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몇 가지 에피소드는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일깨워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의 헛소리를 섣불리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터넷 밈처럼 떠도는 에피소드들이지만 다시 읽어도 재밌을 거라 확신한다. 주말 아침에 읽기 좋은 이야기들.
첫 번째: “500마일 이상은 메일이 안 가요.”
(원문은 여기.)
미친 소리.
한 대학교 전산 담당자가 쓴 글이다. 통계학과 교수가 “500마일 이상은 메일이 안 간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교수 : “정확히는 조금 더 멀어요. 520 마일. 하지만 그 보다 먼 곳으로는 보낼 수가 없어요.”
전산 담당자 : “음… 이메일은 그런 방식으론 동작하진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런데 사실이었다.
서버는 노스캐롤라이나에 있었고 뉴욕(420마일)과 프린스턴(400마일)은 문제 없이 전송됐는데 멤피스(600마일)과 프로미던스(580마일)은 실패했다.
“내가 점점 정신이 나갔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기 어려웠지만 이 문제는 실제로 존재하고 반복 가능한 상황이었다.”
알고 보니,
며칠 전에 서버의 OS를 업데이트하면서 메일 전송 프로그램이 버전이 바뀌었고 응답 시간이 0.003초가 넘으면 접속 실패가 뜨도록 셋팅이 된 것이다.
이 글은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을 좀 했다.)
“심호흡을 하고 계산을 해봤다.”
- 빛의 속도는 299,792,458m/s.
- 1마일은 1609.34m.
- 0.003초 동안 빛이 갈 수 있는 거리는 299,792,458*0.003/1609.34=558.8마일.
“500 마일, 또는 그보다 조금 더.”
두 번째: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면 시동이 안 걸려요.”
(원문은 여기.)
미친 소리.
1970년대 이야기다. 제너럴모터스의 폰티악 사업부에 이런 클레임이 접수됐다.
“폰티악을 새로 샀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면 시동이 안 걸립니다. 이상한 소리란 걸 알지만 저는 심각합니다. 다른 아이스크림은 문제가 없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만 그래요.”
그런데 사실이었다.
엔지니어가 파견을 나가서 만나 보니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차를 몰고 가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샀고 아니나 다를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엔지니어는 출장을 사흘 더 연장했고, 초코 아이스크림과 딸기 아이스크림을 살 때는 시동이 잘 걸리는 걸 확인했다. 그런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면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바닐라 알러지가 있나.
알고 보니,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올 때는 시간이 짧았다.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앞쪽에서 바로 퍼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는 엔진 과열 때문에 베이퍼 록(vapor lock)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엔진이 충분히 냉각되기 전에 다시 시동을 걸었기 때문에 파이프 안에 남아있던 연료가 기화돼 시동이 안 걸리는 현상이다.
(1978년 자동차 잡지에 게재됐던 이야기라는데 여전히 출처를 두고 논란이 있다. 다만 베이퍼 락은 1980년 이전 자동차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었고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다.)
세 번째, “아이폰에 헬륨 알러지가 있나요?”
(원문은 여기.)
미친 소리.
한 병원의 시스템 엔지니어가 GE의 MRI 장비를 설치하던 도중 아이폰과 애플워치가 작동을 멈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충전도 되지 않았다. 같은 방에 있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멀쩡했다.
레딧에 물어봤더니 누군가가 헬륨 누출이 원인일 수도 있다고 알려줬다. 아니, 아이폰이 헬륨 가스에 취약하다고?
그런데 사실이었다.
장비 설치 과정에서 5시간 정도 120리터의 액체 헬륨이 기화돼서 배출됐는데 헬륨은 기화 과정에서 750배 가까이 팽창하기 때문에 9만 리터 정도, 이 가운데 일부는 환기구로 빠져나갔겠지만 일부는 실내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날 간호사들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높았다면 헬륨 가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확인해 보니 아이폰5는 영향을 받지 않았고 아이폰6 이상은 문제가 있었다. 비닐 봉지에 아이폰을 넣고 헬륨 가스를 채웠더니 4분 만에 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알고 보니,
모든 전자 장치는 쿼츠 오실레이터가 내장돼 있는데 이게 심장 박동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애플은 쿼츠의 전력 소모를 줄이려고 시타임(SiTime)이라는 회사의 MEMS 오실레이터로 대체했는데 헬륨 같은 저분자 가스에 취약했다. 헬륨은 분자 크기가 작아 밀봉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이 문제는 애플도 인정하고 있다. 만약 헬륨에 노출됐다면 완전 방전시킨 상태에서 1주일 정도 자연 환기를 하면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시타임 웹사이트에도 “이전 세대의 EpiSeal 오실레이터는 저분자 가스에 취약하다”는 경고가 떠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해결된 문제라는 이야기다.
