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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인한 피해구제 신청자는 7,161명 그리고 이 중 1,609명의 피해자가 돌아가셨습니다. 전체 피해구제 신청자 중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필러물산 관련 제품 피해 신고자는 1,077명으로 결코 적지 않은 인원입니다.

그러나 지난 1월 12일 서울중앙지법은 해당 기업의 임직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미진한 피해구제로 시민들의 질타를 받았던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함에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부분을 전면 부정하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진 것입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피해자들이 법적보호를 받고 이와 같은 사회적 참사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를 담아 주영글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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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12.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제23부는 CMIT/MIT가 주원료인 가습기살균제(애경 가습기메이트, 이마트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하는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필러물산의 임직원들에 대해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하고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만을 단독으로 사용한 피해자들로 하여금 CMIT/MIT를 반복적으로 흡입하게 함으로써 폐질환으로 인한 사망, 말단기관지 부위를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폐손상 혹은 천식 상해에 이르게 하였다’는 혐의로 기소한 사안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하였다.

중앙지법 ‘인과 인정할 증거가 없다’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는 지난 번 유죄 판결을 받았던 PHMG, PGH 성분 가습기살균제와는 성분이나 위해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데,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이 사건 폐질환 및 천식 발생 혹은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번 판결에서 CMIT/MIT 제품군을 만든 회사의 임직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은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를 만든 기업의 임직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 적시된 구체적인 무죄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2018. 5. 국립환경과학원의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인정 및 판정기준 개선연구’ 결과의 정확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 2019. 8. 국립환경과학원의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이용한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규명 연구’는 결론 부분에서 밝힌 대로 인과적 관련성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정도의 연구결과에 불과하다.
  • 2019. 10. 국립환경과학원의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천식 피해 특성 연구’는 ① ‘가습기살균제 천식 피해 인정자 임상 특성 분석 연구’, ② ‘가습기살균제 천식 피해 인정군과 비노출 천식 환자군 비교·분석 연구’ 모두 CMIT/MIT 노출군의 경우 분석 대상이었던 피해 인정자 수가 너무 적어서 통계적인 유의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연구였거나, 결과에서 명확히 채택할 만한 것이 없다.
  • 가습기살균제의 성분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고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도 PHMG 성분 가습기살균제와 마찬가지로 사망이나 상해의 결과가 발생했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실험이 이루어졌다.
  • 그 전제를 확인하고 보충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동물실험은 본질적으로 가정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와야 실험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엄격한 조건하에 중립적인 결과를 도출하고자 하는 실험과는 달리 연구자의 편향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 동물 실험에서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람한테도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사망 혹은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결론은 형사소송의 인과관계 증명이라는 측면에서는 차용할 수 없는 견해(=좀 더 강한 증명이 필요하다)이다.

과학적 추론마저 부정한 판결

CMIT/MIT 성분이 폐질환 혹은 천식 등을 유발한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판결이다. 실험은 가설(hypothesis)을 세우고 진행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에서, 사망이나 상해의 결과가 발생했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실험이 이루어졌으므로 연구결과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재판부의 무죄판결의 근거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한, 연구자의 편향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는 것은 근거없는 추측일 뿐 합리적인 이유가 없으며 연구자의 중립성을 아무런 이유없이 의심하는 것으로 사법부가 취해서는 아니 될 자세이다. 여러 전문 연구원들이 CMIT/MIT가 폐섬유화 및 천식을 비롯하여 호흡기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이유없이 이를 배척한 이번 판결에 유감을 표한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은 대형 참사다. 피해자가 한 사람이라면 독성 노출과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아니하는 이상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처럼 CMIT/MIT에 노출된 피해자들이 다수 있는 경우에는 달리 보아야 마땅하다. 가습기살균제 안의 독성 물질 때문이 아니라면 왜 수많은 피해자들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이후에 공통적으로 건강이 나빠진 것일까?

