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두 사건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취지의 대형 판결을 내려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아니다
이제 모든 동성 지향성 미국인은 동성 결혼을 할 헌법적 권리가 생긴 것일까? 모든 동성 지향성 미국인은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실제로 동성 혼인을 성립시킬 수 있게 된 것일까?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이 두 판결은 역사적 사건이고, 미국의 동성애자에게 큰 쾌거이긴 하다. 하지만 일견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미 연방대법원은 더 점진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판결이 나오는 과정을 검토하면, 사회적으로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이슈를 다루는 미국 사법시스템의 혜안을 관찰할 수 있다.
주(州) 단위로 진행된 미국 내 동성결혼 이슈
이 사건을 논의하기에 앞서, 연방 대법원 판결 전, 미국 내 동성혼의 법적 지위를 먼저 살펴보자.
한국에서 미국을 관찰할 때에 간과하기 쉬운 것은, 미국은 한 나라라기보다는 50개 주(州)가 모인 연방이라는 점이다. 비록 230년이 넘는 역사를 거쳐 연방정부의 권력이 점차 강력해지기는 하였으나, 근본적으로 미국은 현재의 유럽연합같이 50개 다른 법과 문화를 지닌 ‘국가’들이 연합체를 이루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주’를 영어로 지칭할 때 ‘state’, 즉 정치학적인 용어로 ‘국가’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미국의 정식 명칭은 ‘the United States’이란 것을 상기해보라.)
특히 결혼에 관련된 법은 전통적으로 주 정부의 영역이었으며, 그 때문에 동성혼을 법제화하기 위한 노력도 주 단위로 진행되었다.
동성혼 합법화의 처음 가능성을 열어놓은 주는 하와이였다. 1993년 하와이 대법원은 동성혼 금지는 주 헌법에 어긋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 미국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립: 보수주의자의 역습 vs. 동성애 활동가의 꾸준한 투쟁
동성혼 합법화 가능성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주의자들은 1996년에 연방 ‘혼인보호법'(‘Defense of Marriage Act’, 줄여서 DOMA)을 통과시킨다. 혼인보호법 2조는 “미 연방의 주(州)들은 다른 주에서 성립된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을 권한이 있다”고 지정하여 주 단위의 동성혼 금지를 가능하게 했고, 3조는 “모든 연방법, 규정, 규칙, 혹은 미 연방정부의 각 기관이나 부처의 해석이나 규제에서 ‘혼인’이란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의 결합만을 의미하며, ‘배우자’란 이성인 남편이나 부인을 일컫는다”고 정의하여, 연방 단위에서 동성혼을 금지했다.
동성애 활동가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주 단위에서 계속 노력하여, 결국 2003년 매사추세츠 주 대법원에서 동성혼 금지는 주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굿리지 대 공중보건부 사건)을 얻어내는 쾌거를 이룩해낸다. 이후 10년간 동성혼 합법화는 상당한 탄력을 얻어, 2012년 말에는 50개 주 중 12곳과 워싱턴 DC에서 동성혼이 주 대법원 판결, 관련 법규 개정 혹은 주 헌법 개헌을 통해 합법으로 인정되게 된다.
그러나 동성혼 합법화의 상승세를 경계하는 보수층들도 이에 대항해 주 단위로 동성혼을 더욱더 엄격하게 금지하는 경향 또한 생겨났다. 지난달 연방대법원이 판결을 내린 이 두 사건은 동성혼에 대한 의견이 이렇게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다.
배경: 세금공제(윈저), 동성혼 다시 금지한 주 헌법(페리)
이제 두 사건의 배경을 검토해보자.
첫 사건은 ‘미합중국 대 윈저’ 사건(United States v. Windsor, 이하 ‘윈저’ 사건)이라고 불리며, 앞서 언급된 ‘혼인보호법'(DOMA)의 3조가 연방 헌법에 위배된다는 내용의 소송이다. 원고 이디스 윈저 (Edith Windsor, 여, 84세)는 뉴욕 주에 거주하는 레즈비언으로서, 뉴욕 주에서는 합법인 동성 혼인을 한 상태에서 배우자가 타계하였다.
