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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슬로우뉴스가 가로수길서점과 제휴하여 좋은 책과 함께 매주 독자를 찾아갑니다. 가로수길서점은 “가로수길에서의 책 한 권”를 더불어 나누고자 2012년 7월에 문을 연 온라인 공간입니다. (편집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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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사계절 중 어느 계절에 여행을 가장 많이 하셨나요? 그럼 여행 스타일은 어떠신가요? 되도록 빠르게 많은 것을 보고 온다? 혹은 보고 싶은 것을 천천히 보고 온다? 저는 돌이켜보면 가을에 대부분 여행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제가 여행을 가면 주로 온종일 걷기 때문에 걷기 좋은 날씨가 아무래도 사계절 중 가을이고, 또 여행을 가면 타이트하게 일정을 짜서 돌아다니기보다는 유명관광지를 돌아보기보다는 천천히 여행지의 자연 그대로의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 마을을 많이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요. 여행 스타일에 정답은 없지만, 저와 같은 여행을 못 해보신 분들은 이번 가을 한 번 시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 가로수길서점에서는 저와 같은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도서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건축가 백진의 “풍경류행”인데요. 건축가로서의 시선으로 15년간의 그의 유랑기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요? 먼저, 이 책의 저자와 책 소개부터 시작합니다.

이 책의 저자 백진은 서울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 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와 동경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현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인데요. 현상학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건축ㆍ도시ㆍ환경문제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Nothingness”가 있고, 해외 저널에 다수 글을 발표했습니다.

이 책은 시간에 쫓기지 않는 유랑자의 넉넉한 시선과 느릿한 발걸음으로 시선이 닿은 모든 풍경에 담긴 저마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찾아온 저자가 전하는 섬세하고 밀도 있는 풍경의 기록으로 시대, 건축, 철학, 미술, 종교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며 풍경 이야기부터 건축과 사람의 이야기까지 차분하게 들려줍니다.

이 책을 볼까 말까. 좀 더 자세히 이 책을 살펴볼까요? ‘오늘의 책 미리 읽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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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가 따뜻할 수 있을까? 십자가는 눈으로 보는 것인데 촉감으로 느끼는 게 가능할까? 먼지 한 점 없이 투명한 겨울 아침이다. 들이쉬는 숨이 차갑기는 하지만 맑은 기운이 가슴으로 들어와 허파를 씻어주는 듯하다. 그런 날 콘크리트로 지은 교회에 들어선다. 예배당으로 들어서니 밝고 광활한 밖과 대비되는 어둡고 소박한 공간이 나를 감싼다. 훈기를 기대하며 실내로 들어선 몸은 여전한 추위에 움츠러든다. 사무치는 추위 속에서도 나를 확 끌어당기는 것이 있다. 정면을 네 개의 콘크리트 조각으로 가른 뒤 그 틈새를 유리로 메워 만든 십자가다. 이 십자가는 어두운 예배 공간을 밝히는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떨어지는 빛이라 더 찬란하고 강렬하다. 냉랭한 공간에 떨어지는 빛이라 더 포근하고 따스하다. 추위에 웅그린 몸이 스스로 그 빛을 향해 걸어간다. 시커먼 나무판자로 마감된 계단에서 걸음을 뗄 때마다 빈 공간에 소리가 울려 퍼지니, 십자가를 향하는 발걸음에 신경이 집중된다. 내 몸을 향해 투명하고 곧은 빛줄기를 내뿜는 그곳으로 뚜벅뚜벅 내려간다. 냉기로 돌기가 솟아오른 살갗에 온기가 돌면서 몸의 긴장이 서서히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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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지간인 유명한 두 건축가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사막에 집을 많이 지었다. 그런데 스승이 이렇게 말한다. “건축은 대지에서 자라나는 예술이야. 대지는 건축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지. 건축에 쓰일 돌과 모래, 흙을 주잖아. 지붕 모양도 조각한답시고 괜히 재주 부릴 필요가 없어. 수천 년 동안 바람이 깎아놓은 저 산자락을 흉내 내는 것이 바로 자연의 지혜를 따르는 거야. 건물의 색조도 주변을 따르면 돼. 맞아, 건축은 대지에서 자라나는 나무 같은 거야. 대지가 모든 것을 준다고.” 제자가 말한다. “선생님, 그게 무슨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까? 