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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는 선거제 개편 논의로 한창입니다. 선거제를 어떻게 바꿀지도 문제지만, 국회가 결단해야 할 정치개혁 과제들도 산적해있습니다. 선거제 개편이 아닌 개혁이 되기 위해, 나아가 정치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매주 칼럼을 통해 논하고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오늘 ‘중꺽정’ 칼럼의 필자는 이선우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입니다.

선거제도 개편 논의, 여론이 모순에 빠지는 이유 (유성진)
비례대표 늘리자, 표가 절반 이상 버려진다 (김형철)
반성 없는 양당정치, 바꾸려면 선거제를 개혁하라 (박영득)
기후위기·저출생 상임위를 만들 수 있다면 (김태일)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에 대한 기대와 우려 (조원빈)
적대적 양당제의 비극: 대통령-다당제가 필요하다 (이선우)
선거구 획정 문제, 결국 국회의원 정원 늘려야 (이재묵)
열려라 국회! 의원회관 문턱만 4단계 (민선영)

한국의 주된 선거제도인 단순다수제는 하나의 선거구를 매개로 공직자 혹은 공직후보자와 유권자 간 유대가 긴밀해지도록 함으로써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대표자를 선출한다는 효능감을 갖게 해준다. 또한 양당제의 창출을 유도함으로써 국정운영의 안정성 및 책임성을 비교적 분명하게 담보한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에서 단순다수제가 꽤 오랫동안 반성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주지하듯 본 선거제도는 사표를 양산하며 다양한 정치사회적 균열상의 소수자나 소수 정파의 목소리가 잘 대표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데다,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 간 괴리를 심화시켜 비례성의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의 경우, 하나의 지역구에서 단 1인만이 공직을 차지할 수 있는 탓에 선거경쟁이 과열되며, 그로 인해 부정부패 및 정치적 갈등과 대립 또한 격화될 위험이 크다. 즉 단순다수제는 그 자체로 다양한 문제점들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 이론과 다르게 굴러가는 현실

그런데 이에 더해, 최근의 한국이나 미국 등의 사례를 보면, 단순다수제 및 이에 따른 양당제와 대통령제의 결합으로 인해 여야 간 정치적 충돌이 극대화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 과거에는 대통령제가 다당제가 아닌 양당제와 짝을 이룰 시 성공적 국정운영과 나아가선 민주주의의 공고화까지도 가능해진다는 가설이 상식에 가까웠다. 다당제가 여소야대 즉 분점정부 출현의 가능성을 높임에 따라,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충돌이라는 대통령제 특유의 이원적 민주정통성의 딜레마를 악화시킬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제와 양당제 간 조합으로부터 비롯된 현실 정치의 실상은 이러한 기대와 달리 오히려 여야 사이의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되고 있다. 우선, 대통령제와 양당제 간 조합하에서 야당은 대통령과 여당 측에 협력할 유인을 별반 제공받지 못한다. 야당 입장에선, 대통령제의 승자독식적 성격으로 인해 차기 대선에서 패할 경우 또 다시 아무런 행정권력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인 만큼, 협치를 거부함으로써 현직 대통령이 실패하도록 만드는 편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더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기 대선을 준비 중인 야당지도자로선, 최대한 소속 의원들과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대통령을 방해하는 전략을 펴는 게 합리적 선택이 되는 것이다.

한편, 대통령들은 자신이 전체 국민으로부터 직접 권력을 위임받은 유일한 공직자란 자각에 취한 채 종종 자신의 실제 득표율을 초과하는 권력감 또는 사명감 등을 갖게 되는 듯하다. 그렇다보니, 대통령에게 있어, 자신한테 반하는 정당이나 정파 등은 많은 경우 단지 협애한 이익만을 대변하는 기득권 세력에 불과할 뿐이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야당을 향해 자주 적대감을 보이게 되고, 야당은 대통령을 향해 더 격렬히 반대하게끔 자극된다. 그리고 대통령과 야당은 협치의 부재로 인한 국정운영 실패의 책임을 상대측에 끊임없이 전가하려고만 할 것이다. 즉 양당제는 대통령제와 결합할 시, 단점정부하에서건 분점정부하에서건, 단순다수제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그 핵심이라 할 책임성의 확보조차 제대로 이뤄내기가 힘든 셈이다.

여야 간 협치는 이제 옛말?

물론, 대통령제와 양당제 간 조합하에서도 여야 간 협치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이를테면 미국의 경우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여야 사이의 협치가, 여소야대 여부와도 관계없이, 꽤 잘 이뤄지곤 하였다. 당시 공화·민주 양당 의원들은 비교적 강하지 않은 정당기율 속에서 높은 의정활동상의 자율성을 누렸으며, 이에 따라 정책의제별로 때로는 여당의 일부가 야당 측 입장에 동의해주고, 때로는 야당의 일부가 대통령과 여당 측 방침에 협조하기도 하는 이른바 ‘교차투표’가 활발히 시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대통령·여당과 야당 측 공히 강경파의 주도하에 상호 적대로 일관하는 양상이 매우 뚜렷해졌다.

이렇게 볼 때, 양당제와 대통령제의 결합은 애초에 협치를 제약하는 데다, 특히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여야 사이의 극단적 갈등 및 대립을 낳고, 다시금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형성하게 될 위험이 있다. 비극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방향으로든 아무런 정치개혁 없이, 본 제도적 조합을 계속 두고 보며 언젠가는 여야 간 갈등과 대립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건 매우 순진한 일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대통령제와 다당제가 결합할 시에는 과연 기존 상식과 달리 서유럽식 내각제에서와 같은 연립정부의 구축 및 여야 간의 협치가 도출될 수 있는 것일까? 경험적으로 보면, 의외로 대통령제와 다당제의 결합이란 조건 속에서도 연립정부의 구성은 꽤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최근 남미 국가로는 매우 드물게 성공적인 민주주의를 유지·발전시켜나가고 있는 사례로 자주 언급되어온 칠레를 보면, 민주화 이후 대통령제와 다당제의 결합하에서도 연립정부의 구축 및 여야 간 협치의 양태가 서유럽식 다당제적 내각제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극한적대 양당정치… 다당제로 전환해야

그러므로, 한국을 비롯해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들에서 현재 계속 악화되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의 문제 등을 완화하고 협치의 가능성을 높여가자면, 결국은 정당체계상 다당제로의 전환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현 대통령제하에서도, 만약 다당제가 도입되고 보수와 진보 등 정치적 스펙트럼상의 양쪽을 모두 오갈 수 있는 복수의 중도파 정당들이 생겨난다면, 연립정부의 구축 및 여야 간 협치의 기회도 공히 늘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당제는 대표성과 비례성의 확충이라는 자체적 장점 또한 함께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총선에서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비중이 높아 여전히 양당제가 재생산될 공산이 매우 큰 한국적 현실 속에서 이러한 정당체계의 전면적 변화를 기대하기란 요원해 보인다. 그런 만큼 한국이 적대적 양당제로부터 탈피해 다당제를 구축하려면, 현재의 단순다수제를 보다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로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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