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계엄, 내란, 그리고 민주주의’: 예외라는 핑계로 반복된 폭력과 윤석열이라는 시스템 리스크, 더 크고 담대한 사회 기획이 필요할 때다. (⌚6분)
돌아보면 우리는 비상계엄이란 게 어떤 건지 잘 몰랐다. 법꾸라지 최강자 윤석열도 헌법 공부를 적당히 건너뛰었던 게 틀림없다.
계엄은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강성현(성공회대 교수)은 “한국에서 계엄은 법적 장치가 아니라 국가 폭력의 역사적 산물이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선포된 비상계엄은 13차례, 경비계엄을 포함하면 17차례인데 모두 불법이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 또 다른 윤석열이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
- 윤석열을 끌어내렸으니 시스템의 구멍은 그냥 내버려둬도 되나.

예외 상태에서 제한적으로만 가능한 계엄.
- 헌법 77조에는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실제로 그런 경우는 없었다. 설령 전쟁 상황이라도 군과 경찰이 민간인에게 폭력을 휘두를 근거는 없다.
- 오동석(아주대 교수)은 “비상계엄은 집단 살해의 빌미였고 국가 폭력의 민주화 탄압의 도구였고 권력의 탈취 또는 유지, 강화의 폭력적 매개였다”고 평가했다.
윤석열이 몰랐던 것.
- 계엄은 영어로 ‘Martial Rule’인데 군정(military government)과는 다르다.
- 군정은 군부가 지배하지만 계엄은 애초에 민주 공화국의 헌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계엄 상황이라도 당연히 국회의 견제를 받는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한 뒤 국회에 통고해야 하고 국회가 제적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하면 해제해야 한다.
- 예외적인 권한이라 제한적 조건에서만 발동되고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계엄법 자체가 불법이었다.
- 1948년 계엄은 계엄법을 만들기도 전에 선포됐다. 계엄은 10월25일에 선포했는데 계엄법은 이듬해 11월24일에 제정됐다.
- 이승만은 일제 시대 계엄령을 따랐다고 주장했지만 애초에 헌법에 없는 계엄령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다.
- 더욱 놀라운 건 그렇게 일제 시대 계엄령을 베껴 만든 계엄법 조항이 80년이 다 돼 가는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윤석열이 어리숙했기 때문에 다행이지 계엄이 성공했다면 한국 사회는 수십 년 전으로 퇴행할 뻔했다.

일제 시대 계엄령의 잔재.
- 첫째, “비상계엄이 선포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27조 2항)”는 건 계엄 때는 일반 국민이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 둘째,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 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에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헌법 77조 3항)”는 조항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비상계엄이 무슨 민주주의 치트 키라도 되나.
- 셋째, 12월3일 확인했듯이 대통령이 맘만 먹으면 일단 계엄 선포를 지를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국무회의는 정족수 맞춰 심의만 하고 국회에는 통고만 하면 된다(헌법 77조 4항).
- 넷째, 군 통수권이라는 용어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헌법 74조 1항)”고 돼 있다. 군 통수권 역시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된다는 이야기다. 개헌 과정에서 국회의 견제 장치를 둘 필요가 있다.
- 다섯째, 비상계엄 때는 군사재판을 단심으로 치를 수 있는 조항도 있다(헌법 110조 4항).
- 모두 민주주의의 구멍이다. 예외적인 상황이라는 걸 전제로 대통령에게 이런 무소불위의 권한을 헌법으로 허용해도 되나.
전쟁 중에도 안 되는 것.
-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될 부분은 전쟁 중이라도 헌법을 넘어설 수 있는 건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전쟁도 아니고 임의로 선포한 비상계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 오동석은 “전시에는 헌법 규범이 물러설 수밖에 없어 평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권력 또는 법의 변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 조르조 아감벤(철학자)은 “법의 바깥에 있으면서도 법적 효력을 발휘하는 역설적 통치 상황을 ‘예외 상태’”라고 정의한 바 있다. 법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법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 문제는 예외 상태인지 아닌지를 누가 판단할 것이냐다. 김대근(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권자는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라도 임의로 예외 상태를 결정하고 법의 효력을 정지시킬 권한이 없다는 이야기다.
불법 비상계엄의 역사.
- 1948년 계엄은 여순 사건과 4.3사건 이후 선포됐다. 군법회의를 거쳐 345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245명이 총살당했는데 그때는 이미 계엄이 해제된 뒤였다.
- 1950년 한국 전쟁 도중 서울 수복 이후에는 계엄 사령부가 나서서 부역자를 처리했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했지만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 이승만은 정치적 계엄을 반복했다. 야당 의원들이 탄 통근 버스를 납치해서 체포했고 국민들을 불순분자나 부역자로 몰았다. 국회를 반국가 세력으로 몰고 친위 쿠데타를 획책했다.
- 4.19 혁명을 짓밟은 박정희의 5.16 군사 반란과 32년 군부 독재도 계엄으로 시작했다. 비상조치가 필요한 위기 상황이라고 주장하면서 군사 정부를 수립한 뒤 헌법 개정까지 밀어붙였다. 헌법 전문에 4.19는 의거로 축소되고 5.16이 혁명으로 격상됐다.
- 박정희는 1964년 6.3 계엄과 1972년 10.17 계엄, 유신 헌법 공포, 긴급 조치 등으로 종신 집권을 노리다가 결국 총을 맞고 죽었다. 박정희는 계엄으로 시작해서 계엄으로 끝났다. 1979년 10월 시작한 비상계엄은 1981년 1월에서야 끝났다.
- 전두환은 12.12 군사 반란에 이어 5.17 계엄(확대)으로 정권을 탈취했다. 5월18일 광주에서는 무장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쐈다. 166명이 죽고 4300여 명이 다쳤다. 사망 원인의 81%가 총상이었다.
- 그리고 45년 뒤 윤석열이 ‘아무것도 아닌’ 아내를 지키겠다고 계엄을 선포했다. 애초에 계엄의 요건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군인들을 보내 국회 출입을 막고 언론사에 단전 단수를 지시하고 주요 정치인들의 체포를 지시한 건 모두 헌법 위반이었다.