가장 기본적인 과학적 추론마저 부정한 1심 법원
가장 기본적인 과학적 추론마저 부정한 1심 법원

가장 객관적인 데이터인 역학조사 결과가 CMIT/MIT 노출만으로도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게다가 다수의 피해자에게 가습기살균제 외에 해당 질환이 발생한 점에 대한 다른 원인이 공통적으로 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아니하였고, 재판부도 인정하고 있다시피 사람한테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사망 혹은 상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라면,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상해 또는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쉽게 말해, CMIT/MIT 물질이 포함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후 건강이 악화되어 피해를 호소하는 국민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곧 증거고, 동물실험이나 연구 논문을 볼 필요없이 직접 피해자들이 실험대상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다수 피해자들의 피해발생 그 자체로서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번 판결에서는 CMIT/MIT의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사람의 사망과 건강피해가 역학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독성시험 결과에 의해 역학조사를 통한 원인적 연관성의 결과를 배척하였다. 이는 역학조사에 대한 중요성을 완전히 간과한 판결이다. 게다가 동물실험의 경우 동물과 사람의 기전이 다르다는 점에서 사람과 그 결과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동물실험은 보충적인 의미일 뿐인데, 이번 재판부는 동물실험을 무죄 판결의 근거로 앞세운 오류를 범한 것이다.

‘폐섬유화’와 ‘천식’에 국한되지 않는 피해  

이번 재판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폐섬유화와 천식에만 국한되는 것으로 전제하고 진행한 점이다.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증상은 아주 다양하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이후 폐렴, 기관지확장증 등 폐 관련 질환 뿐만 아니라 독성 간염, 비염, 아토피 등 전신에 다양한 질병이 생겨났다. 가습기살균제 사용 이후 코점막에 섬유화가 나타나기도 하고 비강천공이 생긴 사람도 있다.

위와 같이 가습기살균제의 독성 물질은 전신질환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 여러 실험과 논문,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역학조사 등을 통해서 이미 충분히 밝혀졌고, 이에 따라 기존에 폐섬유화와 천식만을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보던 가습기살균제특별법을 개정하여 현재는 공식적으로도 피해 질병이 확대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형사재판에서는 예전의 과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또 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인 CMIT/MIT가 폐섬유화와 천식을 일으키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판단한 잘못이 있다.

검찰은 CMIT/MIT 단독 사용자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를 증거로 제출하며 피해 질환이 다양하였음을 주장했어야 하고,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수많은 피해자들이 실제로 사망이나 상해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 더 집중했어야 마땅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 보면 감히 위로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이 지쳤고, 지금도 힘들어한다. 함께 이야기 나누던 피해자 중 억울함에 눈물만 흘리시다가 결국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24시간 20kg가 넘는 산소통을 메고 다니다가 척추마저 으스러진 피해자, 친구들과 달리 뛰지 못하는 어린 피해자 등 수많은 피해자분들이 약 10년간 그 한을 풀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이번 판결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이번 판결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분들은 제대로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고,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번 판결로 인해 CMIT/MIT 성분이 든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온 분들은 특히 더 전혀 구제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피해자들의 울분을 풀고 책임자에 대해 죄에 상응하는 제대로된 법적처벌이 있어야만 앞으로 이런 대참사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 항소심에서는 좀 더 논리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선고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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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께 드리는 당부 

무죄판결 이후,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는 2021년 1월 19일 참여연대에서 피해자들과 전문가들과 함께 해당 판결을 비판하고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가습기넷은 한국환경보건학회의 성명과 판결의 근거가 되었던 동물실험 관련 연구책임자인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 이규홍 박사의 입장을 소개하고 해당 판결에 문제를 지적하는 여러 연구자, 의료인, 그리고 법조인의 주장을 담았습니다. 정의를 구현하기위해 집행되어야 할 법이 피해자의 존재를 지우는 도구로 활용되서는 안 됩니다. 참여연대는 피해자들과 끝까지 연대하며 재판부에 대한 감시도 놓치 않겠습니다.

기자회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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