저를 무슨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로 취급하시는 겁니까? 건물이 땅에서 자라나다니요? 이 황량한 사막은 나무는커녕 개미 한 마리도 생명을 부지하기 힘든 곳입니다. 울퉁불퉁하고 흐물흐물한 모래땅이라 반듯이 서 있기도 힘듭니다. 이 대지를 보고 있으면 저는 사람이 안정감 있게 서거나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반반한 평상을 만들고 그늘을 씌워주는 것이 창조의 첫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땅이 견고하지 않으니 기둥을 깊이 받아야 하고, 머나먼 곳에서 자재도 가져와야 하니 이런 곳에는 집을 짓는 것 자체가 투쟁입니다.” 스승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고, 제자 역시 근대 건축사에서 중요한 건축가로 손꼽히는 리하르트 노이트라다. 둘 중 누구 말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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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옷을 가장 잘 입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 생각에 세상에서 옷을 가장 잘 입는 사람은 길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다. 이 대답에 많은 사람이 적잖이 실망할 것이다. 사실 이는 아돌프 로스라는 입담 좋은 건축가가 한 말이다. (중략) 로스가 얘기하는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란 주어진 상황에 어울리는 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르누보 양식을 따르던 예술가들은 작업복과 운동복, 정장에도 모두 황금색 천을 사용했다. 아라베스크 문양을 넣고, 레이스를 붙이고, 꼬리가 길게 늘어지게 디자인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예술로 바라보고, 예술로 승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로스는 이런 예술지상주의를 증오했다. 아르누보 디자이너들은 삶보다 예술을 위에 놓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상황에 맞는 무명의 의상이란 무엇인가? 가톨릭 미사 장면을 떠올려보자. 사제석에 앉는 신부는 어떤 옷을 입고 나타나야 하는가? (중략) 사제복은 이중의 역할을 한다. 사제를 신도와 구분하면서 동시에 신부를 무명의 존재로 변화시킨다. (중략) 구분과 동질성 또는 드러남과 사라짐, 이런 이중의 관계를 구현하는 의상이 로스가 말한 상황에 어울리는 의상이다. (중략) 신부가 제의를 입고 미사에 등장할 때 그는 분명 다른 이들과 구분된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신부는 그 제의를 통해 자신을 숨기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미사 그 자체의 감동과 영광을 위해서다. ‘나’는 없다. 이 건물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면 튀는 것 같지만 결국 광장의 영화를 위해 자신을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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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와 님피엄은 순수자연을 꿈꾸는 인간의 이상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이 이상이 현대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최근 뜨고 있는 주말 주택 열풍 또한 르네상스 시대에 일어났던 순수자연, 무공해 자연에 대한 동경의 변형된 표현이다. 왜 이런 열풍이 지금 되살아난 것일까? 문명 세계에서 누리는 편리함만큼이나 그 폐해도 만만치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회문제는 날로 흉악해지고 경제적 불확실성은 점차 증폭되는 세상에서 오늘도 미어터지는 출근길 전철을 탈 때, 순수자연은 도피처처럼 우리 가슴팍을 파고든다. 환경뿐 아니라 우리 육체와 정신도 어느새 병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 병든 우리가 돌아가야 할 순수하고 청정한 자연은 어디에 있을까? 브라질 아마존 강을 따라 무작정 정글로 들어가면 될까? 빛깔 찬란한 열대새가 있고, 알아서 자라는 과일나무도 있기에 처음에는 아담과 하와처럼 뛰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오래 못 간다. 열대새와 과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어, 독사, 모기, 기생충, 거머리 그리고 독거미도 같이 자란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낙원인 줄 알았는데, 목숨을 부지하기조차 힘이 든다. 유럽의 문명을 탈출해 고갱이 숨어들었던 타이티 섬은 에덴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고갱은 자기 그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타이티 섬을 미화했다. 고갱도 사람들의 손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에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에덴은 타이티 섬이 아니라 그의 그림 안에 있는 타이티 섬에 있었다.

