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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죽었을까. 왜 그랬을까.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었나. 많이 괴로웠나. 고통스러웠나. 그래도 살지. 살아 있지. 살아 있으면,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졌을지도 모르는데. 떠나간 이의 죽음이 안타깝고 슬프고 황망해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들이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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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자주 생각하곤 한다. 왜 살아야 할까. 사람은 왜 살까. 저 사람은 왜 살아있을까. 우리는 왜 살까.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나. 살아서 무슨 좋은 점이 있다고. 이런 고통이나 불안이나 허무나 슬픔을 꾸역꾸역 견디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오랫동안 고민해 보았지만, 지금도 그 이유는 찾지 못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죽는 것보다 살아있는 것이 훨씬 이상하고 기이하게 느껴진다. 그저 태어났으니 생명체로서의 본능 때문에 하루 하루 관성적으로 살아갈 뿐, ‘왜’라고 따지기 시작하면 이유를 찾기 쉽지 않다. 딱히 불행하거나 슬픈 일이 없더라도 말이다.

물론 살면서 행복한 순간이 없지는 않지만 아주 찰나일 뿐이다. 대개의 경우 삶은 무감하고, 자주 잔인하고, 행복한 순간보다는 괴로운 순간 쪽이 훨씬 많다.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똑똑한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지에 관계없이, 삶은 필연적으로 고통이다.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 들어서는 죽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죽지 말라거나, 힘을 내라거나, 네가 죽으면 슬플 것 같다거나, 나를 위해서 힘을 내달라거나, 그런 말을 하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살고 싶은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살아달라는 요구 자체가 이기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살아갈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살아달라는 요청 자체가 폭력적일 수도 있으니까.

나 자신조차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가 많은데. 딱히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쓸쓸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기쁘거나 행복하지 않은 순간은 살아갈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지금은 누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다고 덜 슬프거나 덜 안타까운 것은 아니지만.

오늘 세상을 떠난 두 명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 슬픔에는 재능이 넘치는 한 사람을 이 세상에서 잃었다는 안타까움도 들어 있었지만, 삶을 등진 이들에 대한 반자동적인 연민도 포함되었었지만, 그보다는 삶 자체가 역시나 슬프고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기 때문인 부분이 훨씬 컸던 것 같다.

이렇게 밝고 명랑한 (것처럼 보였던) 사람도 떠날 수 있을만큼 삶이란 혹독한데, 고작 나 따위가 이런 세상을 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같은 것. 딸과 함께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마음 같은 것. 어둠이라곤 찾아보기 힘들 것 같았던 사람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것.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는 것. 내가 아는 다른 사람에게 역시 그런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이런 일을 여러번 반복해서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그렇게 찬바람을 맞으며 하루종일 스산했던 마음의 정체를 생각했다. 영화 [꿈의 제인]에서 평생토록 불행했다는, 자신의 삶 자체가 거짓이었다는 제인은 노래를 부르다 말고 중간에 말한다.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영화를 보고나서 오래도록 이 대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시시하고 하찮은 것. 그러므로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남자고.

꿈의 제인 (조현훈, 2016)
꿈의 제인 (조현훈, 2016)

어쩌면 사람들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 역시 그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살아가기 위해서. 아이를 낳고, 반려동물을 기르고, 식물을 키우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그 감각들을 사랑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너무 자주 죽고 싶어지니까. 딱히 우울해서라거나, 슬퍼서라거나, 고통스럽지 않더라도, 사람은 사랑하는 것이 없으면 아주 쉽게 죽을 수 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자주 고통스럽지만, 어쩌면 그 마음들이 나를 계속해서 살게 해주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통이 없는 곳에서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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