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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듣는 언론,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시사IN 신선영 (모자이크 추가)

ⓒ시사IN 신선영 (모자이크 추가)

기자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 남의 집 현관문에 귀를 대고 엿들으려고 기를 쓰는 장면. [시사IN]이 찍은 이 사진을 잘 기억해 두자. 이것은 범죄 현장을 찍은 사진이며, 한국의 언론이 어떤 수준으로 추락해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진이다.

[시사IN]의 기사는 사진 속에서 벌어진 일을 이렇게 묘사했다.

10월1일 오후 3시, 임 여인이 거주한다고 알려진 그녀의 외삼촌 집(경기도 가평군의 한 아파트 3층)에 도착하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국민일보] 기자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현관문에 바짝 귀를 댄 채, 이른바 ‘벽치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기자들은 몇 걸음 떨어진 계단 근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간혹 문 앞에 자리가 나면 다른 기자들이 번갈아가며 귀 대기를 반복했다. (시사IN)

읽는 사람도 참담할진대, 저런 짓을 하는 기자들도 생각이 있다면 스스로 창피하였을 것이다.

이 사진과 더불어 기록해두어야 하는 기사가 있다. 저런 장면을 통해 만들어진, 그리고 저런 장면을 부추기고 있는 [중앙일보]의 기사 “한 달 동안 가만 있으라고 … 내 인생은?”이다.

사생활 침해하는 범죄 행위

이런 일은 채동욱 사건에 연루된 임 아무개 씨가 머물고 있다는 가평의 한 아파트 현관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임 씨는 공인도 아니고 아무런 범죄 피의 사실도 없다. 언론사에서 보자면 사인(私人) 취재원일 뿐이다.

남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 그렇게 들리기를 기대하지 않으며 개인의 사적 공간에서 행해지는 대화를 적극적이고 용의주도하게 엿듣는 행위는 일종의 도청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수사관이 하더라도 영장 없으면 범죄 행위다. 기자에게 영장 발부해 준다는 얘긴 못 들어봤다. 수사관이 하더라도 이렇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런데 신문에는 버젓이 실린다. 엿들은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개인 간의 전화 통화 내용을 도청하여 보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에는 다음과 같이 아름다운 문자들이 나열되어 있다.

4. 정당한 정보수집: 우리는 취재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
6. 사생활 보호: 우리는 개인의 명예를 해치는 사실무근한 정보를 보도하지 않으며, 보도대상의 사생활을 보호한다.

말은 번지르르하다. 아무리 번지르르한 말이라도 지키지 않으면 썩어문드러진 것이나 똑같다. 물론 저기 거명된 신문의 기자들도 모두 기자협회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비슷한 일이 몇 달 전에도 있었다. 이 때에는 기자들이 김포의 윤창중 아파트 앞에서 진을 쳤다. 그러나 이렇게 귀를 대고 엿듣는 ‘벽치기’까지 하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윤창중은 전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공인치고도 고위급 공인었으며,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임 씨나 그 친지들과는 상황이 천양지차다. 그렇더라도 기자가 윤창중의 아파트 문에 귀를 대고 엿듣는다면 역시 논란의 여지가 남는다.

우리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개인에게 보장된 프라이버시의 헌법적 선언이다. 법학자 전광백은 ‘프라이버시의 침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헌법 규정은 개인의 사생활 활동이 타인으로부터 침해되거나 사생활이 함부로 공개되지 아니할 소극적인 권리는 물론, 오늘날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적극적인 권리까지도 보장하려는 데에 그 취지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대법원은) 판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다수 국가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생활이 함부로 공개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사적 공간에 대한 부당한 간섭 및 교란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수 있도록 판례나 헌법과 법률로 프라이버시권을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확립된 개념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프라이버시권을 타인에 의해서 관찰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자기의 비밀을 간직할 수 있으며, 사생활의 비밀을 함부로 공개당하지 않고, 침해받지 않으며,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기에 관한 정보의 유통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전광백)

그러나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다. 한국 법원이 프라이버시 침해에서 면책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1) 본인이 승낙/동의했을 경우와 2) 공적인 인물의 경우 정도다. 미국 법에서는 1) 공인인가의 여부와 2) 문제의 장소가 공공 장소인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두 나라 법원의 기준에 공통성이 있다. 공공 장소란 ‘남이 듣거나 사진 촬영을 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장소이고, 따라서 암묵적 동의를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씨와 그 친지들은 기자들이 자신의 아파트 문에 귀를 대고 엿듣는 일을 승낙하거나 동의한 적이 없다. 이 아파트의 문과 대화가 벌어지는 아파트 안은 공공 장소가 아니다. 아파트 입주자들이 소유권을 가진 저 복도도 마찬가지로 사적 공간일 것이다. 또 임 씨와 친지들은 공인이 전혀 아니다. 언론이라고 해서, 기자라고 해서 이런 형태로 남의 사생활을 침범할 권리는 없다.

공인이 아니더라도 프라이버시 침해가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엄격하게 적용된다. 예컨대 조두순이나 오원춘의 가족 관계를 조사하여 공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다는 식이다. 다시 전광백의 말을 보자.

