에 들어간 후 일을 구하려 했을 때는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청소가 전부였다. 처음 그녀가 울산과학대에 들어왔을 때에는 시간 외 근무인 당직을 서도 청소노동자들에게는 당직 수당을 주지 않았다.

그녀가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것은 직원들은 당직 수당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이다. 하지만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안 주면 못 받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의식을 깨운 것은 울산 연대 노조가 학교로 찾아오고 나서부터이다.

– 노조가 당신에게 갖는 의미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노동 문제는 노조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본다. 또한, 노조가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높이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자존감은 내가 찾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자리에서 잘못된 것을 말하지 않는데 누가 말해 주겠는가. 내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 삶의 철학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필요한 인간이 되자.’다.

– 진보신당에 입당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들었다. (노동운동하기 전 김순자 씨의 한나라당 및 보수단체 활동에 대해선 김규항 씨와의 인터뷰에 이미 나온 바 있어 더 질문하진 않았다.)

“진보신당이나 사회당이나 노동운동할 때는 항상 연대했기 때문에 어디 한 곳에 들어갈 수 없어서 무당파였다. 그래서 진보신당과 사회당이 합쳐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다. 비례대표 제의를 한 것은 사회당의 이향희 위원장이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하지만 노동운동 현장을 다니면서 말로만 듣던 ‘정치는 현장으로부터’의 의미를 알게 됐다. ‘정치가 별거 아니구나.’ 하고 느끼면서 완전히 뛰어들게 된 거다.”

– 진보신당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당이 없어진다 해도 진보적 가치를 가진 사람들만 있다면 함께 할 거다.”

– 만약에 1년 정도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엇이 하고 싶은가?

“선거운동을 하면서 전국적으로 다녔다. 1년간 시간을 준다면 내가 ‘다시 올꼬마!’하고 약속한 곳에 다 다시 가고 싶다. 전부 좋아해 주니까 나도 너무 좋았다. 내가 할 일이 너무 많구나, 느꼈고. 그 때는 노조가 있는 곳만 갔는데 노조가 없는 곳도 많다. 찾아가 무엇이 문제인지 보고 싶다.”

–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노동조합 활동한 이후부터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 이 글은 슬로우뉴스 2호 특집, ‘온라인, SNS, 그리고 4.11 총선’ 열일곱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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