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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대 정치’의 종말: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드러낸 민주통합당의 한계 [특집]

56년 5·15 정부통령 선거 유세시 신익희와 장면이 순천 근처의 갯마을 국민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한 적이 있었다. 장면은 아이들을 웃기려고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친구 아이들이 ‘짜장면 짜장면’하고 놀렸다. 그건 내 이름이 장면이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전혀 웃지 않았다. 짜장면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짜장면은… 50년대 중반까지도 아직은 대중화하지 않은 음식이었다. 56년부터 짜장면 대중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김영미에 따르면, “짜장면이 값싼 음식으로 밥에 대해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956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미국산 잉여 농산물 때문이었다. 미국산 잉여농산물은 한국 곡물 생산량의 40%를 차지하였으며 그 가운데 밀이 70%를 차지했다. 따라서 밀가루값은 쌀값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쌌으며, 화교들은 싼 값에 자장면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짜장면 대중화는 결코 반길 일이아니었다. 미국산 잉여농산물은 한국의 농촌 경제에 치명타였기 때문이었다. 56년부터 들어온 미국 원조는 모두 농산물이었다.

강준만,한국현대사산책-1950년대편, 3권, p.69~70.

1. 왜 패배인가

질 수 없는 선거에 진 민주당과 박근혜 불패 신화

19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많은 이들을 ‘멘탈붕괴’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조선일보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민심이 흉흉한 상황에서 박근혜가 이끄는 새누리당이 단독 과반수 확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원래 이길 수 있었던 선거를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의 실책으로 졌다”는 한명숙 이하 지도부와 친노 계열에 대한 문책론이 대두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비춰봤을 때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2010년 6.2 지방선거는 천안함 폭침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서울시장과 경기지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뒀다.

게다가 2008년 수도권을 완전히 뺏긴 18대 총선에서도 유지했던 강원도 영서 지역과 충청북도에서 새누리당이 대거 약진한 것은 수도권+충청+호남+강원 일부의 지역연합이 마침내 붕괴되었다는 얘기였다. 이른바 민주-진보 연합세력은 수도권과 호남에 고립되게 된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총선을 패배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박근혜 대세론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보수 세력의 정치적 대표자로 복귀해 일거에 친이 세력을 대거 내치면서 ‘박근혜당’으로 구한나라당을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선거 불패’ 신화를 꼽아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할 경우 박근혜의 리더십은 약화되며, 조직 장악력이 뒤떨어지는 박근혜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는 경기 동부-강원-충청 일대 등 농촌 지역을 확고하게 장악하는 데 성공하면서 대선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 더구나 보수 세력의 여유 있는 승리는 이명박이 기반한 뉴라이트 담론에서 벗어나 ‘보수의 재구축’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박근혜가 총선 다음날 “새누리당이 또다시 구태로 돌아간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각오로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다”면서 “모든 세대, 모든 계층을 다 끌어안고 함께 가겠다”고 말한 것은 보수 세력의 ‘리빌딩(rebuilding)’을 계속해나가면서 대선을 준비해 나가겠다는 사실상 출마선언이다.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의 비교. 출처: 경향신문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의 비교. 출처: 경향신문

2. ‘기병대 정치’의 종말

어떻게 해서 민주당은 패배하게 됐나?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민주당은 선거 운동 자체를 못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즐겨 이용하는, 웬만큼 교육받고 소득을 거두고 있는 도시 중산층에게만 집중한 채 지역-장년층-중하계층-농촌 등에서 지리멸렬하다시피 한 행태를 보여줬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김용민과 미권스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이야기되고 있다. 결국 스윙보터(swing voter)가 많은 지역에서 민주당은 대부분 한나라당에 따라잡혔다. 서울과 수도권의 2010년 구청장 선거 결과가 2012년 총선 선거 결과를 비교하면 이러한 부분이 잘 드러난다. 서울과 수도권 20, 30대의 열광적인 투표 참여를 이끌어 냈지만, 그뿐이었던 셈이다.