이성 혼인이라면 이렇게 배우자가 사망한 상황에서 연방에 내는 세금에 대한 공제가 가능하나, 연방법 해석에서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혼인보호법 때문에 그러한 세금공제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윈저는 연방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동성혼을 차별하는 혼인보호법은 위헌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두 번째 사건은 ‘홀링즈워스 대 페리’ 사건(Hollingsworth v. Perry, 이하 ‘페리’ 사건)이라고 불리며, 배경은 좀 더 복잡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동성혼 지지자들은 주 법원 시스템 내에서 소송을 거는 전략을 취했고, 그리하여 2008년 3월에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에서 “동성혼 금지는 캘리포니아 주 헌법에 위배된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얻어낸다. ‘인리 메리지 케이스'(‘In re Marriage Cases’)라고 불리는 사건에서 나온 이 판결은, 캘리포니아 주 내에서 동성혼을 일거에 합법화하여, 수천 쌍의 캘리포니아 동성애자들이 결혼하게 된다.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캘리포니아 보수층은, ‘프로포지션 8′(Proposition 8, 줄여서 Prop 8)이라고 명명된 주민 발의를 통해서 캘리포니아 헌법을 개정하여, 2008년 11월 주민투표를 통해 동성혼 금지를 다시 합헌화시킨다. 이러자 이번에는 동성애 활동가들이 ‘프로포지션 8’으로 개정된 캘리포니아의 헌법은 연방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소송을 연방 법원에 제기하게 된다.
난항: 공화당의 하원(윈저), 민주당의 캘리포니아 의회(페리)
이 ‘윈저’ 사건 (혼인보호법 사건)과 ‘페리’ 사건 (프로포지션 8 사건)은, 대법원에 당도하기 전 동성혼에 대한 이견에서 비롯된 절차적인 난항을 겪게 된다.
‘윈저’ 사건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혼인보호법을 합헌이라 보지 않기 때문에 혼인보호법을 변호하기 위해 행정부의 재원을 사용하지 않겠으나, 혼인보호법이 위헌 결정 내려질 때까지는 행정부에 주어진 의무에 따라 혼인보호법을 집행하겠다는, 즉, 세금공제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다소 이중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에 현재 보수 공화당이 다수당인 미 하원이 ‘양당 법률고문 그룹'(Bipartisan Legal Advisory Group, 줄여서 BLAG)이라는 특별 위원회를 조직하여, 연방 정부를 대표하여 피고의 역할로 혼인보호법을 변호하겠다고 자원하게 된다. 결국, 원고 이디스 윈저는 미 하원 특별 위원회가 선임한 변호인단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여, 1심과 2심에서 혼인보호법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낸다.
비슷한 형태로 ‘페리’ 사건 또한 난항을 겪는다. 오바마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프로포지션 8’을 변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진보 민주당에 장악된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연방 하원과는 달리 ‘프로포지션 8’을 변호하겠다고 자원하지 않는다. 주 정부의 입법부와 행정부 둘 다 주 헌법을 지킬 의사가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처음 ‘프로포지션 8’을 통과시킨 보수 시민단체가 피고로 개입하겠다고 자원하여, 원고는 이 시민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였고, 마찬가지로 1심과 2심에서 ‘프로포지션 8’은 연방 헌법 하에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낸다. 이리하여 이 두 사건은 연방 대법원을 향하게 된다.
페리 사건: 재판 요건 미비, ‘프로포지션8’에 결과적 위헌 결정
이 두 사건을 마주하게 된 연방 대법원은 두 단계 판단을 해야 하는 위치에 놓였다. 즉, 첫 단계로 이러한 항소가 대법원까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도달하였느냐는 재판의 형식적 요건에 관한 가부(可不)를 판단해야 하고(1단계), 재판의 형식 요건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면 ‘혼인보호법’과 ‘프로포지션 8’이 연방 헌법에 위배되는가 하는 법률 내용에 관한 실질적인 판결을 내려야 했다(2단계).
‘페리’ 사건에서 대법원은, 1단계에서 사건을 끝내버린다.
