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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일상,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이야기들이 지금도 우리의 시공간 속을 흘러갑니다. 그 순간들을 붙잡아 짧게 기록합니다. ‘어머니의 언어’로 함께 쓰는 특별한 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box]

 

전쟁 속에서 무럭무럭

 

“너 예전에 한옥 살았을 때 할머니 다섯 명이랑 산 거 기억나?”

“다섯 분이요? 네 분까지는 생각나는데.”

“다섯 명이었지. 네 할머니, 외할머니, 이모할머니 두 분, 그리고 양할머니.”

“아 맞다. 양할머니 잠깐 계셨죠.”

“그치. 그렇게 해서 한 집에 할머니가 다섯 분이셨잖아.”

“그러고 보니 한 집에 할머니 다섯 명이랑 같이 살아보는 것도 정말 특이한 경험이네요. 엄마는 그때 어땠어요?”

“뭐 맨날 전쟁이었지.”

“왜요?”

“니 할머니가 맘에 안 들어 하셨으니까.”

“그래도 같이 사는 거 자체는 허락하신 거잖아요.”

“그치. 그래도 ‘외가쪽 할머니’가 세 명이고, 양할머니까지 있었으니.”

“그랬군요.”

“그랬지. 너희들은 전쟁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던 거고. ㅎㅎ”

“ㅎㅎ 전쟁 속에서 무럭무럭!”

가끔 그렇게 많은 할머니들을 모시며 살기로 결단한 어머니가 신기하기만 하다. 한 분과 같이 살기도 힘든 거 같은데… 다섯 분의 할머니는 이제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다. 죄송스럽게도 이 땅을 떠나 있을 동안 돌아가신 몇 분의 장례식에는 찾아뵙지도 못하였다. 오늘 다섯 분의 할머니들이 하나 하나 그립다. 당신들은 비록 티격태격 다투면서 지내셨을지 모르지만, 나는 당신들의 그늘에서, 아니 그 그늘 덕에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으니.

thevancats, CC BY NC ND
thevancats, CC BY NC 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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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관계

 

“성우야, 수요일은 엄마가 일찍 나갈지도 몰라.”

“아,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군산 이모가 올라온단다. 생일인데 가족들도 만나고, 온 김에 종합검진도 받으신다나 봐.”

“아, 그러시구나.”

“응, OOO형이 병원에 예약 잡아 놨대.”

“이제 연세가 많이 드셨죠.”

“응, 그래서 이번에 병원에 같이 가고, 하루 종일 같이 있으려고. 일 다 끝나면 고덕동에 가려고 해. 큰 이모 만나려고.”

“아 세 자매가 같이 만나시는군요.”

“응, 군산 이모가 큰 이모 돌아가시면 너무 서운하고 슬플 거 같다고… 이번에 안 만나면 영영 못볼 지도 모른다고.”

“정말… 여든이 넘으셨으니 그런 생각 하실 수도 있겠어요.”

“그치, 이제 여든 하난가 되셨지. 아무튼, 그래서 하루 종일 있다가 저녁에 이모들이랑 저녁 먹고 올 거야.”

조금씩 늙어가는 어머니. 터울이 큰 이모들은 이제 정말 할머니가 되셨다. 큰이모는 언제 우리 곁을 떠나실지 모른다. 둘째 이모는 당신의 생일에 어머니(세 분 중 막내)와 함께 큰 이모의 죽음에 대비한다.

오래전에 본 “Before I die I want to……”라는 테드 강연이 떠오른다. 몇 해 전 어머니를 잃은 신디 챙(Cindy Chang)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시간과 관계”라고 말한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는 그걸 조금 일찍 깨닫고 싶다. 시간은 쏜 살 같이 빠르고, 사랑하는 관계마저도 흐르는 시간을 거스를 순 없다.

YouTube 동영상

자신의 분주함을 접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오래오래 머무르는 사람만이 비로소 시간과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오면 이모님들과 무슨 말씀을 나누셨는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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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

 

# 1.

간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모임. 편한 사람들과 맘의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자리여서 고맙고 따뜻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와 짧은 대화를 나눈다.

“어머니, 어제는 친구들 만났어요. 고등학교 친구들요.”

“그렇구나. 다 잘 살고 있어?”

“네네. 다들 열심히 살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가끔 허전함을 느끼는 친구들도 있는 거 같아요. 저도 그렇고… 살아와서 뭐 딱히 자신이 이룬 게 없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가 많지. 그런데 그동안 준비한 건 있잖아. 당장 손에 쥔 건 없어도, 그동안 쌓아온 걸 통해서 앞으로 뭔가 하면 되지. 잡히는 게 없다고 기죽지 말고.”

# 2.

오래전 군대 갈 준비를 하는 친구와의 대화가 기억났다.

“어떻게, 이런 저런 정리는 잘 되고?”

“응, 인사도 다 잘 하고. 그런데 ‘정리’라는 말 싫다.”

“아 그런가? 그럼 뭐가 낫나?”

“음… ‘기약’이라고 하면 안 될까?”

“아 그게 좋겠다. 기약.”

“그래. 군대가 좀 싫긴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다시 만나겠다는 기약.”

“좋다. 좋아. 그때 더 큰 기쁨으로 만나자. 더 멋있는 사람이 되어서.”

# 3.

준비해 왔다. 그리고 기약하려 한다. 내 손에 쥐는 게 많아질지는 모르지만, 계속 준비할 것이라고. 함께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으로 기뻤으면 좋겠다고.

@nnalis@, CC BY NC ND
@nnalis@, CC BY NC ND

 

전쟁 속에서 무럭무럭, 2013년 11월 22일
시간과 관계, 2013년 11월 24일
기약, 2013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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