2010년 지방선거까지만 해도 ‘반MB’ 깃발만으로 선거 승리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박근혜가 ‘쇄신’으로 ‘탈MB' 하겠다는 선언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출처: 동아일보(위), 조선일보(아래)

하지만 민주당의 취약성은 한명숙 체제의 ‘무능함’에 있지 않다. 기실 따지고 보면 민주당과 범야권의 정치는 ‘기세’에 의지하는 것 이외에는 별 게 없었다. ‘독재자’, ‘도탄에 빠진 민생’, ‘강부자’ 등 몇 개 깃발을 걸어놓고 ‘반MB’만을 외쳤던 것이 현 정치세력의 주소다. 이러한 깃발을 치켜들면 어디에선가 기병대가 출현해서 한나라당 조중동 재벌 강부자들이 방어하고 있는 진지를 돌파한다는 것이 이명박 취임, 정확히 이야기하면 2008년 촛불 시위 이후 민주-진보 세력의 작태였다. 1) 대중들의 MB에 대한 불만이 치솟고 2) MB의 실정을 누군가가 고발하거나,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3) 여기에 대해서 MB와 보수 세력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막으면 4) 외부에 있는 세력이 강력한 기병대를 끌고 와서 민주-진보 세력을 구원해주는 구도였던 셈이다. ’기병대 정치‘라 부를만한 행태가 반복되어왔던 것이다.

2008년 촛불 시위 당시의 정의구현사제단,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일단의 ‘고발적 지식인’들, 2011년 ‘나는 꼼수다’, 2012년 강정 마을 활동가들과 파업에 나선 언론사들, 총선 기간 중에 KBS노조에 의해 폭로된 민간인 사찰 의혹 등 주요 국면에서 민주-진보 세력이 자체적으로 만든 조직은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지도부라 부를만한 이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들은 이들 기병대에 의존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한 정치 행태가 한계에 부딪힌 것이 이번 총선이다. 선거를 통한 정치권력의 장악은 위에서 언급된 상황들이 표방하고 있는 ‘반독재 민주화 시위’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운동’에 열광하는 ‘정치 고관여층’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대중’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정치 저관여층’까지 설득하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한 표를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대중들의 열망과 이해관계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또는 프레임)와 지역 현장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용어로 말하면 사회경제적 조건과 역사적 과정으로 형성된 다양한 대중 집단이 묶어 하나의 단일한 저항 주체로 주조된 ‘역사적 블록(historical block)’ 그리고 그들이 참여하고 소통하며 만들어나가는 ’현대의 새로운 군주(modern prince)’가 필요한 셈이다. 민주당의 패배는 이러한 역사적 과업을 방기한 그들의 정치 행태의 필연적 결과다.

3. ‘극장’만을 원하는 불임의 민주당

민주당이 이토록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온 원인은 1) 고유한 정책 프로그램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친노 유훈 통치’ 2) 도시 중산층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라는 점의 한계 때문이다. 그들의 정치에 대중은 자신들의 ‘민주화’ 정치를 지켜보는 ‘관객’일 뿐이다. 자신들의 공연이 역사의 정당성을 그대로 잇고 있기 때문에 관객 또한 이를 지지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멘탈리티다. 하지만 여기에 그 관객들이 다층적인 이해관계와 역사적 경험을 가진 집단이라는 것은 무시한다. 그들은 ‘관객’은 자신들이 기반을 두고 있는 도시 중산층, 그것도 서울과 수도권 일대의 중산층으로 상정한다. 그들의 정치는 이 글 맨 앞에 소개한 1950년대 민주당의 정치와 닮았다.

있는 집 자식들이나 일년에 한두번 읍내에 나가 짜장면을 사먹던 당시, 짜장면이 어린 시절 농담의 소재가 될 정도로 일상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야당 당수 장면. 1920년대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천주교 신자다.

있는 집 자식들이나 일년에 한두번 읍내에 나가 짜장면을 사먹던 당시, 짜장면이 어린 시절 농담의 소재가 될 정도로 일상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야당 당수 장면. 1920년대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천주교 신자다.