네 번째: “화요일은 프린트가 안 되는 날이에요.”
(원문은 여기.)
미친 소리.
부인: 화요일에는 프린트가 안 돼.
남편: 무슨 소리야. 어디 한 번 해봐.
부인: 지금은 당연히 되지. 수요일이니까.
남편: ???
그런데 사실이었다.
오픈오피스에서 브라더 프린터로 인쇄를 할 때 화요일이면 에러가 떴다. 다른 요일은 정상 작동했다.
알고 보니,
우분투OS ‘file’ 명령어에서 포스트스크립트 파일을 확인하는데 네 번째 바이트에 ‘Tue’라는 텍스트가 뜨면 에러로 인식하는 버그가 있었다. ‘tue’라고 소문자로만 바꿔도 해결되는 문제였다.
우분투는 화요일 에러를 버그로 등록하고 패치했다.
이런 조크가 돌기도 했다. “누가 화요일에 인쇄를 합니까”, “화요일을 아예 종이 없는 날로 지정합시다.”
테크 블로거 매트 짐머만은 “드물게 발생하는 버그는 항상 조사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존재한다”면서 “우리는 그것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보름달이면 뻗어 버리는 서버라든가 화장실 변기를 내리면 열차가 멈춘다든가 하는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떠돈다. 사진을 찍으면 다운되는 *라즈베리 파이(Raspberry Pi)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왜 카메라를 부끄러워하나요). 출처를 확인할 수 없거나 검증하기 어려운 이야기들도 많지만 공통된 메시지는 뭔가가 반복된다면 뭔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라즈베리 파이: 영국 라즈베리 파이 재단이 학교와 개발도상국에서 기초 컴퓨터 과학의 교육을 증진시키기 위해 개발한 신용카드 크기의 싱글 보드 컴퓨터).
(만조 서버는 인근에 해군 구축함 레이더와 사무실 높이가 맞을 때 다운됐고, 열차가 멈춘 건 비상 브레이크의 계전기가 화장실 변기와 잘못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리막길에서 변기에 물을 내릴 때만 멈췄다. 라즈베리 파이는 빛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품이 문제였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으면 다음 링크를 참고.)
문제 해결의 핵심은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다. 프린터 상태가 안 좋았던 게 아니고 유독 화요일만 멈춘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에 버그를 잡을 수 있었고 왜 아이폰은 멈추고 안드로이드폰은 멈추지 않았는가 비교하고 추적했기 때문에 헬륨 가스가 원인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 때문에 시동이 안 걸린다는 황당무계한 소리를 듣고 엔지니어를 파견한 자동차 회사 책임자도 칭찬해줘야 한다. 500마일 이메일 사건은 워낙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관련 FAQ까지 있을 정도다. 단순히 서버를 업데이트하는 걸로 끝내지 않고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원인을 추적해 들어갔고 수수께끼를 풀었다. (만조 서버 이야기도 흥미롭기는 한데 출처가 좀 의심스러워 자세히 적지 않았다.)
세상의 미친 소리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다”던 그 아저씨는 잘 살고 있을까. 몇 차례 비슷한 기행을 벌이다가 언젠가부터 사라진 상태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내 귀의 도청 장치’ 비슷한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 트렁크에 잔뜩 서류 뭉치를 싸들고 다니면서 펼쳐놓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던 할머니도 있었다. 외계인에게 생체 실험을 당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했다. 자신이 트루먼 쇼 같은 거대한 사기극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아저씨도 만났다. 지나서 돌아보면 내가 잘 이해하지 못했을 뿐 그 사람들이 거대한 음모의 끄트머리에 연결돼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