대법원장 존 로버츠는 안토닌 스칼리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스티븐 브라이여, 엘레나 케이건과 함께 5-4의 평결로 항소 절차가 적법하지 않았다고 선언한다. 보수 시민단체가 1심에 개입할 수는 있었으나, 원고가 승리한 이후에는 더는 법원이 바로잡을 위해가 없으므로 시민단체가 항소할 권리는 없었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그 때문에 항소권이 없는 항소였던 2심은 파기되었으나, 1심은 살아남아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즉, 돌고 돌아 결국 ‘프로포지션 8’은 위헌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9인 대법관 중 둘째라면 서러워할 보수적 성향의 스칼리아, 마찬가지로 상당한 보수파인 로버츠가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 3인과 함께 다수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특히 스칼리아는 동성애를 살인, 수간(獸奸), 근친상간, 마약중독 등에 비유한 경력이 있는 독설가로서, 결과적으로 ‘프로포지션 8’을 위헌으로 만드는 결과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을까.
왜 보수 성향 법관조차 ‘프로포지션 8’ 위헌 결과에 찬성했나
연방 대법원이 주어진 결과를 어떠한 과정에 따라 도출하느냐는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9인의 법신(法神)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헌법 해석에 광대한 재량권을 가진 연방 대법관들은 수많은 변수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
현존 판례와 법리, 개인적 경험, 정치적 성향, 본인의 업적에 대한 고려 등의 변수를 대법관 개개인이 어느 정도까지 반영하는지는 대법관 본인도 정확히 알지 못하며, 이 전부를 수렴하여 대법원이 단일체로서의 의식이 있는 것처럼 단정하는 것은 올바른 이해보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미 대법원 판례를 분석하는 것은 언제나 이러한 한계를 염두에 두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라도, 이 사건들에 대한 법학자들과 법조 전문 기자들의 의견을 수렴해보면,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은 이런 식의 전략을 세운 듯하다: ‘법리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어떻게든 미국 전역으로 동성혼이 합법화하는 것은 막는다.’
‘동성혼 합법화의 연방 확대만은 막자’
이미 1996년, ‘로머 대 에반스’(Romer v. Evans) 사건에서 대법원은 “동성애자들을 지목하여 악의적인 차별을 자행하는 법은 위헌이다”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로머’ 사건의 프레임 내에서 ‘프로포지션 8’을 합헌이라고 해석할 입지는 거의 없다는 것이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실제로 ‘페리’ 사건의 1심과 2심 승소는 ‘로머’ 사건에 크게 의존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떻게든 ‘페리’ 사건이 2단계로 넘어가 실질적인 심사를 거쳤다면, 진보파 대법관 4명(긴즈버그, 브라이여, 케이건, 소니아 소토마요르)이 ‘로머’ 사건에 의거하여 ‘프로포지션 8’을 위헌이라고 판결할 것은 불문가지였고, 중도 보수인 안토니 케네디도 그에 동조하여 5 대 4 판결로 연방 헌법하에서 동성혼을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선언이 나왔을 수 있다. 케네디가 작성한 ‘윈저’ 사건 판결문을 보면 이러한 추측이 무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연방 헌법은 미국 전국에 적용되기 때문에 이는 곧 미국 50개 주 전체에서 동성혼 금지는 위헌이라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런 결과를 피하려 하는 보수 성향 대법관들에게 남은 최선의 선택지는 판결 범위를 캘리포니아로 한정시키고,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주는 그대로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절차적인 이슈로 ‘페리’ 사건을 각하시킴으로써 이 전략은 현실화되었다. ‘페리’ 사건 판결로 ‘프로포지션 8’을 위헌이라 결정한 1심 판결은 살아남았으나, 이 판결의 권위는 그 판결을 내린 연방 지방법원 캘리포니아 북부지청 바깥에는 미치지 않게 되었다.
윈저 사건: 동성결혼 아닌 주(州)와 연방 권한 문제로 해석
이 전략적 마지노선은 ‘윈저’ 사건에서 조금 뒤로 물러난다. ‘윈저’ 사건에서 대법관 케네디는 긴즈버그, 브라이여, 케이건, 소토마요르의 ‘진보 4인방’과 함께 5-4의 평결로 항소의 절차는 적법하였으며, 혼인보호법 제3조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다. 케네디는 판결문에서, 원고 이디스 윈저가 아직 연방 세금공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페리’ 사건과 달리 ‘윈저’ 사건에는, 법원이 바로잡아야 할 실질적인 위해(부조리)가 원고에게 있으므로 항소권이 존재한다는 판결을 먼저 내린다.