민주당의 정책 프로그램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들은 다양한 ‘복지 정책’, ‘재벌 개혁’, ‘FTA 재협상’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공약들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프레임으로 통합되어 있지 못하고 모두 표면적인 구호로서만 기능한다. 강경한 구호 뒤에 빈약한 콘텐츠와 정책의지라는 상반된 결합이라는 기묘한 형태로 공존하는 셈이다. 제대로 된 ‘동원’이나 대중의 ‘각성’도 일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보수 세력의 반격에 당하기 좋은 형국에 스스로를 포지셔닝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나타난 핵심적인 원인은 친노 세력에 구체적인 정책적 지향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계속해서 지적하고 있지만,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경제정책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노무현 정부 당시 추진되었던 것들이다. 자유무역협정(FTA)만 해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책실장을 맡았던 김병준은 한미FTA에 대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도전”이라며 “정확한 상황 인식 위에 합리적인 토론이 있어야(김병준,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pp.19)”한다고 말한다. 정태인의 주장과 달리 한미FTA는 김현종이나 김종훈 등 외교통상관료의 독단적인 정책 제안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노무현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핵심 정책과제로 삼아온 것에 가깝다. 친노 세력은 여기에 대해서 ISD 반대라는 어정쩡한 입장만을 고수한다. 노무현의 과오를 인정하는 ‘반대’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찬성’론 사이에서 어떠한 선택도 하지 못한 셈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논거 없이 이명박 정부만을 공격하는 민주당의 입장은 보수 세력의 역공을 받기 충분했다.

다른 사회 경제적 프로그램도 제대로 갖추어진 게 없었다. ‘복지’를 소리높여 외쳤지만, 어떻게 재원을 조달해 어떤 식으로 정책을 펴고, 이것이 어떤 혜택을 유권자들에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존재하지 못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미시적 보수성이다. 입으로 개혁을 떠들어대지만, 경제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 한나라당의 세금폭탄론에 대한 대중의 동의, 지주와 노동자 간의 급격한 자산재배분을 야기하는 부동산에 대한 승인, 황우석에 대한 열광을 지나 이명박 당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인들은 근본적으로 집단적인 수준의 경제적 규율에 익숙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힘있는 자의 규칙을 따른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8년 자연적으로 ‘발화’한 촛불 시위는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압력이 임계 지점까지 와있다는 하나의 시그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들을 추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구질서에서 벗어날 것인지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여기에 대해서 거의 고민이 없었다. 이명박 당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자신들의 ‘반성’도 부재했음은 물론이다.

“안보와 경제, 한미동맹 등 보수층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갖춘 사안을 야당이 먼저 제기했다가 새누리당이 ‘말 바꾸기’로 역공하면서 되치기당한 형세”라는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의 코멘트는 곱씹어볼 만하다.

민주당 지지층의 기회주의적 속성과 정책적 기회주의

이러한 모호한 입장은 민주당과 민주당의 주 지지층이 대기업-부동산-저임금이라는 3각 편대로 짜인 현재의 사회경제적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임금 노동자들로 구성된 그들은 현재 사회 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민주당의 핵심인 구 386들은 현재의 사회 경제 질서의 마지막 혜택을 입은 이들이다. 물론 이들, 특히 현재의 서울 지역 30대 중산층들은 사회경제적 압력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안정된 경제적 지위를 원하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적 기회주의라 할 만한 모호성이 지도력 약화의 주된 배경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한명숙 전 대표가 제주도 해군기지와 FTA 등 다양한 이슈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은, 개인의 역량 부재 때문만으로 볼 수 없다. 문재인과 김두관 등의 잠재적 대선 후보들은 그러한 질문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내릴 수 있을까. 그 이전에 친노 세력 내부의 ‘컨센서스’에서 그러한 이슈에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 것인지 거의 논의되지 않았던 것이 핵심 원인으로 보아야 한다.

