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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기 5: 저출산 대책 겉도는 이유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기

필자가 2010년 7월호 한은소식(한국은행 사보)에 기고했던 칼럼을 일부 수정해 다시 공개합니다. 이 점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저출산이 계속돼 일할 청년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복지수요가 많은 고령자가 늘면서 재정지출이 증가한다. 이 결과 2029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되고 시간이 갈수록 더 떨어진다. 2100년에 이르면 인구가 절반으로 줄고 2500년엔 현재 인구의 0.7퍼센트인 33만 명으로 축소된다. 이에 따라 민족이 소멸하고 한국어도 사라진다.”

2010년 4월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저출산 관련 보고서의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가 평균 1.15명에 불과한 현재의 초(超)저출산 현상이 계속될 경우의 미래상을 극단적인 디스토피아로 그렸다.

저출산 현상이 지속될 경우 국가의 파멸적 미래에 대한 지적은 국내 경제전문가들뿐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이미 나왔다. IMF는 ‘Addressing Korea’s Long-term Fiscal Challenges’라는 보고서에서 현재의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미래에도 지속될 경우 2020년을 고비로 잠재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질 뿐 아니라, 정부의 부채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00퍼센트를 초과해 사실상 국가파산에 이를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한 적이 있다.

정부도 저출산의 심각성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날마다 크고 작은 저출산 대책을 그것도 여러 부처가 경쟁하듯 내놓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따져보면 말만 많을 뿐 진짜 효과를 발휘할 법한 대책은 거의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이를 둘 이상 낳으면 세금을 감면해 준다는 정책이다. 한국에서 애 낳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데, 세금 감면받겠다고 계획에 없던 애를 낳겠는가? 이 같은 정책은 아이를 낳는 데 큰 금전적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최상위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깎아주는 혜택을 준다. 반면 돈이 없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저소득층에 상대적으로 세금 부담을 늘리는 것이나 다름없어 애초 의도와 정반대의 효과가 난다. 물론 저소득층도 소득공제를 받으면 도움은 되겠으나 그들은 소득이 적어 애초 내야 할 세금, 즉 감면받을 세금이 적기 때문에 사실상 고소득층에게 감세 혜택이 몰리는 효과가 난다.

지난해(2012년)까지 지자체는 3자녀 이상이 있는 다자녀 가구가 양육 목적으로 차를 구입할 때 취등록세를 감면해 주었는데, 과연 자동차세 감면받으려고 아이를 3자녀 이상 낳는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당사자에게 금전적으로 큰 도움은 되겠으나 차라리 이 돈으로 부족한 지자체 무상보육 예산을 채우는 것이 훨씬 나은 정책이라고 본다.

실제로 세금 감면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저출산정책을 위해 소요될 대규모 재원을 마련하기는커녕 오히려 재원을 줄인다는 점이다. 보육시설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유치원 등 유아교육을 무상으로 하며 보육비를 지원하는 등 저출산 대책은 상당한 규모의 재원을 필요로 한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소는 저출산 관련 예산을 GDP의2퍼센트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예산은 GDP의 0.5퍼센트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해결을 위한 목적세를 신설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2011년 적용된 세제개편안부터 다자녀 가구에 세제혜택을 더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쯤 되면 이 정책의 진정한 목적이 정말 출산 장려인지, 혹시 고소득자가 번 소득에서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는 혜택의 가짓수를 늘리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보육시설을 많이 짓기만 하면 애를 낳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잘못됐다.

기업 내 보육시설을 많이 만들라고 권장하지만, 이는 ‘OECD 최장 노동시간’이라는 한국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무시하고 있다. 직장인이 보육시설에 맡긴 아이를 제시간에 집에 데리고 오려면 정시 퇴근을 해야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정시 퇴근을 하면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 보육시설을 개원한 한국은행도 수년 전 보육시설 건립을 위한 수요조사를 했을 때는 대부분 직원이 ‘정시 퇴근이 불가능해 아이를 일찍 데려갈 수가 없다’는 입장을 보여 수요 부족으로 보육시설을 건립하지 않았다고 한다. 야근이 많은 한은다운 일화다.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은 저출산 대책도 많다. 유연근로제, 육아휴직 등을 여성에게만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 또한 기업이 여성 고용을 꺼리는 이유 하나를 늘려 줄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정책 입안자들은 진짜 가임기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봐야 한다. 맞벌이 여성 근로자는 직장과 가정에서 쉴 틈 없이 일하면서도 항상 불안하다.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정시 퇴근을 하고,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으로 장기간 자리를 비우면 성과 평가와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노심초사한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을 다 소진하며 일해 봤자 회사에서도 눈치 보이고 아이도 최선을 다해 보살피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둘째까지 낳을 자신감은 전혀 없다. 진취적이고 성취욕이 강한 20대 여성들은 기혼 선배들의 이 같은 모습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욕구가 갈수록 떨어진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해 줘야 미혼여성들이 ‘결혼하면 여자만 손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결혼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되고, 그래야 첫 아이 출산 연령이 낮아져 둘째 아이의 출산 가능성도 높아진다. 기혼여성도 남편, 사회와 부담을 나눠 가지며 둘째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다.

그러려면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비용 증가보다 나라의 미래, 결국은 자기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도록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저출산 해결을 위해 장기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겠다는 국가적 합의가 필요하다.

‘일과 가정의 균형’은 남녀 모두의 가치가 돼야 하고 강제적인 남성 육아휴직 등을 실시하고, 정시 퇴근을 강제로라도 권장해야 한다. 많은 부담을 국가와 기업이 짊어져야 한다.

기업들은 당장 근로일수나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데 반대하지만 조삼모사적인 행동일 뿐이다. 그 기업의 물건을 사 주거나 그 기업에 고용될 수 있는 연령대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나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시대가 온 다음에 땅을 치고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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