한편 공적 인물이 아닌 사인이라도, 그가 당시 사회적 관심을 갖기에 충분한 인물이거나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에 연루된 경우에는 대중의 정당한 관심 사항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살인 또는 유괴 등 충격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의 범행 동기나 그 수사 및 재판 당시의 상황,피해자와 범죄자와의 관계 등의 공개는 프라이버시 침해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범죄와 관련된 피해자의 성명을 실명으로 공개하거나 일반인이 피해자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인적 상황을 밝힌 경우에는 피해자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 (전광백)

원칙과 예외를 모두 고려하고 보더라도, 사진에 나온 것과 같은 사생활 침해는 여전히 허용될 수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이라면 총 맞을 수도

표현의 자유, 특히 언론의 자유가 광범위하게 인정되는 미국에서도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판단한다. 언론의 취재 과정(보도 과정이 아니라)에서 벌어지는 사생활 침해는 프라이버시권 침해(intrusion)와 사유재산 침해(trespass)로 요약된다. 사적인 장소에서 개인을 엿보거나(peep), 염탐하거나(snoop), 엿듣는(eavesdrop) 행위는 영락없는 프라이버시권 침해다. 언론법 전문가들이 저널리스트를 위해 쓴 [공공 커뮤니케이션 관련법(The Law of Public Communication)]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창문을 통해 엿보는 행위, 혹은 문에 귀를 대고 엿듣는 행위는 사유재산 침해, 프라이버시권 침해, 혹은 그 둘 모두에 해당할 수 있다.

보험 사기 조사를 위해 보험회사의 의뢰를 받아 부상자를 염탐하던 탐정들은 이런 이유로 처벌받았다(Souder v. Pedleton Detectives). 엿듣기를 포함하는 프라이버시권 침해에 대해서는 이런 판례가 있다.

프라이버시권 침해가 벌어질 경우, 일반적으로 침해자는 그가 듣는 내용에 상관없이 침해의 책임을 져야 한다. 부부의 침실을 엿듣는 자(eavesdropper)는 부부 간에 오가는 애정의 대화를 들을 수도 있고, 공중의 정당한 관심이 되는 사실이나 의견을 들을 수도 있다. 이런 내용의 차이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아무런 차이도 구성하지 않는다. (Pearson v. Dobb)

사유재산 침해(trespass)는 물리적으로 남의 공간에 침입하는 것이다. 함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일반인이나 언론 종사자나 마찬가지다. 만일 미국 기자가 몰래 남의 집 현관문에 귀를 대고 저렇게 엿듣기를 시도했다면, 총을 맞아도 할 말이 없다. 과잉 대응 논란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스윙보트(Swing Vote, 2008) ⓒTouchstone Pictures

스윙보트(Swing Vote, 2008) ⓒTouchstone Pictures

위 이미지는 영화 [스윙 보트(Swing Vote)]의 한 장면이다. 얼떨결에 미국 대통령을 결정할 한 표를 행사할 위치에 놓이게 된 남부 촌사람 버드 존슨의 집 앞이다. 대통령이 누가 될지가 이 한 사람 손에 달려 있으니 전국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왔다. 그런데 모두 일정한 거리 밖에 있다. 존슨의 사적 공간 안에는 한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공공 장소인 도로에 진을 치고 몰려있고, 사진기자들을 위한 스탠드도 공도(公道) 위에 만들어져 있다. 모두 취재를 하면서 사유재산 침해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존슨은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할지에 대해 딸과 이야기를 나눈다. 자기 집 안에서다. [시사IN] 기사에 나오는 기자들 같았으면 귀를 들이대고 엿듣고 싶어 안달이 날 이야기였을 것이다. 코미디 영화지만 그런 짓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도 야망 있는 여기자가 나오는데, 그녀는 물론 존슨에게 접근하여 그의 의견을 듣고 싶어한다. 이 여기자가 선택하는 방식은 몰래 귀를 대고 사적 대화를 엿듣는 것 같은 범죄 행각은 아니다.

이런 일 하고 싶어 기자 됐습니까

이런 법적 검토 이전에, 이것은 언론의 윤리와 품위 문제다. 공인도 아닌 사람이 사는 개인 아파트 문에 귀를 처박고 흘러나오는 말소리를 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이 부끄럽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건진, 정체도 알 수 없고 맥락도 알 수 없고 누가 말한 것인지조차 확인할 수도 없는 말조각들이 공익의 추구에 몇푼어치나 도움이 될 것인가. 이런 취재로 나오는 것들이란 추정과 억측의 스토리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저 젊은 기자들이 근면하게 수행하고 있는 불법적이고도 비윤리적인 취재 행위가 본인이 꿈꾸어왔을 보도의 사명에, 그리고 공공선의 추구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에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런 취재 행위를 허용하고, 그렇게 해서 나온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사 간부들도 제정신이 아니긴 마찬가지다. 소속 기자가 취재 윤리와 현행법을 모두 위반한 방식으로 취재를 하여, 추정과 짐작으로 점철된 기사를 들고 왔다면 면상에 기사를 내던지고 호통을 쳐야 옳을 것이다. 미국에서라면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해고하면 되니까. 안 그러면 엄청난 금액의 소송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이런 기사를 좋다고 써서 대문짝만하게 올리고, 이런 짓을 하지 않거나 못해서 ‘물 먹은’ 다른 기자들이 덩달아 앞다투어 똑같이 부끄러운 짓을 하러 나서는 게 오늘날 참담한 한국 언론의 모습이다. 비슷한 일을 하는 파파라치는 사진을 건지는 대신 명예는 구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더티한 일을 한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범법의 정도로 볼 때 파파라치보다 더 나쁜 한국 언론은 저런 짓을 하면서도 일등이요 최고요 하는 입발린 수사는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행각이 아무런 반성 없이 벌어지기 때문에 언론은 욕을 먹고 극단적인 불신의 대상이 된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게다가 멀쩡한 다른 기자들 얼굴에까지 먹칠을 한다.

창피한 줄을 좀 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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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허광준(deulpul)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들풀넷 운영자 / 연구 및 강의 노동자, 매체 비평가, 콘텐츠 생산자 / 들풀미디어아카데미 대표 / 과거에 [(원)시사저널] [포린 폴리시(한국어판)] [미디어 미래] [미디어 오늘] 등에서 기자, 편집위원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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