4. 도시 중산층에 갇혀

이번 선거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실 하나는 친노 계열이 수도권 중산층으로 국한된 지지층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을 타깃으로 한 일종의 ‘운동으로서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성근이 주도해서 조직한 ‘국민의 명령’이나 김어준이 나서 만든 ‘나꼼수’와 ‘미권스’야 말로 그 대표적인 본보기다.

김용민을 지지하기 위한 ‘삼두 집회’ 현장. 서울 광장에 모인 그의 지지자들의 연령대와 성별 구성은 많은 것을 드러내 준다. 출처: 연합뉴스

김용민을 지지하기 위한 ‘삼두 집회’ 현장. 서울 광장에 모인 그의 지지자들의 연령대와 성별 구성은 많은 것을 드러내 준다. 출처: 연합뉴스

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자신과 다른 사회경제적 지위와 경험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지지층으로 포섭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다. 이는 그들이 지향하는 ‘운동으로서의 정치’에 내재한 치명적인 결함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지적하는 이들이 없었다.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그들의 모호하고 기회주의적인 입장은, 농촌-지역-장년층 등과의 정책 연합의 형성을 가로막는 요소다. 게다가 그러한 콘텐츠의 ‘거세’는 그들의 캠페인이 오로지 ‘정치 개혁’에만 치중하도록 만들었다.

문제는 민주당이 제대로 된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해 이러한 외부의 ‘운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한 운동 정치는 보수층의 격렬한 반발과 중도층의 이탈, 그리고 지역 기반의 상실이라는 두 가지 역효과를 가지고 왔다. ‘기병대 정치’에 의존해왔던 민주당의 행태가 결국 총선을 맞아 비극적인 방식으로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4-1. ‘인물’은 지역감정을 돌파할 수 있나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을 바탕으로 새롭게 부산에 교두보를 만들겠다는 총선 캠페인은 민주당의 무기력함을 잘 보여주는 예다. 소위 ‘지역감정’은 세 가지 차원을 가지고 작동된다. 1) 전라도 지역에 대한 유사 인종주의가 굳건히 대중적 차원에서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2) 지역 명문고를 기반으로 하는 지방 출신 엘리트 간의 자리다툼과 그로 인해 떨어지는 떡고물이 동력이 된다. 이 두 가지 메커니즘의 배경에는 3) 서울과 지방 사이의 현격한 격차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일종의 유사 인종 차별이 곁들여진다. 정치공간에서 경상도 지역민들에게는 ‘스스로가 백인이라는 환상’이 씌워진다. 사실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들은 인종차별은 백인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심리적인 보상 임금”을 안겨주기 때문에 공고해질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부의 가난한 백인 소작농들에게 “나는 흑인과 다른 고귀한 백인이야”라는 환상을 불어넣어, 그들을 불만을 억누르고 기득권 백인 지주의 편에 서도록 만들었단 얘기다.

이는 2)번 항 때문에 증폭되고 유지된다. TK 혹은 PK가 장악한 중앙 정계 혹 고위직은 이들 지역이 “그들 덕에 개발되었구나”라는 생각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다. 자생력 없는 지방이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중앙정부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네 지역 출신 엘리트들을 무조건 지원해 주어야 한다. TK, PK의 정당 한나라당이 그 대상임은 물론이다. 게다가 70년대 박정희의 집권 이후 공고해진 경상도-중앙정계의 연결과 그로 인한 엄청난 경제발전 신화는 이를 지지하는 명확한 근거가 된다.

대선에 비해서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경남 일대의 보수 정당 세력은 건재를 과시했다. 출처: 국제신문

대선에 비해서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경남 일대의 보수 정당 세력은 건재를 과시했다. 출처: 국제신문

문재인이 지휘한 부산 지역 총선 캠페인은 ‘노무현의 적자‘라는 점만을 강조한다는 것에서 근본적으로 단발성 이벤트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 지도부의 뚜렷한 대중 동원 전략이 없는 상황에서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없었다는 점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부산-경남-울산 지역의 정당별 지지율을 비교해보면 한나라당 지지세가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뚜렷한 개발 공약마저 내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의 부산 지역 총선 캠페인은 오로지 저축은행 사태와 신공항 유치 무산으로 형성된 반여권 분위기를 틈탄 ’인물 선거‘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과연 이들은 영남 지역의 강고한 지역감정을 내파(implosion) 할 수 있는 ’역동원 캠페인’을 구사할 수 있을까.