Page. 213

인도를 겁 없이 떠돌던 시절이 생각난다. 햇빛이 갠지스 강 표면 위에 떨어지면 시바 신의 광채가 된다는 것을 그때 몸으로 배웠다. 이 광채는 인간의 마음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은유의 풍경이고, 어느 지리철학자의 말을 빌리면 중재의 풍경이다. 파리의 겨울날도 떠오른다. 햇빛이 어느 이름 없는 광장에 깔린 매끈매끈한 돌 표면에 떨어져 반사될 때, 광장은 ‘어머니의 품’으로 변했다. 따사로운 어머니의 품 역시 인간의 마음과 자연이 빚어낸 은유의 풍경이자 중재의 풍경이다. 그 따사로움에 포섭되어 동방에서 온 검은 머리의 나그네와 금발의 여인이 광장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와 대면한다. 풍경은 공감각을 기반으로 우리를 하나로 묶으면서, 서로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풍경은 동질성과 차이를 동시에 담아낸다. 요즘 친환경과 지속성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우리가 재발견해야 하는 대상은 자연이 아니라 풍경이다. 문명에 찌든 삶이 만들어낸 허상인 순수자연이 아닌, 내 살갗을 파고들고 마음을 물들이며 나와 너를 이어주는 ‘풍경’에 대한 재발견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풍경은 공동체성이 배양되는 감각적 기반이 된다. 또 내가 속한 풍경을 떠나 다른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공동체의 자폐성을 초월하여 공공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볼까 말까 이책!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감상은 어떨까요? SNS상 독자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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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sanna50 님 : 그의 말을 빌리면, 그 간 유랑의 삶을 살아오면서 낯선 곳에서 유랑이 길어지면서 환경에 대한 지평과 안목이 넓혀졌고, 나름의 생각이 단단한 이론으로 정립되었고, 그 생각을 글로 정리했다고 한다. (중략) 작가는 자신의 유랑을, [공간적 유랑에서 시간적 유랑]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여기에 학문과 종교의 유랑을 덧 붙였다고 말한다. 그의 족적에서 눈치 챘겠지만,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성지이며, 인도의 바라나시는 불교의 상징성을 갖는다. 그 유랑을 거치면서, 자신이 낳고 자란 땅에서 보고 자란 풍경과 이국의 낯선 풍경을 비교하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자신의 전공 분야인 건축과 관련한 풍경에 대한 사유와 철학의 지평이 넓어진 계기가 된 것이다. (중략) 저자는 건축계에서 명작으로 손꼽히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고 토로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디자인 되어 아름답기는 했지만 감동이 없다는 것이다. 그가 지향하는 광장은 [한 천재에 의해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 온 흔적을 담아 내고 필요하면 변형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곳이어야 한다 137p]는 지론이다. 즉 살아 가면서 함께 만들어 가는 부족과 모자람을 갖는 광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세 문화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채워진 것에 대한 감사보다 채워지지 않은 것에 대한 욕구가 충만한 것이 문명]이라고 비판한다. 이 책 제목에 [풍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에 대하여 작가는 유학 생활 중 어느 날부터인가 이 말의 의미가 특별하게 다가왔다고 술회한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원풍경을 모본으로 삼고 있다는 자의식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 김하늘 님 : 처음 단순하게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풍경을 건축에 비추어 이야기 하겠거니 생각했다. 책의 제목은 풍경류행이었고 부제로 건축과 풍경의 내밀한 대화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건축과 풍경이라기 보다 풍경과 우리 삶에 대한 대화라고 해야 할까? 물론 건축이 이야기의 중심이긴 하나 말이 건축이지 건축이 본질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이 본질이다. 삶과 풍경이 얼마나 조화로움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건축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예술을 다 아우른다. 마치 한 권의 좋은 수필을 읽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책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삶이 보이는 풍경, 마음이 보이는 풍경, 어울려 사는 풍경, 지속하는 풍경 이렇게 네 가지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는 주제에서 벗어났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순환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묘하게 어울림을 가진다. 