잇따른 실질적 법리 심사에서, 케네디는 혼인보호법 제3조를 위헌이라 결정 내린다. 그러나 케네디는 본인의 중도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듯, 점진적이고 약간 우회적인 논리로 위헌이란 결론을 도출한다. 판결문에 나타난 케네디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혼인의 형태와 그에 따르는 각종 특권을 규제하는 것은 언제나 주(州)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혼인보호법은 연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세금공제 등 혼인에 따르는 각종 특권을 규제한다. 이런 식으로 연방법이 주(州)의 영역에 간섭하려면 정당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혼인보호법의 유일한 목적은 특정 그룹, 즉, 동성애자들을 지정하여 차별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은 주(州)의 주권(主權)을 침해할만한 정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헌법은 연방주의에 의거하여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역할을 구분하고 있으며, 혼인보호법 3조는 이러한 연방주의에 위배되기 때문에 위헌이다.
일견 이 논리는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말라’라는 판결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판결 핵심은 ‘동성애자 차별 금지’가 아니라, “연방정부가 주(州)의 주권을 침해하려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인 것이다.
이를테면 연방 이민국이 주 정부가 인정한 혼인을 두고, 해당 혼인이 영주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체결된 사기 결혼인지를 판정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러면 또한 연방정부가 주 정부 판단에 간섭하는 것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으나, 연방 이민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편법을 솎아내려는 것은 정당한 사유이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고 케네디는 설명한다. 케네디의 논리에 따르면, 혼인보호법 3조는 동성애자를 차별하기 때문에 위헌인 것이 아니라, 주(州)의 주권을 정당한 사유 없이 침해하기 때문이라 위헌이다.
즉, 케네디 판결문의 포인트는 ‘주 정부가 숙고하여 게이들에게 혼인을 허락한다면, 연방정부는 그러한 주 정부의 판단에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곧 ‘주 정부가 게이에게 혼인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연방정부는 그러한 판단에도 간섭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즉, 윈저 판결 논리는 ‘결혼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동성애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결과는 ‘전국에 적용되는, 헌법으로 보장된 평등’일 것이나, ‘윈저’ 사건 판결은 그러한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주의 주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혼인보호법 3조를 파기하는 것은 “미 연방의 주(州)들은 다른 주에서 성립된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을 권한이 있다”고 정한 혼인보호법 2조를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때문에 동성혼이 금지된 미국 37개 주에서 동성혼은 아직도 불가능하며, 동성혼이 허가된 주에서 혼인을 성립한 뒤 동성혼이 금지된 주로 이주를 하는 경우 그 혼인은 아직도 인정되지 않는다.
같은 결론의 두 사건, 하지만 윈저 사건의 ‘다른 목소리’
법리적 결과로만 보면 동성혼을 주 단위의 문제로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페리’ 사건 판결과 ‘윈저’ 사건 판결의 효력은 실질적으로 같다. 그러나 건조한 법리적 문제만 다룬 로버츠의 ‘페리’ 사건 판결문과는 달리, 케네디의 ‘윈저’ 사건 판결문에서는 동성애자를 향한 따뜻함이 느껴진다. 비록 ‘연방주의’라는 틀 안에서의 논의이긴 하나, 케네디 대법관은 혼인보호법의 차별성을 날카롭게 공격하고, 그 차별성이 동성애자들에게 어떠한 위해를 끼치는지 조목조목 지적한다:
“혼인보호법(DOMA)의 주된 효과는 주(州)가 인정한 혼인들 중 일부를 지목하여 불평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법의 주된 목적은 정부 효율 같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불평등을 강제하려는 것이다. (… 중략…) 이러한 역학을 통해 혼인보호법 주가 인정한 동성혼의 공적 그리고 사적 중요성을 훼손한다. 동성애자들에게 다른 면에서는 유효한 그들의 혼인들이 연방의 인정을 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또 온 세상에 알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성 부부들을 이등급 결혼이라는 불안정한 위치에 처하게 한다. 이러한 부부들은 헌법으로 보장된 도덕적 그리고 성적 선택권이 있으며 주(州)의 결정하에 존엄이 보장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분을 통해 폄훼된다. 또한, 이는 현재 동성부부에게 양육되고 있는 수만 명의 어린이에게 굴욕감을 준다. (…중략…)
혼인보호법은 일상적인 부분이든 의미 깊은 부분이든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결혼과 가족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혼인보호법은 동성 부부가 정부가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한다. 파산의 경우 가족 부양을 위한 채무에 대해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 부부 동반으로 주와 연방세금 보고를 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걸쳐야 한다. 참전용사 묘지에 같이 묻히지도 못한다. … 연방정부 관리의 가족을 폭행, 납치 혹은 살해하는 것은 연방형법 상 범죄이나, 혼인보호법은 이 조항을 동성 부부에게 적용하지 못하게 한다.”