4-2. ‘포크 배럴‘ 지역 정치의 무시

현대 한국 지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중앙 정부의 예산을 각 지역으로 배분하는 ‘포크 배럴(pork barrel)’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현격한 격차는 이러한 포크 배럴의 중요성을 점점 키우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대통령 재임 시절 충청 지역을 전략적으로 개발하고, 다양한 지역 개발 사업을 벌였던 이유도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예의 ’지역 인물론‘이 세를 얻는 것도 포크 배럴 정치와 연관된다. 중앙 정계와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출향 인물이야말로 지역에 번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여러 매체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민주당의 이번 선거 패배 원인 가운데 하나는 강원과 충청 지역을 거의 방기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유지했던 충북과 강원 일대를 새누리당이 석권하다시피 한데에는 민주당의 포크 배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큰 원인이었다. (참고: 내일신문, 강원도 민주당 0석, 이유 있었네)

지역 정치 무시라는 친노의 ‘정치 개혁’

문제는 친노의 지역 정치 무시가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일반화된 현상이라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자당 정치인들의 1) 인사청탁을 무시했고 2) 정치자금 원조를 거부했으며 3) ‘선심성’ 지역 예산 집행을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3)번이다. 포크 배럴 정치를 벗어나는 것을 일종의 ‘정치 개혁’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 유권자 입장에서 보자면 ‘표가 모이는 서울 등 수도권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비칠 수 밖에 없다. 강원도 영서 지방에서 박근혜 바람이 불었던 이유는 “민주당이 강원도를 홀대한다”는 여론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여론이 일찌감치 감지되었지만, 민주당 지도부와 한겨레 등 친민주 성향의 매체들은 숙고하지 않았다. 이 같은 현상은 동교동계 등 호남 지역의 구민주당 파벌의 세가 축소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5. 새로운 대중 정당은 가능할 것인가

이번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민주당의 최대 문제는 리더십의 부재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정치인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 내 최대 계파인 친노 계열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도시 중산층의 허약함과 기회주의에서 연원한다.

현재 민주당의 과제는 대중 정당으로서 새로운 위상을 구축하는 것이다. 호남 기반은 날로 약해지고 있으며, 충청과 강원 등은 지역 연합으로서 동맹 관계를 상실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너무나 불분명한 도시 중산층에게만 기대고 있고, 그들의 망딸리떼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민주당의 문제다. 그들은 구체적인 대중 동원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역량과 인물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점은 현재의 정치 지형이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박근혜가 주창하고 있는 ‘복고적 수동 혁명’이 어디를 향하든, 민주-진보 연합이 주도권을 다시 잡기란 어렵다. 오로지 근본적인 수준에서 대중 정치 세력을 재주조하는 것만이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보인다.

용어설명

스윙보터(swing voter) : 어디를 찍을 지 결정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유권자라는 의미. 부동층을 지칭한다.

ISD(Investor-State Dispute, 투자자국가소송제도) : 해외 투자자가 정부 정책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국제 중재 신청해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

컨센서스(consensus) :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견에 대한 합의.

포크 배럴(pork barrel) : 원래 미국 의회 정치에서 기원한 정치 용어로 특정 지역구나 정치적 후원자를 위한 선심성 사업을 뜻함. 국회의원들이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나눠받기 위해 모여든 노예들 같다는 뜻에서 기원.

망딸리떼(mentalité, 집단 심성) : 프랑스 아날 학파가 고안한 개념으로 특정한 시대의 인간 집단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신념 체계와 행동 양식을 통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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