어쩌면 전혀 다른 이야기도 이렇게 조화로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수필 같은 느낌이 든다고 이 책이 결코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어떻게 본다면 듣도 보도 못한 듣보잡 같은 생각들이지만 또 다르게 보자면 통찰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기하고 신비롭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풍경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저 단순하게 자연의 풍경이나 도시의 풍경이 아닌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풍경을 말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도 결국 조화로움을 이야기한다. 생각과 생각들이 함께 어우러짐을 통해 공동체가 태어나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새로운 풍경과의 만남으로 어떻게 하면 삶과 풍경이 어우러지며 우리가 함께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 choigomi 님 : 전 가끔 건축가들의 딱딱하고 현학적인 글에 짜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굳이 쉬운 말 나두고 어려운 건축학 용어를 사용하고 창조의 고통과 남다름을 강조하고. 그러다 이 책을 접하고서 건축가도 이런 따뜻한 글쓰기와 대화가 가능하구나 놀라게 되었습니다. 건축이 우리의 일상과 좀 더 가까운 주제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오늘 아침 무더위 속에 어느새 가을의 낌새가 느껴지는 바람을 느꼈습니다. 그런 바람과 건축이 어떤 관계인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 감사 드립니다. 건축의 세계도 다양성과 따뜻함으로 풍부해 졌으면 합니다. 더불어 건축만이 아니라 여행의 즐거움에 대해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많아 휴가 같은 책 읽기가 되었습니다. 지중해와 몬순지역이라는 낯선 곳에 가보고 싶은 유혹을 주시네요. 비행기보다 배를 타고 가보고 싶습니다.
  • 원더월드 님 : 사실 이 책을 접하고자 했던 동기는 단순했다. 그저 ‘아름다운 풍경‘을 엿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올해 변변찮게 휴가도 한번 다녀오지 못한 탓에 휴가 때 마다 볼 수 있었던 그 풍경이 그리웠다. 허나 이 책을 읽고 난 뒤 뜻하지 않게 몇 가지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흔히 ’풍경‘ 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아름다운 또는 화려한 경관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나 또한 ’풍경‘ 이라는 단어에 긍정적인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있었던 탓에 보고 싶은 단면에만 눈을 돌리고 있었던 것 같다. 책에 담겨 있는 풍경들은 내가 예상하며, 생각했던 것들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물론, 몇 장 정도는 아름답고 화려하며 웅장한 풍경들도 담겨있었는데, 대부분 풍경들은 여과 없는 자연의, 자연에 의한 것들로 구성되어있었다. 마치 소시지를 만들기 전의 생고기 상태 같았다. 어떠한 가공 첨부도 없이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던 장면들이 표현되어 있었고, 해당 풍경을 저자가 알고 있는 지식을 토대로 분석하고 소개해주고 있었는데, 분명 간접적으로 풍경류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중략) 때론 역사적으로 즉흥적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보다 실감나게 풍경류행을 할 수 있는 화려한 바탕이 되어주었다. 또한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오던 ‘풍경’ 의 영역을 완전하게 무너뜨리는 느낌이었고, 너무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려 하는 필자의 좁은 시야를 틔워준 책이었던 것 같다. ‘마음의 성형수술’ 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필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진행되는 전개. 어떻게 보면 초반에 살짝 거부감이 있을 뻔 했지만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초석이 되었기에 책을 덮을 때쯤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책에 투자한 내 티끌만큼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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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는데요. 건축을 선택했던 이유가 처음에는 당연히 멋진 건축물, 공간을 만들어 내고 싶었던 거였으나, 공부하며 그것보다는 건축이라는 것은 그저 예술작품이 아닌 우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삶의 물질적인 한 형태라는 것을 느끼고부터는 조금은 시선이 달라졌고, 더욱 건축을 공부하는 의미가 커졌던 것 같습니다. 가끔 저희 부모님은 제가 건축을 전공하고 그것을 직업적으로 잇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시는데 저는 후회가 없어요. 건축이라는 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인생에서 더 넓은 시야를 위해 누구나 알면 좋은 분야이고, 또 굳이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한 것도 아닌 이렇게 책을 통해 스며들 듯 느끼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주말에는 잠시 시간을 내어 이 책과 함께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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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재본은 가로수길서점 원문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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