윤석열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 윤석열의 포고령은 45년 전 전두환의 포고령을 베껴 쓰다시피 했다.
- “계엄은 군이 거리와 광장을 장악하는 물리적 상황만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헌법에 존재하는 예외 조항을 통해 폭력을 법제화하고 민주주의를 잠정 중단시키는 통치 기술이다.” 강성현은 “12.3 계엄은 과거 군사 정권의 유산이 아니라 헌법과 제도, 감정과 기술의 층위에서 여전히 작동 중인 통치 구조의 최신 반복이었다”고 강조했다.
- “계엄은 언제나 비상을 이유로 등장하지만 실상 ‘비상’ 자체를 조작하거나 유도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는 자가 증식적 체제였다”는 분석이다. 강성현은 “민주적 실천은 억압을 해체하고 감정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고 강조했다. “거리와 광장에서의 저항은 교육과 운동, 말과 실천의 언어로 확장되며, 계엄과 내란의 반복 구조에 맞서는 민주주의 감각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 이준영(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권력자의 선언이나 헌법 조항에 의해 자동으로 실현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 오동석은 개헌도 필요하지만 “헌법을 고치지 않아도 ‘계엄법 폐지에 관한 법률’과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법률’ 등을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노래방에서 일하는 술집 여자’의 당부.
- 윤석열 탄핵 정국에서 부산 서면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한다는 한 여성의 집회 발언이 화제가 됐다.
-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주십쇼.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것이 끝이고 해결이고 완성이라고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 최성용(성공회대 강사)은 “헌재 결정과 윤석열 파면, 구속만으로 장기화된 내란이 완전히 종결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최성용은 “12월 3일은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때 평범한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줬다”면서 “한국 사회는 고립된 개인이나 지역이 외롭게 싸우지 않아도 될 만큼 성장해 있었다”고 평가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 최성용은 “오랫동안 혐오와 폭력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며 서로 사랑해 온 약자와 소수자들의 치열한 다정함이 한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물리치고 우리를 지키는 힘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최성용은 12월3일 이후 윤석열 탄핵과 새 정부 출범에 이르는 과정을 ‘다정함의 혁명’이라고 정의했다. 거리에서 밤새 눈을 맞으며 버텼던 다정함의 연대는 세종호텔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와 동덕여대와 혜화역 장애인들 곁으로 향했다. “여기에 내란 이후의 세계를 향한 상상력의 원천이 있을 것”이라는 제안이다.
- 나영(페미니스트 활동가)은 “지금 주목해야 할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의 문제를 지속시키고 내란을 일으킨 극우 집단을 언제든 다시 성장시킬 수 있는 토양이 지금의 체제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현재의 정치 상황에서는 집권 정당이 바뀐다고 해도 이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과 대안이 부재한 채 전반적인 정치사회적 우경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한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 노영기(조선대 교수)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이 책이 계엄이라는 개구멍을 닫는 매뉴얼이 되기를 바란다. 불의에 맞선 시민의 승리를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윤석열이 역사적 돌연변이가 아니라 언젠가는 터질 시스템 리스크였고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 고쳐가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놓고 함께 토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