‘윈저’ 판결문을 통해 케네디 대법관은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연방주의를 강조하는 논리 구조를 통해 동성혼의 전면 인정은 일단 보류하되, 동성애자들에게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는 ‘프로포지션 8’을 위헌으로 만들었지만, 동성애자들에게 별다른 희망을 주는 내용은 없는 ‘페리’ 사건 판결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다.
‘케네디 판결문’에 대한 보수 성향 대법관의 거센 비판
강성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은 이 추가적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거세게 비판한다.
대법원장 존 로버츠는 “혼인보호법의 주된 목적이 악의를 법제화하는 것이라는 좀 더 신빙성이 있는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정부 기관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라는 반대 의견을 낸다.
독설가 스칼리아는 한 술 더 떠, “오늘 판결문에 간신히 나타난 그 어떤 시끄러운 법리 해석을 따르건 간에, 오늘의 판결문의 진정한 논거는 혼인보호법은 동성 부부들에게 위해를 끼치고자 하는 동기로 제정되었다는 것이다. 동성애자에게 혼인을 용인하지 않는 주 법에 대해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쉬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피하다. (…중략…) 다수 의견은 누구든 동성혼을 반대하면 인류의 적이 된다고 공표함으로써, 전통적인 혼인의 의미를 고수하는 주 법에 도전하는 모든 이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셈이다”는 필사적인 반대 의견을 발표한다.
‘윈저’와 ‘페리’ 판결 의미: 점진적인 아래로부터의 변화
‘윈저’와 ‘페리’, 이 역사적인 두 사건의 메시지를 종합하면, ‘동성애자들의 혼인권을 위한 주 단위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전망은 밝다’ 정도일 것이다.
물론 미 전국에서 전면적인 평등을 원하는 동성 지향 활동가들과 그 지지자들에게, 이 두 판결은 100퍼센트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원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의제에 적극 개입하는 경우, 논란이 잦아들기는커녕 법원의 권위만 추락하는 경우는 세계 헌법사에 흔히 있는 일이다. 가까운 예로 한국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법 위헌을 들 수 있으며, 미 연방 대법원도 낙태 이슈 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뜨거운 맛을 본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더 조심스럽게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연방 대법원이 50개 주 중 아직 37개 주에서 금지되어있는 동성혼을 무리하게 바로 전면 허용하려 했다면, 그 후폭풍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성혼이 금지된 주(州)에 거주하는 동성애자들, 특히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게이 청소년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미국 연방 시스템의 장점을 살려 주 단위로, 아래에서부터 동성혼의 당위성을 설득시키는 것이 대법원 판결문 하나로 위로부터 일깨우는 것보다 진정한 국론의 이동을 유도하고, 민주주의 이상에도 부합한다는 생각이다.
직접적, 실질적인 차별은 점진적으로 철폐하고, 동성 지향 활동가들이 여태까지 일궈낸 업적은 유지해 주는 동시에 주 단위의 투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것. 이것의 ‘페리’와 ‘윈저’ 판결의 진정한 의의이며, 연방 대법원의 현명한 선택이기도 한 것이다.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 단순히 이겼다!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두 판결의 의미와 함께 미 연방제의 특징도 잘 설명해주셔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모르는 게 많아서 다 읽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지만 이렇게 정리해 주셔서 많은 걸 알고 갑니다.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